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77화 (37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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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다음날.

"다들. 나 좀 도와줄래?"

내 부탁에 여자들이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일단 백령도로 넘어가서 주변을 둘러봤다.

섬이라 그런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멀쩡한 그물들.

적당히 가져다가 여자들 앞에 펼쳐놓으니 이걸 왜 가져왔는지 의아해하는 모습.

"이걸로 나를 감싸 봐."

"엑? 새로운 취미에 눈 뜬 거야?"

세아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고, 꿀밤을 한 대 때리려다가 참았다.

세아는 이제 블링크를 배워서 꿀밤이나 머리 헝클이기가 쉽지 않아졌다. 제길. 괜히 배우게 했나.

"테스트다. 테스트."

여자들은 재미있겠다 싶었는지 적극적으로 나를 그물로 감쌌다.

음. 그래. 이정도면 됐고 그다음은….

"블링크!"

아주 간단하게 그물을 빠져나왔다.

감싼 거에 비해 너무 쉽게 빠져나오니 허탈한 표정을 짓는 넷.

"이게 뭐예요? 왜 이런걸?"

승희가 나에게 물어봤고, 나는 내가 봤던 걸 이야기해줬다.

"그럼, 이거 투명화 한 다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투명화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해봐요. 조건은 똑같이 해야죠."

그러더니 승희가 그물을 잡고 투명화를 했다.

보이지 않게 된 그물. 네 여자는 그물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 한참을 손으로 만져서 펼치더니 결국 나를 감쌌다.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그러게. 그냥 감싼 다음에 투명화시킬 걸 그랬네."

"아!"

"그러네!"

진작 그럴걸! 하며 뭐가 좋은지 꺌꺌 거리며 웃는 그녀들을 놔두고 나는 블링크를 했다.

어? 근데 실패했다?

"뭐해요? 안 나오고?"

"실패했어!"

"네?"

"블링크!"

봐봐. 또 안됐다. 뭐지? 뭐가 문제지? 투명화에 이런 효과가 있는 건 아닐 텐데?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그물을 만지작거려보고 다시 한번 해본다. 안될 리가 없어.

"블링크!"

얼래? 이번엔 빠져나왔다. 이해가 안 가네? 이게 무슨 일이야?

"이번엔 된 거예요?"

"어. 뭐지? 이유를 모르겠네? 확률로 실패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뜻밖의 결과에 우리는 진지한 분위기가 됐다.

여러가지 의견과 추측, 가설이 나왔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원인은 찾지 못했다.

아. 씨발. 대체 뭐지?

인지하지 못한 물건이 몸에 닿아서 블링크에 간섭을 일으키나? 그건 아닌거 같은데.

"으음. 혹시요."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연 승희.

"아무래도…. 이거 그거 아니에요? 투명화된 그물이 오빠의 시야를 가로막은 거죠. 그물코가 장애물이 된 거예요."

승희의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그럴듯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 맞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나 보다.

나는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 어. 마땅한 게 없네.

펜션 안에서 이불 하나를 들고나온 나는 네 여자에게 한 귀퉁이씩 잡고 벽처럼 세워보라고 시켰다.

"승희야. 이불이랑 같이 투명화해봐."

"투명화!"

이불로 가려져 있던 건너편이 승희의 투명화와 함께 보이게 되었다.

그래. 지금 건너편은 보이지만…. 이 사이에는 이불이 있다. 보인다고 전부 트여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블링크!"

안된다. 그래. 맞아. 그런 거였어.

"안돼요?"

"어."

"와! 내가 맞췄네!"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해맑게 좋아하는 승희. 그리고 다들 승희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엄청난 발견인 거야.

"어? 왜요? 왜 그렇게 심각해요?"

"음…. 승희 너는 계속 잡고 있고, 세아 너 거기 이불 뒤에 서봐."

"어? 나? 왜?"

"서봐. 빨리."

세아가 영문도 모른 채 이불 뒤에 가서 섰다.

나는 그런 세아를 향해 짧게 외쳤다.

"자라!"

다들 깜짝 놀라는 표정.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거다. 수면 역시 중간에 장애물이 있으면 상대에게 쓸 수 없다.

그건 모든 목표를 정해야 하는 스킬이 마찬가지일 거다.

"뭐지? 나 왜 안 자? 설마 이거 이불 때문인가?"

분명 자신을 향해 수면을 쓴 걸 본 세아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이 현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다.

