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92화 (39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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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 하는 물결

장강의 물결은 도도하게 흐른다고 했던가.

아니다. 지금은 도도하지 않다.

성난 물결은 그들이 허락하는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삼키며 쓸어내려 간다.

방금까지 도시었던 곳이 순식간에 호수가 되는 것을 보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인간이 잘못한 건가? 감히 대자연을 가둬놓은 교만에 대한 벌인가?

아니다. 이건 그저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다.

자연은 그저 이 순간까지도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끝없이 밀려오는 저 파도는 그저 '자연스럽게' 되기 위한 움직임일 뿐이다.

도시하나를 꿀꺽 삼켜버린 물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행군을 멈추지 않는다.

강변에 있던 작은 도시 하나가 또 순식간에 먹혀버렸다.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수많은 반짝임.

그렇게 작은 도시 따위는 바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다시 또 다른 작은 도시를 먹어치운다.

그리고 그대로 크게 굽은 강줄기를 따라 계속해서 쏟아져 내린다.

좋아. 일단 순조롭게 가고 있으니 나도 그럼 다음 스탭을 밟아야지.

현 위치를 저장하고 다시 산샤댐으로 갔다.

탐지에 걸리는 인간들. 하지만 그들이 뭔가를 할 수는 없다.

그저 멍하니 부서진 댐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

그런 그들을 피해 조금 위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곳, 딱 좋네.

산샤댐에 저장했던 포인트를 이곳으로 바꾼 다음 물 가까이 다가가 서해와 통하는 포탈을 여섯 개 모두 뚫어버렸다.

자. 이제 이 물은 그냥 물이 아니야.

염분 듬뿍 바닷물 혼합액이라고. 댐으로 넘친 물이 다 빠져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염화된 땅을 다시 쓰려면 고생 좀 할 거다. 아니…. 고생할 시간도 없겠지.

죽어버린 땅이 될 거야.

그렇게 포탈을 놔두고 다시 아까 저장한 도시 위로 순간 이동했다.

그사이 제법 진행된 물의 진군.

그 물들을 쫓아가는 나는 전혀 지겹지 않았다.

전속력으로 비행하며 블링크까지 섞어서 다시 선두를 따라잡았다.

물은 마치 내가 조종하는 거대한 생물체 같은 느낌이다.

내가 타이밍을 맞춰서 손짓하자 작은 도시 하나가 또 박살 나기 시작한다.

깊은 밤이라 그 피해는 더욱 극심하다.

그 어느 누가 이 밤중에 물이 자신의 집을 덮칠 거라고 생각했을까?

워낙 큰 강인 데다가 그 강을 따라 지어진 도시들은 무척 많다.

하나도 빼먹지 않고 하나하나 차례대로 박살을 내는 모습.

그렇게 물을 쫓아가며 시간이 되면 산샤댐 쪽으로 순간 이동해서 바닷물 포탈을 갱신해준다.

어느새 날이 밝았지만 물은 멈출 생각이 없다.

당연한 일이지. 이들의 종착지는 서해다. 그 전까지는 멈출 수 없어.

날이 밝으니 물이 도시를 쓸어버리는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 누가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했담? 어휴. 정말 너무하네.

그렇게 해가 뜨고 한참이 지났지만, 나는 졸리거나 배고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힘이 솟는 느낌. 뭔가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아마 욕을 무진장 먹고 있으니 그런 거겠지?

욕먹으면 장수한다며? 나는 영생불멸할 거야. 이만큼 먹었으면 거의 불사신이지.

계속해서 산샤댐에 포탈을 리필하며 물을 따라가는데…. 눈앞에 엄청나게 큰 도시가 나왔다.

와. 여긴 뭐냐? 도시 엄청 크네.

대충 강 모양과 지도를 비교해보면서 도시 이름을 찾아내니…. 아주 익숙한 이름의 도시였다.

우한.

씨발. 그 좆같은 바이러스가 발생했던 곳.

그 죄악의 온상지가…. 물에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인터넷이든 전화든 모든 통신매체가 안되기에, 이곳에 사는 이들은 댐이 터진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간부들이나 중요인사들은 알았겠지. 그놈들도 순간 이동이나 게이트 같은 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일반인들에게까지는 알리지 않은 게 확실하다.

