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13화 (31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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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

"더 필요한 건 없고?"

백화점을 나서면서 민희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당장은 없어요. 그리고 필요하면 다음번에도 또 부탁하면 되죠."

당당하게 말하는 민희를 보며 나는 씨익 웃어줬다.

"그래. 좋은 마음가짐이야.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말하면 되지.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민희를 안고 다시 비행을 써서 날아간다.

"어? 여기는 캐슬 쪽이 아닌데…."

"당연하지. 캐슬로 가는 게 아니니까."

백화점에서 한강 쪽으로 무작정 날아간다.

그렇게 한강이 보이자 이번엔 강변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W호텔 가는 거예요?"

"응. 거기가 좋잖아?"

"흐응. 그렇긴 하죠. 근데 저번에 방 안 치우고 왔는데."

"방에다가 회귀를 쓰면 어떻게 될까?"

"헉! 그게…. 되요?"

"안 되겠지. 방이 하나의 객체도 아니고."

"놀랐잖아요! 나 방금 엄청나다고 생각했다고요!"

"그러게. 나도 말해놓고 흠칫했어. 옛날부터 그런 생각 했거든. 방 깨끗하게 치워놓은 다음에 이 상태로 세이브 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할 때마다 로드하면 방치울 일이 없어질 텐데."

"어머. 나도 그런 생각 했는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나 봐요."

"아무래도 그렇지. 크크. 아. 다 왔다."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한 호텔.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난번에 썼던 방으로 간다.

내가 떠나고 민희가 조금 더 있다 가서 그런지 방은 조금 더 어질러져 있었다.

약간 민망한지 방에 들어가자마자 주섬주섬 이것저것 치우는 민희.

저런 모습도 있네. 맨날 도도한 여왕님 같은 모습만 보여주더니.

바닥에서 타올을 집어 들고 한쪽으로 가져다 놓는 민희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몸을 일으키는 민희. 그런 그녀의 옷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뭐가 그렇게 급해요. 우리 둘밖에 없고. 시간은 많은데."

그러면서 몸을 돌려 내 파카를 벗겨주는 민희.

그리고 자신의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놓는다.

"나. 바라는 게 있어."

"뭔데요?"

"화장 다 지워봐."

"전에 봤잖아요?"

"그래도. 또 보고 싶은걸."

"아이참…. 대체 그런 걸 왜 보고 싶은 거예요. 화장 지우면 나이 많은 아줌마라고요."

"세상에. 이렇게 이쁜 여자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건 범죄 아닙니까?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건 아닌지?"

내 말에 풋 하고 웃는 그녀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안긴다.

"당신은 내가 나이 많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속상한 마음을 가졌는지 모를 거야."

"대체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별걱정을 다하네."

"거봐. 역시 모르죠. 서른이 넘은 여자는 언제나 초조해져요. 이십 대의 그 왕성한 회복력이 아니거든. 피부도 예전 같지 않고 몸은 더 그렇죠. 게다가 당신은 아직 이십 대 중반이잖아. 내 심정 절대 모를 거야."

"연예인들 보면 40살 50살 먹어도 이쁘기만 하더구먼."

"그들은 연예인이고요."

"민희 너도 그만큼 이쁘니까 비슷한 거 아냐?"

"진짜…. 어쩜 이렇게 이쁜 말만 할까."

그러면서 내 아랫입술을 잡고 흔드는 민희.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모르죠?"

"음…. 사람한테는 회귀 못쓰겠지?"

내 말에 깜짝 놀라는 민희.

"말도…. 안 돼요. 그런 게 될 리가."

"당연히 그렇겠지. 회귀 되는 시점도 모르고. 적용되면 기준은 뭐지? 0살인가?"

"글쎄요…. 모르겠는데."

"내가 지금 회귀 두번을 쓰면 물건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거든? 그럼, 사람한테 쓰면 그 사람의 나이 반이 사라질까?"

"사람한테 써지는 게 되긴 해요?"

"안 해봤어."

"근데 왜 되는 것처럼…."

"나도 잘 모르니까. 음…. 너한테 한번 써볼까? 그럼 열여섯이 되나? 으…. 범죄네."

"어차피 안될 건데 뭐 그런 걱정을 해요."

