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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입
수원시.
그리고 그 옆의 기흥, 그리고 동탄.
물론 수원시는 옛날부터 수원 화성이 있던 곳이긴 하지만 모두 대호 그룹 덕분에 발달한 곳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런 대호 그룹의 가장 큰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대호 전자의 본사.
오죽하면 그 앞 길이름도 대호대로다. 널찍한 길, 멋진 건물들. 그리고 종종 느껴지는 기척들.
사람은 있는데 그 숫자가 상당히 적다. 건물 하나당 몇 명 있는 게 고작인 정도.
마음 같아선 전부 잡아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선택과 집중.
아무 인간이나 다 잡고 다니기엔 시간이 모자란다. 게다가 쓸데없는 경각심도 줄 필요 없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에 있는 인간들은 천천히 필요할 때 잡아도 된다.
잡쓰레기 스킬을 가진 이들, 공격 스킬 한 개 혹은 두 개 들고 있는 민간인들.
이제는 그런걸 일일이 잡을 때가 아니다. 스킬이 많은 녀석, 조합이 잘 짜인 놈들, 그런 놈들 위주로 잡아야 한다.
땅을 파헤쳐서 씨앗을 일일이 파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다.
일단 대가리 내민 싹들부터 짓밟는다. 문제는….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열심히 찾아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고만고만한 씨앗들 파헤치고 낄낄거릴 시간은 없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지.
내가 파악하고 있는 로얄 클럽…. 이놈들이 전부가 아니잖아.
그놈들 말고도 다른 놈들이 어딘가에서도 열심히 싹을 틔우고 쑥쑥 자랄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일단은 팀장 놈이 말했던 곳으로 향한다.
대호 디지털미디어시티. D동 로비.
여기에서 수납 물품을 오너 일가에게 건네준다고 했다. 저택에서 물건을 가지러 나온다고 했었지.
이곳에 와보니 일부러 하루를 늦장 부린 보람이 있었다.
다른 건물보다 상당히 많은 인원, 그리고 부산스러운 모습.
그래…. 대 대호 그룹의 팀장. 그것도 잡찌끄레기가 아닌 오너일가와 연관된 핵심 인물이 실종됐으니 당연하지.
쉽게 볼일이 아니다. 무장 경호 인력을 열 명 넘게 데리고 간, 스킬이 네 개나 있는 남자.
그들로선 쉽게 상상이 안 갈 거다. 누가 감히 그런 놈을 건드릴까? 상상이나 할까?
탐지에 걸릴 걸 각오하고 안쪽으로 침투해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듣는다.
내 역할은 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음모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
그렇기에 일부러 이러고 있는 거다.
게다가 청주에서 봤던 그 떠버리. 페이즈 아웃을 쓰던 놈.
그놈 때문에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만약 탐지에 걸린다면 나는 대놓고 페이즈 아웃을 쓸 거니까.
생각해보면 유치한 짓이지. 과연 이런다고 이놈들이 그 떠버리를 의심할까?
과연 그 떠버리가 페이즈 아웃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긴 할까?
이건 이놈들이 대호 그룹씩이나 되니까 할 수 있는 짓이다.
상대의 정보수집능력과 수준을 높게 평가하니까 저지를 수 있는 짓.
먹히지 않더라도 의심과 반목의 서막을 열 수 있는 일.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은 녀석이 보였다.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 주변에 잔뜩 있는 경호 인력.
훤칠한 인물에 키도 크고 옷도 깔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옆에 있는 경호인들의 기세가 남다르다.
막 전직 특수부대나 그런 사람들처럼 보이는 모습.
아무리 봐도 평범한 민간인이라고 볼 수 없는 인간들.
눈빛부터가 다르다. 저 정도면 눈빛으로 버터 정도는 썰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루가 지났는데 아무런 단서가 없다고요?"
부드럽게 말하지만 그 말 안에 담겨있는 질책과 힐난은 상당히 강하다.
그건 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정장 입은 아저씨의 표정에서 여실하게 드러났다.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한 표정. 아무리 봐도 저 남자는 상당히 높은 인간이다. 근데…. 누구지?
대호 그룹의 오너 일가는 워낙 유명하기에 나 같은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수준이다.
근데 저 얼굴은 본 적이 없다. 상당히 뺀질뺀질해 보이는 녀석. 말투는 정중하지만 약간의 띠꺼움이 들어있다.
누구지? 하는 짓을 봐서는 상당히 빠워가 있어 보이는 놈인데.
지금 대호 그룹의 회장은 60이 다 돼가는 아저씨다.
상당히 정력적이고 활발한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아니지. 할아버지 소리를 듣기엔 조금 억울하지.
그리고 아들은 30대 후반 정도. 매스컴에 상무 직함을 달고 나오는 남자. 게다가 남자 형제는 없다.
