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85화 (38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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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백령도에서 스킬 숙련을 하고 있는 네 여자.

나를 보고 다들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다시 자기 할 일을 한다.

승희와 안나는 블링크를 쓰며 서로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신기한 건 승희는 안나를 전혀 못 잡는데 안나는 승희를 가끔 잡는다는 거다.

"으아! 또 잡혔어!"

잡힐 때마다 아쉽다는 듯 소리치는 승희. 저런 걸 보면 안나가 확실히 센스가 있어.

블링크는 결국 습관이 들어가게 돼 있다.

아주 짧은 시간. 길게 고민할 수 없기에 반사적으로 목적지를 정해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본인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위치를 고를 수밖에 없다.

그걸 파악하면 어디로 블링크 할지 아주 조금은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안나는 그걸 해내고 있고.

신기한 여자야. 저런 건 가르쳐 준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런 안나는 승희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서로 대화가 되나? 아마 간단한 단어 정도로 대화하는 거 같은데 승희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블링크 술래잡기.

숙련도 되고 훈련도 되고. 좋네. 역시 혼자 묵묵히 숙련하는 것보단 저런 게 좋지.

뭐, 잘하고 있네.

방에서 비스듬히 누워 수납을 열고 닫으며 활짝 열린 테라스 창으로 안나와 승희를 구경하는 세아.

바닷바람이 아직은 차갑기에 전기 히터를 거의 끌어안고 있다시피 한 모습.

아니, 왜 문을 열어놓고 히터를 틀어놓고 있는 거야. 소리가 듣고 싶었나?

옆에 잘 모아져있는 다 먹은 과자 봉지가 세아의 나태 수치를 말해주는 것 같다.

회귀 덕분에 과자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건 참 좋은 일이야.

이게 부작용이 따로 없어야 할 텐데. 음…. 없겠지?

번개 구체를 쓰고 있는 미나.

번개 구체는 이젠 좀 무서운 크기로 변했다. 아마 고급인 거 같은데…. 거의 사람 키만 한 구체가 제법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날아간다.

게다가 주변에 파지직 거리며 뿜어져 나오는 번개 가닥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사람 많은 곳에 저거 하나 지나가면 볼만하겠네. 고작 번개의 상급 스킬인데 저렇게 살벌해도 되는 건가?

근데 막상 저걸로 당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결국은 비행이나 블링크가 있으면 저걸로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저건…. 양학용 스킬이야. 하긴…. 초반에 저런 게 있었으면 상당히 무시무시했겠지.

그렇게 구경하다가 세아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내가 오자 쓰윽 하고 과자 봉지를 내미는 세아.

자기의 과자를 나눠주다니.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뭐야? 다 먹은 거잖아?"

"회귀 써달라고."

"야잇!"

이놈의 가스나. 하여간!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결국 회귀를 써줬다. 다시 새 과자가 된 과자 봉지를 뜯으며 희희낙락하는 세아.

덤으로 옆에 쌓여있던 과자 봉지들에도 회귀를 전부 걸어버렸다.

모두 다 온전한 과자로 돌아갔고, 세아는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회귀 써줄 때만 그렇게 좋아하면 쓰냐."

"그럼 회귀를 자주 써주던가."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니 내 시선을 못 본 척하며 과자 먹는데 집중한다.

"너 수납 몇퍼냐?"

"나? 91퍼."

"고급?"

"엉."

나와 대화하면서도 계속 수납을 쓰는 녀석.

그렇게 몇 번을 쓰더니 회복 포션을 하나 원샷한다.

"91퍼라. 얼마 남지 않았네. 450번 남은 건가. 오늘 찍겠네?"

"아. 몰라. 힘들어. 지금도 거의 한계란 말이야."

"그래도 5일 만에 그만큼 찍었으면 잘했네. 점점 빨라지고 있어."

나태함에 빠진 게 아니고 포션을 하도 먹어서 축 늘어져 있던 거구나.

그렇게 보니 기특해 보이네. 짜식.

머리를 쓰다듬었는데도 반발이 없다. 진짜 힘든가 보네. 그럴 여력도 없는 건가.

"너, 수납 마스터 하면 강화 주먹 배우자."

"엥…. 그건 또 뭐야. 강화 주먹? 스킬 이름 되게 구리네."

"구리긴 한데…. 너는 그걸 배워야 할 운명이야."

"아니…. 그게 뭔 스킬인데. 뭔지는 알려주고 배우라고 해야지."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암튼…. 넌 주먹으로 아주 큰 일을 하게 될 거야."

"뭐라는 거야.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암튼, 너무 무리하진 말고. 나는 다시 나간다."

따로 대답은 안 하고 손만 흔들어주는 세아.

바로 순간 이동을 써서 상하이로 넘어갔다.

