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18화 (31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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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싫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마주친 남자 놈.

마치 내 안방에 남자 새끼가 신발 신고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그만큼 껄끄럽고 더러운 느낌.

게다가 저놈은 웃으면서 반갑다는 듯한 말까지 하고 있다. 불쾌하고 기분 나쁨이 몇 배로 늘어나는 기분.

언제 어디에서든 내 포지션은 매복자였고 관찰자였다.

언제나 주변에 신경을 쓰며 먼저 발견하고 몸을 숨기며 훔쳐보는 쪽이다.

이렇게 맨몸으로 몸을 드러내는 건 상대에 대한 파악이 어느 정도 됐을 때여야 한다.

아니면 상대가 아무 짓을 못 하는 상황이거나.

맞대결은 멍청한 놈들이 하는 거다. 왜 확실하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지? 그런 병신 같은 짓을 할 필요가 있어?

페이즈 아웃은 나의 덤불이었고 연막탄이었으며 위장막이었다.

스킬이 만들어준 최고의 투명망토. 투명화 스킬보다 강력한, 존재 자체의 은폐.

그렇기에 마음껏 사용했고 그만큼 믿었다.

근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스킬에게 배신 당한 기분.

아니지. 스킬은 잘못한 게 없지.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맹신한 거지.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안에서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덕분에 저놈에게 죽을 염려는 없지만 그렇기에 나도 저놈을 죽일 수 없다.

같은 스킬을 쓰는 사람의 반가움?

미친 소리 하고 있네. 페이즈 아웃에 이런 결함이 있는걸 알았는데 같은 스킬을 쓰는 사람을 반가울 수가 있나?

당연히 죽여 없애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이 공간을 전혀 모르는 놈이랑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남자치고는 곱상한 외모에 약간 긴 머리, 호리호리한 몸.

키는 조금 큰 데 그리 튼튼해 보이진 않는다.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여자로 착각했을 수도 있는 외모. 이대로 달여가서 주먹질만으로 녀석을 죽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힘들 것 같다.

저래 보여도 알고 보니 복싱이나 격투기를 오래 한 녀석일 수도 있고, 주머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쪽 세계에선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

내가 바로 달려가서 녀석의 입을 틀어막는 게 아닌 이상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도 녀석은 해제라는 단어만 말하면 불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무 의미가 없는 싸움. 그러니 저 녀석에게 다가가는 건 최악의 수다. 얻을 게 전혀 없는 짓.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건 녀석을 사람 없는 곳으로 유인해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무효화 수면을 거는 것.

문제는…. 저놈이 병신이 아닌 이상 나를 순순히 따라올 리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가 복잡하다.

그리고 녀석은 자꾸 주둥이를 놀리며 내가 깊게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스킬 네 개 배운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뭔지 모르는 이 스킬을 배운 사람이라니! 당신은 무슨 이유로 이 스킬을 배웠어요? 혹시 주변에 이 스킬을 또 배운 사람이 있나요? 그거 아세요? 페이즈 아웃에는 커다란 비밀이 있어요! 혹시 알고 있어요?"

진짜 제일 싫은 타입이다. 그냥 남자도 싫은데 수다스러운 남자는 정말 끔찍하다.

눈치 없고 말 많고 마이 페이스인 새끼들. 게다가 저렇게 곱상하고 키도 크면 더 싫다.

주변 놈들이고 뭐고 바로 해제한 다음 무효화와 수면을 걸어버리고 싶은 마음.

사람이 없는 쪽으로 가고 싶은데, 녀석이 있는 쪽이 입구다.

게다가 저놈이 페이즈 아웃을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놈에게 아무런 정보나 스킬 사용법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

제길. 짜증 나.

그대로 몸을 돌려서 창구를 훌쩍 뛰어넘었다.

물론 그대로 통과할 수 있지만, 녀석이 보고 있기에 통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페이즈 아웃 스킬을 배웠다고 누구나 사물을 통과하는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내가 그렇게 도망가자 녀석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쫓아온다.

오히려 녀석이 창구를 그대로 통과해 쫓아오는 모습.

통과하는 방법은 아는 건가? 그럼…. 이건?

바로 벽을 통과한 다음 그대로 보이지 않는 계단을 생각하며 천장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벽을 통과해서 나온 녀석. 그리고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웃더니 저놈 역시 나를 따라 계단을 밟고 올라오듯이 따라온다.

자기가 해놓고도 신기한 듯 주변을 돌아보며 나를 따라오는 녀석.

