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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Wild West
게이트를 배운 감격은 일단 뒤로하고 이제 본격적인 맵 밝히기를 해본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들 생각보다 열심히 스킬을 배우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미친놈이 없다는 것.
그래. 미친놈이 없다는 게 크다. 그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다들 망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지난 세상의 흔적을 부여잡고 있을 뿐.
그게 이해가 안 간다. 정말 저런 무리 짓기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민희 말대로라면 여러 스킬이 풀린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 다들 과거의 미련을 잡고 있는 거겠지.
정체의 4년. 그리고 과도기적인 1년.
제 딴에는 최대한 좋은 방향들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방법이 틀렸을 뿐.
원래라면 개인은 단체를 이길 수 없다.
스킬이 없는 세상에선 그랬다. 개인의 무력은 단체 앞에선 무기력했지.
하지만 스킬은 그걸 바꿔줬다.
한 대의 F-35 전투기가 다른 전투기들에게 레이더 포착 한번 안 당하고 모두를 전멸시키는 것처럼.
스킬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걸 조합하고 활용할수록 강해진다.
그것도 비등비등한 전력이 아닌 압도적인 무쌍이 가능할 만큼.
지금의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만이 아니고 현실이 그렇다.
민희에게 가 있는 일산의 그 꼬맹이.
그 녀석도 대단하긴 하지만 스킬이 여덟 개 밖에 안된다.
물론 동생을 지키면서 살아야 했던 핸디캡이 있었으니 조금 늦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정도다.
그렇다면…. 과연 세계의 수준은 어떨까?
중국. 바퀴벌레 같은 짱개들의 소굴.
수많은 사람이 있는 곳. 모든 자원이 의미 없어지고 코인만이 유일한 자원이 된 현재.
중국은 세상 어느 곳보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그놈들은 야만적이고 미개하지만…. 멍청하진 않다.
맘에 안 들고 혐오스러운 놈들이지만 그렇다고 방심하진 않는다.
이 작은 대한민국에도 나 같은 놈이 있는데…. 그 커다란 놈에 나만 한 미친놈이 없을까?
집을 나서고 서쪽으로 향한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집을 나와서 한 시간. 청평에 보냈던 그 스킬 사용 불가 지대 그놈. 그놈이 있던 김포를 지난다.
그리고 더 서쪽으로.
이어진 땅처럼 보이지만 섬인 곳. 강화도. 거길 넘어서 더욱 서쪽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하이바 안쪽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바다 냄새가 난다. 그리고 반짝이는 수면. 그리고 노을.
떨어지는 낙조는 온 세상을 붉게 만들고 있다. 그 석양에 눈이 부셔서 더 나아가기 힘들 정도.
하지만 내 비행은 멈추지 않는다. 어차피 앞이 보이지 않아도 서쪽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땅. 그래. 분명 내 지식에 의하면 이곳은 북한 땅이다.
잔뜩 벗겨진 민둥산들이 그걸 증명한다. 이 산이고 저 산이고 나무가 전혀 없이 죄다 벗겨져 있는 모습.
이딴 걸로 북한 땅인 걸 짐작할 수 있다니. 어이가 없네. 정말.
오른쪽은 육지, 왼쪽은 바다. 그 사이를 경계로 앞을 나아간다.
지도상으로는 이리로 쭉 가다가 살짝 오른쪽을 보면 섬이 나올 거다.
그게 내가 목표로 하는 섬. 백령도.
근데 갈 수 있을까?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
석양을 잔뜩 뿌리고 사라진 태양. 주변은 금방 어둠으로 물들었다.
도시의 밤은 휘황찬란하다.
밤이라고 어둠이 그 힘을 온전히 득세하지 못하지. 수많은 불빛과 네온사인에 힘을 잃고 마니까.
하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북한 땅도.
어둠이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주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나침반이라도 하나 들고 올 걸 그랬나? GPS가 안되니까 구식 나침반이 필요하겠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일곱 시도 안 된 시간이다.
세상에. 전기가 무제한인 세상인데도 일곱 시면 세상이 이렇게 어둡다니.
오늘은 이만해야겠다. 나에겐 순간 이동이 있기에 언제든지 원하는 지점에서 세이브 하는 게 가능하잖아.
내일은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게 사기야. 얼마나 좋아?
이대로 집으로 갈까 하다가 나온 김에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바로 수원으로 간다. 너무나 편한 순간 이동.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렇게나 좋은 일이야.
여자 둘이 잘 있는지 탐지를 돌려본다. 잘 있네? 기척 두 개가 보인다. 음. 한번 확인하고 갈까?
여전히 인공 정원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최신영.
