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15화 (31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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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공기총. 어쨌든 총이다.

화약이 아닌 압축 공기로 납탄을 쏘는 무기.

그래…. 총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서 저런 것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왜 그랬지? 한 번도 쓰는 놈을 못 봐서 그랬나?

아마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그럴 거다. 총포, 도검, 화약류에 대해서 민감한 나라잖아.

지금 저들은 남자를 기절시키는 수준으로 쐈지만, 분명 죽일 수도 있을 거다.

공기총으로 멧돼지 같은 것도 사냥하잖아. 분명 살상력이 있는 무기라고.

저걸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저들과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물론 이길 수는 있다. 일단 페이즈 아웃이 있으니 해왔던 대로 하면 되겠지.

광역 스킬 무효화와 수면의 조합은 여전히 유효하다. 솔직히 이건 막을 수 없어.

하지만 네 명까지다. 그 이상이 온다면? 꼬리를 말고 도망가야지.

비행과 투명화는 불안하다. 공기총이 어디까지 날아올지 모르니까.

총이란 그렇다. 단 한발. 한발만 맞으면 게임이 끝나는 무기.

심지어 총을 들고 겨눈뒤 방아쇠만 당길 수 있다면 10살 먹은 어린아이한테도 죽을 수 있는 무기다.

게다가 더 문제인 건…. 공기총이 소총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권총 타입도 있을 거고 여러가지가 있겠지. 잘은 모르지만…. 공기총으로 저격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몸을 드러내는 것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저들은 귀에 전부 이어폰 같은 걸 꽂고 있다.

무전기를 쓰고 있다는 소리. 빠른 정보 전달이 가능하고 언제든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뜻.

씨발…. 지금까지 봐왔던 놈들이랑은 수준이 다르다.

게다가 저 모습들은 충분히 훈련을 받은 이들이다.

정규 군사 훈련인지는 내가 알아낼 능력이 없지만, 결국은 어중이떠중이나 갑작스럽게 뽑힌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소리.

각개 격파는 할 수 있을 거다. 아무리 무전기를 쓰고 총을 들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스킬은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간단하니까.

게다가 여자군인들도 있기에 매혹도 충분히 쓸 수 있다.

그리고 또 몇 명만 잡아내면 저 공기총을 내가 쓸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그다음엔?

무전기를 듣고 달려온 저런 녀석들을 잔뜩 상대하게 되겠지?

이 커다란 도시에 저런 놈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열 명? 스무명? 그럴 리가 없다.

이 넓은 도시를 그 정도 인력으로 커버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남자 한 놈이 난리를 피우는데도 거의 열 명 가까운 군인들이 모였다.

그 말은 치안을 유지하는 인력이 모자라는 건 아니라는 말.

백 단위가 넘어서는 훈련받은 이들을…. 나 혼자 전멸시킬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납탄을 모두 피하면서?

아니 뭐…. 지독하게 게릴라를 펼치면 가능할 수 있다고도 본다.

페이즈 아웃은 저들이 어떻게 할 수 없겠지.

게다가 매혹도 있잖아. 매혹은 지독한 스킬이다. 게다가 손에 저런 걸 쥐여준다면 일당백도 가능할거고.

게다가 끌어당긴 여자도 저 무전기를 쓸 수 있을 테니 정보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도 쓸데없는 짓을 하는 순간 바로 제압될 거다.

즉시 사살될지도 모르지. 총은 그게 가능하니까.

그래. 정말 내가 좆빠지게 개지랄을 떨어서 결국 이들의 치안을 모두 무력화시켰다고 하자.

그다음은? 일방적인 학살인가?

이게 문제다.

나는 아직 이 도시를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했어.

공기총과 치안병력. 물론 강력하고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야.

나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지울 수 있나?

내가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건…. 그들 역시 사람을 죽인 이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남의 생명을 끊는데 망설이지 않게 된 사람들.

뭐…. 한 번도 살인한 적이 없든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의 예다.

내가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았고, 그렇기에 그들 역시 목숨을 잃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들은 과연 살인했던 적이 있었던 사람들일까?

스킬을 남용하여 타인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가?

내가 어린아이를 죽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거다.

대체로 어린아이들은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아직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죄가 없는 상태일 확률이 높은 이들.

근데 이들을 어떻지? 저렇게 평범하게 멸망하기 이전처럼 사는 저들은 어떻지?

사람을 죽여본 적 있나? 스킬로 남을 해친 적이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치안을 박살 내고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죽인다면…. 남은 아이들은?

부모가 살해당하고 이 험난한 세상에 덩그러니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넌센스다. 아이러니고…. 우문이다.

병신 같고 좆도 아닌 내 신념으로 무수하게 많은 복수귀들을 양산해 내라고?

아니면…. 그런 것들을 걱정해서 아예 뒤끝 없게 아이고 나발이고 모두를 죽여버려?

어렵다. 너무 어려워.

세상이 이렇게 된 이후로 처음 겪게 된 고민이다.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는 나만의 고민.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

페이즈 아웃을 쓰고 건물을 벗어난 뒤 한참 떨어진 곳에서 다시 투명과 비행, 반사를 쓰고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면서 뭔가를 보았다.

알파벳 두 글자. SG.

SG…. 설마….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 그룹을 말하는 건가?

그제야 나는 SG라는 단어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공장에서도 빌딩에서도, 아까 군인들이 입었던 조끼에서도.

머릿속에서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정도 도시를 유지할 수 있는 곳.

사설 용병처럼 생긴 군인들을 훈련하고 장비를 보급할 수 있는 곳.

공장을 돌리고 그만한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곳.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 도시는…. 한 재벌그룹의 낙원인 셈이었어.