웃기네. 눈치도 빠르고 응용도 잘해. 게다가 상상력도 빈약한 건 아닌가 봐.

나는 그대로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가니 공장의 지붕이 나왔고, 나는 녀석이 나오길 기다렸다.

지붕에 녀석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서서히 녀석의 몸이 올라온다.

아직도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면서 나를 향해 말을 거는 모습.

"우와! 이거 진짜!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하죠!? 당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진짜 신기하네! 근데 나는 어떻게 했지!? 이럴 수가 역시 나는 천재였나!? 한번 본 걸 바로 그대로 따라 하는 나의 이 무시무시한 센스…."

그렇게 녀석이 지붕 위로 올라오자마자, 나는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바로 광역 스킬 무효화를 썼다.

갑작스럽게 현실로 끌려 나온 녀석, 순간 얼굴에 비친 당혹감.

그리고 녀석은 잠들었다.

멍청한 새끼. 뭐가 이렇게 허접해? 왜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 쫓아와? 병신인가? 말만 정말 많은 떠버리 새끼.

그렇게 말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녀석이다. 페이즈 아웃을 배우고 있다니.

이 녀석이면 그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 사람을 죽이면 생기는 검은 구체. 거기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지?

잠깐…. 근데 안 되겠네. 페이즈 아웃을 쓰는 순간 걸려있던 매혹이 풀리잖아.

아니다. 사람을 죽이라고 한 다음에 바로 그 자리에서 페이즈 아웃을 쓰라고 하면 되나?

그럼 쓰는 순간 검은 구체에 닿겠지?

근데 불안 요소가 너무 많다. 검은 구체에 닿고 나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페이즈 아웃을 쓰게 하면 그다음부터는 완전히 무방비잖아.

걸려있는 모든 스킬이 풀려있으니 더는 내가 컨트롤 할 방법이 없다.

음…. 어쩌지? 방법이 없나?

아…. 팔다리의 힘줄을 다 끊어버리면 되나? 그럼 페이즈 아웃을 써도 못 움직이겠지?

아닌가? 그 공간은 상상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잖아. 놓칠 수도 있다는 건데….

일단, 이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이놈을 잘 결박해서 전기차에 넣어놔야 해.

아까 잡힌 팀장 녀석…. 금세 친구가 생기겠네. 외롭지는 않겠어.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뭔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소리. 헬리콥터?

떠버리 놈을 묶기 위해 수납에서 테이프를 꺼내려다가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했다.

근데 어디인지 한 번에 확인할 수가 없었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왜 한 번에 방향을 못 맞췄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 방향에서 헬기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네 대나.

씨발? 저게 뭐야? 분명히 내 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투명화와 반사, 비행을 쓴 나는 바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나를 따라 오는 헬리콥터 한 대.

씨발? 쫓아온다고?

투명화를 쓰고 있는 나다. 근데 그런 나를 이렇게 정확히 쫓아온다는 건…. 탐지가 있다는 소리다.

근데 그 움직임이 살짝 엇박자로 느리다. 그렇군. 조종사가 탐지는 아닌가 봐?

마음 같아서는 헬기 근처로 가서 조종사에게 수면을 먹이고 싶은데…. 헬기를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

수면의 거리도 60미터나 되기에 보이기만 하면 재울 수 있지만, 앞 유리의 반사광 때문에 모습이 잘 안 보인다.

게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거리를 벌리기에 타겟을 잡기도 쉽지 않은 모습.

아 안 좋네. 페이즈 아웃을 써야 하나?

근데 그러면 저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의 수면이 풀린다. 아. 씨발. 저 새끼는 처리 해야 하는데.

저 새끼는 나를 봤다고. 그러니 죽여야 해. 근데…. 대체 저 새끼는 뭔데 헬기가 네 대나 나타나지?

문제는 나를 쫓는 헬기 한 대 때문에 다른 헬기 세 대가 떠버리 새끼한테 붙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공중에서 정지해인 헬기. 그리고 뭐라고 하더라? 레펠? 그렇게 줄을 타고 지붕으로 내려오는 군인 두 명.

바로 떠버리에게 다가가 확인하는 모습. 씨발. 저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나에게 달라붙는 헬기가 너무 짜증 난다. 무리를 해서라도 붙어서 탐지 스킬인 놈만 재우면….

아! 맞다!

헬기를 피하면서 수납을 열어 아까 주웠던 공기총을 꺼냈다. 근데…. 이거 어떻게 쏘는 거지?

그냥 방아쇠만 당기면 되나?

투칵!

혹시 몰라서 떠버리 놈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니 그대로 총이 발사됐다.

