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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그렇게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 같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미나의 스킬을 찍기 시작했다.
"지금 코인 얼마 있지?"
"어…. 170만요."
"그럼 패시브 두 개 찍고…. 역병이 50만이라고?"
"네."
"그럼 그것만 해도 110만이네."
"네."
"일단 찍어봐."
"알겠어요."
바로 스킬을 배우는 미나. 이리저리 허공에 손을 움직이더니 나에게 말한다.
"이것도 우레 폭풍 같은 거 맞나봐요. 스킬 선택 창 또 나왔어요. 패시브4도 나왔고요."
"그래? 이야. 그럼 갑자기 티어10이 됐네. 아. 티어10이면 그거 나왔겠다? 통역?"
"네. 나왔어요."
"오…."
내 말을 알아들은 안나가 미나를 바라본다.
그런 안나의 시선을 느낀 미나 역시 안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근데 결국 문제는 코인이네."
"그렇죠."
"그럼 일단은…. 통역부터 배워."
"알겠어요."
허공에 또 손을 놀리는 미나. 그러더니 안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안나. 내 말 다 알아들을 수 있어? 정말로?"
"오! 미나! 알아들을 수 있어!"
환한 표정으로 미나에게 말하는 안나.
나와 처음 대화했을 때보단 덜해도 몹시 좋아하는 모습이다.
어차피 안나만 통역을 배워도 되긴 하지만…. 뭐, 모두 다 배워 놓는 건 나쁘지 않지.
"그럼 이제 10만 남았나?"
"네."
킁. 한참 모자라네. 패시브 4짜리 두 개 배우는 데도 80만이고…. 다른 스킬 배우려면 최소 30만은 있어야 하는데.
당분간 SG 센터를 쥐잡듯이 잡아야겠어.
"그러면. 좋아. 일단 코인 모을 때까지 다음 스킬은 잠시 기다리고…. 일단 역병을 써봐야겠지?"
내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킨다.
우레 폭풍이 상당히 강력하긴 했지만, 결국 그 스킬은 티어5 스킬이다.
역병은 티어9 스킬. 게이트와 같은 등급이다.
게이트의 활용도나 편의성을 생각하면 역병은 절대 허접한 스킬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떻게 테스트하냐 이건데.
"막 써볼 수도 없고…. 어쩌죠?"
"그러게. 일단은…. 준비가 조금 필요하겠어."
생각을 조금 해봐야겠다. 이걸 어떻게 테스트해야 하나.
뭐가 됐든 써봐야지. 그러려면 실험 대상이 필요한데.
"잠깐 미나는 나갈 준비 하고 있어봐."
"어? 우리는요?"
승희가 물었고, 나는 잠깐 생각한 다음 말했다.
"역병이라는 게 아무래도 전염병 같은 거잖아? 효과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나랑 미나만 테스트해볼게."
"어…. 보고 싶긴 한데 또 전염병이라니 어쩔 수 없긴 하네요. 근데 파티를 하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 파티. 그러네. 이것도 광역 공격이라고 치면…. 파티가 있으면 괜찮긴 하겠다."
"그쵸? 그러니까…."
"그것도 테스트해볼게. 확실해지면 부를 테니 좀 쉬고 있어."
"힝. 알겠어요."
아쉬워하는 승희를 뒤로하고 일단 우한으로 순간이동 했다.
역시 역병 실험은 우한이지. 새끼들. 코로나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산샤댐을 터트리고 도시를 덮쳤던 물은 상당히 많이 빠져나갔다.
물이 빠지니 더욱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도시. 멀쩡해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어보인다.
단순한 강물이었다면 이 정도로 엉망은 아닐 텐데, 내가 들이부은 바닷물의 여파가 꽤 있는듯하다.
이 도시에 다시 인간들이 들어와 살기는 어렵겠지. 아마…. 살아남은 저놈들도 코인을 다 주우면 이곳을 떠날 거야.
도시는 엉망이 되었어도 사람의 기척은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예전 우한 폐렴 사태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이 도시의 인구만 해도 천만 정도 된다고.
물론 지금은 이리저리 흩어놓아서 그런지 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도시 내에 있던 인구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죽은 인간도 많고 흩어져있는 코인도 많다는 말.
이제 어느 정도 주웠겠지? 역병을 뿌리면서 코인 회수를 해도 되는 시기가 된 거잖아?
일단 도시를 돌아보며 코인 회수에 정신없는 놈들을 찾아봤다.
공산당 놈들이 아무리 억제하고 통제하는 데 전문가 놈들이라고 해도, 여기에서 살아남은 짱개들은 이미 코인 맛을 봐버린 놈들이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자유와 힘을 얻게 된 놈들.