그리고 나는 수납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로얄클럽. 그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이름.

역시나 SG다. 그랬어. 이제야 뭔가를 깨달았다.

대단하네. 재벌그룹 정도면 이 정도 스케일로 놀 수 있구나.

이 도시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50만명? 100만명? 아니지…. 대한민국에서 100만명 넘는 도시는 열 개인가 열한 개밖에 없다.

그래도 내 기억상으로 청주는 상당히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제법 숫자가 되는 거로 아는데….

어쨌든 줄어든 인구도 있을 테니 50만 명이라고 잡으면…. 절대 적지 않은 숫자다.

펜스가 500명 정도인데. 1,000배잖아. 숫자의 스케일이 다르네. 어휴. 씨발.

막막함과 한숨, 그리고 고민이 머리를 꽉 채운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행동 원칙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그렇게 나는 도시의 외곽으로 날아갔다.

청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도시였다. 외곽으로 날아가도 사람들이 살던 흔적은 계속해서 나온다.

어느 인적이 없는 시골 마을. 거기에 내려와 수납에서 차를 꺼냈다.

그리고 차에 들어가 가만히 누웠다.

날이 제법 차가웠지만, 차 안에 있는 데다가 침낭까지 덮고 있으니 그리 춥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돌아가고 싶지만…. 조금 더 도시를 보고 싶다.

바라보고 있다고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 과연 어떤 곳인지 더 알고 싶어졌어.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차 안에서 추위를 피한 나는 동이 트는 것을 보며 차에서 나왔다.

다시 수납 안에 넣고 청주를 향해서 날아간다.

공단이 훤히 보이는 가장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마치 조각상이 된 것처럼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은 집 바깥으로 나와 두툼한 옷 안에서 하얀 입김을 내며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한다.

사람이 서로 마주쳐도 전혀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모습…. 정말 익숙하지 않다.

아니 공격이 뭐야. 저들은 버스도 타는걸. 좁은 공간에 모여있기까지 한다고.

게다가 학교. 나는 저게 보고 싶었다.

근데…. 2월인데도 학교에 가나? 원래 갔나? 우리 때랑은 뭔가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어쨌든, 8시가 넘으면서 하나둘씩 학생들도 학교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아홉 살? 열 살? 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 자기 몸의 반 정도 되는 책가방을 메고 손에는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가는 모습.

만나는 친구와 반갑게 인사하고 장난도 치면서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아직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모습. 저 아이들도 스킬이 있겠지? 게다가 쓸 줄도 알 거다.

하지만 스킬을 쓰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분명 가속화나 비행 같은 스킬이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 누구도 스킬을 쓰는 사람을 못 봤다.

금지 된 건가? 스킬을 쓰는 게 불법이야? 근데…. 그게 제어가 돼?

분명 세상이 멸망한 초기에도 이런 분위기는 지속했었다.

사람은 힘이 있다고 함부로 휘두르는 생물이 아니다.

법과 도덕, 사회적 약속, 관습과 매너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제어하고 참아내는 생물.

그렇기에 초창기엔 어느 정도 유지가 됐었다.

마치 영국에서 마법을 쓰는 학생들이 활약하는 영화처럼.

그렇기에 생활 스킬이나 제작 스킬들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도 서로서로 해칠 거라는 생각은 안했으니까.

법과 질서는 제법 공고했고, 이런 현상은 그저 헤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소수의 누군가가 그런 걸 유도한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도 티비도 안되는 세상.

날조와 선동은 그 힘을 잃고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혼란의 불씨는 생각보다 빨리 타올랐고 세상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그래. 근데 그것도 수도권만 그랬을 수도 있다. 그걸 알 방법이 없었잖아.

조금만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뭐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으니까.

그럼…. 이 도시는 어땠을까?

처음부터 제어가 됐던 걸까? 아니면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나서 이렇게 된 걸까?

그건 알 수가 없다.

뭐…. 아무 여자나 붙잡고 매혹을 써서 물어보면 답이 나오긴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알아야 할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들이 지금 스킬을 쓰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완벽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제어가 되는 도시.

근데…. 내눈에는 모닥불 위에 놓인 불발탄 같은 모습이다.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까? 스킬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말 통제가 되는 걸까?

만약…. 한번 크게 터진다면 그 파급 효과는 어디까지 갈까?

이들은 뒤늦게나마 서로서로 죽이는 배틀 로얄을 벌이게 될까?

내 안에서 몸집이 커져 버린 마음씨 고약한 아이가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그런 개소리는 집어치워! 그딴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인간을 다 죽일 거라는 생각을 한 거야?

병신! 머저리! 생각 짧은 단세포 새끼! 지금이라도 지랄 말고 하나하나 쳐 죽여! 전부 다 코인이고 전부 다 먹잇감이라고!

남자들은 다 죽이고 쓸만한 여자들은 모아놨다가 강간하고 죽이라고! 그게 지난 5년 동안 네가 해왔던 짓이잖아!?

왜 이제 와서 착한 척하는 거지? 이들이 불쌍해 보이나? 아니면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 보여?

지랄 마라! 그딴 알량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SG라고 쓰여 있던 거 보면 몰라? 이 도시는 그저 커다란 공장일 뿐이야!

있는 놈들이 자기들의 원활한 물자 공급을 위해 만들어놓은 다람쥐 쳇바퀴라고!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 네놈이 나이 먹고 움직임이 둔해졌을 때 뒤에서 다가와 옆구리에 회칼을 쑤셔 넣을 거야!

그러니 지금 죽여! 지금 다 죽이라고!

하나같이 맞는 말이라 뭐라고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작은 씨발 새끼를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씨발놈….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다!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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