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79화 (37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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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세상 놈들이 전부 멍청하고 지능 부족한 새끼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대호 놈들이 한심했던 거다.

틀을 벗어나지 못한 시스템. 그러니까 틀딱 소리를 듣는 거지.

근데 이 짱개 놈들은 예상보다 조금 더 놀랍긴 하다.

예상치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

스킬의 개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스킬에 대한 이해와 창의적인 활용에 놀랐다.

근데…. 이것도 뭐 아직 모르지.

저 모래 놈이 짱개 중에 가장 창의적인 놈일 수도 있으니까.

이놈들의 저점과 고점을 확인해봐야 한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지켜보고 파훼법을 생각해내야 해.

다행인 건 그나마 내가 스킬 개수가 많다는 거다.

스킬의 이해와 활용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패시브가 핵심이잖아.

사거리, 지속시간, 효과…. 패시브를 이길 수가 없어.

결국은 어느 하나 소홀하게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스킬 숙련을 쉬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코인을 벌어야 하는 상황.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것은 아니지만, 느긋하게 있을 수 없게 만든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하는 현실.

흡사 호수에 떠 있는 백조 같다. 수면 아래에서 물장구질을 멈추면 결국 가라앉게 돼 있어.

현실에 안주하고 여유를 부리는 순간 바로 경쟁에서 뒤처진다.

지랄 같네. 어휴.

어쨌든 아직 벽놈들과 호텔 놈들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방금 절단 놈이 아마 호텔의 중요한 놈인 거 같은데…. 과연 놈들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곳곳에서 번쩍번쩍하는 빛과 폭음, 비명들이 들린다.

제법 먼 거리에 있는데도 이렇게 요란한 거 보면 확실히 싸우는 스케일이 다르긴 하네.

모래 녀석은 아직 모래 결계를 거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로 내려갈 수가 없다. 어쩐지. 이놈들이 위쪽을 포위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어.

위에는 모래로 커버할 생각이었던 거지. 근데 신기하긴 하네.

모래 조종이 이 정도로 대단한가?

상당히 궁금해진다. 가장 처음부터 배울 수 있는 스킬을 이렇게까지 활용하다니.

문제는 저 모래 놈이 쓴 스킬이 몇 개 안된다는 거다.

모래 조종, 비행, 투명화, 수납, 블링크. 탐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섯 개.

아직 스킬 서너 개는 더 있다는 소리잖아.

그러니 더욱 지켜봐야지. 정보 수집. 그것만이 살길이야.

모래 결계를 피해 돌아서 바닥 쪽으로 내려갔다.

모든 녀석을 전부 탐지 범위에 둘 수 있는 위치까지 이동해서 상황을 확인해본다.

하늘에 떠 있는 모래 놈. 그리고 아직 공중에서 사방을 경계 하는 네 명의 벽놈들.

그리고 아까 절단을 맞고 땅에 떨어진 남자를 치료하고 있는 한 여자.

오. 여자였네. 근데 다리가 잘렸잖아? 치료가 돼?

그쪽에 관심이 생겨서 조금 거리를 좁혀본다. 근데 그래 봐야 너무 멀다. 잘 보이질 않아.

블링크를 써서 근처까지 간 다음 페이즈 아웃을 썼다.

이 두 명은 전장이랑 조금 떨어져 있으니 여기에 누가 있지는 않겠지.

다리가 잘린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 절단면에 스킬을 쓰고 있는 여자.

손에서 빛이 나고 있고 절단된 다리에서 꾸물꾸물 다리가 자라나고 있다.

오우…. 이게 뭐야. 존나 그로데스크 하네.

이게 그건가? 신체 복구?

신체 복구도 티어9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이 여자도 존나 수준 높네?

아까 투명화에 비행도 있었고 힐에 신체 복구도 있고 보호막도 이 여자 거였을까? 그건 모르겠네.

탐지도 있을 테고 공격 스킬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흐음…. 고민이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이 여자를 매혹으로 탈취해서 정보를 캐고 싶지만, 아직은 이르다.

모습을 드러내는 건 확실하게 모든 걸 파악한 다음에 해야 해. 성급하게 할 필요 없어.

좋은 찬스를 넘기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금 신체 복구되는 속도를 보면 한참 걸릴 것 같다.

이제 무릎 부분이 생겨나고 있으니 꽤 걸리겠지.

게다가 신체 복구를 쓰고 있으니 여기에다 광역 스킬 무효화나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깔지는 못할 거다.

위험한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피하면 되겠네. 일단은…. 좋아. 더 지켜보자.

열심히 뛰어 거리를 벌린 다음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투명화와 비행, 반사를 걸고 바로 최대한 멀리 블링크를 썼다.

