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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새
"미안하네. 매번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 하고 사람이나 죽이러 다녀서."
SG 센터에서 사냥한 지 두 시간째. 세 번째 팀을 전멸시키고 코인을 먹는 미나에게 한 소리다.
미나는 사뿐하게 날아가 바로 파티를 탈퇴하고 바닥에 떨어져있는 코인들을 바로 먹는다.
그리고 다시 미나를 파티 초대한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요. 저는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걸요."
나를 보고 웃어주는 여자. 나 원 참. 왜 저렇게 착할까.
아니 이제는 사람을 죽이고도 담담하게 표정관리를 할 수 있으니 정말 착하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난 세상에서의 선악 기준에 따르면 착하기는커녕 미친 살인마겠지.
하지만 망해버린 이 세상은 저런 착한 여자도 살인과 성격을 분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살인을 죄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아파한다면 그 또한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우울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짓이 되겠지.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
"가고 싶은 곳이요?"
내가 연 게이트를 타는 미나. 우리는 다시 SG 센터로 왔고 다음 타겟을 물색한다.
"있죠. 바다요."
"바다?"
"네. 승희한테 바다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부러웠던 거 있죠. 나도 가고 싶어요. 나…. 바다에 놀러 가본지 정말 오래됐거든요."
"어…. 그렇겠네. 데뷔하고 나서는 전혀 못 갔지?"
"그쵸. 스케쥴도 안되고 갈 엄두도 못 냈죠. 수영복 이런 건 꿈도 못 꿨고요."
"하긴, 그렇겠네."
미나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미나가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물론 알몸이야 많이 봤지만…. 수영복은 또 느낌이 다르잖아?
손바닥만 한 천 쪼가리로 가리고 있는 게 더욱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게다가 그건 집에서 보는 거랑 또 느낌이 다르다. 수영복이 빛을 발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다. 눈 부신 태양과 시원한 파도 소리가 가득한 해변.
"바다라. 좋지. 바다."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들. 백령도를 한번 점거해본 다음 확실히 느꼈다.
이름난 휴양지. 그러니까 하와이나 괌, 사이판 같은 곳.
그런 섬을 가서 거기 인간들을 싹 정리해버리면 그곳은 천혜의 요새가 된다.
비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몇천 킬로미터를 날아올 수는 없을 거다.
비행기가 없는 세상. 섬은 말 그대로 고립된 곳이니까.
순간이동이나 게이트가 없다면 충분히 행복한 곳이 되겠지.
그런 곳에 아지트를 만들어 놓으면 정말 좋을 거야.
그동안은 벙커의 덕을 많이 봤다. 부족한 안전을 보안을 유지해주는 든든한 성채.
하지만 이제 네 여자도 많이 성장했다. 슬슬 벙커 밖으로 나와도 크게 문제가 없잖아?
아마 네 여자가 모두 탐지를 배우는 순간이 우리가 벙커를 졸업하는 날이 될 거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승미세안 네 여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긴 하다.
오히려 네 여자를 만나는 사람이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야지.
"바다. 그것도 한번 추진해봐야겠네."
"네?"
"아냐. 미나 네 소원을 이뤄주려고."
"으음. 너무 무리하진 말고요."
"무리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그렇게 말하며 또 다른 차 하나를 쫓아간다.
숫자가 제법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SG 센터에 오는 놈들은 많다.
진짜 고마운 일이야. 여기가 없었더라면 난 아직 코인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배회하고 다녔겠지.
이 정도로 코인을 벌지도 못했을 거고.
슬슬 여기를 전멸시키면 코인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 하는데.
짱개의 그 넘쳐나는 코인을 두고도 수확하기가 이렇게 힘이 든다니. 에휴.
차가 어느 정도 청주에서 멀어지자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
비슷한 패턴. 차 타고 다니는 놈들은 거의 비슷하다. 사고의 맹점이라고 해야 하나?
차를 타고 가면서 눈앞에 뭔가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안 하잖아?
그리고 자신들이 타고 있던 차 위에 다른 차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도 안 하고?
수납에서 떨어진 차 한 대가 차 위로 직격했다.
이제는 타이밍 맞추는 게 익숙해 져서 굳이 멈춰 세우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빠르게 달리던 차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차와 부딪치고는 그대로 가드레일을 들이박았다.
이미 빛 하나가 터졌고, 차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로 밖으로 떨어진다.
쿠웅
이 방법이 좋은 건 차가 찌그러지면서 차 안에 있던 놈이 밖으로 탈출을 못 한다는 거다.
