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93화 (393/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봄의 증거

백령도로 돌아온 나는 반쯤 누워 한가롭게 파티 스킬을 숙련한다.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감자 칩, 그리고 시원한 콜라.

옆에선 세아와 안나가 방만한 자세로 누워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이거 미안하네. 승희랑 미나는 저렇게 밖에서 숙련하고 있는데…. 우리만 너무 놀고 있는 느낌이야.

하지만 우리도 숙련 중이다. 절대 놀고 있는 것이 아냐.

사실 승희와 미나도 막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숙련하거나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쟤들도 테이블이랑 파라솔 피고 간식을 씹으면서 숙련하고 있다. 단지, 실내에서 스킬을 못 쓰니 밖에 있는 것일 뿐.

"아. 늘어진다. 반사. 해제."

"밖에서 숙련하다가 다시 실내로 들어오니 답답해? 파티생성. 파티해제."

"아니, 뭐 답답한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좀 늘어지네. 아그작. 아그작. 반사. 해제."

"이젠 그래도 차가운 기운은 거의 사라졌으니까. 파티생성. 파티해제."

확실히 날씨는 따듯해졌다. 4월이 되었으니 당연한 거긴 하지만.

“이제 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반사. 해제.”

"그렇지? 아마 저기 남쪽에는 이미 벚꽃도 폈을 텐데. 파티생성. 파티해제."

"와! 벚꽃요!?"

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한다.

"어. 4월 초니까 폈겠지. 아마 한창일걸? 세상이 망해도 꽃은 피니까. 파티생성. 파티해제."

"아. 보고 싶다. 벚꽃."

안나는 꿈꾸는 소녀의 표정이 되었다. 안나가 저러는 모습은 정말 신기하네.

벚꽃이라. 지금쯤이면 거기도 잔뜩 폈으려나?

"읏차."

"음? 어디 가요?"

"어디 가?"

나는 먹던 과자에 회귀를 걸고 수납에 집어 넣은 다음 콜라에도 회귀를 걸고 냉장고에 넣었다.

안나와 세아가 나를 보고 물었고, 나는 그녀들을 향해 말했다.

"어. 다녀올 곳이 있으니 숙련하고 있어."

"뭐야. 갑자기 말하다가 그렇게 일어서냐?"

나는 그런 세아를 보고 웃어주고 안나를 바라봤다.

어리둥절한 모습. 그런 그녀에게 윙크를 한번 해주고 바로 순간 이동했다.

수원.

여전히 조용한 동네.

탐지를 돌리자 고성연과 최신영의 기척이 잡힌다.

잘살고 있네. 지루하고 힘들어도 잘 살고 있어 보렴. 좋은 날이 올 테니까.

스마트폰을 꺼내서 거리를 재본다.

수원에서 경주까지. 거리는 250킬로.

크. 역시 가까운 거리는 아냐.

하지만 미친 크기의 중국 땅을 하도 돌아다녔더니 250킬로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제정신이 아니야. 으음. 그럼 어디 보자.

일단 날기 시작했다.

지금 나의 비행 최대 속도는 시속 65킬로미터. 이 상태로 날면 4시간이면 도착이다.

하지만 따분하게 네 시간이나 날고 싶진 않다.

뭐, 파티 숙련을 하면서 날아가도 되긴 하지만 빨리 내 여자들에게 보여주고 싶거든.

블링크. 패시브가 없다면 200미터.

하지만 지금의 나는 패시브 때문에 이론상 960미터까지 가능하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시야가 좋다.

좆같은 황사가 없어지니까 대한민국 날씨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맑고 쾌청한 하늘이라고.

비행하면서 블링크를 섞어준다.

한번 할 때마다 거의 1킬로씩 가는 셈이니 250킬로의 거리라고 해도 포션 여섯 병이면 정말 금방 도착할 수 있다.

그렇게 적당히 블링크를 섞어가며 한 시간 만에 경주에 도착했다.

혹시나 내려오는 길에 인간들이 있을까 해서 좀 비행을 많이 섞어봤는데…. 그다지 사람은 없다.

일부러 스쳐 지나온 구미에서 두 팀, 대구에서 세 팀 정도?

쯧 불쌍한 녀석들. 왜 하필 내 경로에 있어서 죽냐.

그렇게 도착한 경주. 의외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경주도 나름 큰 도시일 텐데. 사람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네.

뭐, 사람이 없으면 없는 거지. 바로 내가 가려는 곳으로 향한다.

내 목적지는 불국사.

갑자기 다보탑과 석가탑이 보고 싶은 건 아니다. 사실 불국사는 별 관심 없어.

내가 보고 싶은 곳은 불국사와 주차장 사이에 있는 벚나무 숲.

거길 숲이라고 부르긴 조금 애매하다. 그렇다고 공원도 아니고.

아무튼, 곱게 잔디가 깔려있고 벚나무가 무척 많이 있는 곳이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그곳.

바로 교통표지판을 보고 불국사 쪽을 향한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불국사. 그 앞에 만개해 있는 벚꽃.