밀려들어 오는 물에 그대로 쓸려내려 가버리는 짱개들.

그래도 여기는 다른 도시들이랑 조금 다르다.

다른 곳들은 진짜 높은 건물들 말고는 거의 다 잠겼는데 여기는 잠기지 않은 건물들이 제법 된다.

흠…. 그럼 여기는 생존자들이 제법 있겠네? 저 밑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저장 포인트를 하나 더 써야겠어.

충주댐을 저장했던 포인트를 이곳으로 바꿨다.

그럼….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게 됐으니 됐고.

다시 강을 따라 계속 간다. 끝까지 가는 건 봐야지. 과연 얼마나 더 걸리려나.

포탈은 게이트 마스터와 패시브 증가로 인해 20분 유지되는 스킬이 92분으로 늘었다.

그렇기에 한 시간 반마다 계속해서 포탈을 리필해줘야 한다. 그래야 바닷물이 많이 섞이지.

한계 증가 패시브로 인해 포탈 크기도 가로세로 5.2미터로 늘어서 나오는 바닷물의 양은 엄청나다.

그런 포탈이 여섯 개. 농담 아니고 무지막지한 양이다.

그런 바닷물이 계속해서 양쯔강에 부어지고 있으니…. 강이고 땅이고 다 작살나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그렇게 물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간다.

생각보다 위력이 별로면 쓰려고 했던 페이즈 2가 있었지만, 굳이 안 써도 될것 같다.

아껴놨다가 나중에 써야지. 지금은 물을 따라가는 것만 신경 쓰자.

아직도 지치지 않고 도시들을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물.

어느새 해가 졌지만 물은 아직 서해에 도착하지 못했다.

되게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물이 결코 느린 게 아닌데도 정말 오래 걸린다.

양쯔강 이 새끼가 길긴 기네. 징하다. 징해.

해가 지고 난지 한참이 되었고 완만한 지형이 이어져서 그런가? 물의 속도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이 전진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물은 계속해서 밀려 내려오고 있고, 조금이라도 낮은 곳으로 흐르려는 속성은 변하지 않잖아?

그렇게 물은 또다시 거대한 도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여기는 난징이다. 이것도 많이 들어본 도시 이름이네.

근데 여기는 대피를 한 건가? 사람이 많이 없다.

하긴, 댐이 무너진 지 꼬박 하루가 지났으니 이미 대피할 시간은 어느 정도 있었겠지.

자. 그럼…. 이제 볼 건 다 봤다.

이 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텅 빈 상하이를 마저 쓸어버리고 서해로 흘러 들어갈 거다.

흐음…. 끝까지 볼 필요가 있나? 아니지, 여기까지 왔으니 마저 봐야지.

그래야 오늘 밤은 기분 좋게 잠들 거야.

비어버린 도시를 마저 박살 낸 물은 상하이에 당도했고 상하이마저 쓸어버리며 서해로 흘러 들어갔다.

하루가 꼬박 넘게 걸린 물의 진군이 이제야 비로서 끝났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고작 물로 인한 피해가 끝났을 뿐 진짜 끔찍한 일들은 지금부터지.

자연과 사람 중 누가 무섭냐고 한다면 나는 당연히 사람이라고 할 거다.

원래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훨씬 더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산샤댐이 붕괴하고 수많은 물이 풀려나 엄청나게 많은 짱개들을 수장시켰다.

얼마나 많이 죽었을까? 천만? 일억?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죽어 나갈 인구는 적지 않을 거다.

물에 잠겨버린 수많은 코인.

인간의 탐욕이 발동될 거다. 굳이 내가 일일이 주울 필요는 없다.

공산당에서 통제했기에 평범한 짱개라면 코인 주머니 하나에 500코인일 텐데.

언제 다 일일이 줍고 있어. 게다가 대부분이 물에 빠져있다.

그걸 잠수해서 다 주우라고? 나는 못해. 그러고 싶지 않아.

가만히 놔둬도 된다. 알아서 주울 거다.

살아남은 짱개, 멀리서 온 짱개, 아니면 간부든 뭐든 어쨌든 짱개가 알아서 주울 거다.

시간이 5년이 지났으니 첫 번째 스킬들은 어지간하면 마스터 했을 녀석들.

그럼 두번째 스킬을 배우고 싶겠지? 근데 물난리를 겪고 살아남은 이들이 무슨 스킬을 배우고 싶을까?