매트 위에서 요가를 하는 고성연.
참 어처구니없는 두 여자다. 어떻게 저렇게 반대지?
온실 속의 화초와 어떻게든 살아남는 잡초.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고성연 저 여자는 원래 뭐하던 여자였지?
뭐, 지금은 더 볼 게 없다. 이들은 그저 매혹 셔틀.
매혹이든 몸이든 뒤를 생각 안 하고 마음껏 쓸 수 있는 그런 여자들.
잘 있으면 됐지. 나중에 식량 떨어질 때쯤 리필만 해주면 되지.
청주로 넘어간다.
SG 센터. 여전히 사람은 많다. 적당히 사냥이나 하다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가서 게이트 숙련이나 해야지. 상황만 확인했으면 됐어.
집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게이트 숙련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급이 됐고, 게이트는 최대 가로세로 2.2미터가 됐다.
좋네. 맘에 들어. 고급이나 마스터만 돼도 차가 지나갈 수 있겠네.
그렇게 방에서 숙련하고 있는데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보통 이렇게 숙련하고 있을 땐 잘 안 들어오는데. 웬일이람?
"재밌어 보여요."
승희의 말에 다들 비슷한 표정이다.
하긴 게이트가 조금 신기하긴 하지. 그렇지?
"너희 재밌는 거 해볼래?"
"네?"
"이쪽으로 서봐."
내가 저장을 해 놓은 바닥. 거기에 네 명을 세웠다.
뭘 할지 눈치챈 거 같은 세아. 그런데도 가만히 있다. 올. 비행 있다 이거지?
"바닥이랑 천장에 포탈이 생길 거야. 그리고 너희는 무한하게 계속 떨어질 거고. 무서우면 중간에 비행을 쓰기만 하면 돼. 괜히 옆으로 가거나 발버둥 치면 서로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고."
"아니…. 대체 뭐 하려고 그래요?"
약간 불안한 듯 미나가 물어봤다.
나는 그런 미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무한하게 떨어질 거라고. 무서우면 비행만 딱 쓰면 돼. 그럼 너희가 멈출 수 있어. 그럼…. 간다? 게이트."
여자들이 서 있는 천장과 바닥에 포탈이 생겼다.
동그란 포탈. 최대한 크게 만든 구멍.
그리고 네 여자는 그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꺄악!"
"어어!!?"
"휘유!"
각양각색의 탄성을 지르며 계속해서 떨어지는 넷.
처음엔 무서워하던 이들도 몇 바퀴 지나니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지만…. 조금 기이하네. 보고 있다 보면 상반신은 바닥에 있는데 하반신은 천장에 있는 경우가 생긴다.
포탈이 가까우면 자기 발도 잡을 수 있겠네. 이거 좀…. 거시기 한데?
잘하면 포탈 섹스도 가능할 것 같다? 어휴. 내가 미쳤지. 모든 생각을 다 이런 거로 돌리네.
그래도 어떻게 잘 쓰면…. 마주 보고 딥키스를 하면서 섹스를 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아 모르겠다.
이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나중에.
그렇게 떨어지던 네 여자는 한참 뒤에는 익숙해진 듯 아예 즐기는 모습이 되었다.
그래. 이미 하늘을 나는 데는 익숙해진 넷이다. 이 정도 추락을 무서워하면 안 되지.
짧게 '비행'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위험을 벗어날 수 있는데 말이야.
어쨌든 신나게 즐긴 넷이 나가고 나는 게이트 숙련을 마저 했다.
지쳐서 머리가 어지러울 때까지 포션을 마시고 나에게 수면을 건다.
오늘은 그래도 세 번 만에 잠이 들었다. 나이스.
다음날. 어제 끝냈던 지점에서 다시 서쪽을 향해 나아간다.
역시 주변이 밝으니 좋네. 알아보기도 편하고.
그렇게 더 가다가 결국 섬을 발견했다.
맨 왼쪽에 가장 작은 섬, 가운데 조금 더 큰 섬. 오른쪽에 큰 섬.
저게 바로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일단 소청도부터 가본다. 섬이 그리 큰 편은 아니고 길쭉해서 탐지 키고 돌기는 쉬웠다.
섬을 꼼꼼하게 뒤져 봐도 사람의 기척은 없다.
그래. 뭐 없으면 좋지. 시간도 아끼고 좋네.
다음은 대청도. 여기도 섬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역시 사람은 없다.
이미 전부 탈출한 건가? 아니면 학살이 있었나?
그런 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냥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수밖에.
그리고 백령도.