"이야."

오길 잘했다. 역시. 내 기억은 그대로구나.

도착했으니 빨리 보여줘야지. 아니…. 그전에 주변부터 살피고.

경주 시내에도 없던 사람이 여기라고 있을 리는 없다.

이건 그냥 내 루틴 같은 거다. 뭔가를 하기 전에 주변을 살피는 루틴.

역시 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주변을 한 바퀴 크게 돌아본 나는 바로 벚나무 사이에 가장 그럴듯한 자리로 내려왔다.

"게이트."

백령도로 게이트를 열었고 바로 안으로 들어간다.

게이트에서 나온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여는 세아와 안나.

"어! 왔다!"

"웬일로 순간 이동이 아니고 게이트를?"

"우리 돗자리가 있던가?"

"엥? 갑자기 웬 돗자리야?"

"돗자리?"

"아. 아니다. 내가 어딨는지 안다. 세아랑 안나는 승희랑 미나 데리고 포탈로 들어가."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벙커로 순간 이동했다.

돗자리 분명 있었지. 예전에 승희랑 야외에서 섹스할 때 썼던 게 분명히 있었을 거야. 어딨더라…. 아. 찾았다.

다시 백령도로 순간 이동을 하고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러자 신난다는 듯 꺅꺅거리며 주변을 돌아보는 네 여자가 있다.

어휴. 저렇게 신날까.

"어! 오빠 왔다! 오빠! 완전 이뻐! 여기 어디야!? 우리나라야!?"

"진짜 이뻐요! 완전! 여기 어디에요!?“

승희와 미나가 들뜬 목소리로 물어본다.

"여기? 불국사 앞."

"불국사? 경주?"

"에엑?"

놀랄만하지. 다들 불국사 하면 고리타분한 절이랑 다보탑, 석가탑만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 앞에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벚나무숲이 있는 건 잘 모른다.

상당히 잘 꾸며진 아름다운 곳. 벚꽃이 만개했을 땐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한 장관을 이루는 곳.

그렇게 승희와 미나는 다시 구경을 갔고 저 멀리에서 세아가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감탄하는 게 보인다.

그리고 내 근처에 있던 안나는….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어? 왜?"

"아. 아니에요.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 봐서…."

아…. 생각해보니 그럴 만하다.

러시아에서 온 여자. 물론 그녀가 벚꽃을 난생처음 본건 아닐 거다.

벚나무는 여기저기 워낙 많이 심어놨으니 어디로 이동하거나 창문 밖으로도 벚꽃 정도는 봤겠지.

하지만….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천지가 흐트러지도록 벚꽃잎이 떨어지는 건 처음 봤을 거다.

그래. 그런 안나의 처지가 이해한다.

남자인 나도 처음 이곳을 보고 가슴이 떨릴 정도로 멋지고 아름답다고 느꼈는데, 여자인 안나라면 더 그렇겠지.

게다가 그녀의 과거를 안다면 더더욱.

"가서 같이 구경해."

"당신은 안 가요?"

"난 자리 펴려고."

"같이해요."

"아냐. 가서 쟤들이랑 같이 어울려서 구경해. 빨리."

마지못해 내 곁을 뜨지만, 승희 쪽으로 향하는 안나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리고 바로 승희와 미나 사이에 어울리더니 벚꽃을 보고 꺅꺅거리며 좋아한다.

그래. 좋은 것만 보고 살자고. 앞으로 보여줄 게 많아.

수납을 열어 벙커에서 가져온 돗자리를 펼치고 주변에서 큼직한 돌을 주워와 네 귀퉁이를 눌렀다.

그리고 자리 중앙에 털썩 앉아 네 여자를 바라본다.

하하. 즐겁네. 오길 잘했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진짜 오길 잘했네.

정말 그림 같은 광경이다. 화창한 날씨, 따듯하고 부드러운 바람, 흩날리는 벚꽃잎, 아름다운 여자 넷.

하. 여기에 벚꽃 연금 노래만 딱 틀어주면 완벽할 텐데.

스트리밍 사이트가 안 열리는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정말 웃긴 일이다.

이렇게 앉아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짱개놈들은 내가 터트린 댐 때문에 개고생을 하고 있다.

죽기도 많이 죽었을 거고, 살아있어도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게다가 탐욕에 절은 짱개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코인을 줍고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렇게 즐겁다니.

이 빌어먹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질 줄은 누가 알았겠어? 하하하.

수납을 열어 이런저런 간식들을 꺼낸다. 이것도 이 시간이 즐거운 이유 중에 하나야.

회귀가 없어서 이런 간식들이 없었다면, 상당히 아쉬웠을 거다.

작년에 승희와 갔었던 바다. 다 좋았는데 먹을게 부실했었잖아?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수납 안에 넘쳐나는 각양각색의 간식들.

게다가 원하면 고기도 꺼낼 수 있다. 캬. 이런 곳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소름 끼치는 맛이겠지?

불국사. 그러니까 절 앞에서 고기를 굽는 게 살짝 죄책감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지.