장애물이 있지만, 투명화를 썼기에 장애물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

꼭 반사가 없어도 상대의 스킬을 막아낼 수 있다는 소리.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거다.

특히 아까 블링크를 봉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메리트를 가진다.

상대를 투명화 쓴 커다란 천으로 가릴 수 있다면?

상대는 뭣도 모르고 블링크를 연발하겠지만 쓸 수 없을 거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

이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아이디어는 얻어놨으니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겠어.

그렇게 여자들을 백령도에서 스킬 훈련하게 놔두고 나는 상하이로 순간 이동했다.

일단 하던 일은 계속해야지. 어제 봤던 놈들도 지켜봐야 하고.

근데, 상하이에 도착하고 나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새끼들…. 다 어디 갔지?

호텔에 있던 그 많은 놈이 없어졌다. 기척에 느껴지는 게 하나도 없어.

뭐지? 씨발.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호텔로 가까이 다가가 혹시나 남아있는 놈이 있나 살펴봤다.

없어. 없다. 기척은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아.

혹시나 해서 안을 들어가 봤다.

누군가 잠복해있을 수도 있으니 페이즈 아웃을 섞어 쓰면서 호텔 안쪽을 뒤져본다.

전투가 있어서 모두 죽은 건 아닌거 같다. 개인 물품 같은 게 아무것도 없어.

정리는 전혀 돼 있지 않아 너저분하지만 챙겨갈 것은 전부 챙겨간 거 같다.

이건…. 여길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 거네. 젠장.

내 미행을 눈치챈 건가?

녀석들도 스킬 사정거리 증가 패시브를 잔뜩 찍어서 나를 눈치챘는데도 못 챈 척하고 연기 한 거야?

그랬을 확률이 없는 건 아니다. 으음. 내가 너무 경솔했나.

탐지 거리만으로 상대의 수준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니 녀석들의 판단은 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스킬 열한 개, 열두 개씩 마스터한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한다고 하면 쫄리는 것도 당연하지.

나라도 그럴 거다. 누군가 300미터 밖에서 우리 벙커나 백령도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면 심장이 벌렁벌렁할 거야.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키고 보겠지.

느긋하게 녀석들을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사라져버려서 그런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아. 추적이나 이런 스킬들을 배워야 할까?

근데 그건 광역 스킬 무효화에 지워지잖아. 게다가 페이즈 아웃을 쓰는 나에겐 별로 좋은 스킬이 아니다.

페이즈 아웃을 쓰는 순간 추적 걸어놨던 게 다 사라질 테니까.

안 배우느니만 못한 스킬. 차라리 발신기 같은 걸 물리적으로 붙여 놓는 게 낫지.

발신기라. 이것도 서민준이한테 내놓으라고 하면 얻어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명색이 대기업이잖아. 본인도 하나 차고 있는 거 같고.

하나 달라고 해봐야겠다.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겠지.

아…. 근데 발신기가 있어도 달기가 힘든가? 생각해보니 그렇네. 어떻게 달지?

씨발. 귀찮은 것투성이네. 바로바로 죽여버리면 속 편한데 안 죽이고 살려놓으니 이렇게 귀찮아지는 거야. 어휴.

어쨌든 텅 비어 버린 호텔을 뒤져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디로 갔는지 짐작이라도 되면 뒤져보기라도 하겠는데…. 그런 것도 없고.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상하이 상공을 나돌아다녀 본다.

근데…. 너무 크네. 아주 많이 크잖아? 대충 비교해봐도 서울이랑 크기가 비슷하다.

씨발. 이래서 어떻게 찾냐. 이건 무리야. 시간 낭비다.

상하이 상공에서 살짝 고민해본다.

어디로 가야 하나? 아. 어제 그 새끼들을 조금 더 지켜봐야 했는데.

가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볼까? 아냐. 그건 멍청한 짓인데.

여기 도시 안에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좀 더 쥐잡듯이 뒤져보겠지만 그게 아니니 시간 낭비할 확률이 높다.

그냥…. 떠나는 게 낫지.

그럼 어디로 가나. 해안가를 타고 더 내려가 볼까?

그러면 홍콩까진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가는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양쯔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싼샤 댐을 저장해 놓는 게 나을 것 같다.

중간중간에 양쯔강에 바닷물도 신나게 타주고.

결정했으면 해야지. 강 길이가 짧은 게 아니니 강을 따라 올라가려면 한참 걸릴 거야.