이 정도면 탐지에 걸리진 않았겠지. 그럼 어디 상황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

기왕 여기서 뭔가를 하려면 호텔 쪽 놈도 사람을 잡았으면 하는데…. 그래야 이놈들이 게이트로 도망간 위치를 알아내지.

근데 넘어간 놈들 중에는 게이트가 없나?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바로 돌아올 법한데 안 오네?

어쨌든 호텔 안을 탐지로 살펴본다. 남아있는 기척은 열댓 개 정도.

벽에서 스무명 정도가 출발했고, 호텔에는 쉰 가까운 인원이 있었다.

근데 게이트로 반 정도 넘어갔으니 스물다섯이라 치고. 그럼 이 주변엔 도합 마흔 다섯이 있어야하는데.

열댓명밖에 없다고? 이야. 그 짧은 사이에 많이도 죽었네.

그 사이에 호텔 안에서 기척 하나가 또 사라졌다. 흐음…. 무자비하네.

잡아갈 필요는 없는 건가? 생포가 목적이 아니고 사살이 목적인가?

대체 이놈들이 왜 싸우는 건지 모르겠다.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사정을 알고 있으면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잖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게 그거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딱 뛰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호텔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둘 움직이는 게 아니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원은…. 아홉.

그럼 하늘에 떠 있는 모래 놈이랑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네 명. 그리고 아까 신체 복구를 걸고 있던 두 명.

합이 열여섯. 와. 스무명이 출발했는데 피해가 넷밖에 없다고?

호텔 입구 쪽에서 안에 있던 아홉이 밖으로 나왔다.

어? 아…. 저 아홉이 전부 벽놈이 아니구나.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몸이 축 늘어진 채 벽놈들에게 들려 나오고 있었다. 저놈들은 호텔에 있던 놈들인가 보네.

그럼 벽놈 열넷에 호텔 놈 둘이네.

열넷. 그래도 많다.

귀찮네. 아무리 수면이 다섯 명으로 늘었다고 해도 열넷은 많다.

뭐, 두 명은 치료 중이니 열둘이라고 쳐도 많은 건 많은 거다. 한 번에 처리하기는 쉽지 않은 녀석들.

게다가 숫자뿐만이 아니라 녀석들의 실력도 상당하잖아? SG 센터 앞에서 사냥하는 그런 느낌은 아닐 거란 말이지.

결국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장 맘에 안 드는 건 하늘 위에 떠 있는 저 네 명이다.

일정 간격을 두고 여기 온 이후로 꼼짝도 안 한 채 공중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네 명.

지금 모래 놈이 호텔에서 나온 아홉에게 다가가는 데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꼼꼼한 놈들. 치밀한 놈들.

어설픈 기색이 없다. 근데 오히려 안심된다.

허술하고 한심한 모습이었다면 되려 의심하고 수상하게 생각했을 거다.

차라리 저렇게 삼엄한 모습을 확인한 게 낫다.

그래야 내가 박살 낼 놈들이 쭉정이가 아니라는 보장이 생기지.

스킬의 효과가 너무나 강력한 이 세상에서 저렇게 무력화된 다음 잡혀 왔다는 건 상당히 치명적이다.

단순하게 매혹만 해도 알고 있는 정보를 줄줄 내뱉으며 무슨 짓이라도 당할 수 있는 상황.

게다가 아직 내가 써보지 못하고 이름만 알고 있는 스킬들, 이놈들이 없을 리가 없다.

마리오네트, 기억 읽기, 감정, 이런 것들.

어쨌든 호텔에 있던 저 남녀는 캐낼 게 있으니 잡아 온 거겠지?

일단 게이트로 도망간 녀석들도 잡아야 할 테니까.

벽에서 온 놈들의 목적은 그거라고 생각한다. 이놈들의 일망타진.

끌고 온 녀석들의 수준을 보면 그거 말고는 생각할만한 게 없어.

여기서 정보를 캐내려나? 굳이 끌고 가서 캐낼 필요는 없을 거 아냐?

지켜봐야지. 여기서 정보를 캐낸다면 매혹이나 다른 유용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녀석도 여기 있다는 소리다.

남자 놈을 잡은 거 보면 여자 중에 매혹을 가진 녀석이 있을 것이고 다른 스킬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거 나름대로 좋다.

어쨌든 스킬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알아낼 수 있으니까.

이래저래 짱개들을 잡는 건 도움이 되네. 오길 잘했어.

근데 잡아 온 녀석들을 향해 뭔가를 바로 하진 않고 있다.

신체 복구를 하고 있는 여자 쪽으로 끌고 오는 모습.

음…. 기다리는 건가? 그럼 둘 중에 하나겠네.

신체 복구를 쓰는 저 여자가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치료 되고 있는 저 남자가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나 보다.

어쨌든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생각을 좀 해야겠네.

