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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미나와 함께 우한 상공을 날아다니며 역병을 살포한다.
정말 살포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보이는 족족 무지성으로 역병을 걸고 있으니까.
한 명에게 역병을 여러 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역병이 여러 개 걸리면 생각보다 금방 죽어버린다.
그렇기에 적당히 두어 개 정도씩만 걸고 지나갔다. 어차피 걸어놓을 짱개들은 넘쳐나니까.
"어때?"
"확실히 공기 감염이 퍼지기는 가장 잘 퍼지네요."
"지금 퍼져있는 역병이 몇 개나 되지?"
"132개요."
"그런 것도 뜨나?"
"네. 역병 패널 위에 떠요."
"그런 건 또 되게 편하게 해놨네. 가장 많이 퍼진 건 몇 명이야?"
"23명요. 아. 24명. 이게 제일 많아요. 다른 건 몇 명 안 돼요. 1명이라고 돼 있는 게 대부분이고."
"번거롭더라도 그걸 좀 지켜보면서 확인해줘. 어떤 조건이 가장 잘 퍼지는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알겠어요."
일단 우한에는 걸 만큼 걸었다. 어차피 한자리에 많이 걸어봐야 치사율만 높아지겠지?
미나에게 베이징 주변으로 게이트를 열어주고 넘어갔다.
골고루 뿌려줘야지. 그래야 멀리멀리 잘 퍼지지.
베이징 주변도 미친 듯이 역병을 걸었다. 포션을 먹어가면서 역병을 걸고 있는 미나.
과연 역병이 퍼지는 것과 질병 해제로 치료하는 것, 어느 게 더 빠를까?
과연 녀석들이 질병 해제 있는 놈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써먹을 수 있을까?
문제는 이놈들이 구역으로 봉쇄를 해놨다는 거다.
아무리 역병을 돌려도 봉쇄된 구역을 넘기는 힘들 것 같은데…. 공기 전염이면 저 벽도 넘을 수 있으려나?
뭐…. 지켜보면 알겠지. 역병이란 거 당장 효과가 나오는 스킬은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
하루를 꼬박 돌면서 제법 많은 짱개들에게 역병을 걸었다.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돌아와 상쾌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과연, 짱개놈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두근두근 한 마음이야.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네 여자와 함께 SG센터로 출근한다.
중국이 금밭이긴 한데…. 거긴 사금 채취장 같은 느낌이다.
많긴 많은데 너무 흩뿌려져 있어. 빨리 좀 알아서 코인 좀 모았으면 좋겠네.
양은 많은데 모이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단점이야.
그 전까진 확실한 금광을 마저 캘 수밖에 없지. 남김없이 잡아 죽이기 시작한다.
정말 남김없이 잡아 죽이기로 해서 그런가? 수익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다섯이서 엔빵 했는데도 하루에 40만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 근데…. 그래도 적어.
평균 40만이면 총합 200만이다. 하루에 200만 코인을 버는데도 적다는 소리가 나오다니. 어휴.
밤 열시 10시.
SG 센터의 폐점.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지막 팀을 골라서 녀석들을 쫓아간다.
이번엔 굳이 멀리 따라가지 않고 빠르게 제압한 뒤 기억을 읽는다.
아쉽게도 이번엔 꽝이다. 근처에 사는 놈들인데 연관된 놈들이 거의 없다.
뭐, 허탕 치는 날도 있어야지. 그렇게 벙커로 돌아왔더니 다들 편안한 복장으로 거실에 모여 스킬 이야기를 하며 숙련을 하고 있다.
"미나야."
"네."
"역병은 잘 돼 가나?"
"안 그래도 그거 보고 있어요. 몇몇 역병이 감염자가 확 늘었어요."
"그래? 어떤 거?"
"수인성 질병에 전염력 높은 거 하나랑 공기 감염 하나, 그리고 설치류 전염요."
"설치류 전염? 아. 하긴. 이제 날씨가 제법 풀렸으니…. 근데 설치류라면 쥐새끼잖아. 으. 무슨 페스트냐."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요. 테이밍 있잖아요?"
"어."
"설치류 전염이면…. 쥐를 테이밍 해서 여기저기 옮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네. 쥐 정도 크기면 봉쇄고 뭐고 다 지나다닐 수 있겠지. 근데…. 그걸 일일이 다 조종할 수 있을까?"
"굳이 조종할 필요 있나요? 테이밍이면 뭔가 시킬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돌아다니면서 쥐들에게 옮겨라.' 이런 명령?"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으음. 궁금하긴 하네. 충분히 가능성 있단 말이지. 근데 누가 하게? 테이밍 하고 싶은 사람 있어?"
"나! 나! 내가 할래!"
세아가 손을 번쩍 든다. 역시. 저럴 줄 알았어. 바깥에 있는 렉스도 그렇고 저 녀석 은근히 동물을 좋아한단 말이지.
