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19화 (31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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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차는 조용하게 고속도로를 달린다.

다행히도 오는 길에 추격은 없었다.

혼자 있을 때는 헬기 할애비가 와도 추격 정도는 쉽게 뿌리치겠지만 팀장 이놈을 데리고 있기에 지금은 조금 골치 아프다.

가진 게 많은 놈이다. 수납 안에 들어있는 것도 그렇고 머리에 든 것도 그렇고.

전부 다 탈탈 뱉어내게 해야 하니 포기할 순 없다. 보물 고블린이잖아. 빼먹을 수 있는 건 다 빼먹어야지.

그렇게 중부고속도로를 계속 달리다가 외곽순환도로로 접어들고 한참을 더 달려 의정부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차를 몰아 펜스로 도착했고, 나를 알아본 입구의 집행부가 서둘러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팀장 놈을 끌고 집무실로 향하자 어느새 이야기를 듣고 온 정 부장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근데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꼴을 보니 친구는 아닌거 같고."

"보물 고블린이요."

"네?"

"뭐, 보시면 알 겁니다. 그…. 죄송한데 채원이 좀 불러주시겠어요?"

"아…. 채원 씨요. 알겠습니다."

정 부장은 잠시 나갔다가 금방 채원이와 함께 돌아왔다.

강채원. 매혹 스킬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

내가 펜스에 온건 채원이 때문이다. 그나마 매혹 스킬을 가진 여자 중에서는 가장 믿을 만한 여자니까.

"어머. 왔어요?"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채원.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

그래서 그런지 더 이뻐 보인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야.

그리고 테이프에 묶여있는 팀장을 보고 알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나에게 말한다.

"이 남자를 매혹해야 하는군요?"

눈치도 빠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맞아. 그전에…. 너에게 매혹 좀 걸게?"

안 걸어도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고 싶다. 그편이 서로에게 깔끔하지.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은 채원. 이미 그녀는 나에게 호감이 있는 상태다. 그것도 제법 많이.

그렇기에 이런 당당한 나의 말에도 별로 거부감이 없는 거겠지. 다행이야.

바로 채원에게 매혹을 걸고 그녀에게 말했다.

"이 남자에게 매혹을 걸고 내 말을 순순히 들으라고 이야기 좀 해줘."

"알았어요. 바로 해요?"

"응."

"저도 계속 봐도 됩니까?"

정 부장의 질문. 나는 그런 그를 보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여기 계속 있으세요. 정 부장님도 알아두셔야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정 부장. 그사이 팀장은 매혹에 걸렸고 채원이의 지시를 받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마체테를 들어 팀장의 몸에 있는 테이프를 뜯었다.

손발이 자유로워지고 입이 열리게 되자 팀장은 한결 편한 모습이 되었다.

채원이를 바라보며 웃는 남자. 으. 기분 나빠.

아깐 그렇게 냉랭한 모습이었던 놈이 저렇게 흐물거리는 표정이라니…. 진짜 싫네.

기분 나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서둘러 해야지.

"수납에 있는 물건들 다 꺼내."

내 말을 들은 팀장이 수납을 열더니 하나씩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팀장이 수납이 있다는 걸 알자 정 부장과 채원이는 살짝 놀란 눈치.

하지만 나는 저 팀장이 물건을 꺼내는 걸 보면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야. 잠깐 멈춰봐."

어리둥절한 팀장. 나는 녀석이 꺼낸 박스에 다가가 녀석을 보고 말했다.

"수납을 왜 그렇게 병신같이 쓰는 거야. 잘 보고 따라 해봐. 한번 보면 너도 할 수 있겠지."

박스의 밑에 수납 입구를 열고 박스를 삼켰다.

그리고 다시 수납을 열어 바닥에 박스가 나타나도록 뱉어냈다.

그걸 보고 눈이 커지는 팀장. 그러더니 바로 자기도 해본다. 금세 익숙해져서 자기가 가진 물건을 전부 꺼내놓은 녀석.

"저거…. 저건 뭡니까?"

"생필품요."

"생필품요!?"

"이거…. 조금 봐도 돼요?"

채원이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박스들로 다가가 하나씩 열어보던 그녀는 놀랍다는 듯 계속해서 감탄한다.

"신기하네요…. 이런 물건들이…. 게다가 이만큼이나. 이제는 구하기 힘든 것들인데…."

역시 저런 반응은 재밌어. 아마 회귀를 보면 기절하겠지?

일단 이 팀장 놈 해결하면 여기도 회귀 파티 한번 신나게 해줘야겠어.

암튼, 일단 수납 안에 들은 건 전부 꺼냈으니 이젠 머리 안에 들은 걸 꺼내볼 차례다.

굳이 서서 할 필요는 없기에 소파에 앉았고 정 부장과 채원이도 옆에 앉았다.