이미 망해버린 종교다. 비단 불교만이 아니다.

신을 찬양하든 종교든 자아를 찾아가던 철학이든 사멸한 지 오래다.

그런 거로 죄책감을 가질 정도로 나는 말랑말랑하진 않아.

"짠!"

고기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자들이 우르르 내게 오더니 손에 든 벚꽃을 내 머리에 꽂기 시작했다.

"대체 뭐 하는 거니."

"꽃단장요."

승희와 미나, 안나는 신난다는 듯 내 머리에 벚꽃을 꼽는다.

너무 해맑게 웃으며 하는 통에 나는 딱히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뭐,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야지.

근데 세아는 어딨지? 얘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옆에서 자신의 후드티를 걷어 올려 앞섶에 벚꽃잎을 따고 있는 세아.

설마 저걸 나한테 뿌리거나 하진 않겠지?

하지만 혹시는 역시였다.

내 뒤로 다가온 세아는 자기가 모은 꽃잎을 한 번에 내 머리 위로 뿌려버린다.

"와아!"

"어머나!"

"이야! 이쁘다!"

승희와 미나, 안나가 이쁘다고 난리를 치며 꺄르르 웃는다.

뭐, 저런 행복한 웃음을 볼 수 있으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아무렴.

그렇게 네 여자와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터지지도 않는 스마트폰, 이제는 시계와 카메라와 알람으로밖에 쓰지 못하는 그 기계가 오랜만에 잔뜩 쓰였다.

여자들은 참 사진 찍는 거 좋아해. 어딘가 올릴 곳도 없는데 저렇게 사진을 찍고 싶을까?

사진을 찍어주고, 사진을 찍히고 포즈를 취하고 웃고 떠든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지친 여자들은 나를 베개 삼아 넷이 일렬로 누워 떨어지는 꽃잎과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쉰다.

어…. 자세가 조금 그렇다? 많이 아쉬운데?

이럴 거면 차라리 집에서 베개를 가져오면 되잖아? 다녀오는데 5초면 되는데.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바로 컷당했다.

네 여자는 이러고 있는 게 좋은가보다. 나는 전혀 모르겠지만.

아무 말없이 느긋하게 누워 잠시 분위기를 즐기는 우리.

나는 가만히 누워 넷 다 홀딱 벗기고 떨어지는 벚꽃을 맞으며 야한 짓이나 잔뜩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 아직 조금 이른가? 이 정도 날씨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냥 생각을 접었다.

그런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 쉬러 왔으면 쉬어야지.

게다가 넷과 동시에 야한 짓을 하는 건 거의 노동이야.

분명 즐겁긴 할 텐데 하고 나면 녹초가 될 테니까.

잠깐 쉰 우리는 결국 고기를 굽기로 했다.

의외로 세아가 절 앞에서 고기를 굽는 거에 대해 주저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200미터만 내려가도 음식점들 잔뜩 있다는 소리에 결국 주저함을 거둔 세아.

그래놓고 막상 고기 구울 때는 가장 많이 먹었다.

저 작은 몸에 어떻게 그리 많이 들어가지? 신기하네. 정말.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리는 벙커로 돌아갔다.

이곳을 저장할까 말까 많이 고민하다가 그냥 말았다.

어차피 다시 오는 게 어렵지도 않고, 한번 왔으니 올봄에는 다시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돌아가서 자기 전까지 각자 숙련하겠다고 하는 여자들을 내가 말렸다.

쉬기로 했으면 확실히 쉬어야지.

이런 날도 있어야 하는 법이잖아.

하지만, 내 그런 뜻은 네 여자에게 다른 뜻으로 비쳤나보다.

잘려고 누웠는데 내 방으로 들어오는 네 여자.

설마….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전부 옷을 벗기 시작하는 여자들.

아….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결국, 나는 밤늦게까지 네 여자에게 말 그대로 쥐어짜였다.

솔직히 말해서 살짝 무서웠다. 확실히 네 명은 한 번에 하긴 많아.

포션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여덟 번을 하긴 할 수 있었다. 뭐…. 마지막은 거의 나오는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여덟 번이나 세운 내가 자랑스럽다. 이 모든 공을 포션에게 바칩니다. 으윽.

그렇게 다음날.

네 여자는 어제 신나게 놀았던 것이 확실히 리플레쉬가 됐나보다.

아침부터 일어나 숙련하러 가자고 보채는 여자들.

덕분에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게이트를 열 수밖에 없었다.

백령도로 가서도 나는 조용히 파티 스킬을 숙련하면서 병든 닭처럼 앉아 있었다.

확실히 어젯밤은…. 너무 과했어. 5P는 당분간 자제하자. 사람이 할 짓이 아냐.

그렇게 점심쯤이 됐을 무렵, 그제야 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와 진짜 빡쎄네. 쉽지 않아.

그런 나에게 미나가 다가온다.

그리고 해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짜잔. 썬더 필드 마스터 했어요.”

당당한 그녀의 목소리. 그 말은 드디어…. 우레 폭풍을 찍을 수 있다는 소리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