"하는 건 좋은데…. 쥐를 테이밍 할 수 있겠어?"
"으…. 쥐? 으…. 굳이 만지거나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러면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 그러면…."
결국, 코인 탐색은 하나 있긴 있어야 할 거다. 그리고 그건 근접 스킬 위주로 있는 세아가 얻는 게 낫겠지.
어차피 세아도 근접 스킬은 다 올리긴 했으니까 그쪽을 파보라고 할까? 근데 보호막이랑 데미지 감소도 찍어야 하는데.
필수 스킬이 많아지니 힘드네.
당분간 전투를 피하고 코인 벌이 위주로 움직이면 데미지 감소는 조금 늦게 배워도 되려나.
"일단, 너 반사 얼마 남았어?"
"나? 내일이나 모레면 마스터 하지."
"그래? 그럼…. 일단 테이밍 배워봐."
"진짜? 오예!"
세아에게 허락해줬는데 왜 승희랑 미나도 좋아하지? 저 녀석들 아직 벙커 안에 고양이 데려오는 걸 포기 못했나 보네.
아무튼, 테이밍은 그렇다 치고…. 역병을 좀 더 확인해본다.
"그러면 지금 그 세 개는 감염 인원이 얼마나 되나?"
"수인성 이거는 215명. 공기 감염 이건 340명. 설치류는 80명이요."
"다른 건?"
"거의 10명 이하에요."
"역병 걸어 놓은 지 이제 하루 지났는데…. 공기 감염이 확실히 좋네. 각각 치사율은?"
"수인성은 5프로. 공기 감염은 21프로. 설치류는 40프로요."
"40프로? 와씨. 10명 걸리면 4명은 죽는다는 소리잖아? 진짜 페스트네."
"페스트가 그거 말하는 거죠? 흑사병?"
"어."
"오빠가 말한 데로 사망률이 높으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치료하러 온 질병 해제 스킬 있는 놈들도 죽어버리면 좋지."
"아. 그렇네요. 근데 질병 해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쉽게 죽을까요? 적어도 자기한테 치료하는 걸 아끼진 않을 거 같은데."
"그렇겠지. 대신 포션을 살 수 있는 코인이 없다면 체력을 펑펑 쓰기도 힘들겠지."
"아. 게다가 오히려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다들 자기를 치료해달라고 할 거고 질병 해제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부터 치료하려 할거고. 어쩌면 자기가 질병 해제가 있다는 걸 밝히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 어쨌든 이 역병 스킬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스킬이 아냐. 이런 사회 시스템이나 집단을 박살 내는데 더없이 좋은 스킬이지."
"우리도 겪어봤잖아요. 그렇게 의학기술이 발달했을 때도 구멍이 뻥뻥 뚫렸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면…. 말도 못 할 정도겠죠."
"맞아. 그렇겠지. 어쨌든 나는 질병 해제로 역병을 모두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 우리처럼 평소에 질병 해제를 꾸준하게 해서 질병이 아예 없던 사람들이면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당히 힘들 거야."
고개를 끄덕거리는 미나.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바로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니 미나가 내 곁에서 나를 보고 있다.
"일어났어요?"
이럴 땐 벙커가 아니고 햇살이 잘 드는 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환하게 빛나는 미나를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침이 행복해지겠지?
"그래도 좋네."
"뭐가요?"
"아니야. 근데 무슨 일 있어?"
"꼭 무슨 일 있어야 오빠 곁에 오나요?"
그러면서 또 슬쩍 다가오는 미나.
이 아가씨가 요즘 왜 이러는 거야. 사람 설레게.
"자고 일어났더니 뭔가 상황이 많이 변했어요."
"응?"
약간 야한 무언가를 기대했지만, 미나의 말에 살짝 실망한다.
"무슨 상황?"
"역병의 반 정도가 사라졌어요. 그리고…. 공기 감염의 감염자가 2천 명을 넘었어요."
"2천 명? 와. 엄청나네. 다른 거는? 그 수인성이랑 설치류?"
"수인성은 540명, 설치류는 250명요."
"근데 역병의 반이 사라졌다고?"
"네."
"음…. 치료 된 걸까? 아니면 죽었나?"
"둘 다겠죠. 어쨌든 어떻게 해요?"
잠시 생각해본다. 어차피 여러 종류의 역병이 퍼져야 할 필요는 없지. 하나만 확실히 퍼지면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할 테니까.
"공기 감염이 치사율이 몇 퍼센트라고?"
"21퍼센트요."
"다섯 명이 걸리면 하나는 죽는다는 이야기네. 게다가 다섯 중의 하나가 죽었다고 남은 네 명이 절대 안 죽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잖아? 어쨌든 치료를 못 하면 결국 다 죽을 테니까."
2천 명쯤 퍼졌으면 저걸 막을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저게 어느 정도까지 확산하느냐인데.
