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09화 (40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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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당장이라도 가서 암흑쑈를 벌여보고 싶지만, 아는 발전소 위치도 하나 없기에 일단 참는다.

그렇기에 애꿎은 서울 시내에다가 EMP를 몇 방 더 날려본다.

쏠 때마다 어둠으로 돌아가 버리는 도시.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감이 안 잡힌다.

한 200미터 되는 거 같은데…. 승희도 스킬 반경 증가 4를 찍었으니 100퍼센트 증가라고 치면 반경 100미터인가?

그쯤 되는 것 같지?

어쨌든 스킬은 만족스럽다. 게다가 높은 티어의 스킬답게 페널티가 거의 없어보인다는 게 좋다.

우레 폭풍은 이동 불가를 포함해서 여러가지 페널티가 있었는데, 역병이랑 EMP는 그런 페널티가 거의 없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스킬들.

아마…. 이렇게 높은 티어의 스킬들은 상대적으로 페널티가 적은 것 같은데….

그럼 다른 고 티어의 스킬들도 효과는 끝내주고 페널티는 거의 없겠지?

뭐 당연한 건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고…. 사기라면 사긴 거고.

어쨌든 효과는 훌륭했다. EMP로 작살난 곳은 복구도 안될 텐데.

목숨을 직접 노리진 않지만, 상대의 본거지를 완전히 박살 낼 수 있다는 점에선 이보다 더 악질인 스킬은 없다.

그런 걸 보면…. 스킬 만든 놈들의 의도가 대충 보인다.

한자리에서 엉덩이 깔고 농성하는 것을 힘들게 하는 스킬들이 많다는 것.

결국, 이놈들은 지루한 장기전을 보고 싶지 않은 거 같다.

화끈하게 서로 치고받는 것을 원하는 느낌이야.

그런 것 치고 4년이나 짱박아 놓은 건 이해가 잘 안 간다. 음…. 모르겠어. 대체 이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EMP의 효과는 적당히 봤으니 이제 테이밍이랑 동물 탐지 스킬의 효과를 보러 집으로 돌아왔다.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모습인 세아. 덩달아 묘하게 세아를 따라다니는 승희와 미나.

재밌어. 그렇게 좋을까?

"가자. 가자. 빨리 가자. 안나! 나가자! 나가서 고양이를 찾아줘!"

세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안나도 저 말은 알아들은 것 같다.

귀엽다는 듯이 세아를 바라보는 안나. 무슨 애착 인형 바라보듯이 보네.

어휴. 잘 모르겠다. 왜 저렇게 고양이에게 환장하는지는.

분명 며칠 키우고 나면 마음이 바뀔 것 같은데.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은 없지만, 생명을 키운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근데…. 뭐 상관없나? 그냥 키우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테이밍이니까…. 뭐, 알아서 하겠지.

"가자! 빨리 가자!"

"잠깐. 그 전에."

"엉?"

내가 여자들을 불러세우자 다들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걸 입 밖으로 꺼냈다.

"안나. 여기 집안에서 동물 탐지 한번 해볼래?"

"여기서요? 왜요?"

"곤충도 동물이니 동물 탐지로 나오지 않을까? 여기 벙커 안에 벌레가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어서."

"끼아아악!"

"아…. 안 돼요. 하지 마요. 안나. 하지 마."

"크악! 그런 걸 왜 해!"

승희와 미나, 세아의 격렬한 반대.

물론, 나도 벌레는 싫어한다. 끔찍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리 여섯 개 이상 달린 생물은 내 주변 1미터 안에 들어오는 것도 싫으니까.

그렇기에…. 더 알고 싶은 거다. 과연 우리가 사는 이 벙커는 그 저주받을 족속에게 얼마나 침략 되었나.

하지만 세 여자의 격렬한 저항.

그리고 안나는 그런 여자들의 반응을 보다가 나를 바라보고 짧게 말한다.

"안 할래요."

단호한 표정. 여전히 웃고 있는 안나의 얼굴.

"그래! 그거야!"

"후우…."

"맞아! 그런 걸 할 필요가 없지!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고!"

승희, 미나, 세아는 안나를 옹호하며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본다.

으음. 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회피하다니. 얄팍한 녀석들….

뭐, 안나 역시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방법이 없다.

그래. 진실은 묻어두자. 아무도 모르게 저 심연 깊숙이.

"뭐…. 그럼 나가자."

내 말에 다들 냉큼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벙커 바깥으로 나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난번 고양이들이 집회하던 곳으로 향했다.

안나는 벙커 밖으로 나오고 한참 떨어진 뒤에야 조용히 스킬을 쓴다.

"동물 탐지."

그렇게 스킬을 쓰더니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안나.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

동물 탐지를 썼다는 걸 아는 데도 그 모습이 약간 무섭다.

