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40화 (3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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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멈춰!"

편의점 입구 앞에서 내가 소리치자, 다가오던 기척이 그대로 멈춰선다.

녀석이 스킬을 쓸 수 있는 거리 바로 바깥쪽. 그러니까 대략 40미터가 조금 더 넘는 곳.

공중에 떠 있는 녀석은 순순히 멈췄다. 아마도 편의점 안에 있는 여자아이 때문이겠지.

내가 유리한 상황.

하지만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런 상황. 수없이 시뮬레이션했었다. 세워놨던 방침대로만 하면 된다. 긴장할 것 없어.

가장 무서운 조합은 광역 스킬 무효화에 CC기 혹은 즉사기.

손도 못 쓰고 당할 콤보. 내가 쓰고 있으니 잘 안다. 방심하면 바로 죽는 조합.

하지만 이것도 대처법이 있다. 반사가 지워지자마자 바로 반사를 바로 쓰는 것.

상대의 공격 스킬보다 반사 쓰는 게 더 빠르기만 하면 된다.

반사가 꺼지는지 안 꺼지는지만 신경 쓰고 있으면 되잖아.

그리고 광역스킬. 그건 비행으로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이제는 블링크도 있으니 바로 피해버리면 된다.

대안은 다 세워놨다. 나만 정신 차리면 돼.

0.1초라도 먼저 스킬을 쓰기만 하면 된다. 결국은 누가 얼마나 더 집중하고 있느냐의 차이.

그리고 지금은 어쨌든 내가 유리해 보이는 상황이다.

공중에서 나를 보고 있을 저 기척.

분명 남자 목소리였다. 어린 남자. 변성기는 지난 목소린데…. 어린 남자다. 아직 성인이라고 볼 수 없는.

그리고 편의점 안에서 잠든 여자아이.

어린아이 남매라고? 스킬이 여덟 개나 있는데?

아니…. 아직 확신할 수는 없잖아. 목소리가 미성인 성인 남자일 수도 있지.

어쨌든 지금 상황은 내게 유리하긴 하다. 저 여자아이가 소중한 거 같으니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거다.

"옆으로 비켜줄 테니 여자에게 가라."

그렇게 말하고 블링크로 물러났다.

공중에 멈춰있던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쯧. 그렇게 조심성 있던 놈이 저렇게 무방비해지네. 아마…. 저 녀석에겐 저 여자아이가 억제기였겠지.

쓰러져있던 여자아이가 몸이 들어 올려지는 게 보인다.

투명화를 쓰고 있는 남자가 끌어안은 거겠지? 나는 바로 광역 스킬 무효화를 날렸다.

모습이 드러나는 남자. 아니. 남자애.

목소리가 어리다고 느낀게 맞았다.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

그리고 수면이 풀려서 눈을 뜨는 여자아이.

하하. 이런…. 내가 죽이지 못하는 조건들이 한데 다 모여있네.

책임감 있고 어린 녀석들이라니. 이 녀석들을 죽이면 내가 정해놓은 룰은 한 번에 다 박살 낼 수 있겠는데?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남매일 거 같은데…. 어린 연인처럼은 안 보이네.

어쨌든 여자를 추스르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녀석.

탐지를 쓰고 있는 거 같으니 굳이 투명화를 쓰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진솔한 이야기를 하려면 모습 정도는 드러내 줘야겠지.

내가 투명화를 해제하자 두 사람은 살짝 놀란 모습이다.

하긴 저들이라면 이해할 거다. 내가 투명화를 계속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들에게 탐지를 강요하게 된다.

그걸 풀었다는 건 소모전을 하기 싫다는 뜻이 담긴 내 메시지다.

과연 녀석들이 그걸 이해할까? 뭐,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게 눈에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냐."

내 질문에 의외라는 듯이 녀석이 살짝 놀란다.

"그래."

게다가 대답까지 한다. 하하. 신기한 놈이네.

"몇 살?"

"열여섯."

"동생은?"

"열넷."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녀석. 뭘까? 왜 대답을 하지?

포기한 건 아닌거 같다. 저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녀석은 시간을 벌고 있는 거다. 지금은 동생을 데리고 여길 벗어날 방법이 없는 거다.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거지. 좋은 방법이 생각날 때까지.

그렇게 생각하니 대충 이해가 됐다. 흐음…. 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니. 그건 맘에 드네.

"이걸 주면 존댓말 해줄래?"

나는 수납에서 초코바 세 개를 꺼내어 두 개를 녀석들에게 던져줬다.

바로 받아내는 남자애. 그리고 초코바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먹어도 돼. 선물이니까."

그러면서 내가 초코바를 까서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 내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남자애와 여자애.

"회귀?"

오호.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신기하다는 듯 초코바를 바라보더니 껍질을 까서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동생도 초코바를 까서 입에 넣는다.

