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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클라스
일단 신경 써야 할 것들을 한 바퀴 싹 돌고 왔으니 당분간은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지.
펜스에서 식량도 받아왔으니까 정말 나갈 일이 없다.
물론, SG 센터의 사냥은 예외다. 거긴 나갈 필요가 없잖아.
순간 이동은 편리하다. 거실에 나가서 물 마시는 것보다 간편하게 사냥터로 출근할 수 있는 스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스킬인가.
게다가 이 시스템. 이루 말할 수 없이 편하다.
당분간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지. 적어도 SG 센터가 망할 때까지는 이렇게 살 수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일주일.
평화로운 나날들이 계속 지나간다.
물론, SG 센터에서 일어나는 사냥 역시 평화로움의 한 부분이다.
하루에 적게는 70만 코인씩 벌리는 깔끔한 사냥터.
게다가 아직은 숫자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어디서 그렇게 계속 줄줄 나오는지.
그렇다고 사냥을 줄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저 녀석들이 무슨 서해안 꽃게도 아니고,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SG 센터가 망하게 되면 다시는 못 보게 될 놈들이다.
보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한다. 전부 다 말살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
일주일 동안 670만 코인.
여기저기 포션을 퍼다 주고 왔는데도 코인 보유량은 1900만을 넘겼다.
"정말, 코인 넘겨주는 방법 없나."
청주가 가까운 곳이면 사냥감 녀석들의 코인을 한데 모아다가 벙커까지 데려오기라도 할 텐데.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데려오는 건 쉽지 않다.
방법은…. 게이트 밖에 없나?
순간 이동까지 찍었으니 다음번엔 게이트 스킬을 찍을 수 있겠지?
그럼 게이트를 타고 뿅 하고 넘어오는 거야. 코인이 잔뜩 든 사냥감들을 데리고.
좋네. 아. 근데 파티 스킬도 배워야 하는데.
정말…. 하루종일 포션을 처먹으면서 스킬 숙련을 하는데도 배워야 할 것은 넘쳐난다.
숙련을 더 빨리 올릴 방법은 없을까?
순간 이동은 스킬 숙련 속도가 빨리 안 오르는 게 흠이다.
물론 도합 6250번은 똑같지만…. 순간 이동 할 때마다 저장된 위치를 고르는 게 귀찮다.
게다가 이동하고 나서 1초? 정도 텀이 생기는 것도 불만스러워.
그래서 아직 고급 67퍼다. 게다가 이건 왔다 갔다 하는 스킬이라 포션을 인사불성으로 마시는 것도 힘들어.
으. 번거로워. 조금 더 편한 방법은 없을까.
없겠지. 그런 게 어딨어. 노가다에 쉬운 방법은 없다. 그냥 묵묵히 하는 수밖에 없지.
승희와 미나, 세아와 안나의 숙련도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다.
넷 다 비행이라 그런지 다들 집안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없다.
이 녀석들은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공중에서 1센치 정도는 몸을 띄우고 있으니까.
뭐, 그건 좋은 현상이긴 하다.
비행엔 능숙해져야지.
예전에는 몰랐지만, 써보니까 알겠다. 비행은 필수야. 있고 없고 차이가 너무 커.
평면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인간과 입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간.
둘이 맞부딪치면 누가 유리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장애물과 사각이 아무 의미 없어지는 스킬. 게다가 투명화와 함께라면 그 효력은 압도적이다.
나보고 다시 이 세상이 멸망했던 그 날로 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투명부터 고를 거다. 그다음은 탐지, 그다음은 비행.
아니네. 씨발 같은 불면증이 있으니 결국은 또 수면부터인가?
어휴. 지랄. 염병이네.
하지만 어차피 돌아갈 일은 없잖아? 망상 수준 하고는.
얼마 있으면 넷 다 비행을 마스터 할 기세다. 아마 해봐야 사흘 나흘 그 전일 텐데.
코인이 필요할 때가 됐네. 으음. 결국, SG 센터에서 한 차로 실어오긴 해야겠네.
그래도 이번 한 번만 하면 다음부터는 실전에서 얻게 하면 되니까.
아니다. 내가 파티를 배워서 마스터를 하는 게 빠른가? 코인 분배. 그게 있으니까.
아…. 근데 그럼 또 청주로 데리고 가야 하네. 뭐가 돼도 쉬운 건 없구나.
