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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입
대호 디지털미디어시티 D동 로비.
왜 여기일까?
수납을 가진 팀장이 왜 하필 이곳으로 물건을 가져왔을까?
녀석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역할은 여기에다가 물건을 가져다 놓는 것, 그게 끝이라고 했다.
오너 일가가 사는 곳은 자신도 모른다고 했고, 그렇다면 여기가 뭔가 통로일 확률이 있다.
여기에 뭐가 있나? A, B, C도 아니고 D동인 이유가 있나?
그건 뒤져보면 알겠지. 한번 둘러본다.
탐지. 지상 5층과 지하 2층. 한 층에 몇 명씩 사람의 기척이 잡힌다.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걸까?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는 건물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있을 이유가 있나?
페이즈 아웃을 사용하고 전부 둘러본다. 지상에서 지하까지.
역시 이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면 아무도 모르게 다닐 수 있는 좋은 스킬.
그렇게 돌아다녀 보니 대충 이유를 알겠다.
이 건물은 보안동이다. 이 넓은 곳의 보안을 모두 담당하는 곳.
예전에는 상당히 인원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최소한의 인력만 남아있는 느낌.
페이즈 아웃을 쓰면 모니터 안쪽이 안 보이니 풀기로 했다.
이런 일을 하는 녀석들이 탐지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일하다가 탐지를 돌릴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탐지를 돌린다고 해도 이 건물에 나만 있는 건 아니니 당장 발각되거나 그런 것도 아닐 거다.
탐지로 알아채는 기척엔 이름표가 붙는 게 아니잖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두 명. 일은 하고 있지만 그리 바빠 보이거나 하진 않는다.
이곳저곳을 비추고 있는 화면들을 보면서 여유롭게 앉아있는 모습.
남자 하나가 슬쩍 일어나더니 자신의 머그잔에 커피믹스를 하나 타서 다시 돌아온다.
저런 게 배급될 정도면…. 제법 인심이 넉넉한가 보다. 하긴 커피믹스는 유통기한이 거의 없다고 그랬지?
기존에 만들어졌던 것들을 그대로 쓸 수 있으니 여유가 있으려나.
그렇게 남자들을 무시하고 모니터들을 살펴봤다.
평화로운 곳. 모니터는 곳곳을 비추고 있지만 특별한 건 없어 보인다.
가끔 사람이 지나다니는 게 보이긴 하지만 남자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이놈들은 대체 왜 있는 걸까? 뭘 보려고 이러고 있는 걸까?
"아 참. 나 어제 비서실 김유리 봤다?"
"오. 진짜요? 어디서요?"
"포차."
"포차? 비서실이 포차도 와요?"
"왔던데? 친구들이랑 같이 왔나 보더라."
"이야. 어때요? 이뻐요?"
"이쁘긴 하지. 근데 오래는 못 봤어. 눈치 보여서."
"뭐, 어차피 우리랑 상관없는 여자잖아요. 근데 진짜 최 상무 애인인가?"
"에휴. 니가 최 상무라면 애인으로 삼겠냐? 그냥 엔조이겠지."
"아니 최 상무가 그렇게 따라다닌다면서요. 김유리가 튕긴다던데?"
"지랄. 아무리 이뻐 봐야 무슨 소용이야. 튕기기는. 씨발. 벌리라면 벌려야지."
"그런가. 하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최 상무면…."
그렇게 잡담을 하는 남자들.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 저런 가십거리들을 이야기할 정도면.
근데…. 지금 말 나온 최 상무가 그 최 상무 맞나? 회장 아들?
회장 아들이 뭐가 아쉬워서 여자를 쫓아다녀? 말이 되냐.
저 커피믹스 놈이 말한 게 맞지. 아무리 호구 병신이라도 그 정도 힘과 권력이 있으면 뭐, 어나더 레벨일 텐데.
아니면 최 상무라는 놈은 순정과 낭만을 중시하는 로맨티스트라도 되나?
잠깐 말이 없던 커피믹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최 팀장 이야기 들었냐?"
"어? 뭐 나온 거 있어요?"
"아까 로비 가드 하는 애한테 들었는데, 수색 포기한다더라."
"진짜요? 와 매정하네."
"매정할 게 뭐 있냐. 그렇게 사라지면 당연히 못 찾지."
"하긴. CCTV가 되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없긴 하죠."
"그리고 바로 후임 충원됐다던데? 근데 누군지 아냐?"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야. 생각을 해봐. 내가 빌드업을 딱 했잖냐. 지금 이야기 나온 사람이 누가 있어?"
"헐. 설마? 김유리?"
"그래. 김유리. 김 실장. 그 여자."
"와씨…. 그럼 진짜 최 상무가 그 여자 진짜 좋아하긴 하나 보네."
"근데 웃긴 건 회장님이 인정했데."