잠시 달콤한 시간이 흘렀다.

재밌다. 이런 장면은 볼 때마다 질리지 않아.

초코바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다시 맛본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저런 표정을 짓는다.

특히 여자거나 어릴 수록 반응이 풍부해진다. 그리고 저기엔 어린 여자애가 있네.

눈물이 글썽거리는 표정. 참나.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아이스크림도 줘보고 싶잖아.

리액션 혜자네.

수납에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뭔가가 더 없나 떠올려본다.

뭐가 있지? 떡볶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역시 믿을 건 아이스크림인가?

"뭐 더 먹을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봐. 있는 거면 줄게."

"당신은 뭡니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존댓말이다. 역시 초코바의 효과는 좋네.

음…. 더 좋은 거 없나? 어린 여자애의 취향이 뭔지 모르니 뭘 줘야 할지 모르겠네.

대충 수납에서 이번엔 과일 푸딩을 두 개 꺼내서 던져줬다.

푸딩을 받고 놀라는 남매.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아. 짜릿해.

"내가 뭐냐고?"

푸딩을 받았지만, 껍질은 까지 않는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녀석들.

나는 피식 웃고 대답했다.

"나는 살인마지. 너처럼."

내 대답에 녀석의 긴장이 확 높아지는 게 느껴진다.

그럴 만하지. 녀석이 정말 스킬 여덟 개 마스터라면 죽인 숫자는 나와 크게 차이는 안 날 거다.

게다가 동생. 물론 저 여자애가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죽인 경험은 있겠지만 어쨌든 직접 사냥할 실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저 녀석도 나처럼 해봤다는 거다. 피딩. 동생에게 코인을 먹이는 행위.

그게 내가 저 녀석이 맘에 드는 이유다.

열여섯이라고? 맙소사. 애새끼잖아? 근데 이렇게 훌륭한 살인마라니.

정말 이 망해버린 세상에선 그 누구보다 재능 있는 녀석이다.

그래. 게임으로 따지면 프로게이머지. 세체살 정도 될까? 세계 최고 살인마유망주?

"근데 지금 너를 죽일 생각은 없어. 너라면 알 거다. 이미 너는 나한테 몇 번 죽었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인정이 빨라서 좋네. 상당히 신중해 보이던데 동생이 위험해 처해 있으니 신중이고 나발이고 다 내던지는구나? 근데 그게 너를 살렸어. 니가 니 동생을 포기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였으면, 나는 너부터 죽였을 거야."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는 녀석. 그리고 안쓰럽게 오빠를 바라보는 동생.

정말 평범한 남매처럼 보인다.

머리가 덥수룩 하긴 하지만 아직 앳된 모습을 지울 수 없는 오빠.

이목구비는 시원시원하게 생겼지만, 여자의 매력이라고는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나이인 동생.

어떻게 저런 애들이 아직까지 살아있었을까? 진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너희가 여기 일산이랑 고양 쪽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였니?"

"다는…. 아닙니다. 아니. 결국은 다 죽인 건가요. 잘 모르겠네요."

"뭔가 사연이 있나 보네. 뭐, 그런 거야 나중에 천천히 기회가 있으면 들어보고. 너 스킬 여덟 개지?"

내 말에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

"어…. 어떻게? 혹시…. 감정 스킬이에요?"

"뭔 소리야. 감정? 그게 스킬 개수도 알려줘?"

"네? 그건 저도 잘…. 그쪽이 제 스킬 개수를 맞춰서 혹시 감정이 그런 스킬인가 해서 물어본 건데요…."

"아냐. 감정 같은 스킬 있지도 않고 어떤 스킬인지도 몰라."

"그럼 어떻게 아셨죠?"

"너 스킬 반경 증가2 패시브 찍은 거 아냐?"

"아…."

바로 이해하는 녀석. 역시 머리가 팽팽 돌아가네.

"내가 너희를 살려둔 이유는 그것 때문이야. 네 스킬이 궁금해서. 어때. 살려주는 대가로 스킬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을래?"

아무 말이 없는 녀석. 선택의 여지가 없을 텐데도 뭘 고민하는지.

"뭐가…. 궁금하시죠?"

오케이. 물었다.

근데 의문이 든다. 일산과 고양시의 사람들을 다 죽인 녀석들치고는 너무 순딩해.

의외로 망가진 부분이 없어 보인다. 솔직히 저 나이에 그렇게 살인을 많이 했으면 나사 서너 개는 빠져서 맛이 가 있어야 할 텐데.

아니…. 그래서 더 무서운가? 살인을 그렇게 했는데도 이렇게 신중하고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어라? 내가 남 말 할 상황은 아니네.

어쨌든 녀석은 공격적이지도 않고 말도 잘 통한다.

