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42화 (34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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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일산에서 남매와 헤어지고 바로 한강을 건넌다.

한강의 마지막 다리. 이름은 뭔지 모르겠다. 일산 앞에 있으니 일산대교인가?

그 옆을 지나니 눈앞에 커다란 도시가 보인다.

뭐지? 여긴 뭐야?

아래로 내려가 도로표지판들을 보니 김포한강신도시라고 돼 있다.

김포? 김포공항? 아닌데. 여긴 김포공항이랑 상관 없을 텐데.

어쨌든 김포라는 거지? 생각보다 화려하네. 아파트도 많고 건물들도 새삥하다.

흐음…. 그래 신도시라고 적혀있었지? 들어본 거 같다. 그럼, 여기도 한번 돌아볼까?

하지만 역시 이쪽도 기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황량한 도시. 도시는 그리 낡은 것 같지 않은데 사람이 없다.

메인 번화가. 여기는 상업지구네. 이쪽은 볼일 없어. 별 필요 없지.

방향을 틀어 이동해본다.

아파트. 계속해서 나오는 아파트.

별의별 아파트들이 계속 나온다. 무슨 브랜드 아파트들의 향연이야? 익숙한 이름도 있고 처음 보는 이름도 있다.

아니지. 처음 보는 이름은 아니네.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들.

진짜…. 아파트 이름들 정말 괴랄하다.

나중에는 임페리얼매그니튜트스콜라넘버식스티나인 같은 아파트 이름도 나올 것 같아.

신도시 치고는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을 했는데 도로가 이어지더니 번화가가 또 나왔다.

뭐지? 더블 넥서스야? 여기는 조금 더 번화해 보이네. 아닌가? 아까랑 비슷한가?

근데 여기도 상업지구네? 아니다. 옆에 아파트도 많구나?

뭐…. 모르겠다. 어쨌든 기척이 없으니까. 관심을 끄고 넘어간다. 또 뭐가 있나?

별로 보이는 건 없다.

죽은 도시. 이런 도시는 넘쳐나지. 어디에도 있고 한두 개가 아니다.

이제 슬슬 남쪽으로 넘어가 볼까? 그러니까 방향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탐지 거의 끄트머리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오? 기척? 근데 하나?

기척이 딸랑 하나만 있는 게 신기하다. 이 넓은 신도시에 고작 사람 하나라고?

궁금하니 내려가 본다. 근데…. 도서관? 대체 여기 왜?

그동안 여러 군데에 있는 사람들을 봐왔지만, 도서관에 있는 사람은 처음 봤다.

뭐지? 여기서 뭐 하나? 종이로 딱지라도 접고 있나?

그렇게 슬그머니 내려가 도서관 입구로 향한다.

방금 일산에서 쩌는 남매를 보고 와서 그런지 방심할 수가 없다.

뭐, 원래도 방심은 안 했지만.

내가 들어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있는 기척.

하. 심리전인가? 분명 탐지 범위 안에 있을 텐데.

탐지가 없나? 그래. 그게 차라리 방법이 될 수 있지. 탐지가 없는 척, 투명화를 못 보는 척, 그러다가 기습.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살짝 애먹을지도.

살짝 열려 있는 도서관 문. 안에 기척은 그대로. 비행을 쓰고 가기에 바닥을 밟을 일은 없다.

발소리가 나지도 않고 바닥에 트랩이나 뭐 그런 게 있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이래서 비행이 좋아. 다시는 감전 트랩의 짜릿함을 느끼고 싶진 않으니까.

문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도서관 모습은 제법 인상적이었다.

말이 도서관이지 약간 애들 놀이동산 같은 기분?

3층 정도 높이의 중앙이 뻥 뚫려있는 곳. 그 밑에 놓여있는 커다란 탁자들.

뻥 뚫린 곳에는 안전망 같은 게 쳐있고 알록달록한 공들이 잔뜩 있었다.

도서관 아니야? 저런 게 왜 있지?