바로 출발하자.

그렇게 상하이 북쪽에 보이는 양쯔강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강과 도시 사이에 만들어져있는 벽이 보인다.

꼼꼼하게 도시를 감싸며 봉쇄하고 있는 벽. 그쪽에 다가가니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근데 사람이 조금 많은 거 같다? 도시 들어올 때 보단 사람이 는 거 같은데?

그동안 중국 땅을 날아다니면서 무수하게 봤던 벽들.

짱개들이 지키고 있는 것들은 봤지만, 지금은 유난히 숫자가 많다.

게다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모습. 저건…. 단지 감시 용이 아닌거 같은데?

호기심이 생겼기에 녀석들을 지켜본다. 지금 내 위치. 녀석들이 나를 탐지해낼 수 있을까?

일단 조금씩 거리를 좁혀본다. 그것부터 확인해봐야지.

저 녀석들이 나와 같거나 높은 수준이라면 지금 이 거리에서 탐지가 잡힐 거다.

공중에 수상한 기척이 잡히는데 가만히 있을 리는 없겠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녀석들을 바라본다.

이정도 거리는 블링크로 한방에 날아올 수 있는 거리니 방심하면 안 된다.

어제 봤잖아. 그물질 하는 거.

물론 나도 블링크가 있으니 그물은 벗어날 수 있겠지만, 아까 테스트했던 것처럼 그물에 시야가 가리면 바로 못 쓸 수도 있다.

위험에 대해서는 대비를 하는 게 낫지.

다행히 녀석들은 나를 못 알아챈 것 같다.

그래도 방심은 안 한다. 녀석들이 연기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 탐지 거리는 380미터. 녀석 중에 스킬 반경 증가 6이 있다고 해도 그 녀석의 탐지 거리는 310미터가 될 거다.

70미터의 여유가 있으니 일단은 녀석들을 감시해본다.

뭔가를 할 것 같은 놈들이니 조금 지켜봐야겠어.

내 예상은 맞았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녀석들은 상하이 중심 쪽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의 스무명은 되는 듯한 인원. 게다가 우르르 뭉쳐가는 게 아니고 사방으로 몇 명이 흩어져서 주변을 감시하는 형태로 날아간다.

전원 비행 스킬을 가진 놈들. 사방으로 흩어진 녀석들은 투명도 썼다.

가운데에 있는 놈들이 투명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투명으로 이동하면 위치를 확인하기 힘드니 그냥 드러내놓고 가는 느낌.

게다가 녀석들은 한 방향으로 망설임 없이 이동하고 있다.

목적지가 확실하다는 소린데. 뭘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내 감은 저 녀석들이 저렇게 이동하는 건 어제 그놈들이랑 상관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그래.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야.

근데 어제 그놈들은 거의 오십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것도 제대로 숫자를 센 게 아니라 더 있을 수도 있다.

이놈들 숫자가 적은 거 아닌가? 흐음…. 모르겠네. 자신이 있다는 건가?

뭐…. 어제 그놈들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잠자코 지켜보자. 어디로 가는지.

녀석들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속도가 조금 더 빠른 놈들이 있나 살펴본다.

내가 찍은 스킬 한계 돌파1 패시브.

비행속도도 올려주는 패시브.

만약 녀석들을 지켜보다가 속도가 더 빠른 놈이 있다면 그놈은 이 패시브를 찍은 거다.

근데 일단은 그런 놈은 없다.

옆 사람이랑 보조를 맞춰서 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리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앞서게 되거든. 지금의 나처럼.

녀석들이 워낙 한 방향으로 가고 있기에 방향을 특정하기는 편하다.

당분간 이 방향으로 계속 날아갈 것 같으니 그 방향으로 블링크를 여러 번 써서 앞질러 봤다.

그렇게 한참을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혹시라도 녀석들을 놓치면 피곤해지니까.

한 20분 갔을까? 블링크를 해서 앞쪽을 훑어보는데 뭔가 기척이 걸렸다.

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봤더니 호텔이다. 그리고 탐지에 걸리는 제법 많은 인원.

어제 그놈들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인원이 비슷해.

벽에서 출발한 놈들은 이놈들을 향해 오는 게 확실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페인트 남 그놈도 있었지. 페인트 녀석 그놈이 저 벽에서 온 놈들 동료였을까?

자. 이제 곧 벽에서 온 놈들이 이 호텔 근처로 올 거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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