옆에 있는 여자애도 나이에 비해 차분하고 상황파악을 잘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거슬렸으면 룰이고 뭐고 어렸어도 죽였을 건데…. 지금까지는 아무런 걸리는 게 없다.

그럼 뭐…. 계속 대화해 봐야지.

"투명화. 비행. 탐지. 그거 말고 스킬 다섯 개가 더 있지? 뭐 있나 말해볼래?"

잠시 아무 말 없더니 조용히 입을 여는 녀석.

"암석 탄환, 반사, 수납, 파티, 소환입니다."

암석 탄환이라. 그래. 그렇구나. 암석 탄환이면 광역 스킬 무효화가 필요 없지.

그리고 나도 지금 녀석의 범위 안에는 들어와 있다는 거네. 물론 블링크가 더 빠를 것 같긴 한데.

어차피 동생이 있으니 허튼짓은 못 하겠지.

게다가 반사. 수납. 그래 그건 좋은데….

"파티? 소환? 왜 그걸 골랐지? 동생 때문에?"

"네."

"더 좋은 스킬들이 많았을 텐데. 굳이?"

"파티 스킬이 더 좋거든요."

"왜?"

입을 다무는 녀석. 음. 순순히 알려주기 싫은 건가?

"그러니까…. 파티 스킬은 숙련도에 따라서 효과가 하나씩 늘어나는데요."

아. 그냥 생각한 거구나? 내가 괜히 예민하게 생각했네.

"서로 위치 확인 되는 거랑 서로 공격 안 되는 거?"

"네? 네. 맞아요. 그게 하급이랑 중급 효과죠."

"그럼 고급이랑 마스터는?"

"고급은 체력 회복 증가요."

"체력 회복 증가? 스킬 쓰면 줄어드는 체력?"

"네."

"체감될 정도로 빨리 차나?"

"어느 정도는요."

"크게 쓸모는 없네. 포션 아끼는 용인가. 마스터는?"

"마스터는…. 획득한 코인 분배요."

"뭐?"

"마스터 효과 때문에 배운 거예요."

"분배한다고? 자세히 말해봐."

"코인을 획득하면 일정 거리 안에 파티 원이 있을 때 자동으로 n 분해서 들어가요."

오…. 이건 좀 좋네. 누가 독식하거나 불균형하게 코인 먹을 일이 없다는 거잖아?

게다가 막타를 치거나 몰아주기를 할 필요도 없고.

"좋네. 근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게…."

"오빠는 잘못 없어요! 저희는 복수했을 뿐이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아무 말 없던 여동생 쪽이 입을 열었고, 오빠는 썩 좋지 못한 표정이 되었다.

"복수?"

"네! 아빠랑 엄마의 복수요!"

아…. 그래. 뭐, 거기까지 들었으면 됐다. 대충 어떤 그림인지 알 것 같다.

어쩐지. 아빠랑 엄마가 능력이 좋았나 보네.

파티 스킬로 코인을 분배해서 애들이 이렇게 스킬이 많았던 거였어.

상당히 능력 있는 부모였나 보다. 코인 분배라. 좋네. 그런 효과가 있었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나 보네. 안됐다."

"네? 아빠 엄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뭐?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3년 전? 그때는 스킬이 하나 밖에 없던 시절이잖아?

뭐야. 이거. 잠깐…. 그럼 부모가 얘들을 키운 게 아냐? 정말 지들 힘으로 이렇게 큰 거라고?

"너희 정말 대단한 놈들이구나?"

"네?"

"예?"

황당한 표정의 남매.

하지만 더 놀란 건 나였다.

아까 분명히 녀석들은 열여섯하고 열넷이라 그랬다.

3년 전에 부모가 죽었다면 열셋하고 열하나다. 완전 꼬꼬마 놈들이잖아.

그런 녀석들이 지금껏 살아있었다고? 아니 살아있던 것도 모자라서 힘까지 키우고 복수까지 했다고?

그것도 스킬 여덟 개? 여자애는…. 몇 개지?

"너. 동생. 너는 스킬 몇 개냐."

"저는 네 개…."

순순히 대답하는 동생이 맘에 안 들었는지 살짝 인상을 쓰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따로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 오빠.

음…. 동생도 네 개라고. 아무리 파티 효과가 있다지만…. 결코 약한 게 아니잖아.

"너는 스킬 뭐냐. 투명화랑 비행 말고. 탐지도 있냐?"

"네. 탐지 있고요…. 매혹…."

미치겠네. 돌았어.

이 남매는 미쳤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잖아.

분명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녀석들 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짓을 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하하…. 씨발. 황당하네! 정말.

"너희 이름이 뭐냐."

"박도현요."

"박하은요."

하. 이름만 들어도 정말 어린 감성이 물씬 피어난다.

그래. 도현이랑 하은이. 얘들을 대체...어떻게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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