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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펜스를 나와 남쪽으로 날아가면서 아까 했던 말을 약간 후회했다.
북진이라니. 너무 오바했나.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순간 이동과 게이트 스킬을 봤을 때부터, 그리고 통역 스킬을 봤을 때 이미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던 것들.
단지 이 대륙의 끄트머리에서 만족하고 살 게 아니고 세계를 상대로 모두를 죽일 것을 생각했을 때.
그때 생각한 것들.
인구 천만의 서울과 다 합치면 2천만이 넘는 수도권.
그리고 대륙 끝이라는 조건.
이런 것들을 생각했을 때 내 지리적 조건은 상당히 좋다.
게다가 바로 옆쪽에는 바글바글한 인구의 중국과 인도가 있잖아. 이건 기회 중의 기회다.
순서대로 차례차례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놀라운 입지. 물론…. 다른 곳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어쨌든 서해를 가로지를 게 아니라면 육로를 통해야 하고 결국 북한 땅은 지나갈 수밖에 없다.
다른 곳에 비하면 급격하게 쉬운 난이도의 땅.
펜스를 이용해서 그쪽을 먹어두면 나름 쏠쏠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런 과정을 통해서 희생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번거로운 것도 많겠지. 피곤하고 짜증 나는 것투성이 일 거다.
그걸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펜스에 짬 처리 한 거라고 볼 수 있다.
북진이라는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를 써서.
어쨌든…. 떡밥은 던져줬으니 알아서 받아먹겠지.
알아서 진출할 거고 알아서 초보자 사냥터를 만들어 줄 거다.
나는 그럼 그걸 보고 느긋하게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암튼…. 북쪽은 그렇다 치고.
그들이 그렇게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할 게 많다.
로얄 클럽. 그 대가리들을 전부 정리하는 것도 해야 하고.
이제 수도권에 남은 것들을 말끔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윤서가 알려준 것. 인천과 수원, 그리고 부평. 아니 부천? 부평인가? 부천인가? 아무튼, 거기도 다 처리해야 한다.
수원은…. 아마 대호 그룹일 거다.
대호 그룹이 저렇게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수원에 다른 놈들이 자리를 차지하진 못했겠지.
결국, 남은건 인천과 부평? 부천? 암튼 거기인데.
어디인지 정확하게 모르니 결국 내 손으로 알아봐야 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가는 거고.
하지만 그 전에 한군데 더 알아볼 곳이 있다.
서울의 북서쪽. 그리고 일산.
이쪽에 뭐가 없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구가 그렇게 많은데 뭐라도 있겠지. 없을 리가 없어.
기왕 의정부에서 나왔으니 크게 한 바퀴 돌 예정이다.
일단은 서울의 북서쪽부터 돈다. 그리고 지하철 3호선을 따라 올라가 봐야지.
서울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다.
물론 가까이서 보면 예전 모습은 아니겠지만, 멀리서 볼 땐 크게 변함이 없어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랬나?
아. 그건 여기에 쓰는 게 아닌가? 암튼.
생존자를 찾아야 하기에 상당히 낮게 날고 있는데도 역시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유령도시.
누가 이렇게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많던 서울의 인구가 전부 사라질 거라고?
그렇게 날다가 아래를 보니 을씨년스러운 경복궁과 광화문 거리가 보인다.
여길 보니 확실히 세상이 망했다는 느낌이 확 난다.
분위기 죽이네. 맘에 들어.
길을 따라 돌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녀 본다.
반경 250미터의 탐지는 잔망스러운 움직임을 하지 않아도 넓은 범위의 지역을 탐색해주니 좋다.
기척 하나라도 보이면 좋겠는데…. 어쩜 이렇게 없지?
하긴…. 있을리가 없지. 뭐 볼 게 있다고 이런 곳에서 살고 있겠어.
바로 북서쪽으로 올라가려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마포 있는 데까지 쭉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비스듬하게 내려가는데 오랜만에 기척이 잡혔다. 그것도 적지 않은 숫자들.
반가운 마음에 여기가 어딘지 확인해봤다.
신촌. 이잉…. 그렇구마잉.
왠지 살아있는 놈들은 악기라도 하나 둘러매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네.
망해버린 세상에서 악기를 하나 벗 삼으며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뭐라는 거야. 미쳤나?
어쨌든 일단은 일일이 잡아 죽일 생각은 없다.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살려둔다. 초보자 사냥터는 많을수록 좋겠지.
내가 다 잡아 죽이면 경험치를 몰아줄 수가 없잖아. 일단 있다는 것만 확인해두면 된다.
신촌, 홍대, 그리고 여긴 어디냐…. 합정? 곳곳에 보이는 몇몇 기척들.
이렇게 근처에 사람들을 살려두고 있는 놈들이라면 왠지 강할 것 같은 생각이 안 든다.
뭐, 그건 내 생각이고. 일단은 놔두자.
