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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38화 (33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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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가 가야할 길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적 같은 일에 다들 눈이 커질 대로 커져 있다.

"다음은 초코칩 과자? 역시 초코는 소중하죠. 회귀."

초코칩 과자가 원래의 모습대로 생겨났고, 다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또 놀란다.

"이건 뭐야. 오랜지 쥬스? 뭐, 나쁘지 않죠. 회귀."

회귀가 마스터 되고 나니 한 번의 스킬만으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모든 것들이 다 회귀가 되는 건 아니었다. 간혹가다 안되는 것들도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

이것도 뭔가 정확한 법칙이 있을 텐데…. 알아내기가 귀찮다.

정말 회귀시키고 싶은 물건이 안되면 모를까, 지금처럼 무난하게 된다면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게 속 편해.

그렇게 한참 회귀쑈를 벌이자 회의실은 파티장이 되어버렸다.

다들 회귀시킨 음식들을 나눠 먹는 모습들.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게다가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귀시켰을 때 먹은 게 없었던 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들치고 놀라지 않은 여자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도 안 되긴 하지. 세상이 망하고 생긴 일 중 가장 어메이징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덕분에 다들 눈치 보지 않고 원 없이 먹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면서 정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네. 우걱우걱."

오래간만에 맛보는 과자들을 한껏 입에 넣고 있는 정 부장. 그렇게 안 생겼는데 생각보다 식탐이 있어.

"대충 어떤 스킬인지 아시겠죠? 그러니 앞으로 어떤 쓰레기들을 주워야 할지 감이 잡히죠?"

"네. 냠냠.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성철 씨 스킬을 봤잖습니까.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찾을 거예요."

그래. 그 말이 맞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이들은 이제 미친 듯이 쓰레기를 찾아올 거다. 아마 외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아니면 쓰레기 수집조가 새로 생기던가.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오랜만에 먹어보는 음식들에 한껏 정신이 팔린 모습이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건 역시 아이스크림.

아마 다음에는 아이스크림 쓰레기가 잔뜩 있지 않을까.

"그리고…. 중요한 할 말이 있는데요."

"와. 성철 씨 입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거 보니 상당히 무섭네요."

"부장님께만 할 이야기는 아닌데…. 음. 자! 여기 좀 주목해주세요!"

내가 외치자 다들 먹던 걸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그 와중에도 입에 아이스크림 넣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지아. 웃긴 녀석. 그렇게 좋을까.

"아. 그렇게 멈출 필요까지는 없어요. 드시면서 들으세요. 그래도 나름 중요한 이야기니 집중은 해주시고요."

내 말에 모두가 다들 한결 부드러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 좋아. 그럼 말해볼까.

"외부조에게 먼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주변 탐색은 대충 어느 정도 진행됐죠?"

"펜스 기준으로 반경 10킬로미터 안쪽은 대부분 탐색이 됐습니다."

외부조 대표로 윤서가 대답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했다.

"제가 생각한 게 있는데요. 여러분들은 북진 해야 합니다."

다짜고짜 나온 나의 북진이라는 말에 다들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 6.25도 아니고 북진이라니. 저들이 어이없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당황스러우실 텐데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들어보세요. 먼저…. 아직 검증은 전부 안 된 것들이니 이건 전부 제 망상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니 하는 소리니까 들어보신 다음 타당성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 세상이 망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화약 무기에 대해서. 다들 세상이 망하고 화약 무기 본 적 있으세요?"

다시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럴만하다.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거고 알아볼 생각도 못 했을 일.

대한민국은 무기 규제를 철저하게 하는 나라였고, 일반인들이 총기에 대해서 쉽게 다가가기 힘든 나라였으니까.

"총, 폭탄, 화약. 그런 거 없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그런 걸 구했다는 사람이 없어요. 게다가 그런 걸 다루는 군인들이나 특수부대들 같은 사람들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이건 어느 정도 밝혀진 거예요. 아마 여러분들도 생각해보시면 그런 사람들을 본 적 없으실 겁니다."

