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14화 (31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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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 한 대.

이쪽은 처음 와보는 도로인데, 생각보다 도로가 멀쩡하다.

그리고 정리가 되어있다. 중간중간 사고가 났는지 망가진 차들이 보였지만, 그런 차들은 길가로 밀려 옮겨져 있는 모습.

누군가 손을 썼다는 소린데. 그냥 한번 쓱 지나갈 거였으면 저렇게 정리는 하지 않았겠지?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청주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고작 한 시간 반 정도. 비행으로 갔으면 세 시간 정도 걸렸겠지?

역시 장거리는 차를 따를 수가 없네. 비행은 무조건 좋지만 그게 문제다. 최대 속력이 50킬로라는 것.

뭔가…. 더 빨리지는 방법은 없나? 너무 제한적인데. 가속화는 막 엄청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면서 비행은 왜 이 모양인 거야.

청주 바로 앞, 오창 휴게소.

굳이 휴게소에서 세울 필요는 없었지만, 화장실을 다녀올 겸 일단 멈췄다.

사실 오줌 같은 것도 아무 데나 싸도 되는데…. 노상 방뇨 같은 게 문제가 되는 세상도 아니고.

그래도 과거의 잔재는 무섭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

차 밑에 생기는 수납. 그대로 차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정말…. 좋은 스킬이야. 수납 없는 삶은 이제 상상도 하기 싫다.

솔직히 말해서 비행과 수납만 있어도 이 세상은 살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최소 스킬로 최대 효과를 누리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아. 수납은 티어 3이니까 투명화. 비행. 수납. 이거면 되겠지?

수납은 단순한 인벤토리가 아니잖아. 이건 쓰는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이런 스킬들이 변수를 만들고, 경직돼있는 스킬 사이에서 기상천외함을 만드는 거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투명과 반사 비행을 쓴 다음 하늘로 날았다.

목전에 앞둔 청주.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길래 민희 정도 되는 여자가 그렇게 말을 했을까?

한번 봐 보자고. 내 눈으로.

그리고 나는 5분 만에 어처구니없음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다. 얼핏 봐도 제법 되는 사람들. 무엇보다…. 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문이 열려있는 상점, 거기에서 뭔가를 사서 나오는 사람들. 커피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남자.

저건…. 커플? 정말? 이거 진짜야?

이 도시는 세상이 멸망할 때 그 효과를 피해간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순찰하는 차량이 있다는 것.

저걸 뭐라고 하더라. 험비? 그래. 미군에서나 쓸 법한 험비. 그 위에 타고 있는 방탄조끼를 입은 남자.

짧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총.

총. 총이라니. 씨발? 저게 가능해?

화약류는 모두 없어진 거 아니었어? 정말 이 도시만 뭐가 있는 거야?

다른 것들도 모두 충격적이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총이었기에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저렇게 많으니 안에 들어가도 괜찮은 거 아닐까? 저기에 섞이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데….

근데 살짝 주저함이 생긴다.

저 안의 사람들은 나와 너무 다르다. 뭔가 다른 세상 같은 느낌.

약간 그런 느낌이 든다. 다른 나라에 잠입하는 스파이?

근데 스파이와 내가 다른 점은 적어도 스파이는 잠입하고 싶은 나라의 정보를 빠삭하게 알고 있어서 위화감 없이 섞여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아는 게 없어. 섣불리 섞여들었다가 괜히 오해받는 행동을 하게 되면 말짱 꽝이다.

결국은…. 조금 더 정보를 얻기로 했다. 저 말도 안 되고 기이해 보이는 도시의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서.

그렇게 꼬박 하루를 도시 외곽을 돌면서 지켜봤다.

차마 안으로 들어갈 자신은 없었다. 저 광대하고 이질감이 넘치는 도시에 함부로 발을 들이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컸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속 구석탱이에 짱박혀 있던 소심함이 스믈스믈 튀어나와 몸을 휘감는 느낌.

먼발치에서 하루 동안 살펴본 바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학교가 있다는 것.

오후가 되면서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가 의문이 들 정도.

아이라니. 맙소사. 어떻게 저렇게 많은 아이가 있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저 아이들은 세상이 망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저렇게 많은 애를 보는 건 처음이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

학교라니. 정말 웃기네. 신입생이 없는 학교잖아.

