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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클라스
최 회장은 나이는 들었지만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흑해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의 평범한 시점으로 보는 짱개가 아닌 그들이 알고 있는 깊은 사정이 담긴 정세.
중국은 세상이 망하기 전 세개의 큰 파벌이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망하면서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물론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실제 군부의 요직에 앉아있던 인물들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으니 거의 와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자리를 젊은 엘리트들 위주의 세력이 먹어치운다.
전 국민을 감시하던 첨단 장비들은 통신이 죽으면서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그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당. 서로를 감시하고 억제하며 봉쇄하는 데는 이골이 난 녀석들.
정말 의외로 커다란 소동 없이 짱개 그 많은 놈들이 거의 희생 없이 모두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발전.
부족했던 전기, 물.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그것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짱개들은 급속하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킬로 생성되는 기름. 오히려 살판 난 녀석들.
하. 정말 대단한 새끼들이야. 강압과 탄압에 익숙한 놈들다워.
나도 어렴풋하게 북한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펜스 보고 북진을 이야기 한 거다.
우리처럼 먹고살 만한 놈들이야 통신이 끊기고 세상이 먹통이 되니 야만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그놈들은 원래 야만이었잖아.
시골이나 낙후된 지역은 오히려 살기가 좋아지는 것이다. 무한한 전기와 물, 그리고 스킬이라는 이능으로.
물론 중국의 대도시에서 소요가 있긴 했다고는 하지만 상하 조직체계가 잘 잡혀있는 공산당 놈들은 깔끔하게 소요를 정리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봉쇄와 격리.
대도시의 많은 인구가 봉쇄되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고향으로, 아니면 비어있는 땅으로.
그래서 지금의 짱개국, 그러니까 중국은 그런 상태라고 한다.
꼼꼼하게 봉쇄되어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곳.
인권? 그런 건 원래 없었으니까 가능한 짓이다.
불만? 예전에도 없었다. 신비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공산국가니까 가능한 짓거리.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리고 그런 봉쇄된 중국을 관리하는 것은 역시 그 흑해방.
그 많은 인구를 적절하게 분배해버려서 봉쇄해버리고 유유자적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녀석들.
이건 정말 원하지 않던 결과다. 그 많은 놈이 서로 싸우면서 미친 듯이 죽어 나가야 했는데.
계획적으로 그 많은 인구를 이용해서 적당히 코인을 뽑아내서 쓰고 있는 거다.
이렇게 문화재나 미술품 같은 쓰레기까지 사 모으는 여유를 부릴 정도로.
미친놈들. 쉽게 볼 놈들이 아니다.
녀석들에겐 '사냥'에 몰두할 시간 따위는 필요 없다.
넓고 기름진 코인 밭에서 그저 숙련만 하면 되는 놈들.
미치겠네. 쉽지 않겠어.
하지만…. 그들 역시 실수를 저질렀다.
무리를 짓는 것. 그건 멍청한 짓이다.
무리가 모이게 되면 무조건 경쟁과 반목이 있을 수밖에 없어.
그 많은 인간, 그 많은 부와 권력. 과연 한 녀석이 꽉 움켜잡고 있을 수 있을까?
알아봐야 한다. 결국은 알아봐야 해. 내 눈으로 직접.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놈들이 만든 견고한 시스템. 얼마나 단단한지 직접 보긴 해야 해.
근데…. 문제가 있다. 짱개 놈들이 있는 곳. 너무 멀어.
내가 펜스를 북진시킨 이유가 그거다. 북한을 밀어버리고 육로를 확보하는 것.
북쪽을 먹어야 짱개든 러시아든 넘어갈 수 있다.
바다를 건너 가볼까? 서해를 비행만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순간 이동이 가능하니까 북쪽이든 바다든 갈 만큼 가고 그 지점에서 저장한 다음 돌아오는 방식은 가능할 거다.
여기서 중국까지 거리가 어떻게 되지? 한 천 킬로 되나?
대충 천 킬로라고 잡으면…. 비행으로 20시간이네. 어휴 씨발.
뭐 더 좋은 방법 없을까? 결국은 저 방법밖에 없는데.
게다가 아직 겨울인데…. 바다 위나 북쪽을 갈 자신이 없다.
아니….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단정 지으면 안 되지. 해보자. 해보는데….
국내도 아직 정리를 다 안 했는데 멀리 자리를 비우는 게 맞나?
아 진짜. 몸뚱이가 하나밖에 없는 게 너무 열 받네.
누구하고 상담할 수도 없고. 갑갑하네. 정말.
그렇게 혼자서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을 전부 마친 최 회장이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그래. 할 건 하더라도 일단 눈앞에 있는 것부터 마무리하자.
여기서 들을 수 있는 건 다 들었어.
촤악!