내 말이 끝날 때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반응이 웃기다.

몇 명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몇 명은 처음 들었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짓는다.

좋아. 익숙한 반응이야. 그럼 계속해볼까.

"난데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비무장지대. 거길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지뢰!?"

반장 하나가 알았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리고 그 대답에 사람들이 아! 하는 표정을 짓는다.

"네. 맞아요. 지뢰는 명백한 화약 무기죠. 물론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화약을 안 쓰는 지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수많은 지뢰가 전부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작 지뢰가 없어졌다고 북진을 하느냐? 그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따갑다. 재밌어. 이런 게 익숙해질 줄이야.

"지금 이 세상. 어떻습니까? 우리는 상당히 익숙하죠. 이게 어떻게 됐든 시스템 자체가 게임 형식이에요.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이것들에 상당히 익숙해졌죠. 근데, 북쪽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제야 사람들의 반응이 뭔가를 알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말을 계속 이었다.

"북한 상황이 어땠는지는 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 풍족한 삶은 아니었겠죠. 제 생각이지만, 북한에서는 세상이 이렇게 되고 오히려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전기와 물이 무제한인 데다가 코인으로 먹을 것도 살 수 있죠. 아마…. 그놈들은 신나지 않을까요?"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인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재난이고 재앙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기준을 우리에게 맞췄기에 이게 끔찍한 현실이겠지만 더 열악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거지.

"우리도 성장을 씁니다만, 전기와 물이 무제한이고 저쪽에서도 성장을 쓴다면 상당히 먹고 살기 편해지겠죠.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저쪽이 프로 아닐까요? 열악한 환경에서 먹고 사는 방법은 우리보다 훨씬 잘 알 테니까요. 제 생각에는…. 북한은 지금 신나는 상황일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하진 않겠지만."

"질문 있는데요."

반장 중에 하나가 손을 들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보고 온 겁니까? 아니면 정보 같은걸 들은 겁니까?"

"아뇨. 전부 다 제 생각이에요. 그러니 확실하다는 보장은 없죠. 만약 갔는데 녀석들의 상태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병신같으면…. 애초에 등신들이었다는 소리죠."

"아아…."

"네. 저는 상당히 북쪽 사람들을 과대평가해서 이야기 하는 겁니다. 현실이 시궁창일 확률이 없는 게 아니죠. 물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글쎄요. 어떨까요."

"이해했습니다."

"암튼. 계속 이야기해 볼까요? 상당히 힘든 상태였을 텐데 갑자기 먹고살 만해진 거죠. 전기와 물의 무제한 공급은 상당히 대단한 거니까요. 다만 거기는 낙후된 게 많으니 좋아졌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북쪽 사람들은 이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을 거예요. 게임이라니. 우리야 스킬이고 뭐고 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알죠? 다들 이런 걸 겪으면서 컸던 분들이고 아무리 관심이 없더라도 살아오면서 자주 접한 것들이니까요. 그쵸?"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이런 쪽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아주 문외한일 리는 없다.

티비로, 영상으로, 방송으로, 친구들의 이야기, 어디에서든 듣고 접하고, 게다가 직접 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게다가 이 스킬들. 설명 한 줄 없이 무책임하게 딸랑 있죠. 거지 같은 시스템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러니 저들은 더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북쪽의 상황은 그렇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뻥 뚫린 길, 갑자기 풍족해져서 먹고사는데 모든 관심을 쏟는 사람들. 제 눈에는 잡기 쉬운 코인들로 밖에 안 보입니다."

마지막 내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결국, 내말은 그거다. 잡기 쉬운 놈들을 잡아 죽이겠다는 것.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한 자들.

아무리 동족이라지만 총부리를 겨눴던 자들.

동족? 지금은 친구나 이웃들과도 서로를 죽이는 시대다.

동족이라니. 개도 웃겠네. 지금은 그런 것에 얽매일 시대가 아니다.