그럼 쟤는 뭐야? 숨겨둔 아들 정도 되나? 모르겠네. 내가 모르는 건가? 사실 알고 보니 있었습니다?
암튼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저놈이 지금 이곳의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건 사실이니까.
뭐든 중요한 인물이겠지. 그러니 다들 저렇게 쩔쩔매는 거고.
"SG에서 물건을 받고 나간 것은 확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간 것까진 확인이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보고를 하는 남자. 얼굴은 죽을 맛. 왜 본인이 저렇게 쩔쩔매는 거야? 못 찾는 게 본인의 무능인가?
그냥 죄송한 마음을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인가? 저 남자는 그런 게 통할 사람 같지는 않은데.
"됐습니다. 찾는 거 그만두세요. 최 팀장 대체할 사람은 있습니까?“
아…. 죽은 팀장 놈 성이 최 씨였구나. 뭐, 이젠 상관없지만.
"네. 준비되어 있습니다."
"누구? 나도 아는 사람인가요?"
"네. 비서실의 김 실장입니다."
"김 실장? 김 유리씨? 흠…. 여자면 많이 얕잡아 보일 텐데. 게다가 젊잖습니까? 괜찮겠어요?"
"회장님께서도 인정하셨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이…. 하아. 설마 그런 관계입니까?"
뺀질이의 말에 다들 흠칫하는 모습.
그리고 그 반응에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뺀질이.
"알겠습니다. 인수인계시키고 바로 업무 투입 시키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일정은? 동탄 공장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스마트 팜 F라인 확인을 하셔야 하고 오후에는 천안의 공장입니다."
"오늘 밤은 천안에서 자야 하죠?"
"네.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준비해주세요."
하. 불쌍한 팀장. 저렇게 시마이 한다고? 아니…. 뭐 오래 붙잡고 있어 봐야 나올 거 없다는 것은 동의한다.
내가 일 처리를 그렇게 허접하게 하진 않았으니까.
SUV들도 꽁꽁 숨겨놓은 것 까진 아니지만 발각될 확률은 상당히 낮다.
결국 팀장의 실종은 오리무중이 되는 것은 정해진 일이긴 한데…. 그래도 포기가 너무 빠르잖아?
가망이 없는 걸 붙잡고 있는 게 아니고 빨리 털어버리는 건 좋은 선택이긴 하다,
근데 너무 정이 없네.
부품 갈아버리듯 바로 대체자를 투입 시킨다니…. 거참.
일 처리로 따지면 상당히 맘에 들긴 하다. 솔직히 지금 할 수 있는 일 처리 중에는 저게 가장 효율적이긴 할 거다.
하지만 진짜 매정하긴 하네. 물론 정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뭐랄까…. 싸가지가 없어.
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웃기네. 솔직히 감탄하고 있잖아. 이건 억까라고 밖에 안되네.
어쨌든 녀석들은 팀장의 실종에 대해서 깔끔하게 잊었다.
다음 일정을 향해 이동하는 듯한 모습.
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이런 상황을 캐치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의아해했을 거다.
다행이네. 타이밍이 좋았어.
결국은 저놈이 중요한 놈이라는 이야긴데….
일단 저놈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아마…. 저놈을 지키고 있는 무장병력 중엔 탐지 정도는 있겠지?
설마 없겠어? 없으면 뭐…. 다 죽는 거야.
능력 있는 놈들처럼 보이는데 좋은 스킬을 안 쓰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렇게 되면 그 대가는 죽음밖에 없다.
죽어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는 거다.
다 죽고 저 뺀질이는 나에게 잡혀서 매혹으로 알고 있는 걸 다 불어버리게 되는 거고.
탐지가 있어도 상관없다. 애초에 내 목적은 일부러 걸리고 페이즈 아웃을 쓰는 거다.
뭐가 됐든 나에겐 손해가 없는 상황. 이러면 일하기 편해지지.
녀석들은 바로 로비를 나섰다.
바로 따라간다. 투명화에 비행을 쓴 나는 미행도 하기 편하다.
고급 세단에 타는 뺀질이, 앞뒤의 승합차에 탑승하는 무장병력.
같은 차에는 안 타나? 음…. 왜지? 뺀질이 녀석도 스킬엔 자신 있나?
뭐, 일단은 기회를 노려본다. 무슨 스킬을 하고 있든지 나에겐 별 문제가 안 되니까.
차가 출발하고 나는 적당히 약간만 거리를 벌려 녀석들을 따라간다.
항상 안 들키려고 발악하던 게 익숙해서 그런지 이렇게 대놓고 발견해달라고 따라다니는 건 정말 어색할 정도.
그렇다고 또 너무 대놓고 따라가는 것도 안된다. 적당히…. 적당히 이쪽에선 몰래 따라가고 있다는 뉘앙스를 줘야 해.