"어디…. 회귀!"

내가 외치자 민희는 움찔하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한쪽 눈만 살짝 뜨더니 아무런 변화가 없는 자신을 보고는 내 가슴을 때린다.

"아이참! 놀랐잖아요! 이상한 짓 하지 좀 마!"

그렇게 껄껄 웃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민희의 옷을 벗겼다.

금방 알몸이 된 두 사람. 먼저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고, 민희는 화장을 지우기 위해 이것저것을 수납에서 꺼낸다.

"너무 그렇게 보고 있지는 말아줄래요?"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나에게 한마디 하는 그녀.

하지만 나는 계속 그녀를 바라보았고, 결국 민희는 포기한 듯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맨얼굴이 된 민희.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별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변함없이 이쁜걸."

"진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요. 으휴."

그러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민희.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자는 여자네. 이쁘다는 소리에 좋아하는 거 보면.

그런 그녀와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와 침대에 눕혔다.

나이 어쩌구 하면서 앓는 소리를 내지만, 그녀의 몸은 충분히 아름답다.

진짜…. 엄살이 심하다니까.

그렇게 누운 민희의 가슴을 어루만지는데…. 민희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게 보인다.

뭐지? 춥나? 방은 적당히 따듯한데?

자세히 보니 침대 시트를 꽉 잡은 민희. 표정도 약간 굳어있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강한 여자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 충격이 아직 몸에 남은 거다.

으휴. 둔한 새끼. 이런 거 하나 제대로 파악 못 하고.

"민희."

"네…?"

"무리하지 마. 아직…. 괜찮아지지 않은 거지?"

내 말에 민희의 표정이 금세 울 것같이 변한다.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팔로 가리는 그녀.

안쓰러운 모습. 애처로운 그녀의 상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아…. 정말…."

살짝 물기 어린 목소리가 된 그녀.

나는 그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진짜…. 이렇게 나약한 여자 아닌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손을 잡아줬다.

내가 손을 잡자 그런 내 손을 꽉 쥐는 민희. 그러더니 작게 중얼거리며 울먹이듯 말한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도…. 계속 생각나요. 기껏 잊었다고 생각했던 옛날일 이랑 같이 한 번에."

조금 더 강하게 내 손을 잡는 그녀. 그러더니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한다.

"잊게 해줘요. 나쁜 기억들…. 다 덮어줘요. 다시는 기억이 나지 않게."

그렇게 말하는 민희의 손을 살며시 놓고 몸을 일으켰다.

불안한 듯 나를 바라보는 여자. 나는 그런 그녀의 다리를 잡고 벌렸다.

"왜…. 뭐 하려고…."

나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부끄러운지 다리를 오므리는 민희.

평소에 그녀의 모습과는 다른 반응이다. 예전 같았다면 조금 더 관능적인 자세로 나를 홀렸을 텐데.

아니면 앙큼한 신음을 냈던가.

하지만 이런 민희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아픔을 씻어줄 차례다.

정성껏 입으로 그녀의 음부를 핥기 시작했다.

민희 그녀가 더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내가 핥자 잔뜩 몸을 꼬며 느끼는 민희.

정성껏, 구석구석 그녀의 음부와 가슴, 그리고 입술을 핥았다.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의 뜻은 그녀에게 전해진 것 같다.

떨림이 잦아들고.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평안해진다.

불안과 걱정이 기쁨과 쾌락으로 치환되는 모습.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음부에 내 물건을 가져다 댔다.

"날…. 덧씌워줘요. 안 좋았던 기억들을 전부 당신의 기억으로 밀어내 줘…."

그런 그녀의 요청에 나는 정성껏 응답해줬다.

약한 모습의 민희도 색다른 경험이긴 하지만, 나는 당당하고 도도한 민희가 좋다.

다시는 이런 모습 보지 않을 수 있도록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입해준다.

부드럽게 시작해서 격렬하게 진행되는 섹스.

내 몸이 그녀의 안쪽을 헤집을수록 그녀는 조금씩 아픈 기억을 떨쳐내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지워지진 않겠지.

그래도 이 순간만은 쾌락과 절정으로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준다.

몇 번이고 그녀의 몸 안을 나의 정액으로 가득 채웠고 내 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그녀의 옆에 누웠을 땐 그녀는 비로소 얼굴에 미소를 되찾았다.