어우 씨 깜짝이야. 아쉽게도 떠벌이는 맞지 않았고, 떠버리 근처에 내렸던 군인 둘이 재빨리 떠버리의 몸을 덮었다.

씨발? 뭐지? 저 새끼는 뭔데 저렇게 지켜?

아니 애초에 헬기가 네 대나 뜬 것부터가 이상하다. 바로 저놈에게 다가온 거 보면 무조건 저 떠버리 새끼랑 관련이 있는 거다.

게다가 군인들이 몸으로라도 총탄을 막는다고? 그럼 백 프로잖아!? 떠버리 새끼가 대단한 놈인가 본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헬기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투칵투칵투칵투칵투칵투칵

"으윽…."

씨발. 뭔가 맞았다. 배랑 허벅지. 한발은 총? 들고 있던 총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아마 가슴에 맞을 걸 총이 대신 맞아준 거 같은데.

죽을 것같이 아픈 통증이 나를 감쌌고 몸이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진다. 아 씨발…. 비행이 잘 안 된다. 비틀거리는 몸뚱이.

이렇게 추락사를 한다는 건가? 충격받은 건 몸인데 왜 비행이 흔들리냐고.

땅이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나는 겨우 한마디를 중얼거릴 수 있었다.

"페이즈 아웃…."

계속해서 총알이 날아왔기에 어쩔 수 없이 쓴 페이즈 아웃.

그리고 땅 근처에서 겨우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씨발…. 배랑 허벅지가 너무 아파서 만져봤지만 피는 안 난다.

위력을 줄인 총인가? 어제 그 번개 파동 쓴 놈을 제압할 때 썼던 그런 총인가보다.

덕분에 살았네. 젠장. 하지만 몸이 너무 아프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

아까 그 떠버리 새끼는 페이즈 아웃을 쓸 수 있잖아. 빨리 벗어나야 해.

녀석은 수면에서 깨어났을 테니 곧 나를 찾아 다닐 거다.

일단은 아무 건물이나 마구 통과해서 몸을 숨겼다. 벽을 통과는 할 수 있어도 그 너머를 볼 수는 없기에 일단은 안심이다.

조심스럽게 배를 까보니 크게 멍이 들어있는 게 보인다. 시퍼렇게 멍든 모습. 씨발. 기절 안 한 게 용하네.

일단 포션을 하나 사서 먹었다. 여기 안에서도 상점은 열려서 다행이야.

그렇게 포션을 하나 먹고 숨을 고르니 그나마 살 것 같아졌다.

와. 씨발. 오늘 정말 가지가지 하네. 진짜.

겨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기에 바로 그 지역을 벗어났다.

적당히 벗어나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투명과 반사, 비행을 썼다.

혹시나 아까처럼 비행이 제대로 안될까 봐 걱정했지만, 이번엔 아무 문제가 없다.

씨발…. 무섭네. 통증으로 비행 컨트롤이 흐트러진다고?

좋은 걸 배웠어. 날아다니는 새끼들은 통증을 주면 된다는 거잖아?

창고 쪽을 보니 아직도 헬기 세 대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한대가 계속해서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모습. 뭐…. 저렇게 돈다고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분명 아까 그 떠버리 새끼가 내 스킬을 말했을 텐데?

아…. 빌어먹을. 거지 같은 상황이다. 그 새끼…. 죽였어야 했는데.

내 얼굴도 보고 스킬도 본 놈이잖아. 사실 그렇다고 해도 내게 큰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다.

뭐 어쩌겠어. 내 얼굴이 여기저기 팔려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찝찝했다. 뭔가 잘못 걸린 느낌.

아무래도 녀석은 심상치 않은 위치인 거 같단 말야. 상당히 귀찮아질 것 같아.

모르겠다. 씨발. 일단은 빠져야지. 지금은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야.

휴게소까지 와서 전기차의 문을 열자 팀장 새끼가 나를 노려본다.

그 눈빛이 기분 나빠서 그냥 재웠다. 씨발놈. 왜 꼬라보고 지랄이야.

이대로 움직여도 되나? 녀석들은 헬기를 운용할 수 있는 놈들이다. 함부로 움직였다가 발각되면 상당히 귀찮아지는데.

하늘로 다시 올라가 주변의 상황을 살펴본다.

다행히 이 정도까지 왔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는 거 같다. 그냥 지금 빠르게 여길 뜨는 게 낫겠어.

바로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처음으로 느낀 찝찝함을 간직하면서.

근데…. 대체 그 떠버리 새끼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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