코인을 꽉꽉 실어서 사냥감 네 명을 벙커로 데려가긴 해야겠다.
번거로워도 그게 낫지. 차를 가져가긴 해야겠네.
오늘은 이미 사냥을 마쳤으니 내일은 그렇게 해야겠다. 미리미리 준비해놔야지. 든든하지.
그렇게 새벽 한 시.
모두가 다들 잠자리에 든 시간, 나는 순간 이동을 썼다.
수원 비행장.
날마다 이 시간이면 오는 곳.
하루도 빠짐없이 이 시간에 와서 최신영에게 수면과 매혹을 걸고 섹스한다.
이제는 조금 대범해져서 잠에서 깨도 약간은 놔뒀다가 다시 재운다.
아마 어느 정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아무리 멍청한 여자라도 그걸 계속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는데.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거겠지. 자기가 날마다 밤마다 강간당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웃기고.
카메라를 신경 써서 보면 알아차릴 텐데. 그것도 제대로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엔 저 여자도 즐기는 거 같아. 꿈이든 현실이든 지도 기분은 좋을 테니까.
그런다고 임신하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저 여자도 하는 짓 보면 정상은 아냐.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오늘도 최신영의 방으로 가기 전에 비행장 상공에서 탐지를 돌리는데…. 기척 하나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뭐지? 저 기척이 올라오는 곳은…. 오너 일가가 썼던 그 엘리베이터 거긴데?
비밀 통로. 그쪽이다. 대호 디지털미디어시티 D동으로 향하는 그 통로.
차가 있던 곳에 기척 하나도 느껴지는 거로 봐선 확실하다. 오호라. 이 시간에? 과연 누가?
어차피 최신영하고는 언제든지 섹스할 수 있다. 지금은 이게 더 흥미로워.
굳이 페이즈 아웃을 써서 차를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 나는 지상으로 가지 뭐.
탐지를 돌리며 차가 움직이는 것을 따라갔다.
지하에서 움직이지만, 어차피 지상에서 날아가는 나의 탐지에도 운전자와 뒤에 탄 녀석의 기척은 훤하게 보인다.
차 속도가 빠르기에 내가 뒤처지긴 하지만, 그거야 블링크로 한 번씩 따라가면 되는 거고.
무엇보다 나는 목적지를 잘 알잖아? 그렇기에 느긋하게 따라갔다.
절대 누군가의 탐지에 걸리지 않을 높이로.
대호 디지털미디어시티 D동.
거기에 도착한 차는 지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차량.
어라? 오늘은 목표가 여기가 아니야? 하긴 새벽 한 시에 회의를 하거나 하진 않겠지?
계속해서 차를 따라가 본다.
대체 누굴까? 최 회장? 최 상무? 최 이사? 최신영은 아닐 거고.
아니면 최 상무 부인? 자기만 알고 있는 내연남을 만나러 이 야심한 시각에 벙커를 박차고 나가는….
그런 미친 상황은 아니겠지. 뭐, 잡생각 하지 말고 따라가 보기나 하자.
차는 내가 알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공원 밑에 있는 50인용 D형 벙커.
그리고 탐지에 걸리는 수많은 기척.
뭐지? 뭐가 이렇게 많아? 여기 벙커 안 쓰고 있는 곳 아니었나?
차는 공원 창고 앞에 세워졌다. 지난번 그 남자가 나왔던 엘리베이터가 있던 곳.
기척 중 하나만 내리더니 바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뭘까.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궁금하니 당연히 가봐야지. 내가 못 갈 이유가 없잖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페이즈 아웃을 쓰고 엘리베이터 근처까지 와서 서 있는 차를 봤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각 잡힌 남자.
차 안에 있으면서도 주변을 매섭게 바라본다. 근데…. 그게 의미가 있니?
이놈은 됐고. 아래로 내려간다. 잠시 어두워진 시야. 그리고 나는 벙커 안에 도착했다.
익숙한 구조이기에 바로 내려갔고, 뭔가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봤다.
이게 뭐야? 씨발?
실로 기괴한 장면이다.
아마도 방금 차를 타고 온 듯한 최 상무. 그 옆에 서 있는 김유리 팀장.
열 명 정도의 무장 병력. 그리고…. 알몸으로 누워있는 여자들.
다섯 명씩 네 줄. 스무명의 여자가 알몸으로 바닥에 누워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시체 안치소 같은 느낌? 하지만 시체는 아닐 거다. 어쨌든 살아있는 여자들이라는 소리.