적당한 반감. 물론 연민과 안쓰러움이 더 크지만 어쨌든 죽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덜할 거다.

내 말은 그런 녀석들을 잡아먹자는 거다. 망설임 없이. 확실하게.

"제 생각은 그래요.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 온 사람 중에는 현재의 삶이 심심하신 분들도 있을 거예요. 스킬에 욕심이 나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그런 분들을 뽑아서 북쪽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전진기지라고 해야 할까요?"

몇몇 반장들의 눈이 빛나는 게 보인다.

그래. 사람에게는 누구나 욕망이 있고 폭력성이 있다.

현실에 순응해서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먹고 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뭔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많을 거다.

펜스의 인구. 이 정도면 그런 사람들은 적지 않게 나오겠지. 그런 그들을 이용해서 북쪽 땅을 밝힌다.

내가 필요한 건 정보. 그리고 안정적인 사냥터.

내 여자들을 레벨업 시켜주기 위해 이들을 이용할 거다. 물론…. 부당하고 불합리하게 이용하진 않는다.

걸맞은 보상과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지원해줄 자신이 있다.

식량과 회귀. 두 가지면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북진, 북벌…. 뭐 좋을 대로 불러도 되겠죠. 어쨌든 제 바람은 그겁니다. 아마 크게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봅니다만….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를 한번 해보시죠. 아무래도 여러가지 의견을 들어봐야 할 테니까요."

흥미진진한 표정의 사람들. 걱정과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

재밌다. 역시 사람이 많으니까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구나.

"그리고 또 한가지. 펜스에서 CCTV나 광통신, 감시 카메라…. 뭐 그런 것들 전문가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도 모아주세요."

"그 사람들은 왜요? 혹시…."

정 부장이 나를 보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냥 사람이 주변을 돌 수는 없죠. 물론 사람도 돌아야 하지만 우리는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던 문명인들 아닙니까. 이용하고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써먹어야죠. 자동 감시 체계를 갖춰봅시다. 모든 걸 전부 인력으로 충당할 필요는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사실 그건 어느 정도 제가 추진하고 있던 게 있어서."

"아. 그래요? 그럼 하시죠. 얼마든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하하. 이것 참 갑자기 오셔서 또다시 일거리를 잔뜩 안겨주시는군요."

"놀고 있는 것보단 낫잖습니까. 원래 인간은 배가 부르면 딴생각을 하는 법이죠."

내 말에 정 부장이 웃는다. 그리고 그런 나와 정 부장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사람들.

"회귀…. 보셨죠? 이건 훌륭한 보상이 될것 같지 않습니까? 의욕 없는 사람들, 타성에 젖은 사람들에게 뭔가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겠죠? 그러니 잘 이용해보도록 하세요. 성장의 기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물건들. 이런 것들이면 조금 루즈했던 분위기가 흥미진진 해지겠죠. 오늘은 해산입니다. 저는 갈 거니까 여러분들은 조금 더 골머리를 썩여보세요."

"캬. 정말…. 성철 씨 당신은 여러 의미로 대단하군요."

정 부장의 감탄. 사실 가장 신나 보이는 것은 정 부장 같다.

유능함 뒤에 숨어있던 욕망과 의지. 그게 얼핏 보였으니까.

이 정도로 불씨를 지펴놨으니 이제 알아서 잘 타오를 거다.

많은 사람이 있는 만큼 다양하고 괜찮은 것들이 나오겠지?

내가 진두지휘해서 뭔가를 해낼 필요는 없다. 다들 똑똑하고 한가락 했던 사람들.

적당히 화두만 던져주면 알아서 잘 소화하고 결과물을 내놓겠지.

그렇게 펜스를 나오면서 나를 보는 여자들의 묘한 시선들을 느꼈지만 나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물론 여기의 여자들과 뒹구는 것도 즐겁긴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늘은 할 게 많아. 기왕 생각난 것들에 대해서 한 번씩 다 훑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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