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24화 (32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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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놀이

절대 방심하면 안 되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 이들을 죽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쳐 죽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덮어씌울 상대가 필요해. 그게 SG면 더 좋고.

가장 강력한 두 집단. 서로 싸우게 하는 게 가장 좋다. 하나하나 내가 다 잡아 죽이기엔 상당히 번거로워진다.

대가리가 날아가 버리고 이들이 뿔뿔이 와해되어 서로 잡아먹고 커버리면, 오히려 그건 나에게 마이너스잖아.

서로에게 명확한 적을 만들어 줘야지. 그래야 이탈 없이 그 분노를 상대에게 쏟아붓지.

아니지. 오너 일가가 죽었다고 대호 그룹의 사람들이 분노할까? 그건 밑에 놈들을 너무 충성스러울 거라고 고평가하는 거잖아?

오너 일가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시작되는 전면전에서 생겨날 자신의 이득, 그게 보여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밀어버릴 동기가 되지.

기왕 죽이는 거 얻을 게 있어야지. 코인, 여자, 식량, 생필품, 안정된 미래 등등

구도를 만들어야 해. 대호와 SG가 전면전을 벌일 정도로.

일일이 때려잡는 건 그걸 실패한 다음에 해도 상관없어.

제일 좋은 건 서로의 주력을 충돌시키는 건데….

이놈들의 주력. 팀장 놈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스킬 3개 이상 있는 놈들이 거의 100명 정도.

말 그대로 이놈들의 핵심이다. 수많은 사람을 먹여서 키운 이놈들의 정예병.

가장 짜증 나는 것은 그놈들은 스킬이 없어도 까다로운 놈들이라는 거다.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강한 인간들.

미필인 나같은 놈이랑 비교할 수 없는 인간 병기들.

대검 하나랑 가속화 하나만 있어도 나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

투명과 비행이 있어서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또 그건 공기총에 약하다.

게다가 탐지도 대부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놈들.

생각해보면 무서운 놈들이네. 그런 놈들이 왜 이런 녀석들의 따까리를 하고 있지?

제어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저런 놈들을 통솔할 수 있지?

충성심과 신뢰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생각하기론 그렇다.

그 녀석들의 총부리가 언제 자신들에게 겨눠질 줄 알고 힘을 나눠준단 말인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조직이라는 개념을 이해 못 해서 그런 건가?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하극상이란 거의 불가능 한 일이었다.

위에 놈 하나 재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사회적인 말살로 이어진다.

법이, 사회가 그 사람을 구속하고 제어할 수 있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아니다. 얼마든지 죽여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런 놈들을 대체 뭘로 잡아뒀을까? 인질? 근데 인질도 완벽한 제어 방법은 아니다.

조까라고 무시하고 저지르는 걸 막을 방법은 없어.

서로 간의 견제? 이건 좀 가능하겠지만…. 서로 담합해버리면? 이것도 이해 안 가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인한 제압? 음…. 이건 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지금처럼 약육강식의 시대에선 결국 힘이 최고잖아.

정예병들을 제압할 방법이 뭔가 있다는 이야긴데.

그럼 결국 그것 자체가 약점이 되지 않나? 빈틈이 될 텐데?

게다가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사람은 누가 제압하지? 그놈이 배신하면?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러니의 연속.

팀장 놈. 왜 그런 건 자세히 몰랐던 거야? 등신같이.

팀장 정도 되는데도 그들의 존재만 알고 있고 자세한 건 모른다고 했다.

근데 아까 봤던 최 이사 주변의 놈들이나 팀장이랑 같이 있던 놈들, 그런 놈들이 그 주력이라는 걔들 아닌가?

그러면 얼마든지 쳐죽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모르겠네. 더 대단한 놈들이 있는 걸까?

일단, 여긴 나가자. 자주 들락날락할 테지만 지금은 더 볼 일이 없다.

청주로 가서 분위기를 볼 차례. 양쪽을 싸움 붙이려면 서로 어느 정도 사이즈는 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떠버리 새끼도 처리할 수 있으면 처리하고.

그래. 그게 가장 큰 거 같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도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

처음으로 목표를 놓친 녀석이잖아. 뭐, 정종찬 그 새끼도 한번 놓치긴 했지만, 어차피 그놈은 내가 쳐 죽였으니 됐지.

떠버리 그놈도 쳐 죽여야 마음이 놓이겠어. 내 정보가 더는 퍼져선 안 돼.

수면, 페이즈 아웃, 투명화, 비행. 이 정도는 알려졌을 거다. 아. 광역 스킬 무효화도.

가서 그놈은 먼저 처리하자. 하루 정도 지났으니 좀 잠잠해졌겠지.

하루를 묵힌 게 내 실수였을까? 바로 가서 쳐 죽였어야 했나?

지금 와서 후회해도 의미 없지. 일단 간다. 가서 뭐가 됐든 처리하자.

페이즈 아웃으로 지상까지 나왔다. 그리고 바로 투명화와 비행. 청주로 향한다.