공기 전파가 과연 봉쇄된 구역을 뚫고 퍼질 수 있을까?
아무리 봉쇄된 지역이라고 해도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없진 않을 텐데.
그런 놈들이 걸려서 주변 지역에 팍팍 옮겨주기만 한다면 그게 제일 좋을 거고.
"그럼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죠?"
"응. 그 방법밖에 없지. 이미 우리 손을 떠났으니까."
추세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건 좋네. 시간이 꽤 걸려도 그동안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그날도 SG 센터에서 떠나는 놈들을 쳐 죽였다.
근데 뭔가 소문이 돌긴 하는 거 같다. 확실히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
끄응. 언젠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너무 이르다.
아직 뽕을 못 뽑았다고! 기왕 거위의 배를 갈랐으면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어야지!
뼈까지 국물로 우려내서 마지막 한 방을 까지 다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고!
또 학살로 얼룩진 하루가 지나갔고 잠들기 전에는 역병에 걸린 인간이 5천 명을 넘었다.
"퍼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거 같은데요."
"그래 봐야 5천 명이잖아. 짱개들 숫자를 생각하면 5천 명은 티도 안 나. 5천만 명이 걸렸다고 해도 크게 티가 날까 모르겠다."
"그렇긴 하겠네요. 그래도 실감이 잘 안나서."
"다른 것들은 어때?"
"다른 것들은 점점 역병 숫자가 줄고 있어요. 수인성하고 공기 전염, 설치류. 이거 세 개만 계속 늘어나요."
"이걸 직접 선택해서 역병을 뿌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방법은 없어 보이니 어쩔 수 없죠."
"아니…. 좋은 역병이 나올 때까지 가챠 뽑기 처럼 돌리면 되지."
"가챠 뽑기요?"
"아. 안 해봤나? 어…. 그러니까 랜덤 뽑기 같은 거지. 좋은 게 나올 때까지 뽑는…."
"뭔지는 알 것 같네요."
원하는 역병이 나올 때까지 뽑기를 하는 거….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문제는 뽑아냈다고 하더라도 그걸 전파하는 게 쉽냐 이거다.
변수가 너무 많아. 게다가 뭐가 좋은지도 정확하게 모르고.
일단은 역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사실 그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지.
또 하루가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눈을 뜨자 어제와 똑같이 눈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미나.
"데자뷰?"
"어? 그거 우리 타이틀 곡 중에 있었는데."
"아. 그래? 맞네. 그랬던 거 같다."
"왜 그걸 모르죠? 실망이에요."
삐진 척하는 미나. 아휴 이뻐라. 저런 표정도 이뻐요. 사기야. 사기.
"미안해. 이리와."
미나를 품에 안고 잠깐 다독여준다. 내 품에 아기처럼 안겨있는 미나.
그녀의 몸에서 나는 살 냄새가 나를 유혹하는 느낌이다.
음…. 한번 할까? 참기 힘든데.
"역병이요."
"어? 어."
미나가 입을 열었고, 나는 엉큼한 생각을 쓱쓱 지웠다. 쩝.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침에 일어나니 만 명이 넘은 거 있죠."
"어우. 전염력 장난 아니네. 그 공기 전염 그거 말하는 거지?"
"네."
"12시간에 거의 두 배씩 늘어나는 느낌이네. 하루에 네 배인가."
"거의 그런 느낌이에요. 확실히 점점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역시 좋긴 좋네. 만 명이 걸렸으면 적어도 2천 명은 죽었다는 소린데."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죽은 사람은 집계 안 되나?"
"네. 그런 건 없어요."
"흐음. 한번 가서 보긴 해야겠네. 이거 공기 감염은 어디였지? 베이징 쪽이었나?"
"네."
"너 아직 다음 스킬 못 찍었지?"
"네. 아직 코인이 얼마 없어서."
"얼마 있지?"
"90만 정도요."
"90만이라. 잠깐 거실로 나가자."
거실에 나가니 승희랑 세아, 안나가 전부 나와 있다.
여자들을 모두 불러 모은 나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다들 코인 얼마씩 있지? 숙련은? 승희부터."
"전 270만이요. 전 내일 데미지 감소 숙달할 거 같아요."
"그래? 세아는?"
"나도 반사 숙련 하는 거 내일 정도? 빠르면 오늘 밤. 코인은 250만."
"비슷하네. 안나는?"
"전 데미지 감소 오늘 마스터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코인은 280만 있고요."
"확실히 미나가 숙련 두 개 스킵한 게 크긴 크네. 그러면…. 오늘은 미나하고만 둘이 다녀올게. 코인 몰빵 좀 시켜야겠다."
셋 다 아쉬워하는 기색이 살짝 보이지만, 내가 미나를 편애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싫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너희도 필요하면 몰빵 할 거니까. 너무 그렇게 아쉬워 하진 마."
그제야 조금 풀리는 얼굴들. 어휴. 쉽지 않다. 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