"뭐해? 너도 앉아."

팀장 역시 자리에 앉자 나는 바로 그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네 소개를 좀 해봐."

"네?"

"자기소개. 몰라? 아이엠 그라운드라도 해줘야하나?"

내 농담에 채원이가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정 부장 역시 그런 거 보니 망한 농담인가 보다.

너무 아재틱했나. 에이씨. 아이엠 그라운드가 어때서! 자기들은 안 해본 것처럼.

"대호 그룹 소속. 맞아?"

"아…. 네. 맞습니다. 대호 그룹…. 맞죠."

"반응이 별로 시원찮은데?"

"말이 대호 그룹이지 지금은 그냥 오너 일가와 몇몇 추종자들을 위한 곳이니까요."

"뭐,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닐까? 암튼, 그래도 대호 그룹이면 제법 큰데. 걔들은 뭘 하고 살지?"

"네? 질문이 너무 막연합니다. 뭘 하고 산다니요."

음...어떻게 질문해야하나.

"그래. 그럼 하나하나 천천히 가보자고. 오늘 받아온 저 생필품들. 저거에 대한 대가를 안 치르고 왔던 거 같던데. 저것의 대가는 뭐지?"

"대가는 당연히 식량입니다. SG는 모든 대가를 식량으로만 받습니다."

"그래. 뭐 그럴 거 같았어. 저 커다란 도시를 유지하려면 식량이 어지간히 필요하겠지."

정 부장과 채원이는 나와 팀장의 대화에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

대호, SG, 생필품, 도시.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니까.

"그럼 대호의 주력은 식량 생산인가?"

"네. 그렇습니다."

"식량도 여러가지가 있을 거 아냐? 쌀도 있고, 축산도 있고, 뭐 여러가지 일 텐데?"

"저희는 쌀과 밀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흐음. 쌀이랑 밀이라고? 그럼 너희도 비닐하우스 같은 거 만들어서 하냐? 지금 같은 겨울엔 농사 못 짓잖아?"

"아뇨. 저희는 스마트 팜을 하고 있습니다."

"아…."

역시 이렇다.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하는 건 이미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잔뜩 하고 있다니까.

근데 사실 저게 맞다. 물과 전기가 무제한인데 스마트 팜을 안하는 게 비정상적이지.

게다가 대기업 정도면 전문가들은 발에 채고 넘칠 거다. 게다가 규제고 제한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못할 이유가 없겠지. 자재나 부지도 남아돌고.

결국, 있는 놈들에겐 애초부터 식량은 별다른 위협이 아니었던 거다.

SG 역시 마찬가지다. 저렇게 많은 인간이 사는 도시 정도는 감당할 자신이 있었던 거겠지.

자신들이 굳이 식량을 생산하지 않아도 여유가 있었던 거야.

그러니 이렇게 분업을 해서 각자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고 있던 거고.

게다가 SG역시 자체적으로 식량 생산도 하고 있을 거다. 분명히.

바보가 아닌 이상 식량 같은걸 100퍼센트 의존으로 해결할 리가 없다. 정말 필요한 만큼은 자신들이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겠지.

스마트 팜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너희는 어디에 있냐?"

"네?"

"너희 본거지가 어디냐고."

"아. 저희는 수원입니다."

"수원? 아…. 하긴. 거긴 원래부터 대호가 많이 있었지."

서울이 왜 사람이 적어지는지 알 것 같다.

그저 사람이 많이 모여있었을 뿐이지 세상이 이렇게 되고는 그걸 붙잡을 놈들이 없던 거다.

대호는 수원에 SG는 청주에…. 다들 그렇게 힘 있는 놈들은 자신들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힘을 재편한 거겠지.

그렇게 따지면 서울은 매력이 없긴 하다. 뭔가를 하기엔…. 너무 빽빽해.

"또 너희처럼 남은 녀석들이 있나? 나름 대기업 같은 녀석들?"

"제가 알기론…. 몇 있습니다. 각자 주력 물품들을 정해서 그걸로 서로 교환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 뭐가 있지? 아는 대로 말해봐."

"계림이라고…. 닭고기 전문으로 하던 곳이 있습니다."

"알지."

"거기가 전북에 있는 거로 압니다. 거기에서 모든 닭고기를 유통하죠."

"그래…. 그리고?"

"강원도에 BFV라고 있습니다. 거기는 돼지고기랑 소고기를 담당하고요."

"BFV."

"그리고 부산에 레테. 거긴 무역을 위주로 합니다."

"레테. 그래. 그렇군."

전부 로얄 클럽에 맨 윗줄에 있는 놈들이다.

결국, 그런 거다. 세상이 망하고 발 빠르게 행동한 놈들.