그런 놈들을 적은 인원으로 일일이 잡아 죽이긴 쉽지 않겠지. 결국, 이들은 그들의 제어와 감시를 벗어난 골칫덩이가 될 거다.
하나하나 잡아 죽이기엔 너무나 많은 놈들.
갑자기 얻은 코인에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놈들.
그런 놈들을 몇 놈 잡았다. 최대 수치 증가 패시브 덕분에 수면을 한 번에 일곱 명까지 가능해져서 상당히 좋아졌다.
일곱이면 되겠지. 그렇게 재운 놈들을 테이프 질 하고 잘 모아 놓은 뒤 현 위치를 저장한다.
다시 벙커로 이동.
"미나 준비됐나?"
"네."
"그럼 다녀올게."
승희와 세아, 안나에게 인사하고 미나에게 게이트를 열어줬다.
내가 일곱 명을 모아놓은 곳은 우한의 한 쇼핑몰.
물에 다 쓸려나가 휑한 그곳에 일곱 명의 짱개가 테이프에 묶여서 쓰러져 있다.
"자. 이제…. 이놈들에게 써보자."
"네. 근데…. 그냥 쓰면 될까요?"
"나도 모르지. 일단….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써보자. 네가 질병 해제가 있고 파티로 돼 있으니 우리는 안 걸릴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거리를 벌린 다음 미나는 쓰러져있는 짱개들을 바라보고 스킬 쓸 준비를 했다.
과연 어떻게 스킬이 써지는 걸까? 이 빌어먹을 스킬들은 알려주는 게 하나도 없으니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어.
"역병!"
미나가 스킬을 썼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놀란 모습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모습. 뭐지? 뭐가 보이나?
"역병 패널이라는 게 떴어요…."
"어? 역병 패널? 그게 뭐야?"
"잠시만요…. 화면 같은 건데…. 위에 발병 인원 1명이라고 적혀있고요. 밑에 뭐가 쓰여 있네요. 수인성. 접촉성. 가벼운 기침. 어지럼증. 그리고 밑에는 수치가 있어요. 전염력. 이건 42퍼센트라고 돼 있고 밑에는 치사율이라고 돼 있네요. 3퍼센트."
"전염병 주X회사?"
"네?"
"아냐. 게임인데…. 아무튼. 그게 나온다고?"
"네. 근데 수인성이 뭐죠?"
"수인성은 그거야. 물로 전파되는 거."
"아. 그럼 접촉성은 말 그대로 접촉하면?"
"그렇겠지?"
"가벼운 기침이랑 어지럼증. 이건 증상인가 보죠?"
"그런 거 같네."
"어려운 건 없네요."
"그렇지. 그런데…. 하. 이놈들 진짜 악질이긴 하다."
"네? 왜요?"
"이 역병 스킬이랑 비슷한 게임이 있거든. 뭐 그 게임에 대한 건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는데. 어쨌든 그걸 지금 현실에 적용해 버린 거잖아. 끔찍하네."
"대체 무슨 게임인데 그런 게 있어요?"
"말 그대로야. 내가 전염병을 만들어서 전 세계 사람들을 다 죽이는 거."
"에? 그런 게임도 있어요?"
"뭐, 게임이잖아. 좀비 죽이는 게임도 있고 외계인들이랑 싸우는 게임도 있는데. 그런 거랑 크게 다를 건 없지."
"그렇긴 하네요. 근데 병으로 모든 사람을 다 죽일 수 있긴 있어요? 아무리 심각한 병이라도 결국 치료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게 그 게임의 포인트지. 인간들이 치료제를 개발하기 전에 멸종시키는 거."
"아아."
"근데 웃긴 게 거기에도 나오지만 치사율이 높으면 감염률이 떨어져."
"왜요?"
"옮기기 전에 죽어버리니까."
"아아. 이해했어요."
"그래서 그 게임을 할 때는 일단 감염력만 잔뜩 올려서 일단 전 세계 사람들에 다 걸리게 해. 아무런 증상도 없이 그냥 전파만 다 하는 거지. 그리고 모든 인간이 다 걸리면 모은 포인트로 치사율을 확 올려버려. 그래서 순식간에 전멸시키지."
"음? 그런 게 가능해요?"
"어. 게임이니까."
"으음…. 근데 이 역병 스킬은 그런 게 안되는 거 같은데요."
"아까 뭐라고 그랬지? 전염력이랑 치사율이 몇 퍼센트?"
"전염력 42퍼센트에 치사율 3퍼센트요."
"그럼 100명이 걸려도 3명만 죽는다는 소린데."
"어렵네요."