녀석들을 바로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지.

그렇게 고민하면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탐지에 뭔가가 잡혔다.

기척. 먼 곳에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

탐지 거리가 380미터니까 거리는 한참 된다. 벽에서 온 놈들과는 거의 700미터는 되는 거리.

점점 많아지는 기척들. 뭘까? 다른 세력인가?

하늘을 날아 최대한 숫자를 세본다. 대충 스무명은 넘는 거 같은데…. 아. 혹시 그놈들인가?

게이트 타고 다른 곳으로 갔던 호텔 놈들?

음…. 그게 맞겠네. 게이트가 강제로 닫히고 이쪽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놈들이 구하러 온 건가 보다.

쟤들은 게이트가 없나? 아. 게이트가 있어도 여기 저장이 안 돼 있을 수 있겠구나.

게이트가 두 명 이상이라면, 이쪽 호텔을 저장한 놈이 저쪽에 없었을 수도 있겠네.

그럼 저렇게 직접 오는 게 맞지. 음. 대충 이해는 됐는데.

저 숫자로 이 벽놈들을 잡을 수 있나? 게이트를 먼저 탔다는 건 전력이 약한 이들 아닌가?

게이트로 넘어가지 못했던 스물이 넘는 호텔 놈들도 겨우 몇 명 못 죽이고 전멸당했다.

저놈들이라고 다를 건 없지 싶은데. 어쨌든 나는 상관할 일이 아니지.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거잖아?

어쨌든 좋은 구경을 또 할 수 있을 거 같으니 기가 막힌 구경 자리나 살펴봐야겠다.

모두를 아울러서 지켜볼 수 있는 곳. 쉽사리 나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는 곳.

벽놈들과 호텔 놈들이 거리가 가까워진다. 아직은 서로의 탐지범위가 아니기에 긴장감만 높아진다.

아까랑 상황이 반대네. 아까는 벽놈들이 호텔을 기습했는데, 이번엔 호텔 놈들이 벽놈들을 기습하려 하고 있어.

게이트를 타고 갔던 놈들이 돌아올 거란 생각을 했을까? 음…. 하진 않았더라도 방심은 안 하고 있으니 쉽게는 안 당할 것 같다.

일단 저 하늘에 떠 있는 녀석 네 명. 저놈들이 있으니 섣불리 당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도와 줘볼까?

아니. 돕는다고 하긴 좀 웃기네. 내가 짱개를 도울 리가 없잖아?

균형을 맞추는 거지.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다 같이 동귀어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생각하고 녀석들을 주시한다. 과연 이번엔 뭘 보여줄래?

호텔 놈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폭풍전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저놈들도 저런 벽놈들을 상대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놈들이다. 허술한 놈들이 아닐 거야.

뭔가를 보여주긴 하겠지? 과연 어떨까? 씨발. 수납 안에 팝콘 없나? 뒤져보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팝콘 대신 빵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었을 때, 움직임이 시작됐다.

하늘에 떠 있던 벽 쪽의 네 명. 그 앞으로 호텔 쪽 한 놈이 블링크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뭔가 많은 것들이 일어났다.

일단, 벽 쪽 한 놈의 주변이 불투명한 무언가로 감싸졌다.

안에 있던 놈이 자신의 귀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더니 그대로 꼬꾸라진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떠 있던 다른 세 명의 벽놈들도 머리를 부여잡더니 비틀거린다.

그리고…. 나도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뭐지? 뭘 쓴 거야?

상당히 거리가 있음에도 머리가 약간 울리는 느낌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비행 유지가 힘들 것 같다.

일단 가장 가까운 빌딩 위로 블링크 하려 했는데 그것도 실패했다. 씨발. 이거 위험한 거 아냐?

비틀거리며 날아 빌딩 위에 겨우 안착하고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에 떠 있던 놈들이 술 취한 듯 비실거리며 땅으로 낙엽 떨어지듯 천천히 나풀나풀 떨어지는 모습.

뭐였지? 이 머리를 울리는 느낌? 씨발. 어지럽네. 살짝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야.

아. 이거 혹시 그건가? 예전에 들어본 적 있다. 언제였지? 정종찬 새끼 처음 봤을 땐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암튼 이건 그거다. 진동파.

대충 그거 말고는 생각 나는 게 없다. 아. 그럼 아까 첫 번째 놈이 당한 것도 대충 뭔지 알겠다.

보호막으로 상대를 감싼 다음 안에다가 진동파를 때려 넣은 거야? 와. 씨발. 진짜 창의적이게 씨발스럽네.

어쨌든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나도 비행하기 힘들 정도면…. 가까이 있는 놈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게다가 블링크도 힘들어 보인다. 와. 이걸 이렇게 강제하네. 미치겠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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