그리고 시야에 보이는 한 남자. 거리는 꽤 된다. 바로 제압할까?

도서관의 큰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듯한 남자.

앞쪽에는 수많은 책이 쌓여 있어서 뭘 하고 있는지는 안보인다.

음…. 다리는 보이는데. 무효화를 걸고 다리만 보고 수면을 걸어도 걸리던가?

뭐, 해보면 되겠지. 무효화에 수면. 들어갔나? 들어갔네.

책상에 머리를 박는 소리.

좋아. 깔끔하네. 이제 가서 마무리를….

어?

갑자기 비행과 투명화, 반사가 모두 꺼졌다.

높게 떠 있던 것은 아니라 땅바닥에 내려오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근데 스킬이 안 써져?

평소에 수없이 대비한 거라 나는 반사가 꺼지면 바로 쓸 수 있게 항상 준비하고 있다.

근데 반사가 안 써진다. 비행도, 투명화도, 페이즈 아웃도.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뭔가가 쏟아져 내렸다! 어? 어? 안전망!?

"씨발!?"

꼼짝없이 안전망에 깔린 나는 한껏 발버둥 쳐보지만, 무게가 제법 된다.

씨발. 이거 뭐야? 왜 이리 무거워?

스킬은 안 써지고 안전망은 나를 짓누른다. 갑자기 스킬이 안 써지니 너무나 무력해진 기분.

하지만 그런 기분에 당황해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서둘러 머리를 굴리고 몸은 몸대로 움직인다.

조금 전까진 스킬이 써졌어. 근데 갑자기 다 꺼졌다. 페이즈 아웃 하고 있던 놈이 광역 스킬 무효화를 썼나?

아니다. 그렇다면 스킬은 다시 써져야 한다. 게다가 다른 녀석이 있었다면 이미 나타나서 나에게 막타를 쳤어야지.

다른 놈이 있는 건 아닌거 같다. 스킬이 적용되다가 어느 선을 넘고 다 꺼졌어. 그렇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스킬 사용 불가 지대.

필사적으로 안전망을 잡고 뒤로 돌아갔다.

무겁고 움직이기 힘들지만, 어찌어찌 조금씩 움직이는 건 가능하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입으로는 반사를 계속해서 중얼거렸고, 어느 순간 나에게 반사가 걸렸다.

"페이즈 아웃."

세상이 뿌옇게 변했고 내가 깔려있던 안전망이 스르륵 바닥으로 꺼진다.

후우.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뿌옇게 변한 시야에서 방금 잠들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는 게 보였다.

뒤로 조금 더 물러나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했다.

그리고 바로 반사와 비행, 투명화를 쓰고 살짝 떠오른 뒤 확 움직였다.

아까 발을 디뎠던 라인.

대충 어딘지 알 거 같으니 거기에서 조금 물러난 곳에서 멈췄다.

그리고 바로 다시 남자에게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고, 기껏 일어났던 남자는 다시 쓰러졌다.

후우. 됐어. 일단 됐고.

아까 그 라인. 스킬 사용 불가 지대라고 생각되는 라인. 거기에 다시 한발을 가져다 대봤다.

또 모든 스킬이 전부 풀린다. 와. 씨발. 이거 사기네.

근데 저 남자한테는 왜 수면이 들어갔지? 게다가 스킬 사용 불가 지대는 왜 광역 스킬 무효화에 안 사라지지?

의문투성이다. 어처구니가 없네.

어쨌든 남자는 자고 있다. 나는 멀쩡하고, 이번엔 하늘에서 떨어지는 안전망 같은 건 없다.

아오. 씨발 아파라. 안전망 씨발. 뭐 저렇게 무거운 거야?

떨어지는 안전망에 맞은 부분이 이제야 욱신욱신하다. 아오. 존나 아프네! 진짜.

일단 회복 포션을 하나 빨고 느긋하게 생각해본다.

탐지를 돌려보니 주변엔 아무도 없다.