차를 가져올 걸 그랬나? 날씨가 춥다. 아니…. 추운 건 내 마음인가.

한 시간 반. 차가운 겨울 하늘을 날아오니 손발이 얼얼한 느낌이다.

아무리 침낭을 두르고 있어도 완벽하게 추위는 못 막는 게 너무 싫다.

그래도 2월이라 좀 다행이야. 진짜 12월이랑 1월 이때는 너무 혹독했어.

지난번 떠버리가 있던 창고. 녀석과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분명 녀석은 페이즈 아웃을 배운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테스트를 거쳐서 스킬의 효과를 안 다음 배운 건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그 말이 백프로 진실이라고 믿는 건 아니지만, 숨 쉬듯이 거짓말할 줄 아는 놈이 아닌 이상 그런 상황에서 거짓을 말하진 않은 거 같고.

또 뭐라고 그랬지? 아. 그래. 스킬 네 개 배운 사람이 많지 않다고 그랬던가.

녀석은 아무리 봐도 SG에서 제법 중요한 놈이다.

나잇대나 성격으로 봐선…. SG의 오너 일가 구성원.

헬기 네 대가 그 녀석을 보호하듯 나타난 게 우연은 아닐 테니까. 위치추적기나 뭐 그런 게 붙어있었을 확률이 높다.

그 정도 되려면 아마도 오너의 아들 정도 되지 않을까. SG의 가족 구성원은 전혀 모른다는 게 아쉽네.

뭐, 그거야 아무나 잡고 물어보면 그만이고.

어쨌든 그럼 둘 중 하나다.

SG는 스킬 숙련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

아니면 숙련 수준이 높지만, 그 떠버리는 그 정도 핵심까진 아니라는 것.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건 조금 더 디벨롭 해볼 가치가 있어.

일단 SG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모아봐야겠다.

대호는 구성원을 함부로 건들 수 없었지만, 여기는 다르다.

창고. 이 밑에 가득한 외부인들. 죽는다고 누가 알아챌 리 없는 녀석들.

적어도 나 보다는 아는 게 많겠지. 모르면 아는 놈을 만날 때까지 족치면 되는 거고.

창고 입구 쪽에서 먹잇감을 고른다. 여자가 있는 그룹이면 뭐든 상관없잖아?

근데 정말 인간들 많네. 아직도 이렇게 많이 살아있단 말야?

서울만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건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여기가 전국구 권이라 그런 건가.

그렇게 지켜보고 있으니 딱 맘에 드는 녀석들이 창고에서 나왔다.

남자 둘, 여자 둘.

픽업트럭 뒤에 물건을 한가득 싣고 차에 올라타는 녀석들.

차가 출발했고 도시 바깥쪽으로 나간다. SG 녀석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 조금 떨어져서 일을 처리해야겠지?

일반 도로에서는 속력을 빠르게 내지 못하는 픽업트럭. 덕분에 비행으로 따라갈 만했다.

적당히 거리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탐지를 돌려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다. 좋아…. 이 정도면 처리해도 되겠지.

차가 향하는 앞쪽을 보니 과속방지턱이 보인다. 무조건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는 곳.

좋아. 저기에서 처리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빠르게 아래로 하강했다.

스킬 반경 증가 때문에 수면을 걸 수 있는 거리가 상당히 넓어져서 쓰기가 참 좋아졌다.

굳이 딱 붙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게 저놈들과 나의 차이다.

녀석들이 탐지가 있어서 나를 파악하고 있더라도 범위 안에 들어온 게 아니라면 경계심은 많이 낮아져 있으니까.

물론, 탐지 범위 안에 있지도 않았지만.

속도를 줄이는 픽업 트럭. 광역 스킬 무효화를 뿌리고 운전하던 남자를 재웠다.

운전하던 놈이 악셀에서 발을 뗀 상태로 잠들었는지 과방턱을 넘어서도 계속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트럭.

그러자 옆에 앉은 남자와 뒤에 탔던 여자들이 난리를 치면서 운전하던 남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무효화를 뿌리고 옆자리의 남자에게 수면을, 언뜻 보이는 여자 둘에게 매혹을 걸었다.

무효화 덕분에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린 남자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녀석은 깜짝 놀랐는지 기어를 주차로 바꾸고 옆에 잠들어 버린 남자를 급하게 불렀다.

차만 멈췄으면 됐다. 너도 자라.

남자도 잠이 들자 여자들은 깜짝 놀라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를 보고 웃었다.

으…. 싫어 진짜. 무서운 웃음이야.

"둘 다 내려."

주저 없이 바로 차에서 내리는 여자 둘.

뭐, 그럭저럭 괜찮은 여자들이다. 어차피 외모는 상관없지. 뭐가 되도 죽을 텐데.

짐을 트럭 뒤에 실은 거로 봐선 수납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수납 있는 사람 있어?"

"아니요."

"없어요."

"그럼 스킬 네 개 배운 사람은?"