"그래. 뭐, 게임을 예로 들긴 했는데 이건 게임이랑 비슷하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지. 결국, 이 역병 스킬은 완벽한 치료제가 이미 있으니까."
"아. 질병 해제?"
"그치. 지금 걸린 사람 한 명이라고?"
"네."
"네가 건 저 녀석이겠네. 그럼 쟤한테 질병 해제 한번 써 볼래?"
"네. 질병 해제."
스킬을 쓴 미나는 잠시 뭔가 허공을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나를 보고 말한다.
"해제가 안 되는 데요?"
"뭐? 그럴 리가. 아. 이놈이 가진 질병이 많을 수가 있잖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
"번거롭더라도 질병 해제 계속 써볼래?"
"네. 알겠어요."
"자. 포션은 여깄어."
미나는 열심히 질병 해제를 쓰기 시작했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스킬을 쓰던 그녀는 한참 만에 나를 보더니 말한다.
"걸린 사람이 0이 되더니 역병 패널이 사라졌어요."
"아.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해제는 된다는 소리네. 음. 그럼…. 다른 놈에게 또 걸어보자."
"해볼게요. 역병!"
그러더니 미나는 다시 또 허공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번엔…. 조금 다르네요. 공기 감염. 긴 잠복기. 고열. 전염력 84퍼센트에 치사율 5퍼센트."
"쓸 때마다 랜덤으로 튀어나오는 건가. 공기 감염이라. 역시 공기 감염이 좋지. 흐음."
"어? 감염 인원이 2명이 됐어요."
"뭐야. 벌써 옮긴 건가? 전염력이 높고 공기 감염이라 바로 옮나 보네."
"그런가 봐요. 3명 됐어요."
"근데 그 패널이란 게 어떻게 떠 있지? 네 시야에 항상 있는 거야?"
"어…. 스킬 창 떠 있는 것처럼 떠요."
"그래? 그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나?"
내 질문에 잠시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더니 나를 보고 말한다.
"네. 사라졌어요. 다시 열 수도 있고요."
"아. 그래? 그럼 뭐 여러 개 걸어도 크게 상관은 없겠네."
뭔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느낌은 나쁘지 않다.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괜찮고.
근데 아무리 봐도 대량 학살을 종용하는 느낌이야. 이 스킬은 너무 파괴력이 크다.
아무리 질병 해제로 치료할 수 있다곤 하지만, 질병 해제란 스킬이 그리 흔한 스킬은 아닐 거다.
굉장히 중요한 스킬이지만 정작 본인은 가지고 있기 싫은 스킬.
게다가 그 지급 파견대의 신체 복구를 쓰던 여자도 질병 해제는 없었다.
그 말은 체계적으로 질병 해제를 가진 놈들이 별로 없다는 소린데.
기본 스킬이라 일반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으려나? 어쨌든 그렇다는 건 하루에 20번이 한계라는 소리잖아?
코인이 없으니 포션 같은 것은 생각도 못 할 거다. 회복 포션 소 하나만 해도 사람 네 명분의 목숨이다.
전염력이 크면 클수록 한명 한명 회복하는 거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게다가 질병 해제가 역병부터 해제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당 몇십 번에서 몇백 번은 질병 해제를 써야 한다는 소린데.
이건 그럼 정말…. 끔찍한 스킬이네. 다수의 인원이라면 이걸 막아낼 방법이 없어.
"감염 인원이 7명이 됐어요."
미나가 나를 보고 말한다. 와. 엄청 빨리 걸리네. 무서울 정도야.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그런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말리는 미나.
"괜찮아. 문제 없을 거야."
어차피 질병 해제로 해제가 되는 걸 확인했으니 상관없다.
나는 평소에 질병 해제를 꾸준히 받아왔으니 내가 걸리더라도 해제하는 건 금방일 거다.
"일단…. 이놈들은 그럼 쓸모가 없어."
이놈들을 다시 풀어주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바로 하나씩 마체테를 휘둘러 쳐죽인다.
다들 스킬로 화려하게 죽이는 데 나는 아직도 마체테네. 나도 빛의 검 같은 그런 스킬이라도 배워야 하나.
일곱을 죽이고 19만 코인.
파티가 되어있으니 합치면 95만. 1900명분의 코인.
생각보다 코인 줍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천으로 널려있을 텐데…. 경쟁이 치열하려나?
아니지. 이미 더 주운 다음 스킬을 배웠을 수도 있겠네.
어쨌든 적은 코인은 아니다. 나쁘지 않아.
"그럼. 이제 나가서 보이는 족족 역병을 걸자."
그렇게 미나와 함께 우한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우한 폐렴이 시작됐었던 도시. 이번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역병이 다시 돌게 될 거다.
과연 이게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질러 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