아니, 아직 세상이 망하고 5년이니…. 당분간은 신입생은 있겠지. 한 3년 사이에는 신입생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3년 뒤 입학한 아이들은 후배들이 없을 거다. 세상에 내던져진 마지막 아이들이니까.

그 아이들이 진급하면서 그 학년 자체가 없어질 거고….

결국에는 초등학교가 필요 없어지겠지. 그다음 3년 뒤엔 중학교가, 그다음 3년 뒤엔 고등학교가.

공중에 떠서 학교를 바라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원래는 팩토리에 있는 모두를 죽일 생각으로 왔다.

아니, 죽이는 건 가장 마지막이었겠지.

백마촌 처럼 이곳에 들리는 놈들을 오랫동안 캠핑하면서 다 죽여버린 다음 마지막으로 팩토리를 처리하는 그림을 그리고 왔다.

하지만 이게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크기는? 이렇게 많은 사람은? 게다가 학교라니? 아이라니?

아이를 죽이라고? 나보고?

지난 5년 동안 각종 미친 짓과 정신병자 같은 짓을 했어도 아이는 죽이지 않은 나다.

승규를 살려둔 이유도 그 이유였지. 하율이가 승규와 유정을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애들이라니.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잘 가던 길에서 유리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생각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

그리고 나에게 질문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할래? 이 도시를?

두 가지 원칙이 내 안에서 서로 싸운다.

아이를 죽이지 않는다는 알량한 신념.

내 사람들 외에는 모두 죽여버린다는 정신 나간 신념.

둘 다 정상은 아니지만…. 그렇게 세워둔 나 자신의 룰이 처음으로 서로 충돌했다.

물론…. 이런적이 처음은 아니다.

펜스. 예전엔 동산이었던 곳.

그곳에도 아이들은 있다. 학교를 만들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는 분명히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곳을 내 사람들로 만들어버렸다. 뭐, 모든 사람이 내 사람인 건 아니지.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냥 펜스의 부속품쯤으로 생각해버렸으니 가능한 짓.

게다가 그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숫자가 너무 많다. 예외를 두기엔 너무나 거대한 곳.

게다가 나는 이런 곳을 관리할 자신이 없다. 과연 이 거대한 곳이 한두 사람의 힘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 윗사람들을 포섭해서 이곳을 내 관할로 만들 수 있을까?

동산의 정 부장과 반장들을 포섭해서 내 사람들로 만든 것과는 스케일이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잘 짜여진 시스템. 그리고 지켜지고 있는 치안.

저들 역시 모두 스킬을 가진 사람들일 거다. 하지만…. 스킬을 쓰는 징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과연 저기 사는 사람들이 모두 쓰레기 스킬을 가진 사람들일까? 그건 절대 아닐 거 같은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겨버린 고민.

나는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6시쯤 되자 퇴근하는 사람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우르르 식당으로 들어가는 무리, 어딘가로 바쁘게 이동하는 여자,

웃고 있는 남자, 웃고 있는 여자, 웃고 있는 아이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회귀로 예전의 음식들을 맛봤을 때보다 훨씬 충격적인 모습.

분명 자세히 살펴보면 예전의 삶과는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예전 같았으면 다들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살았겠지,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게 없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는 사람이나 스마트 폰을 들고 뭔가를 보는 사람들은 있지만, 전화 통화를 하는 것 같진 않다.

그저 MP3 나 영화 재생기 정도의 기능을 쓰고 있는 정도.

뭐가 됐든, 이 도시는 기이하다. 본적은 없지만, 90년대의 거리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보고 있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 내 안에서는 답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렇게 지켜볼수록 의문과 궁금증은 더 커진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까 봤던 총은 대체 뭐지? 이 사람들은 왜 스킬을 쓰지 않지? 왜 혼란이 일어나지 않지?

돈의 가치가 없어졌을 텐데 화폐는 뭘 쓰지? 아니…. 정말 이 도시가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긴 한 거야???

밤이 깊어지며 도시의 불이 하나둘씩 꺼진다.

언제나 24시간 불이 켜있던 도시가 익숙해진 터라…. 불이 꺼진 도시는 또 낯설다.

어슴푸레 하게 밝혀진 가로등만 켜있는 도시. 아니 모든 불이 꺼진 것도 아니다.