뭐, 이미 첫 충격에 기절하는 놈들이 태반이긴 하지만.
페이즈 아웃 같은 걸 배운 놈이 하나도 없는 게 신기하다. 왜 없을까? 하긴 다들 비슷하겠지.
좋아 보이는 스킬은 잔뜩 있는데 어떤 효과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스킬에 투자하는 놈들은 없을 테니까.
바로 도로 위에 있는 차를 수납에 담았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 수납에 있는 차를 아무 데나 뱉어놨다. 그리고 방금 떨어진 차를 다시 수납에 담는다.
미나가 사뿐하게 내 곁으로 오더니 파티 탈퇴를 하고 땅에 떨어져있는 코인을 주우면서 또 한 번의 사냥이 끝났다.
"코인 얼마나 벌었지?"
"지금 네 팀째에 65만요."
"쏠쏠하네. 역시 독식이 최고야."
다시 미나를 초대하고 그녀가 파티에 들어왔다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나는 미나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이 돼야 마음이 놓인다.
다 큰 데다가 스킬도 흉악한 아가씨를 마치 놀이동산에 데려온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게 맞나 몰라.
다시 SG 센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루한 일이지만 코인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밖으로 나가는 차가 없기에 잠시 대기. 공중에 떠서 미나에게 슬쩍 물어본다.
"역병은 어때?"
"공기 감염은 감염자 3400명요."
"잘 늘어나네. 그거 증상이 뭐였지?"
"어…. 미열이랑 소화불량?"
"뭐 증상이 그러냐. 그 정도면 알아채지도 못하겠다. 근데 치사율이 21퍼센트야? 끔찍한 병이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갑자기 살짝 열나고 소화도 안 되는데 죽어버리는 건가요?"
"그것만 보면 그렇지. 와. 진짜 어이없겠네."
그러고 보니 미나는 역병을 쓴 이후부터 나에게 습관으로 질병 해제를 쓰고 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아마 내가 탐지 돌리는 것보단 덜할 정도로.
숙련 중에는 숙련도가 오르는 거로 질병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쉬웠는데, 마스터 한 이후로는 오히려 질병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어진 스킬.
그런 거 생각하면 확실히 스킬 만든 놈들이 생각 없는 건 확실한 거 같아.
세세한 부분에서 어설퍼.
아무리 봐도 뭔가 부실하단 말이지. 만들다 말았어. 확실하게.
"어. 저기!"
오랜만에 차가 아닌 놈들이 보였다.
세 명. 셋 다 비행을 쓰고 날아간다. 들고 있는 게 없는 거로 봐선 수납도 있는 거 같다.
두 놈은 투명화를 쓰고 있고 하나는 안 쓰고 있는 거로 봐선 스킬이 그다지 많아 보이진 않는다.
"쟤들 따라가자."
"네."
저런 놈들이 아직 어떻게 살아있을까? 살짝 한심한 기분이 든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보이질 않아. 그리고 그렇게 운이 좋았으면 좀 죽은 듯이 살지…. 왜 저렇게 나돌아다니냐고.
아니…. 내가 이상한 거겠지. 저들은 그저 자신들만의 생활을 하는 거잖아?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또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냥 잡아 죽이면 될 뿐이야.
투명화도 없는 놈들이 반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공격을 할 수는 없다.
"미나."
"네."
"저놈들에게 광역 스킬 무효화 쓸 거야. 비행 풀리는 즉시 바로 번개 써."
"네."
한 놈이 투명화가 없어서 그런지 그리 높이 날아서 가진 않고 있는 녀석들.
아마 건물들을 엄폐물 삼아 한가한 곳까지 벗어나려는 것 같은데…. 아이고 의미 없다.
"간다."
바로 거리를 좁혀 광역 스킬 무효화를 날렸다.
지상에 찍어도 범위가 닿는 녀석들. 바로 비행이 풀리며 깜짝 놀라더니 허둥지둥한다.
하지만 다시 비행을 쓰기도 전에 녀석들에게 번개가 순서대로 내리꽂혔다.
공중에서 번개에 맞고 그대로 떨어지는 놈들.
이미 숯덩이가 된 녀석들은 바닥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빛이 되었다.
미나는 또 파티 탈퇴를 하고 바로 가서 코인을 먹는다.
미나의 표정이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녀에게 다시 파티 초대를 하며 물었다.
"왜? 코인이 많아?"
"네. 셋이 합쳐서 67만요."
