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43화 (34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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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에…. 그러면."

뭐부터 물어봐야 하나.

"저거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지속 시간은?"

"1시간."

"마스터야?"

"아니."

"그럼?"

"고급."

"그래? 그럼 처음엔 20분, 다음엔 30분이었냐?"

"어? 어떻게 알았냐?"

"그럼 마스터 하면 2시간이겠네."

"아니. 어떻게 알았냐고."

"살다 보면 알게 돼."

"너 무슨 회귀자냐? 아니면 반로환동?"

"뭐라는 거야. 재밌냐?"

분명 몸이 구속된 상태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 녀석은 전혀 불안감이나 초조함 같은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결연한 의지를 보이거나 똥폼 잡는 놈들은 많이 봤지만 이런 놈은 처음이네.

보통 이렇게 유쾌하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데…. 딱히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지?

"이거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네가 해제할 수 있어?"

"안되던데."

"왜?"

"아니….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야. 내가 스킬 만든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어야지. 정말 무능하네."

"그런가. 크. 역시 내가 문제였구나. 나는 왜 스킬 해제도 못 하고…. 왜 이럴까?"

"어휴. 됐고. 너 스킬은 뭐냐."

"뭐? 가지고 있는 스킬?"

"그래."

"뭘까용?"

수납에서 마체테를 꺼냈고 녀석의 표정이 다급해진다.

"으악!? 그런 거로 죽이는 거야? 와. 완전 인간 백정이네! 잔인해! 끔찍해! 죽는 사람의 기분 정도는 챙겨주지 않겠어? 그렇게 크고 흉물스러운 걸 내 몸에 집어넣는다고!? 무…. 무리! 무리무리무리! 무리데쓰!"

"아. 진짜 죽이고 싶다."

"그러니까. 죽일 거면 안 아픈 거로 부탁한다고.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녀석에게 진지하게 물어봤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거야? 아니면 포기한 거야?"

"뭐가? 난 원래 이래. 그러니까 내가 친구가 없는 걸지도."

그래놓고 진짜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귀여운 여자애가 장난을 치는 거면 몰라도 다 큰 남자 놈이…. 그것도 키도 크고 잘생긴 놈이 저러니까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새끼들이 인싸라고 부르는 놈들인가.

어휴. 쉽지 않아. 정말로.

"적당히 하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잖냐. 빨리빨리 하자. 니가 묶여있는 게 취향이라 그러고 있는 거면 모르겠는데. 너도 풀려나고 싶을 거 아니냐."

"얼래? 풀어줄 생각은 있는 거야?"

"글쎄. 하는 거 봐서? 근데 이런 식으로 하면 힘들지."

"아. 그럼 적당히 깝쳐야겠네."

어지간해서는 정보 얻었으면 그냥 죽였을 텐데.

그다지 미운 놈이 아니다. 뭐, 언제는 내가 그런 거 따지긴 했냐 만은…. 어쨌든 특이한 녀석이다.

살려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뭘까? 그게 이 녀석의 재능일까?

"염력, 주변 인간 탐지, 수납, 스킬 사용 불가 지대."

"탐지 있었어? 연기 잘하네?"

"탐지 정도는 있어야지.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

"그래. 그건 그렇지. 삶의 질이 달라지긴 해."

"맞지. 너 좀 뭔가 아는구나. 아. 하긴 그랬으니 내가 이 꼴이 됐지."

"근데 뭐 스킬들이 그러냐? 뭐 컨셉이 없는데? 공격 스킬도 없고, CC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명도 비행도 없네. 어떻게 살았냐?"

"보시다시피?"

"아니. 염력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긴 한데. 지금 그런 스킬들로 사냥이나 살인이 가능하긴 한거야? 이 김포땅에 너만 있는 거 봐선 니가 다 잡아먹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음. 잡아먹다니. 좀 야한데?"

"적당히."

"어휴. 깐깐해라. 잡아먹었다…. 내가 직접 잡아먹은 건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맞지."

"뭔가 이야기가 길어 보이는데. 세줄 요약 가능하냐?"

"세줄…. 가혹하네."

"싫으면 죽던가."

"아. 거참 죽인다는 소리 어지간히 해쌌네. 어휴. 어디 그럼…. 세줄이라."

잠시 생각하더니 금방 입을 연다.