일부 구역에서는 밤이 깊었는데도 소란스러움과 불빛이 남아있었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가 궁금해졌다.

스마트 폰을 꺼내서 확인해 보니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세상이 망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요일이라는 개념. 하지만 이곳에는 남아있다.

이들은 아직 요일의 소중함을 느끼는 거 같다. 예전 세상처럼 돌아가는 도시라면 주말도 있고 휴일도 있겠지.

그렇게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아직 싸늘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공 높은 곳에서 하이바와 침낭을 두른 채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도시에서 나만큼 탐지 범위가 넓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마음 놓고 공중에 떠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간격은 적당히 띄운다. 나는 방심 같은걸 할 만큼 대범하진 않으니까.

그렇게 계속해서 도시를 지켜보고 있는데 낮에 봤었던 총 든 군인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가는 게 보인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저놈들은 확인해 보고 싶다.

총이라니. 저렇게 들고 다니는 거 보면 모형은 아닐 텐데.

비비탄 총인가? 그런 건 아닐 거고.

어쨌든 녀석들을 따라가 본다. 궁금하다. 화약이 없는 세상일 텐데. 저건 대체 뭘까.

녀석들이 도착한 곳에는 이미 비슷한 놈들이 여럿 있었다.

험비, 총 든 군인들, 여자군인도 몇 명 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은 익숙하게 폴리스 라인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 아마도 저들은 경찰의 역할도 하고 있나 보다.

하긴 이런 세상에서 경찰과 군대의 역할을 굳이 나눌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서 건물 하나를 포위하는 듯 자리 잡는 녀석들. 그러더니 신속하게 몇 명이 대열을 짜고 건물 안으로 진입한다.

뭐지? 무슨 일이 있나?

궁금증이 생겼기에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썼고, 나는 깜짝 놀랐다.

건물 안쪽에 또렷하게 보이는 검은 구름. 저게 있다는 것은 15분 안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누가 죽였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검은 구름이 바라보고 있는 쪽, 안개 같은 촉수가 뻗어 나가는 방향에 있는 사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인자가 있는 쪽으로 가봤다.

상상력만 있다면 이쪽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는 페이즈 아웃이기에 살인자 쪽으로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살인자가 있는 곳을 살펴봤다.

남자 하나, 그리고 그놈이 잡은 여자 하나.

뭐라고 외치는 것 같은데 소리가 안 들리니 알 수가 없다.

입 모양이 움직이는 거로 알아보기엔 저놈이 자꾸 이쪽저쪽을 바라봐서 쉽지 않다…. 페이즈 아웃을 풀어볼까?

괜히 안에 있다가 오해를 사긴 싫지만…. 뭐 문제 있으면 페이즈 아웃을 다시 쓰지 뭐.

탐지를 돌려 바로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해제를 한 뒤 투명화와 반사, 비행을 걸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살짝 떠서 최대한 멀찌감치 섰다.

그렇게 페이즈 아웃을 풀자마자 들리는 고함.

"이 썅년아! 응!? 감히 바람을 펴? 씨발! 그 개새끼는 죽었어! 이제 네년 차례야!"

"살려줘요.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요! 이럴 것까진 없잖아!"

아…. 진부하고 진부한 치정 싸움인가. 여자가 바람을 피웠나 보네. 그리고 빡친 남자가 여자랑 바람 핀 남자를 이미 죽였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남자가 다시 외쳤다.

"지랄 마! 번개!"

그러더니 남자의 주변으로 번개 파동이 팍! 하고 뻗어 나간다.

그걸 그대로 맞은 여자는 몸을 파르르 떨며 바닥에 쓰러진다.

쓰러진 여자를 보며 씩씩거리는 남자. 그리고 들리는 다급하게 계단을 오르는 소리.

투칵 투칵 투칵

뭔가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고 번개 파동을 쓴 남자가 그대로 쓰러졌다.

재빨리 달려온 군인들. 한 남자가 쓰러진 여자에게 '힐'이라고 외쳤고 여자의 모습이 한결 나아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방금 남자들이 쏜 총에 관해서만 관심이 생겼다.

저건 아마…. 공기총. 이제야 저게 뭔지 알겠다.

그리고 살짝 소름이 돋았다. 왜 지금까지 공기총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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