"보답은커녕…. 오늘은 받기만 하네요."

살짝 힘없는 미소지만, 그래도 웃고 있는 게 보기 좋다.

그런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신중하게 말을 골라 그녀에게 전한다.

"서로를 위한다면, 누가 더 많이 주고 누가 더 많이 받는지는 별 상관없잖아."

나를 꼭 끌어안는 민희.

이런 거로 얼마나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빨리 되찾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괜찮아 보이니 약간 안도감이 느껴진다.

호텔을 나와 내 품에 안겨 캐슬로 돌아가면서 민희는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꼭 끌어안는 그녀의 모습에는 딱히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잇는 온기로 모든 것이 설명됐으니까.

컨테이너 벽을 넘어 건물 앞에 도달하자 그녀가 말했다.

"내려줘요. 여기선 제가 혼자 들어갈게요."

"그럴래?"

품에서 내려와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민희.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곤 화사하게 웃으며 말한다.

"다음에 볼 때는…. 오늘처럼 추태는 안 보일게요."

"크게 신경 안 써. 무슨 모습이든 상관없으니까."

내 뺨에 가볍게 키스하고 돌아서는 민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그녀의 모습이 더 보이지 않을 때쯤 비행을 써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렇게 벙커로 돌아오는 길.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민희는 강한 여자다. 하지만 강한 여자라고 해서 언제나 강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감당하지 못할 아픔이 저렇게 넘쳐흐를 수도 있는 거다.

그럴 때 그냥 옆에서 조금 용기를 북돋아 주기만 하면 된다. 굳이 내가 뭔가를 더 할 필요는 없지.

민희의 걱정은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정도는 알아서 혼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여자잖아.

그녀가 말했듯이 다음에 볼 때는 조금 더 괜찮은 상태가 되겠지.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지나친 걱정은 동정이나 다름없으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

길었던 겨울을 어서 보내기 위해 시간을 조금씩 빠르게 감아본다.

하지만…. 자꾸 머릿속에 걸리는 게 있다.

팩토리. 민희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좋은 말이지. 한번 보는 게 백 번 듣는 것보단 낫지….

그래. 한번 보는 게 중요하다.

그 한번을 보고 싶은데…. 이상하게 몸이 안 움직인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뛰쳐나갔을 거다.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원하는 것을 볼 때까지 잠복하고,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정보를 캐냈을 텐데.

지금은 자꾸 나 스스로 핑계를 만든다.

회귀 마스터를 찍고 가자.

겨울이 끝나고 날이 풀리면 가자.

조금만….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 등등….

달콤한 것들을 원 없이 먹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 승미세안 네 여자 때문일 수도 있다.

회귀를 걸어달라고 요청하며 내게 다가와 엉덩이를 살랑살랑하는 모습.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방에서, 거실에서, 벙커 위에 있는 집에서.

틈 날 때마다 안고 서로의 몸을 탐하는 일상.

그렇게 민희를 만나고 온 뒤 4일이 지난날. 나는 불현듯 결심했다.

청주를 다녀와야겠다고.

있는 힘껏 뒤로 미루고 있었지만…. 고작 나흘이 한계였다.

궁금증은 미뤄지기는커녕 머릿속에서 점점 더 커졌고, 직접 확인해 보지 않으면 이 답답한 마음이 풀어질 것 같지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아직 추운 하늘이지만 다녀오긴 해야 할 것 같다.

청주까지는 거의 120킬로 정도. 비행으로 하면 두 시간 좀 넘는 시간.

살짝 고민해본다. 어차피 가는 길은 중부고속도로를 타면 금방이다.

굳이 날아가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차를 타고 가면 되잖아? 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도망갈 일이 있으면 차는 수납에다가 넣어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그럴 상황이 안되면 그냥 버리고 와도 상관없다.

차야 세상에 넘쳐흐르는 게 차잖아….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지.

그렇게 결정한 나는 청주로 출발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문을 나섰다.

일찍 일어난 미나와 안나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나.

전기차의 시동을 걸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차를 출발시켰다.

과연…. 그 엄청나다던 청주의 팩토리. 한번 어떤 곳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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