나는 비행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니 뭐, 내가 틀려서 비행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쨌든 겨우 목숨을 건진 놈들이 어설픈 10만 코인짜리 별거 없는 스킬을 배우고 싶진 않겠지.

500코인씩 주워서 언제 20만, 30만 코인을 만들 수 있을까? 쉽진 않을 거다. 그럼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떨어진 코인을 줍는 놈들, 그리고 그런 놈들을 노리는 놈들.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질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꼴이 났는데 공산당의 제어가 제대로 먹힐까? 불가능하지 싶은데.

어쩌면 코인에 눈이 돌아가 버린 녀석들이 공산당이고 뭐고 다 뒤집어 엎어버릴지도 모르지.

그러면 최고고.

게다가 짱개들에겐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이 많이 있다.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어. 결국,

물이 훑고 간 중국의 중부지방은 혼란이 가중되어 개판이 될 확률이 높다.

모두 내 뇌피셜이고 망상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차이지 충분히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생각보다 별로라면 내가 도와주면 되는 거고.

어차피 처음부터 짱개들을 잡고 나온 코인을 모두 깔끔하게 회수할 생각은 없었다.

너무 많아. 그렇게 많은 코인은 필요 없다.

차라리 스킬 하나밖에 없는 짱개들이 스킬 배우면서 코인을 소모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어쨌든 있는 놈들이 싹 쓸어가는 것만 막으면 된다. 내가 먹지 못할 거면 사라져버리는 게 낫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안자고 나를 기다리는 여자들. 특히 미나가 나를 보며 물어본다.

"제 차례에요?"

"아. 그건 조금 미뤘어. 지금 바로는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래요…."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응이 미묘하네.

어쨌든 다들 자라고 이야기해주고 나도 잠자리에 들었다.

수면 없이도 한 번에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러진 못했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대신 수면 한방에 잠이 들 수 있었다. 역시 불면증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경증이 달라지는 게 맞는 거 같아.

다음날.

평소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네 여자를 백령도에 데려다주고 나는 중국 땅을 돌아다녀 본다.

부서져 버린 산샤댐. 거기엔 더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긴, 이걸 수리하거나 다시 짓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댐으로도 발전소로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된 흉물.

이걸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

가둬져 있던 물들이 모두 빠져나가 주변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물에 잠겨있던 곳들이 드러나 풍경은 상당히 이상해 보인다. 상당히 흉흉한 느낌이야.

댐이 사라져버리니 장강은 다시 도도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부자연스러움'을 비웃듯 유려하게 흐르는 강물.

그런 강물에 게이트를 열어 바닷물을 타준다. 이 짓을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시간 날 때마다 계속 리필해야지. 그래야 중국 중부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놓지.

저장해놨던 우한으로 이동했다.

물이 상당히 빠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참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하이에나들이 보였다.

저건 생존자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아니야. 떨어져있는 코인을 찾는 움직임이지.

코인은 땅에 묻히지 않는다.

그 위로 뭐든 덮어버리면 그 위쪽으로 알아서 움직이게 된다.

게다가 그 자리를 벗어나지도 않는다. 물이나 바람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는 코인의 위치를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오로지 상하로. 무언가의 위에 놓이기만 하는 코인.

그렇기에 저렇게 물에 잠겨있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다.

코인을 주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그런 인간들이 열심히 코인을 줍고 있다.

아직 물이 찰 텐데….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물 안으로 뛰어드는 짱개들.

대단해. 진짜 대단하다.

인간의 탐욕은 역시 대단하다고밖에 생각이 안 든다.

하긴, 원래 대단하기도 한데…. 짱개는 그중에서도 더 심한 편에 속하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래. 열심히 주워라. 열심히 주워서 잘 모아 둬. 느긋하게 수확하러 가 줄테니.

우한 말고도 주변 도시들을 살펴본다.

어디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다들 떨어져있는 코인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

공산당 놈들은 뭐 하고 있지? 아예 포기했나?

아니면…. 그놈들도 저들이 코인을 모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

어쨌든 이제 내가 할 일은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일뿐이다.

뭐, 언제나 그래왔지. 기다리면서 타이밍을 보는 것.

아마 앞으로도 이건 쉽게 바뀔 일은 없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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