여기는 그래도 섬이 꽤 크다. 뭐 그렇다고 탐색하기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섬은…. 쫌 멋지다. 바위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생겼다.
지층이 그대로 보이는 바위들. 약한 부분은 전부 파도에 쓸리고 단단한 부분들만 우뚝우뚝 서 있는 바위들.
돌아다니다 보니 해변도 있고 동굴도 있고 하여간 멋진 섬이다.
여기는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까진 최전방이었겠지?
여기 있던 군인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세상이 망하면서 전부 사라졌을 텐데.
그 많던 군인들. 정말 다 어떻게 됐을까?
단지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삭제 된 거면 그것도 억울할 텐데.
전역이 며칠 안 남은 병장 이런 애들은 존나 억울했겠네. 아니면 입대한지 얼마 안 되는 애들이나.
어딘가 이세계로 가서 판타지 세상이라도 점령하고 있는 거 아닌지 몰라.
어우. 빡쎄네.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세계로 가서도 군인이라니. 오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완전히 비어버린 듯한 섬. 좋아. 이제부터 여기는 성철국의 영토다.
여기를 전투 훈련장으로 명명한다. 땅땅땅.
이곳 위치를 저장했다.
저장된 곳은 집. 수원 비행장. 청주. 백령도. 신촌 근처.
짱개 쪽으로 넘어가면…. 신촌을 지워야겠네. 아. 청주를 지울까? 뭐가 됐든 짜증 나네.
수원을 비울까? 근데 또 왔다 갔다 하기는 싫단 말이지.
에이 모르겠다. 일단은 그냥 가자. 아직 해가 남아있으니까 오늘은 바다를 건너보자.
백령도 서쪽 바닷가에서 그대로 서쪽을 향해 날아간다. 조금 각도를 틀어서 남쪽으로.
이대로 네 시간 정도만 가면 땅이 나올 거다.
해가 지기 전에 갈 수 있을까? 블링크를 조금 섞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잡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날아간다.
넘실거리는 바다. 바다. 바다.
보고 있자니 지루하진 않다. 바다는 같은 모양을 하진 않으니까.
그러게 날다 보니 이상하게 자꾸 바다 쪽으로 높이가 낮아진다.
내가 나도 모르게 바다로 들어가려는 건가? 하. 이거 참. 신종 자살 방법이네.
그렇게 해가 지기까지 신나게 날아간 결과 결국 육지를 발견했다.
오오. 좋아. 좋아. 육지다.
먼 옛날 범선 하나로 바다를 가로지르던 선원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육지를 보고 이렇게 반갑다니. 고작 네 시간 만에.
날이 어둑해져 있기에 고민이 살짝 들었다.
밝을 때 다시 올까? 아니면 지금 온 김에 한 바퀴 돌까?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밤이면 불빛을 보고 윤곽을 잡기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렇게 육지 위로 날아갔다.
자. 독개구리! 짱개국에 밀입국 달성! 어디 어떻게 살고 있나 보여줘 봐.
일단 해안을 중심으로 한참을 돌아봤다.
불빛은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짱개들이 북한 수준은 아니니 여기도 사람들이 살긴 했겠지.
그래도 불빛이 너무 많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엇보다…. 크다. 생각보다 크다.
산둥반도라고 해서 그냥 볼록 튀어나온 지형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하다가 직접 보니 느낌이 다르다.
어….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
너무 커. 게다가…. 잡히는 기척이 너무 많다.
뭐부터 봐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다. 이 많은 걸 하나하나 다 어떻게 확인하지?
내려가서 아무나 하나 붙잡고 정보를 얻어볼까? 통역 스킬이 있으니까 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근데 이런 일반인들이 정보가 있긴 있을까? 괜히 건드렸다가 소동이라도 나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동을 피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짱개땅 동쪽 끝에서 소동이 난다면, 우리나라에서 넘어온 거라는 생각이 미칠까?
그럼 안된다. 아직은 안돼.
이놈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아직 모르는데 의심의 화살을 한국 쪽으로 넘기면 안 돼.
괜히 벌집을 건드리는 게 될 수도 있다. 그건 멍청한 짓이지.
당분간은 건드리지 말자. 그냥 둘러보기만 하자.
소동을 일으켜도 녀석들의 핵심지역에서 일으켜야 한다. 최대한 한국이랑 연관 있다는 흔적을 보여선 안 돼.
그래서 그냥 계속 둘러보기로 했다.
그저 해안을 따라 쭉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녀석들의 본거지는 베이징. 일단 거기까지는 계속해서 가보자. 나에겐 순간 이동이 있잖아?
그렇게 해안을 따라 쭉 가던 나는 눈앞에 뭔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