광역 스킬 무효화를 주변에 난사했지만, 페이즈 아웃을 쓰고 있거나 하는 놈도 없고.

그럼 결국엔 상황은 정리됐다는 소린데.

일단 이 스킬 사용 불가 지대. 흥미롭다. 여기서 이런 걸 발견하게 되다니.

광역 스킬 무효화에 안 지워지는 게 가장 충격이다. 게다가 여기 올라가면 버프가 다 꺼진다고?

씨발…. 사기긴 한데. 상당히 까다롭네.

일단 여기 올라간다고 내가 걸었던 모든 스킬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었어.

저 녀석에게 걸었던 수면은 내가 페이즈 아웃을 써서 풀린 거잖아.

지금도 내가 밟았을 때 수면이 풀리진 않았다.

그럼 결국엔 이 범위에서만 스킬이 써지지도 않고 적용도 안 된다는 소린데.

웃긴 건 왜 저 녀석에겐 수면이 들어가냐 이거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라 사용만 안 되는 거야? 그럴 리가.

걸려있던 버프도 다 꺼졌잖아? 그럼 수면도 걸리자마자 풀려야지?

뭐…. 시간은 많다. 느긋하게 테스트해 보자고.

근데 걸리는 게 있다. 이 안전망.

이건 뭐 스킬이고 뭐고 그런 게 아니다. 기계식 장치야.

나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발동 된 거다. 아니면 뭔가 조건이 있거나.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어디…. 뭔가 있긴 있을 거야. 없을 리가 없어.

그렇게 조금 뒤져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레이저. 첩보영화 같은 데서나 나올 법한 장비.

눈에 안 보이는 레이저가 있었다. 이걸 가리면 발동되는 시스템이라고?

와. 이건 정말 당할 수밖에 없네.

스킬 만능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듯한 느낌이다.

이 안전망의 무게만으로도 몸집이 약한 사람은 잘못 맞으면 기절할 수도 있었을 거다.

게다가 내가 저 남자를 재우지 않았더라면, 안전망이 떨어져서 덮쳤을 때 이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됐을 거다.

아니면 꽁꽁 묶여서 입이 틀어막혔거나?

처음에 들어올 때 크게 위화감은 안 느껴졌었다. 특히 그 안전망 위에 있던 색색의 공.

그런 것까지 세심하게 준비 한 거잖아?

후우. 아찔했어. 저 남자.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결국, 이 도서관은 녀석의 개미지옥인 거다. 누구든지 멋모르고 쭐레줄레 들어오면 냅다 잡아먹혀 버리는 곳.

근데 웃긴 건 죽을 뻔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기보다는 멋지게 한 방 맞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 거지. 캬. 씨발. 이정도 정성이면 죽어 줄만 하네! 이런 거.

어쨌든 조금 더 주의해야겠어. 이런 장치가 한두 개가 아닐 거잖아?

게다가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이것의 영역도 확인해 봐야 해.

정말…. 별거 아닌 도서관인 줄 알았는데 기믹이 대체 몇 개야? 어휴.

거의 한 시간 넘게 도서관을 탐색한 끝에 많은 것을 알아냈다.

먼저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이건 저 녀석을 기준으로 사방에 하나씩 총 네 개가 동그랗게 둘러싸여 있다.

○ ● ○

이런 모양? 원이 더 커야겠네. 서로 맞닿을 정도로.

그렇게 중앙의 빈자리가 딱 저 녀석이 있는 자리다. 본인은 스킬을 쓸 수 있다는 소리.

결국, 저 녀석에게 다가가는 놈들은 무조건 스킬이 꺼진다는 건데.

일단 반사가 꺼진다는 게 타격이 크다.

아마 CC기는 걸자마자 풀릴 테니 안 쓸 거고…. 번개도 안되고. 감전? 감전 정도면 딱 좋네.

어차피 감전 효과가 사라져도 지져지는 고통은 받았으니 정신 없을 테니까. 죽지도 않을 거고.