"엥? 최 상무가 아니고 회장님이요?"
"그래. 그러니까 골때리지. 오죽하면 최 이사도 그걸 듣고 암말 안하더라. 존나 난잡한 느낌 나지 않냐?"
"아니…. 회장님 나이가 있는데…. 진짜요? 그리고 그 최 이사가 암말 안 했다고요?"
"그래. 그리고, 야! 여자 찾는데 나이가 어딨냐."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뭐에요? 진짜 부자가 한 여자를? 근데 김유리 그 여자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우리야 모르지. 기술이 죽여주나 보지."
"더 알려 들면 왠지 드럼통에 담길 것 같은 느낌이네요."
"드럼통이 뭐가 필요하냐. 그냥 코인 되는 거라니까."
"와씨…. 나는 못 들은 거로 해야겠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또 좀 수상하지 않냐. 최 팀장. 좀 더 찾아도 될 텐데 왜 꼴랑 하루 만에 딱 접지? 뭔가 이상해. 최 팀장이 없어지고. 실종 수색도 하루 만에 딱 끝내고, 그 후임은 회장과 상무가 신경 쓰는 여자…."
"어휴. 그런 이야기 함부로 하지 마요. 여기 도청기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씨발. 500밖에 없는 코인 가져가 보든가."
"어어…. 나는 모르는 일이에요. 나는 오 차장의 발언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회장님! 상무님! 듣고 계시죠!?"
"이야. 너 진짜 나쁜 놈이구나? 동료고 뭐고 바로 손절한다 이거지?"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요. 좀. 수상하니 마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요. 아니 솔직히 수상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모른 척해요. 어디 가서 함부로 이런 이야기 하지 말고요. 전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야. 나도 눈치라는 게 있지. 어디서 이런 이야기 하겠냐? 너니까 하는 이야기지."
그러면서 입을 다무는 두 사람.
나는 둘의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실소했다.
아니…. 얘들은 무슨 아침드라마에서도 싫증 난다고 안 쓸만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뭐? 대호 그룹 회장이랑 그 아들이 한 여자를 두고 뭐가 어째? 게다가 그 여자를 위해서 일 잘하고 있는 팀장을 실종시켜?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오락거리가 없어진 세상이다 보니 아주 자기들끼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나 보다. 하여간…. 존나 웃기네.
근데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팩트로 밝혀진 것들은 있으니까.
일단 아까 그 뺀질이가 말했던 거에는 분명 그런 뉘앙스는 있었다. 그 김 실장이라는 여자와 회장과의 관계.
아까 들어보니 뺀질이도 이사라고 하는 거 같던데…. 게다가 성씨도 최 씨다.
결국, 그럼 그 새끼도 오너 일가 중에 하나라는 거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놈이 입 밖으로 냈고, 다들 침묵으로 긍정한 거 보면 회장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있다고 보인다.
아니면 정말 남녀관계가 아닌, 일적으로 확실한 사람일지도 모르지. 모든 관계가 섹스로 점철되는 건 아니잖아.
상당히 궁금해지는데? 김 실장이라는 사람?
근데 바로 업무 투입 시키라고 그랬으니…. 청주로 가려나?
생필품들. 내가 다 빼돌렸으니 다시 받아오긴 해야 할 거다.
그럼 결국 다시 거기 가긴 해야 할 텐데. 그 여자를 만나려면 청주로 가야 하나?
아니지. 결국, 물건을 가지고 이쪽으로 올 거다. 그럼 여기 있는 게 낫겠지?
근데 청주 상황도 궁금하긴 하고…. 아. 몸이 한 개밖에 없는 게 아쉽네.
"근데 그럼 그 여자는 그 벙커 위치를 알까요?"
"에이. 아무리 그렇고 그런 사이라도 벙커까진 안 알려주겠지. 거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가."
"하긴, 그렇겠죠?"
"최 팀장도 여기 로비까지가 한계였어. 아무리 젊은 여자라고 해도 그것만으론 벙커까진 무리지."
잠자코 있던 그들의 대화에 귀가 쫑긋해진다.
벙커? 지금 벙커라고 했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리 봐도 그 벙커라는 곳은 오너 일가가 있는 곳이다.
어디 꼭꼭 숨어있는 게 벙커야? 아니…. 그걸 이놈들이 어떻게 알지?
마음 같아서는 한 놈 잡아가서 채원이를 시켜 매혹을 걸고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여기 있었다는 흔적 자체를 남기고 싶진 않다.
그리고 그렇게 물어본다고 해도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든다.
쓸데없는 일이 될 확률이 높아. 그건 관두고….
벙커. 벙커라니. 나도 벙커라면 제법 잘 알고 있잖아? 이미 가지고 있는 벙커만 네 개라고.
본진, 멀티, 달천동, 이이리. 아니지. 청평까지 합치면 다섯 개네.