"없어요."

"없어요."

볼 건 없네. 그럼 남자들은 필요 없으니까 치우고. 아. 그전에 차 키는 챙겨야지.

"너. 얘 뒤져서 차 열쇠 꺼내."

내가 지목한 여자가 운전하던 남자의 주머니를 뒤져 차 키를 꺼냈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마체테를 꺼내서 남자들을 바로 푹푹 찔렀다.

한 놈은 12만, 한 놈은 9만.

이 정도는 되는 놈들이니 생필품까지 신경 쓰겠지? 맘에 들어. 백마촌의 상위 업그레이드 기분이야.

"너네는 어디 사냐? 니가 대답해라."

내가 지목한 여자는 떠듬떠듬 내 질문에 대답한다. 방금 자신과 함께 온 남자가 죽었는데도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모습.

"저희는 세종에서 살고 있어요."

어쩐지. 고속도로를 안 타고 가더라니.

"너희 넷이 일행인가? 일행이 더 있어?"

"일행은 저희 넷이 다예요."

물론, 이제는 둘이지만.

"니네 방금 다녀온 곳. 거기에 대해서 뭐 좀 물어볼 건데."

"SG시티요?"

"엥? 청주 아냐?"

"지금은 SG시티라고 불러요."

"지랄들을 하네. 암튼, 거기 운영하는 놈들에 대해서 알아?"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음. 거기 제일 윗대가리? 지금 운영하고 있는 놈들이나 수뇌부. 이런 놈들."

"아. 그거라면 약간은…."

"그래? 그럼 말해봐."

"그게…."

여자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말을 잘하는 타입인 거 같아.

원래 SG그룹의 회장은 서경원 회장. 하지만 그는 세상이 멸망할 당시 나이가 81살이었다.

그렇기에 메시지가 뜨자마자 그대로 코인이 돼버렸고, 주변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상황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다행이었던 건, 그들의 가족이 한자리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상황의 심각성을 바로 인지한 장남 서정주 SG 건설 사장이자 SG그룹 부회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회장으로 취임한다.

그게 그의 나이 58세. 평소에 어느 정도 승계작업을 해놓았던 터라 크게 잡음은 없었다.

외아들이었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그룹을 이어받았고, 청주…. 지금은 SG시티라고 불리는 곳까지 무사히 유지해낸다.

"되게 잘 아네? 말도 잘하고?"

"감…. 감사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좋아한다.

이 정도 칭찬에도 저런 반응이라니. 매혹은 정말…. 어휴.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보통 재벌가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나?"

"아뇨. 요즘 SG그룹 분위기가 심각하니까요."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차기 후계자 때문에요."

"아니 무슨…. 거 뭐야 회장 녀석 이제 50대 중반이라며? 한창 창창한 나인데 뭐 벌써 후계자 어쩌구 지랄들인데."

"창창하니까 후계자를 확고하게 세워두고 싶은 거죠."

그런가? 나는 이런 건 잘 모르겠다. 별로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고.

"뭐 때문에 그 지랄을 한데? 그냥 장남에게 물려주는 거 아냐? 그 회장 놈 자식이 몇인데?"

"아들 둘에 딸 둘요. 근데…. 당연히 장남이 후계자일 줄 알았는데 차남도 기회가 생겨서요."

"멍청한 짓을 골라 하네. 후계자 전쟁만큼 병신 짓이 없는데. 그건 이런 거 잘 모르는 나도 아는 거구만."

"그래서 지금 SG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요."

"그 아들놈들만 서로 후계자 싸움 하는 거야?"

"네. 딸 둘은 이미 시집갔으니까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아. 그런가. 출가외인이라 이거지. 그럼 아들놈들 이름이랑 나이는?"

"장남이 서용준이고…. 34살일거에요. 차남은 서민준이고…. 20대 후반일걸요?"

차남, 서민준. 20대 후반.

그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딱 떠버리 놈이 생각났다.

그 녀석 말고는 대입되는 놈이 없네. 곱게 자란 흔적,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느낌, 대가리는 꽃밭.

사람 하나 죽여보지 못한 모습 같은데 스킬은 최소 네 개 있는 녀석.

그래…. 역시 뭐가 있긴 있었어. 오너 일가라고. 게다가 후계자 전쟁?

좋은 생각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역시 이것도 밑져야 본전이잖아?

"그리고? 또 아는 건?"

"어…. 이게 다예요. 더 자세한 건 알기 어려우니…."

"그래? 고생했어."

여자 둘은 잠들었다. 더는 쓸모 없지. 고마웠어.

둘 다 죽이니 합쳐서 15만. 쏠쏠하네. 맘에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인을 모아놓는 놈은 많아질 거다. 딱 스킬을 배운 순간이 아니라면 말이지.

자. 정보도 많이 얻었고 코인도 많이 얻었다.

그리고 이 짓을 한 번만 할 필요는 없잖아? 또 해야지. 먹잇감이 저렇게 많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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