마치 영적인 존재라도 보는 듯한….

"안나."

승희가 불렀고 그제야 안나는 정신이 든 것처럼 승희를 바라본다.

"아. 씅희."

"뭐야. 왜 그래. 뭐가 있어?"

"네. 있어요. 이거…. 정말 신기해요."

주변 인간 탐지와 같은 맥락이라면 하급일 때 반경 25미터.

안나가 스킬 반경 증가3을 찍었으니 60퍼센트를 적용하면 40미터.

하급인데도 상당히 넓은 범위다. 그리고 그 안에 동물은 수없이 많을 거다.

앞서 말했듯 벌레도 동물이니까.

4월이 되어 따듯해진 기후니 벌레들은 제법 많을 거다. 바글바글할 정도로.

"이게…. 잡히는 게 엄청 많거든요? 근데 정신없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그리고 기척을 보면 뭔지 바로 알 수 있어요. 동물인지, 곤충인지."

"아. 그래?"

내 물음에 고개를 열성적으로 끄덕이는 안나.

그러더니 계속해서 스킬을 쓴다. 다시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안나.

"여긴 벌레 많지?"

"네…. 상상도 못 할 정도로요."

"으. 난 싫다."

"그래도 그 모습이 보이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근데 너 벙커에서 그거 숙련은 어떻게 하냐."

내 말에 그제야 아차 싶은지 살짝 입술을 깨무는 안나.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네. 안나가 당황할 때도 있구나.

"으음…."

고민하는 모습도 이쁘네. 맨날 웃는 모습만 보다가 이런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도 굉장히 신선하다.

처음 본 날. 그러니까 백마촌 놈들이 있던 비즈니스 호텔에서 구했을 때.

그때 이후로는 항상 웃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때는 그랬다.

나를 보고 항상 웃어줬으니까.

근데 그런 그녀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다니. 얘도 사실 벌레가 그리 좋은 건 아닌거야.

하긴, 세상에 어떤 여자가 벌레를 좋아하겠느냐마는.

"동물 탐지."

다시 탐지를 쓰는 안나. 그렇게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곧 표정이 환해졌다.

"됐어요!"

"어?"

"필터링이 돼요! 벌레만, 조류만, 포유류만…. 이런 식으로 가능해요!"

"엥? 그런 게 된다고?"

아니…. 이 무슨 편리한 시스템이야. 근데…. 사실 생각해보면 딱히 안 될 것도 없다.

주변 인간 탐색은 어차피 인간 밖에 탐색이 안 되니 그렇다 쳐도 동물은 종류가 많잖아?

곤충, 포유류, 조류 어류…. 종류만 따져도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필터링이 되는건 말이 된다. 되는데….

잠깐…. 그럼 인간 탐지도 그런 게 되나?

"탐지."

근데 인간은 필터링할만한 게 없잖아. 아. 성별? 성별로 해볼까?

남자만 나오도록 생각하니 네 여자의 기척이 사라졌다.

어? 정말? 진짜로? 이게 된다고? 이번엔 여자만 나오도록 생각해본다. 다시 기척이 느껴지는 네 여자.

얼라려? 정말? 잠깐만. 그럼 나이 같은 것도 되나?

22세 이상만 탐지에 걸리라고 생각해 봤지만 이건 안되는 거 같다.

음. 하긴. 이건 좀 반칙인가? 상대방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거니까?

근데 남녀가 된다는 것도 상당히 신기하다.

이런 거라면 탐지를 돌려서 주변에 있는 매혹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가능하잖아.

탐지를 쓴지 한참 됐는데 이걸 이제야 알게 됐네.

"탐지는 왜 썼어요?"

"안나가 말한 거 주변 인간 탐지에도 되는지 확인해보려고. 방금 해봤는데…. 되네. 남자랑 여자가 별도로 탐지가 돼."

"아. 정말요?"

방금 '정말요?'라고 말하는 부분은 완전 한국 여자 말투였다.

아무래도 승희, 미나, 세아랑 같이 붙어있어서 그런가? 그녀들의 말투를 따라가는 느낌이야.

어쨌든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신기한 듯 탐지도 돌린다.

그렇게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결국 고양이 회합장에 도착했다.

"후.후.후.후.후."

팔짱을 낀 상태로 이상하게 웃는 세아.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정말.

그리고 승희와 미나도 그런 세아 옆으로 가더니 셋은 모여있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게 저렇게 진지할 내용이니?

뭔가 끼어들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세 여자.

나는 탐지를 한번 쓱 돌리고 우리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느긋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런 내 옆으로 슬쩍 서는 안나.

"안나는 고양이에 관심 없어?"

"음. 있으면 귀엽겠죠? 근데 크게 관심은 없어요."

"그래? 근데 동물 탐지는 왜 고른 거야?"