또 뭐 있나? 음…. 그건 저놈한테 물어보도록 하고.

안전망 말고는 다른 장비는 없었다.

내가 발견 못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 눈에는 못 찾았다.

주변의 상황을 모두 확인한 나는 그제야 녀석의 앞에 섰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는 티어4 스킬이니 최소 스킬이 세 개는 있다는 소리다.

여러모로 신기한 녀석이야. 게다가 스킬이 총 네 개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궁금 한 게 많으니까.

순순히 대답해주면 좋겠는데…. 아니면 뭐, 나에겐 채원이가 있으니까.

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뚫고 지나가야 하니 결박은 필수다.

몸이랑 입을 틀어막고 녀석을 질질 끌어 도서관 문 있던 쪽으로 끌고 왔다.

중간에 수면이 풀리면서 눈을 뜬 녀석.

자신이 질질 끌려가는 걸 알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그렇게 녀석을 끌고 나와서 제대로 앉혀 주고 잠시 생각했다.

입을 열어줬을 때 위험한 건 별로 없다.

해봐야 블링크? 페이즈 아웃? 어쨌든 다 쫓아가거나 잡아낼 방법은 있다.

아. 순간 이동 같은 게 있으려나? 그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를 모르니….

아니지. 녀석은 블링크가 없어. 있었으면 아까 먼저 썼겠지.

순간 이동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럼…. 입을 열어줬을 때 위험한 건 없지?

괴력 같은 걸 써도 뭐…. 이젠 방심 안 하니까.

아! 멍청하네! 바로 눈앞에 좋은 게 있는데!

스킬 사용 불가 지대. 그게 있잖아.

자기가 깔았다고 자기는 그 안에서 쓸 수 있거나 하진 않겠지.

그럼 이미 저 스킬 가진 놈들이 세상을 지배했을 거야.

아까 봤을 땐 몸 일부만 접촉해도 스킬을 쓰지 못했다.

나는 녀석을 다시 질질 끌어 몸의 반 정도를 밀어 넣었다.

"자. 형씨. 이제 당신은 스킬을 못써. 만약에 해제라는 말 같은 게 나오는 즉시 당신은 그냥 바로 죽어. 그러니 부디 쓸데없는 짓은 안 했으면 좋겠어. 이해해?"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본인이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재우는 게 빠르다.

그 정도는 집중하고 있으면 얼마든지 컷 할 수 있으니 바로 녀석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풀어줬다.

"푸하. 와. 조졌네. 어찌어찌 잘 버티던 인생인데. 이런 괴물이 찾아올 줄은."

의외로 유쾌한 남자. 그러고 보니 생긴 것도 나름 말끔하다. 키도 크고.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인기 좀 있었겠는데?

"형씨. 키가 몇이야?"

"나? 185. 근데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키야?"

"아니. 궁금해서. 근데 의외로 밝다? 안 무서워?"

"무섭지, 당장 뒤질 수도 있는데. 근데 죽이겠다는 느낌은 안 드는데? 죽였으면 아까 죽였겠지."

뭐 이렇게 사람이 유쾌하냐? 죽일 마음이 있다가도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을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아까 일산 남매들을 보고 와서 그런가? 어찌 됐든 이야기가 잘 통하면 좋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으니까.

"나. 궁금한 게 많이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주나?"

"하. 지금 이 상황에서 싫다고 하면 바로 죽는 거 아냐?"

"어. 그렇겠지? 근데 죽이진 않을 거야. 아마 매혹 쓸 수 있는 여자를 데려오거나 아니면 그쪽으로 데려가서 다 불어버리게 하겠지."

"그러네. 머리 좋네?"

"늘 하던 짓이 그런 거라."

"어우. 그냥 순순히 말하는 게 낫겠네. 매혹당하면 기분 별로 안 좋다던데."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물어본다?"

"어쩔 수 없지. 자! 와라!"

이 새끼도 뭔가 제정신은 아닌거 같아. 역시 이 세상에 남은 놈들은 다들 뭔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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