50인용 D타입…. 잠깐만.
서둘러 녀석들이 있는 곳을 나와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납에서 종이를 꺼냈다. 벙커 제작 회사에서 가져온 고객 명단.
분명…. 청평에 있는 곳 말고도 50인용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곳 주소가…. 찾았다. 그래. 역시 그랬어. 용인시 기흥구…. 이 근처야.
수원과 기흥…. 엎어지면 코 닿을 곳.
근데…. 여기가 연관이 있을까?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든다.
대호 그룹은 대호 건설도 있다. 벙커 같은 건 대호 건설을 통해서 만들면 될 텐데…. 과연 벙커 제작 업체를 쓸까?
아웃소싱? 뭐, 그럴 확률도 없는 건 아닐 거다. 대호 건설이 직접 만드는 것보단 전문 외부 업체를 써서 만드는 게 좋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확인할 만한 가치가 있다. 만약 여기 벙커에 대호 그룹의 오너 일가가 있다면 완전 대박인 거잖아?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 재벌 일가를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소리인데.
밑져도 손해 볼 게 없다. 당장 찾아가 봐야지.
문제는…. 이 주소만으로는 어딘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
하지만 나는 청평에서 좋은 것을 배웠잖아?
부동산 안에 있는 지도. 그거면 찾을 수 있겠지.
하늘을 날아 기흥으로 가서 눈에 보이는 아무 부동산이나 찾아 들어갔다.
첫 번째는 허탕, 두번째로 간 부동산에서 얼추 근처까지는 확인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맨 끝에 결국 벙커라고 생각되는 곳을 하나 찾았다.
지상은 공원인데…. 지하에 사람의 기척이 있다. 그것도 제법 깊숙한 곳.
근데…. 왜 기척이 하나밖에 없지?
50인용 벙커다. 게다가 오너 일가면 사람이나 수행원들까지 포함해서 사람이 적진 않을 거다.
근데…. 한명? 뭔가 이상한데?
그래도 가본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지.
대충 기척 이 있는 곳 바로 위에서 페이즈 아웃을 쓰고 땅 밑으로 향했다.
잠깐 어두워졌다가 순간 밝아지는 주변.
뿌옇긴 하지만 화려함이 물씬 느껴지는 방 안에 한 남자가 방을 둘러 보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40대 남자. 방을 쓰윽 한번 둘러보고 바깥으로 나간다.
뭐 하는 거지?
벽을 지나 남자를 따라가 보니 여기는 청평의 벙커보다 조금 더 화려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대체로 구조는 거의 비슷한 거 같다. 여기가 약간 더 큰 거 같긴 한데.
마음 같아서는 페이즈 아웃을 해제한 뒤 보고 싶지만, 이 남자 때문에 안 되겠다.
어차피 지금도 주변을 살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기에 그냥 남자를 따라 다녀본다.
한참을 벙커 안 곳곳을 확인하는 남자.
대체 뭘 하는 거지? 알 수가 없네.
그렇게 모든 곳을 확인하더니 중앙 계단을 향해 걸어간다.
바깥으로 나가려나? 청평은 이쪽으로 나가면 연수원 지하 계단이었는데.
여기는 과연?
눈앞에 나타난 엘리베이터.
그걸 타고 올라가는 남자.
나는 페이즈 아웃 상태기에 그냥 위로 쑤욱 올라왔다.
주변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고, 눈앞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리고 조금 전 그 남자가 내리더니 내 몸을 통과해서 뒤쪽으로 움직인다.
여긴 뭐야…. 공원 창고? 입구 참…. 요상하네.
그렇게 밖으로 나간 남자는 앞에 주차된 차에 올라타더니 바로 출발했다.
이런…. 페이즈 아웃 상태로는 차를 쫓아갈 수 없는데.
바로 해제를 하고 투명화와 비행을 쓴 뒤, 차를 쫓아간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왜 벙커를 한번 둘러보고 가지?
왜 이 벙커는 비어있을까? 보니까 상태는 멀쩡해 보이던데?
뭔가 헛다리를 짚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저 남자를 따라가 본 다음 판단해야겠다.
아무리 봐도 뭔가 있는 사람 같단 말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특이한 행동을 할 리가 없지.
남자가 탄 차는 비어있는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그리고 차가 향하는 곳 앞쪽에 뭔가가 보였다.
뭐지? 비행장? 수원에 비행장이 있어? 군부대인가? 공군? 암튼 신기하네.
그리고 차는 그 비행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듯 움직이는 자동차. 그리고 그 차는 격납고 같이 생긴 곳 하나로 바로 들어갔다.
와…. 비행장이라니. 여길 왜 왔지? 라고 생각하며 탐지를 한번 돌렸는데,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하. 아래쪽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기척들.
여기에도 있었구나!? 벙커가 한 개가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