이 황당한 장면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일단 지금은 페이즈 아웃을 해제 하는 게 먼저다.
최 상무랑 김유리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잖아. 들어봐야 해.
탐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푼다. 이 시간에 자기들이 미행당하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하겠지.
아니,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탐지를 돌렸을 거다. 갑자기 여기서 뿅 하고 나타나리라는 생각은 못할 거야.
아. 모르겠다. 일단 풀고 본다. 입 모양만으로 무슨 소린지를 알면 좋겠는데.
독순술이라도 배워야 하나.
사각지대에서 페이즈 아웃을 풀고 투명화, 비행, 반사를 킨 다음 조용히 다가갔다.
어차피 발걸음 소리 같은 것은 안 난다.
게다가 무장한 놈들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있어서 내가 내는 미약한 소음은 아예 안 들릴 거 같다.
"그래. 포상 인원은 다 추려졌나?"
"네. 10명 선발 완료했습니다."
"그들이 에이스인가?"
"네. 우수 최정예요원입니다."
"그럼 이번에 스킬을 올리면 다섯개가 되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스킬 구성은?"
"여기 있습니다."
김유리가 최 상무에게 파일 하나를 넘겼다.
그걸 펴보더니 인상을 쓰면서 읽는 최 상무.
"최종 보고랑 변동은 없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군. 이 체력증가라는 거, 정말 쓸모가 있나?"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스킬 운용 시간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스킬입니다."
"어차피 포션 하나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작전 중에 포션을 먹는데 할애하는 시간보단 생존율이 훨씬 우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맘에 안 든다는 거야. 그 정도로 장기간 운용해야 할 경우가 있냐는 거지. 아무튼, 회장님 결재까지 난 거니 인제 와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투덜거리며 파일을 닫는 최 상무.
"한 명당 50만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김유리가 손짓했고, 옆에 있던 무장 군인 하나가 자신의 귀를 만지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어처구니없음을 느꼈다.
뭐야?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포상, 스킬, 체력 증가, 한 명당 50만.
분명 한 명당 50만이라고 했다. 저 여자들을 보면서.
"내가 끝까지 볼 필요는 없잖아?"
"회장님께서 스킬 검증까지 직접 하시라고 했습니다."
"쯧. 그래."
그러더니 가운데 호화로운 방 쪽으로 향하는 최 상무.
"오는 데 얼마나 걸리지?"
"20분가량 걸립니다."
"오면 불러. 아. 김 팀장. 자네는 잠시 들어오지."
최 상무의 표정은 근엄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김유리 저 여자를 왜 부르는지.
그리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여자 한 명당 50만. 우수 최정예요원 10명.
여자는 20명. 두 명이면 100만. 딱 스킬 올리기 좋은 코인 양.
미친 새끼들. 나는 정말 별거 아니었구나?
이런 식으로 코인을 증정한다고? 포상이라는 이름으로?
하하하하하.
그렇네. 역시. 내가 하는 짓은 정말 별거 아니었어.
내가 조금 심하다고 생각한 행위는 이미 어디선가 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던 거야.
분명…. 이 여자들을 죽이고 코인 50만씩 두 번.
100만 코인의 포상을 받게 될 최우수요원이라는 놈들이 오는 거다. 20분 뒤에.
이건 절호의 찬스다. 눈앞에 눈먼 코인이 있다. 그것도 잘 나뉘어서.
합이 천만.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이거라면 당분간 벙커에 있는 네 여자 코인 고민은 안 해도 되겠어.
크크크. 좋아. 그래. 맘에 들어. 이런 기회라니.
게다가 김유리 저 여자도 있다. 제법 아는 게 많아 보이잖아?
그동안 미루고 있던 대호 그룹을 박살 낼 시간이 온 거다. 그럼 망설일 필요 없지.
무장 군인 열 명. 저놈들만 처리하면 되잖아? 총이 무섭긴 하지만…. 나에겐 블링크가 있다.
게다가 이런 실내에서 함부로 총질하진 못하겠지. 동료가 맞을 수 있으니까. 아마 총을 쏴도 기절할 수준일 거야.
나를 죽이지 못하는 놈들. 무서울 게 없다. 어차피 광역 스킬이나 총이나 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
그 전에 끝낸다. 어렵지 않지. 후우. 그럼…. 바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