마체테가 휘둘러졌고, 최 회장은 그대로 빛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은 최 이사. 뺀질이. 녀석 역시 바로 빛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최 상무의 부인과 최신영.
"거기 싸모님? 이름이 뭐지?"
"고성연이요."
언제까지 싸모님이라 부를 수는 없지. 최 상무도 곧 죽을 텐데.
"여기 비밀통로 아는 거 더 있나?"
"비상계단이 있습니다."
성연이 말했고 나는 그녀를 앞세웠다.
그녀가 이끌고 간 곳은 최 회장의 방. 거기에 숨겨진 계단.
끝까지 올라가 보니 대호 디지털미디어시티 D동으로 갔던 그 비밀통로가 나왔다.
그렇구나. 이쪽으로 가는 계단도 있었어.
"또 있나?"
"더 아는 것은 없습니다."
"최신영, 너는?"
"저는 여기도 몰랐어요."
"그래? 그럼 돌아가자."
다시 벙커의 중앙으로 돌아왔고, 잠시 고민했다.
외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두 대, 비상계단 두 개.
엘리베이터 두 대는 위에서 붙잡고 있지만, 그거야 언제든지 망가뜨릴 수 있고, 비상계단 하나는 막혔다.
남은 건 비밀통로로 향하는 비상계단 하나.
거기만 막으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여기는 누가 아는 사람도 없다. 아마 아는 놈들은 다 죽었을 거 같다.
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막아버리면 이 안쪽은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나야 페이즈 아웃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어. 근데 저 여자들을 쓸 수가 없다.
당분간 매혹을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음. 곧 게이트를 찍을 테니 상관없겠지?
게이트가 다른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스킬이어야 할 텐데.
일단 저지르자. 뭐, 크게 고민할 필요 없지.
이 여자 둘을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는 거니까. 살면 편하고, 죽으면…. 뭐 그건 지 운명인 거지.
여자 둘을 재우고 일단 테이프 질 했다.
페이즈 아웃을 쓰면 매혹이고 뭐고 다 풀릴 테니까 미리 준비해야지.
그리고 지상으로 나왔다. 아까 토사가 잔뜩 쌓여있는 곳에 다시 와서 수납에 흙을 잔뜩 채웠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최하층으로 내려보낸 다음 문짝을 억지로 열었다.
그 틈으로 팔을 뻗고 수납을 열어 흙을 모두 부어버렸다.
최하층에 가 있는 엘리베이터 위로 수북하게 흙이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음…. 약한데?
밖에 나가서 아무 차나 하나 수납에 담아와 엘리베이터 위에 떨궈버렸다.
쿵
좀 더 할까? 한 세대 정도 더 가져와서 그 위에 계속해서 떨궜다.
적어도 이러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진 않겠지. 누가 들어갈 수도 없을 거고.
다른 엘리베이터도 똑같이 반복했다. 자. 엘리베이터는 끝났고.
비밀통로로 향하는 비상계단도 다른 쪽과 마찬가지로 흙을 덮어버렸다.
끝. 이제 이 밑은 밀실이다.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곳.
들어갈 수 있는 건 페이즈 아웃이 있는 사람뿐. 순간 이동이 있어도 저 안에 저장이 되어있지 않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다시 페이즈 아웃을 쓰고 들어가 해제한 뒤 반사만 몸에 걸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두 여자에게 다가갔다.
테이프를 뜯어주는 데도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살벌하다.
하긴, 눈앞에서 자기들이 살던 벙커의 모든 인간을 다 죽여버린 나다.
게다가 최 회장과 최 이사까지.
최신영. 그녀의 오빠를 내가 눈앞에서 죽인 거다. 이건…. 내 각오다.
고성연 저 여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내 곁에 두거나 잘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이용할 생각이기에 묻어 둔 것일 뿐. 결국, 살려둘 생각은 없다.
"내가 증오스럽겠지?"
독한 표정의 최신영. 하지만 고성연 저 여자는 생각보다 담담하다. 웃기는 여자네.
"최 상무도 나한테 죽었어. 최씨 일가 중 살아남은 사람은 너희 둘밖에 없어."
사실 아직 안 죽었지. 근데 곧 죽을 거니 크게 다를 건 없지.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고성연 저 여자는 전혀 표정 변화가 없다. 와. 무서운데?
드러내지 않는 증오인가? 아니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뭐, 알 바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뭔가 더 말하고 싶지만, 왠지 질척거리는 느낌이 났다.
관두자. 이딴 짓을 해놓고 뭘 계속 주둥이를 놀리냐. 그냥 꺼져줘야지.
페이즈 아웃. 그리고 잠시 지켜본다.
과연 어떤 짓을 할까? 소리치고 울까? 아니면 바로 자신들을 구하러 오라고 연락할까?