하. 연기도 쉽지 않네. 드럽게 어려워.
차를 한참 따라가니 녀석들의 목표가 어딘지 알 거 같다.
커다란 공장.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공장.
그쪽으로 향하는 차량.
그렇게 차들은 공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살짝 들어가기가 머뭇거려질 정도의 위압감이다. 어디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느낌.
그래도 페이즈 아웃을 믿고 가본다. 근데…. 설마 이놈들에게도 페이즈 아웃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있을 수도 있겠네. 충분히 가능하다.
내가 나라를 좌지우지할 재벌 총수라면 사람을 갈아 넣어서라도 모든 스킬은 다 찍어보게 할 거다.
스킬의 효과, 장단점, 상성, 대응법…. 그것부터 밝히려고 할 거야.
비록 내가 빠르긴 하지만 있는 놈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나보다 늦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그러고 보면…. 그 떠버리 놈도 페이즈 아웃을 우연히 찍은 게 아닐 수도 있어.
SG…. 거기도 가능하겠지. 내가 말한 것들.
티어4 스킬이라고 해봐야 모두 30만짜리 스킬을 배워도 90만밖에 안된다.
사람 1,800명만 죽이면 그 정도 코인은 나온다.
뭐, 포션 가격도 있으니 실제로는 더 들겠지만….
근데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녀석들은 예상보다 막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몸좀 사려야겠네. 모든 가능 성을 염두에 둬야겠어.
차에서 내린 뺀질이. 그리고 무장 인원들.
그리고, 녀석들의 움직임이 약간 변했다.
불길한 느낌에 혹시 모르니 빠르게 몸을 뒤쪽 위로 날렸다.
그리고 내가 있던 곳으로 발사되는 공기총.
와씨. 계속 보고 있어서 다행이다. 잠깐 방심했으면 벌집이 될 뻔했네.
그래…. 날 파악했다 이거지? 그럼 조금 골려볼까?
하늘 높이 날아서 녀석들의 머리 위에 떴다.
100미터 이상 되는 높이기에 녀석들은 나를 탐지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땅으로 내려갔다.
뺀질이 바로 옆. 녀석들이 함부로 공기총 질을 못 하는 곳으로.
머리 위로 뚝 떨어져 내려서 그런가? 녀석들은 나를 못 알아차렸다.
음…. 탐지가 여러 명이 아닌가? 뭐, 그건 알아볼 방법이 있다.
이 짓을 많이 하다 보면 포션 처먹는 놈이 나오겠지. 그놈이 탐지맨 일 거고.
이거…. 상당히 재밌네. 농락하는 기분이랄까?
이럴 목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과연…. 이놈들은 어떻게 하려나?
녀석들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뺀질이는 한 남자의 뒤에 반쯤 몸을 감추고 있다.
음…. 저놈이 대장인가? 까칠하게 생기긴 했네.
근데…. 탐지맨이 탐지를 안 쓰고 있나? 왜 바로 앞에 있는 나를 못 알아채지?
아니면 나를 이미 알아채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걸 수도 있지. 녀석들은 모두 무전기를 꼽고 있으니까.
나는 슬금슬금 뺀질이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러면 함부로 나에게 총질은 못 하겠지.
원거리 논타겟팅 스킬이든 광역 스킬이든 총알이든 이게 문제다.
막 쏠 수 없다는 것.
자칫 잘못하면 아군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제 슬슬 페이즈 아웃을 써야겠다.
무슨 스킬이 나올지 모르니까. 막말로 저 뺀질이가 갑자기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쓴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대로 몸을 날려 거리를 확 벌렸다. 그리고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쓴다.
그리고 나는 뿌옇게 변한 세상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거리를 벌린 곳으로 따라오는 총구들. 페이즈 아웃을 썼기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투칵투칵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다.
역시…. 만만히 볼 놈들이 아니야.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절대 쉽지 않은 놈들.
SG 놈들 잡았을 때처럼 방심하고 있을 때 쳐야지, 이렇게 경계하고 있으면 쉽지 않을 거다.
혹시 모르니 자리를 이동해서 녀석들과 거리를 더 벌렸다.
음…. 이정도면 되겠지?
이 정도면 광역 스킬 무효화가 있는 놈이 있어도 맞지 않을 것이고 페이즈 아웃을 쓰는 놈이 쓴다 해도 바로 발각되지는 않을 거다.
흠…. 이제 어쩐다. 저놈들은 경각심을 가질 테니 당분간은 붙는 의미가 없다.
아까 그 로비나 더 가봐야겠다.
인수인계하는 놈이…. 아니지. 여자라 그랬지? 인수인계하는 년이 온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가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여자라면 편하지. 굳이 펜스까지 안 데려가도 되잖아.
빨리 왔으면 좋겠네. 차라리 나에겐 잘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