조용한 주변. 지급 파견대인가 하는 녀석들이 다시 오진 않은 거 같다.

아니면 이미 다녀간 걸까? 어쨌든 탐지에 걸리는 게 없으면 없는 거지.

어차피 이제 이놈들에겐 볼일 없다. 평생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살라고 해야지.

나는 여길 뜰 거니까.

북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양쯔강. 그 강을 따라서 올라가야지.

세아가 금방 수납을 마스터하고 강화 주먹을 배울 테니 나는 어서 산샤댐으로 가야 한다.

가서 위치를 저장하고 포인트를 봐둬야지. 짱개놈들을 빨리 목욕시켜줘야 하니까.

기왕이면 한겨울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뭐, 어쩔 수 없지.

어휴. 그 길던 겨울도 다 지나 가버렸네. 진짜 길고 길었어.

눈앞에 보이는 양쯔강. 그리고 저번에 지급 파견대 놈들이 출발했던 벽.

여기도 오늘은 잠잠하다. 신기하네. 왜 이리 잠잠하지?

인원 두세 명이 사라진 거로는 경거망동 안 한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매정하다고? 이해할 수가 없네.

알게 뭐야. 그냥 무시하자. 어차피 여기는 더 신경 안 써도 되잖아.

강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강을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기에 적당히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면서 양쯔강에도 신나게 게이트를 열어버렸다.

강물에 바닷물이 섞이면…. 그 피해는 엄청날 거다. 물론 이 강은 드럽게 크니 그렇게 티가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만 쓰는 게 아니잖아. 게이트 네 개를 계속해서 열어놓는 거니 거기에서 나오는 바닷물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렇게 게이트를 써가며 비행을 계속한다. 숙련이 조금 늦어지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해가 질 때쯤, 위치를 저장하고 백령도로 이동했다.

승희, 미나, 세아, 안나에게 집으로 갈 수 있는 게이트를 열어주고 다시 중국으로 순간 이동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강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되니 현 위치가 어딘지는 크게 중요하진 않지.

어쨌든 그렇게 다시 상류로 올라간다.

이놈의 강은 커서 따라 올라가기는 편한데, 너무 크다. 가끔 방향을 헷갈릴 정도다.

단순한 강이 아니야. 지형을 보면 이 강이 흐르면서 대체 얼마나 많이 땅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옛날부터 지리 쪽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런 걸 보면서 이동하니 지루하지는 않다.

게다가 삼국지나 무협지를 읽을 때마다 왜 장강에 수군이 있고 해적이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 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정도면 해적질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왜 그렇게 장강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겠네.

어쨌든 그렇게 밤늦게까지 계속해서 게이트를 열어 대며 상류로 이동하다가 저장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다들 지쳤는지 곤히 자고 있다.

숙련하는데 열심이라 야한짓을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뭐…. 나도 피곤하니까 쉬자. 어차피 아까 고성연이하고도 했었으니까.

수면을 쓰고 잠이 든다. 내일은 또 서민준 녀석을 보러 가야 한다.

아. 귀찮아. 내가 시킨 게 있으니 안보로 갈 수도 없고. 어휴.

다음날, 네 여자를 백령도로 보내주고 중국으로 넘어가 계속해서 강을 거슬러 오른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이지만, 내가 선물해준 바닷물을 받고 좋아할 짱개들을 생각하니 힘이 부쩍 난다.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선물해줘야지. 이렇게 늦장 부리면 안 돼.

대충 지도 앱으로 상하이에서 산샤댐까지 거리를 재보니 1150킬로미터 정도 됐었다.

한 시간에 55킬로씩 가니까…. 20시간만 비행하면 되고, 이제 삼분의 일정도 온 거 같다.

근데 왜 이리 많이 남은 것 같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기분이네.

오후 네 시쯤 돼서 위치를 저장하고 수원으로 넘어갔다.

탐지에 걸리는 두 여자. 살아있으면 됐다. 굳이 내려가서 확인은 하지 않고 그대로 청주로 날아간다.

SG 센터 앞. 여지없이 날아다니는 헬기.

페이즈 아웃을 쓰고 걸어간다. 저 앞쪽에서 뒤돌아 서 있는 서민준. 이렇게 보는 것도 슬슬 익숙해지네.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녀석이 뒤돌아 나를 바라본다.

아. 웃지 마 새끼야. 왜 남자 놈이 남자를 보고 웃는데.

"오셨어요."

"너는 왜 계속 나한테 존대하냐? 변태야?"

"글쎄요. 저는 다른 모든 분에게 존대하는 데요."

"변태네."

"그런가 보죠. 따지고 보면 세상에 변태 아닌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휴. 저 능글능글한 새끼. 저 새끼는 확실히 이상한 놈이야. 나랑 계속 대화를 하려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제정신이 아닌거야.

"알아보라는 건 알아봤냐?"