하지만 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음…. 의외네.
나는 최신영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침대에 눕더니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버리는 모습.
이러면 뭘 하는지 볼 수가 없네.
고성연은 자신의 방으로 가더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운동복. 몸매가 다 드러나는 윗옷과 레깅스. 하. 지금?
그러더니 러닝머신을 뛰기 시작한다.
와. 어이가 없네. 뭘까? 이 여자는?
나는 죽어도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지상으로 올라왔다.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 저 햇빛을 보니 기분이 나빠지네. 영 맘에 안 들어.
저 여자들이 외부로 연락할 방법이 있을까? 없진 않을 텐데.
문제는 저 여자들을 도와줄 사람이 있냐는 거다.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단기간에 저걸 뚫고 들어가긴 쉽지 않겠지.
어차피 당분간 지켜볼 생각이니까. 그런 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순간 이동이 있으니 언제든지 이곳을 들러볼 수 있다. 어렵지 않지.
탐지를 한 번 더 돌려봤다.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두 개의 기척.
탐지가 꺼질 때까지 기척을 지켜보다가 순간 이동을 했다.
집으로. 하. 한숨 자야겠어.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후 4시.
순간 이동을 써서 수원 비행장으로 와 탐지를 쓰니 아래쪽에 기척 두 개가 잡힌다.
별일 없나? 기척만 있으면 되지. 굳이 들어가 보고 싶진 않다.
다시 순간 이동. 이번엔 SG 센터로.
여전히 북적거리는 SG 센터. 오가는 인원이 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리고 날고 있는 헬기들. 마침 잘됐네. 날 기다리고 있는 건가?
페이즈 아웃을 쓰니 역시나 떠버리 놈이 있다.
하. 미친놈. 이건 우연히 만나는 게 아닌거 같은데.
"넌 왜 맨날 여기 있냐?"
"여기가 제일 안전하니까요."
"그 말 들으니 안전하지 못하게 하고 싶네."
"그런 것도 있고, 당신을 만날 수도 있고요."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씨발. 남자 새끼한테 저런 말 듣는 건 정말 싫다.
여자가 저래도 조금 찝찝한데, 남자가 왜 저 지랄이냐고.
"오늘 아침 부로 대호 그룹은 망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한 건가요?"
"말했잖아. 파도가 칠 거라고."
"정말 과격한 분이시네요."
"다음은 너희야."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음?"
"아버지와 형은 놔두세요. 알아서…. 사라질 테니."
녀석의 말투는 상당히 거슬렸다.
폐부를 찢어내는 목소리지만, 즐거운 듯한 목소리다.
기이함. 그런 느낌이 들었다. 소름 끼치는 말투. 당장이라도 죽여야겠다고 생각되는 목소리.
"당신. 나에게 약속 하나만 해줄래요?"
"미친놈."
"나도 당신 죽이려는 노력 안 할게요. 그러니 당신도 나 죽이지 말아줄래요?"
대체 이 새끼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올해 들었던 농담 중에 가장 재밌는 농담이었어. 아깝네. 상장이라도 주고 싶은데."
"하하. 제가 또 한 개그 하죠."
그렇게 잠시 입을 다무는 녀석.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모습.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연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어차피 이렇게 망가진 세상이지만, 나름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랑 형이 없어지면…. 나도 죽을 것 같단 말이죠?"
씨발 새끼. 예리하기도 하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어…. 정확하게 말하면 구걸?"
"구걸하는 놈치고는 너무 당당한데."
"제가 무릎 꿇는 거라도 보고 싶은 건가요?"
"지랄하네."
"거봐요. 그러니 당당하게 말하는 거예요. 이건 그나마 보기 싫지 않을 거 아니에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이 새끼는….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무슨 심리학의 달인인가?
"저는 날마다…. 아니지. 날마다는 아닐 수도 있지만 거의 이 시간쯤에는 항상 여기 있어요. 여기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놓이거든요. 그들 사이에 나도 함께 있는 느낌? 페이즈 아웃을 배우기 전에는 투명화를 쓰고 이러고 있었죠."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또 말을 고른다.
"언제든지 와서 죽일 수 있으면, 죽이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하. 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싶다. 어이도 없고 반박마저 귀찮다.
예전에 나였다면, 아니 한 1년 전의 나였다고 하면 가서 입을 찢어버렸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그러던가 말던가."
몸을 돌려 녀석과 멀어졌다.
SG 센터에서 적당히 멀어지고 바로 페이즈 아웃을 해제했다.
끝까지…. 녀석의 눈빛이 느껴진 것 같다. 어이없는 기분.
그렇게 나는 내 벙커로 돌아갔다.
오늘은 뭔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어.
최 상무랑 김유리도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하. 너무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