"세 개의 무리가 있었고, 나는 중립을 지켰다. 그놈들이 이 근처 지역을 다 정리했다. 내가 그놈들을 다 정리했다. 캬. 세줄 요약. 오케이?"

"니가 제일 나쁜 놈이네?"

"야. 세상이 요지경인데 나쁘고 자시고가 어딨어. 착하게 살다가 죽으리?"

"아니지. 그것만큼 멍청한 건 없지."

녀석을 끌어당겨서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서 꺼내주자 놀란 표정이 된다.

마체테로 적당히 테이프를 끊어주자 알아서 마저 뜯는 녀석.

그러면서도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본다.

"언제든지 죽일 자신이 있으니까 풀어주는 거야?"

"뭐, 비슷하긴 하지. 어차피 네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와. 자신감 쩌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왜 처음 스킬을 염력 같은 걸 했냐."

"나라고 알았냐?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잖아. 싸이코키네시스라고! 미스터리를 좋아하면 안고를 수가 없지."

"하. 그래. 뭐, 나는 이해 못 하겠다만. 암튼. 궁금하긴 하다. 그걸로 사람은 어떻게 죽이냐?"

"근데 정말 괜찮냐? 불안하거나 내가 너를 공격할 거라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들어?"

"글쎄. 대비는 하고 있어. 어차피 내가 더 빨라."

"어휴. 어디서 이런 게 나와서."

그러더니 자신의 옷을 적당히 추스른다. 새끼. 옷도 멋있게 입었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야.

"그럼…. 의심은 안 받게 선보여야겠네. 잘 봐라."

그렇게 말하고는 수납을 열더니 튀어나온 식칼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가 책장에 박혔다.

제법 강하게 꽂혀 부르르 떨고 있는 식칼. 솔직히 놀랐다. 상당히 자연스럽고 갑작스러운 공격.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리고 상당히 치명적이야.

"일부러 보기 편하라고 식칼로 했는데, 보통은 조금 더 작고 치사율이 높은 걸 날리지."

"이 정도면 살상력은 충분하네. 생각보다 많이 쓸만한데?"

"그럼. 염력은 쓰기 나름이야. 내가 어디에다가 자랑할 곳이 없어서 지금껏 말을 못 했는데…. 염력만 있으면 여자 두 명도 동시에 절정으로 보낼 수 있다고."

그 말을 듣고 대충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야. 이새끼 진짜 대단한 새끼네. 정말 지금껏 만난 놈 중에 제정신 아닌 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 같다.

"너."

"어."

"여기 이대로 살 거냐?"

"글쎄. 아직은 코인이 넉넉하긴 한데. 평생 이러고 살 수는 없겠지?"

"뭐 얼마나 있길래 넉넉하데."

"말하면 죽이는 거 아냐?"

"거참. 그럼 일단 죽이고 들을게."

"아냐. 내가 잘못했어. 대충…. 120만…. 정도?"

"뭐야. 난 또."

"엥? 120만인데 그런 반응이라고?"

"내가 지금 1050만 정도 들고 있는데."

"엥? 야. 너 나한테 죽어주면 안 되냐?"

"미친놈."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왜 이 새끼와 이렇게 십년지기랑 대화하는 것처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을까?

웃기는 일이다. 결국, 나도 은근히 이런 것들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족, 연인, 믿음직한 리더, 동료. 나도 가지고 싶었던 거야. 그런 것들을.

참나…. 웃기네. 정말로.

"너."

"뭐."

"사람을 보면 일단 죽여버리고 싶고, 주변에 누가 있으면 불안하고, 의심 많고, 막 그런 타입이냐?"

"그렇다고 한다면 뭐 믿긴 하냐?"

"그러네. 내가 병신 같은 소리를 했네."

잠시 생각을 해본다. 이 녀석을 더 지켜봐야 할까? 아니면 믿어봐야 할까?

믿는다니. 어처구니없는 소리네. 내가? 오늘 처음 본 사람을?

그래. 이 녀석을 믿는 게 아니고 승규를 믿는 거지. 한번 해보자. 그들도 애들이 아니잖아.

"지도 있냐."

"지도? 무슨?"

"지도. 말 그대로 지도. 지형이 나와 있고 길이 나와 있는 종이."

"있지."

그러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낸다. 능숙하게 앱을 켜서 보여주는 녀석.

"뭐야. 너 왜 지도되냐?"