아무리 대기업이고 난다긴다하는 놈들도 세상의 변화에 그렇게 쉽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보다는 더 유리했겠지. 가지고 있는 것, 인적 자원, 인프라. 비교가 안 될 테니까.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놈들이 자리를 잡고 로얄 클럽 같은 걸 하고 있는 거겠지.

먹고살 만해지니까 사치도 부리고. 아니…. 사치 같은 건 계속 부려왔으려나?

대충 로얄 클럽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세상이 망했어도 먹고 사는 것, 삶을 영위하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의 근본적인 것들을 기반 삼아서 체질 개선을 성공한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모여서 정보를 나누고 교류를 하며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하게 다지는 자리.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제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다.

아마 이 정도가 한국에 남아있는 세력 중에는 가장 큰 녀석들이겠지.

펜스 정도 규모는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보이게 만드는 규모들.

근데 그렇다고 막막하거나 숨이 막히거나 그러진 않는다.

어쨌든 덩어리가 크다는 것은 찌를 수 있는 곳이 넘쳐난다는 거잖아.

잠시 생각을 해본다. 저런 놈들을 전부 다 죽여버려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가만둬도 서로 물건 바꿔가면서 알아서 잘 살지 않을까?

어차피 100년도 남지 않은 인생. 잘 숨어 산다면 저런 놈들은 알아서 잘 살 거고 우리도 문제없이 살 수도 있을 거다.

그래. 그렇긴 하지. 저들이 그럴 마음이 없다면 그렇겠지.

나는…. 나의 생존을 타인의 자비에 기대고 싶지 않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저들이 지금 가만히 있다고 나중에도 계속 가만히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언젠간 저들이 마음먹고 휘두른 칼날이 내 턱밑에 닿았을 때 후회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그때 가서 눈물을 흘린다고 저들이 봐줄까? 그럴 리가. 나는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청주. 그래 청주.

그만한 인원이 스킬도 쓰지 않고 평화롭게 일상을 사는 곳.

그런 것들은…. 전부 죽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 이들. 가만히 둬도 알아서 평화롭게 살다가 죽을 사람들.

그들이 살육에 절어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가지고 있는 코인이라고 해봐야 500코인 밖에 없을 거다.

그런 녀석들을 지금 당장 학살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저금통처럼 살려두는 게 이득일 수도 있다.

내가 경계해야 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나보다 강해질 놈들,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놈들.

그런 놈들만 쳐 죽이면 되는 거야.

지금까지 보이는 족족 사람을 죽인 나에게도 변화란 거 필요한 때가 온 거다.

모든 사람을 죽이겠다고 패기롭게 외친 나지만…. 실질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잖아.

죽이는 데 순서를 두는 것.

당장 죽여야 할 놈들부터 순서대로 차례차례 죽이자.

그렇게 해서 단기간의 평화를 이어가는 거다. 괜히 급하지 않은 놈들을 죽이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대충 방침이 정해지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팀장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오랜 시간을 들여서 물어봤다.

기업의 규모, 내부 조직, 오너 일가, 다른 그룹들의 정보들.

나름 이것저것 많이 알고 있기에 하나하나 전부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일단은 정리해놓고 팀장을 바라본다. 이제 이 녀석은 어떻게 할까.

"이 남자는 어떻게, 저희가 관리해 볼까요? 아직 더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을 거 아닙니까?"

정 부장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본다.

정 부장과 채원이라면 이 녀석 하나 감시하는 건 크기 어렵지 않을 거다.

매혹은 잔인하고 정 부장 역시 어설픈 사람은 아니다.

이 남자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감금해놓고 관리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매혹에 걸린 채로 이야기했기에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거짓 없이 이야기했겠지만, 이 남자의 정보가 100퍼센트 정확한 것은 아닐 거다.

어느 정도 교차검증은 필요하겠지.

게다가 이 남자의 스킬이 조금 맘에 안 든다.

반사가 있다. 수납은 마스터가 맞았는데 티어4의 스킬을 찍지 않고 다른 스킬들을 찍었다.

감전, 반사, 수납, 비행.

참…. 효율적인 스킬들. 암. 대기업의 팀장씩이나 되면 이 정도는 되야지.

그저 상대가 더러웠을 뿐이다. 사실 저 정도면 어디 가서 쉽게 죽을 능력은 아닌데.

"반사가 있어서 제가 없으면 상당히 까다로울 거에요. 그러니…. 그냥 지금 죽이죠."

반사는 힘들다.

희주. 그 여자를 죽였던 가장 큰 이유가 반사 때문이었으니까.

단 한 번만 실수해도 관계가 역전되어버리는 스킬. 특히 매혹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매혹과 반사는 상성이 안 좋아. 당장 정세희 그년 역시 정종찬의 반사에 망했잖아.

굳이 변수가 될만한 것들을 남겨 놓고 싶진 않다. 어차피 얻을 만한 것들은 거의 다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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