상암동을 목전에 두고 방향을 북으로 틀었다.
똑똑하게 보이는 지하철 3호선 역. 그걸 따라서 계속해서 올라간다.
계속해서 조금씩 보이는 기척.
신기하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야?
주변 인간들을 다 잡고 나온 코인으로 연명하고 사는 건가?
뭐…. 스킬을 올릴 생각이 없다면 그걸로도 제법 버틸 수는 있겠지.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음식으로도 생존은 가능하니까. 드럽게 맛이 없을 뿐이지.
그렇게 어느 순간 3호선이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눈에 확 보이는 철길. 따라가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그때부턴 기척이 거의 없었다. 다들 어디 갔데.
그렇게 노선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노선이 확 꺾어진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아파트들.
흐음. 여기가 고양시렸다? 근데 이 많은 아파트에 기척이 하나도 없다고? 신기하네.
어느 순간 철길이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펼쳐진 도시들.
웃긴 건 도심과 도심 사이에 논밭이 엄청 많다는 거다.
이야. 뭐 이러냐? 여기선 먹고 살기 편하겠네.
도심 사이의 논과 밭, 비닐하우스들.
사람이 살려면 이런 곳이 딱 좋아 보이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신기하네?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없을 수 있지?
수상하리만큼 기척이 없다. 마치, 누가 지워놓은 것처럼.
3호선을 따라 계속해서 가본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3호선. 근데 왼쪽 도심 끝에는 논밭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공장인듯한 건물들.
여기 도시 계획 구역은 진짜 별나네. 어떻게 이렇게 구성이 돼 있지?
공장들 쪽도 돌아보고 싶지만, 일단은 도심이 먼저다.
네모반듯하게 지어진 주거지역들. 역시…. 1기 신도시 답네. 딱딱 각이 잡혔어.
덕분에 탐색하기도 편하다. 문제는 기척이 아무도 없다는 거?
그렇게 3호선의 끝까지 왔다.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네.
이 넓은 고양시와 일산에 사람이 이렇게 없다고?
내 탐지가 고장 났나? 그럴 리가 없는데.
3호선 주변을 벗어나 살짝 북쪽으로 가봤다.
그리고 지상에 보이는 철길.
뭐지? 하고 보니 경의중앙선이라고 되어있다.
이건 뭐야. 처음 듣네. 이거나 한번 따라가 볼까?
그렇게 철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드디어 인기척이 느껴졌다.
기척에 걸린 건 두 명. 흐음…. 궁금하네. 한번 가까이 가볼까?
대충 탐지 범위가 잡히지 않는 거리까지 날아가서 페이즈 아웃을 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척 두 개가 휙 하고 움직인다.
뭐지? 왜? 내가 다가오는 반대편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두 기척.
느낌이 쎄하다. 내가 보기로는 아직 100미터가 안됐는데.
내가 멈추자 녀석들도 멈췄다.
오호? 이것 봐라. 신기한데?
다시 앞으로 움직이니 녀석들도 뒤로 움직인다.
우연은 아니야. 이건 분명해.
이번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봤다. 어차피 내 탐지 범위는 250미터. 그 안에만 녀석들을 두면 된다.
나를 따라오는 기척들. 캬. 그렇단 말이지?
흥미진진해졌다. 녀석들의 움직임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일단 탐지는 확실히 있다. 비행도 있고.
날고 있는데 맨눈으로 안 보이니 투명화도 있네. 둘 다.
탐지는 둘 다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둘 중 하나는 있다.
그리고 탐지거리는 100미터가 확실히 넘는 거 같다. 110미터도 넘는 거 같고.
그렇다면 스킬 반경 증가 패시브를 찍은 놈이다. 패시브 1이 나오는 게 티어 7, 두 개를 찍었다면 티어8.
최소 티어 8. 그러니까 7개 스킬을 마스터 한 녀석.
내가 봐왔던 녀석 중에는 가장 스킬이 많은 놈 같다. 모르지. 더 많은 녀석이 있었는지는.
어쨌든 '살아있는' 놈들 중에는 스킬이 가장 많은 녀석 같다. 이거…. 구미가 당기는데.
게다가 맘에 드는 건 조심성이 많다는 거다.
내가 탐지가 있을 것을 상정하고 아예 자기가 자리를 움직여버렸다. 그것도 일행과 같이.
저만큼의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로 달려드는 게 아니라 먼저 자리를 피하다니.
그 마인드가 맘에 들었다. 방심하지 않는 모습.
뭐, 내가 스킬을 더 많이 가졌을 거라는 생각은 못한 것 같지만.
내 생각에는…. 저놈들이 이 일산을 먹은 거 같다.
아무도 없는 인적. 스킬이 저렇게 많은 데도 조심스러운 모습. 저 정도면 훌륭하지.
살아있을 만한 솜씨야.
지금도 본인의 탐지 최대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모습.