"아. 오프라인 지도는 돼."

"어? 그게 있어?"

"왜? 있으면 안 돼?"

"아니. 진영이가 좋아하겠네."

"뭐? 누구?"

"아냐. 혼잣말. 그거 줘봐."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보다가 마지못해 스마트폰을 넘겨주는 녀석.

나는 그걸 받아서 청평 쪽을 살펴봤다. 어디…. 아. 그래. 여기쯤 되겠네.

연수원 위치를 찍어주고 녀석에게 돌려줬다. 그걸 보더니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거기로 가라."

"뭐? 왜?"

"평생 여기서 혼자 살 거 아니면 거기 가."

"뭔진 알려줘야 가든지 말든지 하지."

"먹을 것과 여자가 있는 곳."

"엥? 천국?"

"천국은 이거에 찔려야 가는 곳이고. 아. 아니지 우린 지옥으로 가겠구나? 천국은 무슨."

마체테를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녀석도 약간 쓴웃음을 짓는다.

"아니. 근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나보고 믿으라고?"

"그럼 죽을래?"

"넌 뭐 말끝마다 죽인데!? 왜 그러는 거냐?"

"원래는 말하기 전에 죽였으니까."

"어…. 그건 좀 무섭네. 여기로 가면 된다고?"

"그래. 가서 거기서 살아라. 맘에 안 들진 않을 거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죽기 싫을 테니까."

"이야. 씨…. 너도 정말 어지간히 미친놈이구나. 죽인다는 소리를 무슨 숨 쉬듯이 하네. 근데 진짜 죽일 것 같단 말이지."

그래.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죽이는 게 편한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그래도 승규랑 이야기 한 것도 있고…. 청평의 방어를 생각하면 이 녀석의 능력은 괜찮아 보인다.

게다가 일단 허우대가 좋잖아. 거기 여자들도 좀 설레게 해줘야지.

"암튼. 나는 할 말 다 했으니 간다. 다음에 봤을 때는 내가 말한 곳 거기에 있는 거 아니면 바로 죽일 거니까 조심하고."

"그놈의 죽인다는 말은 무슨 1분에 한 번씩 하네. 어휴. 미친놈."

중얼거리는 녀석을 두고 몸을 돌리는데 녀석이 나를 부른다.

"야! 니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나는 윤재현이다!"

"권성철."

그렇게 이름을 알려주고 그대로 블링크를 써서 나왔다.

이름은 무슨…. 뻘쭘하게.

어쨌든 역시 돌아다니다 보니 별의별 녀석들을 다 만나는 거 같다.

아니…. 내가 방침이 조금 바뀌어서 그런 걸지도.

예전엔 일산의 인간 탈곡기 OP 남매라던가 대책 없는 김포 인싸남 같은 걸 신경 쓰고 살지는 않았으니까.

나 외의 사람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

물론 일산의 남매는 어린애들이라 고민을 했겠지만…. 어쨌든 이런 식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근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사람이 많아질수록 변수는 늘어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예상 못 하잖아.

다 같이 하하호호 웃으면서 사는 건 말 그대로 개소리다. 분명 뭔가 분란이 일어나고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날 게 분명해.

그걸 보기 싫어서 다 죽이고 다닌 거였는데.

변수가 0이면 머리 쓸 필요 없으니까.

점점 내가 내 일거리를 늘리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삶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모르겠다. 내가 유해진 건지. 아니면 나약해진 건지.

그 누구도 답을 알려주진 않을 거다. 그리고 나 자신도 정답은 모른다.

결국은 살아봐야 아는 거지. 에휴. 모르겠다.

인천과 부천인지 부평인지를 살펴보려고 돌아다닌 건데 의외의 것들을 많이 발견했다.

역시 세상은 재밌어. 흥미진진해.

어디에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시야가 넓어지니 이런 일도 많아지고…. 참 놀라워.

그렇게 공중에서 이제 진짜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아. 아까 그놈이 가지고 있던 지도. 맘에 드는데.

진영이가 추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GPS가 안되더라도 지도가 있는 건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지.

자…. 이제 문제는 인간들이 인천 어디에 있냐는 건데. 게다가 인천은 제법 클 거란 말이지.

어쨌든 가보면 알겠지. 뭐라도 흔적이 있을 테니까.

간다.

과연 남쪽에는 어떤 기상천외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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