"아. 열심히 코인 모으던 놈들인가 보네. 하긴, 30만짜리 스킬들을 배우려면 어쩔 수 없지."
"네 팀 잡은 것보다 이 세 명이 코인을 더 많이 가지고 있네요."
"간혹 그래. 딱 그 시기가 있지. 그럼 지금 얼마 있지? 200만 넘었나?"
"네. 222만요."
"그럼 지금 스킬 찍자. 다음 거."
"아. 알겠어요."
"일단 패시브 두 개 찍고."
"네. 음…. 찍었어요."
"보호막부터 찍자. 보호막, 데미지 감소, 탐지 이 순서로 가자."
"공격 스킬은 더 안 찍어도 될까요?"
"언젠간 찍겠지. 근데 지금은 일단 가지고 있는 공격 스킬들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니까."
"알겠어요. 찍었어요."
"보호막은 항상 키고 다녀."
"네. 보호막!"
보면 볼수록 신기한 스킬이다.
물리 공격과 광역 스킬은 막아주지만, 단일 목표 스킬은 못 막아주는 스킬.
완전히 자신을 감싸도 숨은 쉴 수 있는 스킬.
게다가 자신이 친 보호막이 자기가 쓰는 광역 스킬을 막는 어이없는 스킬이다.
"그거 알지? 네가 보호막으로 번개 구체 길을 막으면 더는 못 나가는 거?"
"네. 알고 있어요."
"어차피 번개 구체는 잘 안 쓰니까."
"그런데 이거 보호막이요."
"응."
"이거 자체로도 물리 공격을 막잖아요?"
"그렇지."
"그럼 보호막을 쓰고 비행으로 빠르게 부딪치면 어떻게 되죠?"
"어…. 그러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보호막은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 용이지 이걸로 상대를 공격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니까.
"바로 해보자."
수납에서 차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그걸 본 미나는 보호막을 다시 두르더니 빠르게 비행으로 다가와 부딪친다.
쿵!
찌그러지는 차. 그리고 편안한 표정의 미나.
"되네?"
"네. 근데…. 그리 충격이 크진 않네요."
"뭐, 비행은 시속 50킬로니까. 그래도 적당히 타격은 되겠는데?"
"SG 센터 한번 가볼래요?"
"어?"
"뭐 하나 해보게요."
"나한테 말하고 해."
"아니에요. 그냥 한번 해볼래요."
별수 없이 게이트를 열어줬고 우린 다시 SG 센터로 넘어갔다.
마침 출발하는 차 한 대. 미나는 그 차를 쫓았고 나는 그런 미나를 따라간다.
왜 갑자기 저렇게 적극적으로 변한 거야?
차는 고속도로를 올라갔고 늘 그렇듯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비행으로 쫓아가다가 블링크를 쓰기 시작하는 미나.
적당히 차가 청주랑 멀어지자 미나는 갑자기 블링크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
미나는 보호막을 쓴 상태에서 차량의 앞에 섰다. 공중에 적당히 떠있는 위치.
이대로 간다면 차의 앞 유리는 미나와 그대로 부딪칠 것 같다.
깜짝 놀란 나는 미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차가 그대로 미나에게 부딪쳤다.
쾅!
차의 앞 유리가 그대로 보호막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미나는 그사이에 차 안으로 번개 구체를 던져 넣었다.
안 그래도 반쯤 박살 난 차 안쪽에서 번개가 번쩍번쩍했고, 차는 그대로 핑그르르 돌아 도로 가로 처박힌다.
쿠웅
"미나!"
"헤헤. 될 거 같았어요. 이거 비슷한 걸 승희랑 안나가 했거든요."
"아니!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아!"
"아무렇지도 않은 걸요. 봐요. 멀쩡하잖아요."
"너는 하급 보호막이잖아! 조심해야지."
"걱정 마요. 보호막은 스킬로밖에 안 깨져요."
그래. 나도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거랑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어휴. 진짜 사람 간 떨어지게.
"파티 탈퇴."
바로 파티를 나가더니 차로 다가가 나를 바라보고 말한다.
"이거 수납으로 좀 들어주세요."
군말 없이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차를 수납으로 먹어치웠고, 미나는 유유히 코인을 먹는다.
"초대 주세요."
그러면서 싱긋 웃는 미나.
그녀에게 파티 초대를 주면서 약간 복잡한 마음이 든다.
당당해진 모습. 그런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뭐라고 해야 하나.
둥지를 벗어나는 아기 새 느낌이려나? 묘하게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