스킬이 여덟 개. 그중 비행, 투명화, 탐지는 있다.
그럼 남은 건 최소 다섯 개. 캬. 무슨 조합일지 궁금하네.
문제는 저놈과 싸우지 않고 대화를 할 방법이 있을까?
스킬 범위 증가2를 찍었다면 반경은 30퍼센트 증가.
공격 스킬이 있다면 30미터에서 30퍼센트 증가니 39미터.
안전거리 밖에서 한번 대화를 시도해봐?
무작정 잡아 죽이거나 반감을 사고 싶진 않다.
어떻게 보면 이 대한민국 땅에서 처음 만난 강자다. 그것도 차분하고 치밀한 녀석.
비행이 없다면 광역 스킬 무효화로 어떻게든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공중에서는 힘들다.
그렇다고 공격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관계가 험악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고민. 고민. 고민.
아무나 막 잡아 죽여도 되는 찌끄레기하고는 다르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지상으로 유인을 해볼까? 과연 따라오려나? 어차피 저 녀석이 광역 스킬 무효화가 있더라도 거리만 안 주면 되잖아.
해보자. 과연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그대로 땅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 슬금슬금 움직이며 녀석들의 반응을 본다.
의외로 따라오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녀석들. 게다가 거리는 칼같이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100미터와 130미터 사이에 끼워두는 거겠지.
아직 이쪽의 스킬은 저 녀석이 알지 못한다.
해봐야 비행과 투명화 정도. 내가 녀석들을 발견한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탐지가 있는지는 모르고 있겠지.
내려오지 않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일단 뭔가를 찾는 척은 해야지. 근처에 아무 건물이나 들어갔다.
근데…. 이건 뭐야. 영화관? 이런 데 영화관이 있어? 신기하네.
건물로 따라 들어올 생각 같은 건 안 하나 보다.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만 보고 있는 녀석들.
어찌할 셈이지? 너무 신중한 거 아냐?
공격하던지 포기하고 가든지 해야지. 저렇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하늘에 떠 있냐?
영화관 안쪽은 따듯하기에 여기서 뭔가를 찾는 척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한 20분이 지났는데도 녀석들은 꼼짝 않고 하늘에 떠 있다.
징한 놈들. 진짜 신중하네.
언제까지 저러고 있나 보자. 나는 따듯한 곳에 있고 녀석들은 추운 곳에 떠 있으니 결국은 내가 유리하다.
이점을 가지고 있으면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이용해야지.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갔다. 대략 20분 정도 더.
결국, 꼬리를 내린 건 녀석들이다. 역시. 추위는 무섭지. 게다가 비행을 쓰고 있으면 더 그렇다.
아무리 방한용품을 둘둘 싸매고 있어도 2월의 추위는 무시할 수 없잖아.
게다가 공중이라고. 지상의 바람과 비교할 게 아니지.
녀석들은 그대로 땅을 향해 내려왔다.
거리는 그대로. 그렇게 내려온 녀석들은 한 놈만 지상에 남고 다시 한 놈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뭐지? 쉽게 이해가 안 가는데?
왜 하나만 내려오고 하나는 다시 떠오른 걸까?
둘이 번갈아 가면서 나를 감시하겠다는 건가?
흐음…. 장기전이라. 그건 나쁘지 않지. 쪽수로 밀어붙이면 결국 적은 쪽이 불리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비슷한 급일 때의 일이고.
나는…. 그렇게 물렁물렁하지 않거든.
두 녀석의 거리는 제법 되니 빈틈은 찌를 수 있을 거다. 게다가 나는 개씹사기 블링크가 있잖아?
하늘에 떠 있는 녀석을 잘 살피며 녀석이 볼 수 없는 쪽의 출구 문을 슬쩍 열어 놓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자. 준비는 됐고. 이제 나 하기 나름 인 거지?
블링크는 배우고 나서 이미 충분히 익숙해질 만큼 썼다.
페이즈 아웃으로 가도 되겠지만, 내 기척이 사라지면 녀석들은 경계할 거야.
지금은 기동성이 중요한 타이밍. 자…. 그럼 간다.
문밖으로 블링크, 공중으로 블링크, 다시 이번엔 지상에 있는 녀석 쪽으로 블링크 연속 두번.
편의점 건물 안에 있는 기척. 블링크로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안쪽에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쓴다.
"헉!?"
모습이 드러나며 소리를 지르는 여자아이. 여자아이!?
반사적으로 수면을 써서 여자아이는 잠이 들었지만, 깜짝 놀라서 몸이 굳는다.
아무리 봐도 이제 중학생이 안 돼 보이는 여자아이다. 세아의 경우를 봐서 몸이 작은 성인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다.
정말 어린 여자아이.
"하은아!!!!"
소리를 치며 이쪽으로 날아오는 목소리.
그리고 웃긴 건 그 목소리도 상당히 어린이게 들린다.
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