"그거야…. 여러가지 이유가 있죠."

"어? 여러가지나 있는 거야?"

"먼저 세아에게 도움이 될 거고요."

그래. 그건 당연히 그렇다. 테이밍을 하는데 동물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허둥거리면 그것도 웃기지.

“그 역병 쓸데도 도움이 될거고요.”

“맞아. 쥐 같은거 테이밍 해서 역병 퍼트려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말했듯이 코인 탐지는 결국 배워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러면 누군가는 배워야 하잖아요? 그래서 선택했죠."

"근데 다른 사람이 배웠어도 됐잖아?"

"코인 탐지는 중요하죠?"

"아마도? 어느 정도 효율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니 배우고 싶었어요.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갑자기 훅 들어온 안나의 말에 약간 감동 받았다.

그리고 약간의 미안함과 걱정이 들었다.

아. 안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스킬을 자진해서 배운 거구나.

아이고. 이 여자야. 어쩌면 그렇게 안쓰럽게 생각하냐.

안나는…. 속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있는 거다.

'자신이 필요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

처음에…. 내가 러시아어를 모른다고 물류센터에 보내버렸던 게 은근히 상처가 됐던 걸까?

모르겠다. 이렇게 이쁜 여자가 자신의 존재감과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나에게 어필하는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간다.

그저 나에겐 과분한 여잔데. 정말…. 사람 마음은 어렵구나.

"그리고 그런 것도 있어요."

"응?"

"파티를 맺고 있으면 어디에 있든 코인을 획득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그럼 당신이랑 둘만 나가서 코인을 찾으러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휴. 정말 이 아가씨는…. 나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

고마운 일이다. 고마운 일이야.

참 나는 복 받은 놈이구나. 분에 넘치게.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기에 그저 안나의 손을 잡아줬다.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해맑은 미소를 내게 보여주는 안나.

늦은 밤인데도 주변이 모두 밝아지는 느낌이다.

근데…. 안나 얘도 상당히 앙큼하네. 그런 걸 다 계산하고 동물 탐지를 골랐다는 거잖아?

하여간 머리도 좋아.

"좋아. 그럼 저 아이로 할게요!?"

승희, 미나, 세아가 드디어 테이밍 할 고양이를 선택했나 보다.

나는 안나의 손을 계속 잡고 그런 그녀들을 바라봤다.

"테이밍!"

"됐어?"

"된 거야?"

승희와 미나가 옆에서 물어본다.

약간 아리송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아.

"된 거…. 같은데요? 뭐가 떴어."

"혹시 펫 패널 같은 거야?"

"어. 네. 그런 거 같은데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세아가 미나를 향해 물어봤고, 미나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 나도 역병 쓰니까 역병 패널이라는 게 떴거든."

"아아."

"테이밍 됐으면 뭔가 시킬 수 있는 거 아냐?"

"그렇겠죠? 한번 해볼게요. 루시! 이리와!"

뭐지. 벌써 이름까지 정한 건가? 대단하네. 정말 별거 아닌거에 진지하구나?

그런 세아의 부름에 고양이 한 마리가 폴짝하고 담장에서 뛰어내리더니 세 여자 쪽으로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틀어막고 귀엽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는 세 여자.

어…. 난 모르겠다. 그냥 쟤 털이 좀 긴 게 거슬리는데.

진짜 쟤를 벙커 안으로 들일 셈인가? 아. 벌써 현기증 나는데.

"아으…. 귀여워…."

안절부절못하는 세아.

옆에서 승희가 세아의 옆구리를 막 쿡쿡 찌른다.

"어. 그래. 으…. 앉아!"

분명…. 앉으라고 한 거 같은데 고양이는 그대로 세 여자 앞에서 털썩하고 눕더니 배를 보인다.

그러면서 요래요래 몸부림을 치는데…. 그걸 보고 세 여자는 좋다고 꺅꺅거린다.

"어. 앉으라고 하지 않았어? 저건 누운 거 아냐?"

내가 물어봤지만 세 여자는 대꾸도 없다. 그랬단 말이지? 두고 봐라. 너네.

고양이에게 질병 해제를 거는 미나, 힐을 거는 승희. 힐은 대체 왜 거는 거야? 다친 곳도 없어 보이는데.

수납에서 하얀 천 같은 걸 꺼내는 세아. 보니까 흰 면티다. 그걸로 고양이를 감싸고 안는다.

"자. 빨리 집에 가죠! 목욕시켜줄 거에요!"

"어…. 그러던가. 근데 고양이 목욕은 뭐로 시켜주게."

"아! 맞다!!"

"사료는 있니?"

"헉!"

세아뿐만 아니라 승희랑 미나의 표정도 아뿔싸 하는 표정이다.

어휴. 벌써 걱정된다. 괜찮은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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