"네. 어젯밤에 전략연구소에서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보고서로 드릴까요?"

"됐어. 말로 해."

"말로요. 하아. 그러니까 원하시는 건 불꽃놀이 같은데 들어있는 화약을 모아서 큰 위력을 내는 폭탄을 만들 수 있냐는 거였지요."

"어."

"그리고 그거에 대한 것을 테스트해본 결과…. 이론적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왜? 이론적으로 되는데 실제로 안된다는 건 뭐지? 뭐가 부족한가?"

"아뇨. 보고서에 따르면…. 불꽃놀이에 남아있는 흑색 화약을 수집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걸 일정 수준 이상 모아서 하나로 합쳐놓으니 사라졌다고 합니다. 뿅 하고."

"사라져?"

"네. 몇 번을 테스트해도 마찬가지라는군요. 아마 그게 이 세상에 화약 무기가 없는 이유인 거 같습니다."

"하. 지랄하네. 정말."

불꽃놀이에 남아있는 화약은…. 사람을 살상하기엔 너무 적어서 남아있던 건가?

일정량 이상이 되면 사라지고? 하. 진짜. 존나 쓸데없이 치밀하네.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 한계를 측정해보니 그다지 충분하지 않은 화력이라는군요. 사람에게 써도 고작 화상이나 가벼운 상처를 입힐 정도? 물론 부위에 따라서 심한 상해를 입힐 수 있긴 하지만요."

"결국은 댐을 박살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단 이야기네."

"...네? 댐요?"

"그런 게 있어."

"아니. 잠깐. 댐을 부순다고요? 왜요?"

"그런 게 있다고."

"저도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당신의 말을 듣고 굉장히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신경 쓰지 말고 다른 거나 알아봐. 먼저…."

"아니, 또 뭘 알아내라는 겁니까? 알려달라는 건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너무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만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녀석을 살짝 노려봤다.

하. 새끼. 안 죽이고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게다가 내가 준 게 얼만큼인데.

"중국에는 지급 파견대라는 녀석들이 있다. 한 팀의 인원은 7명에서 10명 사이고 대충 수준은…."

지급 파견대와 성급 파견대. 그들의 구성, 숫자, 수준.

이런 것들을 줄줄 말했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가 하다가 점점 얼굴을 굳혀가는 녀석.

내가 이야기를 다 끝냈을 때 녀석은 그저 아무 말 못 하고 입을 꾹 닫고 있게 되었다.

"녀석들이 들이치면, 막을 수 있냐?"

"하…."

"너 스킬 몇 개냐."

"저요…. 5개입니다."

"한참 부족해. 그룹이니 조직이니 그딴거 생각하면서 탱자탱자 논 결과야. 지금 너희들이 살아있는 건 짱개놈들이 지들 업보 때문에 수비에 급급해서 안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내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기에 녀석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힘을 키워. 그리고 니가 할 일이 있어. 아마 우리나라에선 너 정도 되는 놈만 가능한 일이겠지."

"하아…. 뭡니까."

녀석이 별로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저 녀석이니까 가능한 것이 있다.

물론…. 녀석이 강해지는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결국, 나를 위협할 수도 있는 놈이니까.

하지만 저 녀석은 짊어지고 있는 게 많다. 괜히 나를 적대하면 본인이 잃을 게 더 많다는 걸 아는 녀석.

그러니 쓸데없는 짓은 안 할 거다.

얄팍한 신뢰나 믿음 따위가 아닌,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합당한 논리에 따른 추론.

"스킬 효과를 밝혀내. 참고로 나는 스킬이 12개다. 티어 12까지 어떤 스킬이 있는지 알지."

"12개…."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 녀석. 하지만 알 수 있다. 저 녀석은 이런 걸 들으면 포기하기보단 불타오르는 놈이야.

"하지만 이 스킬들. 너도 알다시피 이름만으로는 무슨 스킬인지 몰라. 그러니 니가 믿을 만한 사람을 뽑아서 포션을 먹여. 너도 먹고. 그러면서 스킬을 올려. 무슨 스킬인지 찍어보고 어떤 효과와 성능이 있는지 다 밝혀내. 그래야 니들의 생존율이 올라갈 거야."

"그렇게 알게 되면 당신에게도 공유해 주고요?"

"알려주는 만큼 나도 내가 아는 정보를 공유하지."

"의외로 또 그런 건 거래가 확실하시네요."

"왜? 조금 더 불공정하게 해줄까?"

"아니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잠시 정적.

음. 갈 시간이네. 할 이야기는 다 했으니까.

"잠깐! 또 이대로 그냥 갈 거죠!"

눈치 빠른 새끼. 아마 저 새끼는 오래오래 살 거야.

눈치 빠른 놈들은 오래 살게 돼 있어. 아니면 진짜 일찍 죽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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