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11화 (31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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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

분명 날이 풀릴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스킬만 배우기로 마음먹었는데.

코인이 100만대까지 떨어지니 살살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 나에게 발 뻗고 쉬는 일 같은 건…. 사치인가?

회귀를 배운지 일주일.

네 여자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다.

"오빠! 이거!"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와서 나에게 내미는 승희.

생글생글 웃는 당당한 표정. 나는 말 없이 회귀를 두번 써줬다.

다시 새것으로 변한 아이스크림 통. 승희는 희희낙락하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이거…. 맞지? 좋은 거잖아. 그치?

지금은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을 못 먹어서 조금 오바하고 있는 걸 거야. 계속 저러진 않겠지.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슬슬 자제하겠지. 암.

사실 뭐 하루에 몇 통을 먹어도 상관없긴 하다.

살이 찌는 것도 아니고 코인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어서 감기에 걸려? 질병 해제가 있으니 그것도 걱정 없다.

그야말로 낙원. 오죽하면 스킬 숙련도 웃으면서 하겠어. 그만큼 좋으시다는 거지.

날마다 주변의 편의점과 마트들을 돌면서 물건들을 집어왔기에 수납 안에는 갖가지 음식들이 잔뜩 쌓이게 됐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간식 위주의 음식들. 회귀 숙련을 하면서 엄청나게 쌓이게 된 것들.

으음.

좀…. 뿌리고 올까? 줄 사람들은 많으니까.

밖에 나가긴 해야 해. 코인도 다시 벌어야 하고…. 여기저기 돌긴 돌아야지. 너무 집에만 있었어.

적당히 준비하고 밖에 나가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가자 다 먹은 조각 케이크 껍질을 들고 오던 미나와 마주쳤다.

"어…?"

"회귀. 희귀."

원래대로 돌아온 조각 케이크. 그걸 보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은 미나가 내 모습을 보고 말한다.

"숙련하러 나가요?"

"응. 잠시 나갔다가 올게."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와요."

케이크를 내려놓고 나를 안더니 가볍게 키스해주는 미나.

갑자기 나가기가 확 싫어지네. 아. 나가지 말까?

유혹하는 듯 나를 보고 살갑게 웃고 있는 미나. 으…. 요물 같은 여자들.

괜히 입맛을 다시면서 얌전히 바깥으로 나왔다. 이것 참…. 그냥 나가기 아쉽네. 정말.

이제 겨우 2월. 차가운 바람은 아직도 그 맹위를 마음껏 떨치고 있다.

으. 씨발. 날씨가 따듯해지려면 아직 두 달은 더 있어야겠지?

4월이나 돼야 좀 찬 기운이 가실 거 아냐. 지겹다 정말.

하이바와 침낭을 둘러쓰고 청평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달리 수납 안에 선물이 가득가득하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랄까? 받으면 다들 좋아하겠지? 안 좋아할 리가 없잖아?

탐지가 200미터가 됐는데도 역시나 주변에 잡히는 기척은 없다.

뭐, 이제는 당연하다 생각할 정도.

이 루트는 내가 몇 번이나 지나갔으니 그사이에 누군가가 정착하거나 지나가는 게 아닌 이상 누가 있기도 힘들 거다.

그렇게 눈앞에 커다란 호수가 보이고 연수원 건물이 보였다.

그사이 뭔가 또 많이 변했네. 참 열심이야. 이 사람들.

원래는 축구장이었던 곳. 이제는 어엿한 축사가 되었다.

역시 해봐야 느는 게 맞는 거 같아. 누가 봐도 그럴듯한 모습이잖아.

"어!"

내가 땅에 착지하자 수레를 밀고 가던 진영이가 나를 보고 놀란다.

"왔어요?"

"그건 뭐냐? 지푸라기?"

"아아. 이거 보시다시피 여물요."

"소?"

"네."

"아아. 근데 그런 건 어디에서 구해?"

"네? 어디서 구하긴요. 우리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거지."

"비닐하우스에서 벌써 짚이 나와?"

"여기에 성장 스킬이 몇 명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 그렇지. 네 명인가?"

"네."

"근데 성장 스킬은 단일 개체에 걸리는 거 아냐? 벼에 일일이 걸기엔 조금 아깝지 않나?"

"네? 아니에요. 범위에요. 단일 개체면 식물에 쓰는 건 너무 힘들죠."

"아…. 그런가. 그런 걸 이제야 알았네."

어쩐지. 하긴 단일 개체면 토마토나 벼 같은 거에 성장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이제야 이해가 가네.

"아. 너 초코바 좋아하냐?"

"네? 초코바요? 없어서 못 먹죠."

나는 수납에서 초코바 한 상자를 꺼내서 진영이에게 던져줬다.

"으악! 이거 뭐에요!? 어디서 났어요? 아니…. 이거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줬지."

홀린 듯이 상자를 까서 초코바의 비닐을 까고 입에 무는 진영이.

그러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와중에도 입은 열심히 초코바를 씹고 있는 모습.

"좋냐?"

"대에 이런 어은 어이에서 구아 거에어."

"다 먹고 말해."

내 말에 입에 있는걸 꿀꺽 삼키고 다시 말하는 진영.

"대체 이런 거는 어디에서 구한 거에요?"

"스킬."

"스킬요? 아니 이런 거 구하는 스킬이 있어요?"

"어. 회귀라는 스킬이야. 알아둬. 근데 승규 형은 어딨냐?"

"아. 저기 비닐하우스에 있어요. 같이 가드려요?"

"됐어. 니 일이나 해라. 수고해."

아직도 멍하니 초코바를 들고 있는 진영이를 뒤로하고 비닐하우스로 날아갔다.

장비가 들어갈 정도로 커다랗게 지은 비닐하우스. 아마 예전에 그 캠프 근처에 있던 아파트를 따라 한 거 같다.

그때 열심히 사진 찍더니만…. 결국은 비슷하게 만들어냈네. 그럴듯하게.

철봉과 비닐로 만들어진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법 많은 사람이 안에 있었다.

승규와 유정. 하율이. 연서, 미연 자매. 성장이 있는 유진이와 민주. 그리고 트랙터에 타고 있는 민준이.

"어? 형! 안녕하세요!"

민준이가 나를 발견하고 인사했고, 그 덕분에 다들 나에게 한마디씩 인사한다.

한창 추수를 하는 모습. 아니…. 이 계절에 추수라니. 역시 비닐하우스는 대단하구나.

게다가 이들이 여기 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근데 벌써 추수라니…. 뭐 하는 사람들이야?

"왔어?"

승규가 하율이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왔고 나는 바로 수납에서 곰 젤리를 꺼내서 하율이에게 줬다.

"와아!?"

깜짝 놀라며 젤리를 받는 하율이. 그리고 더 놀란 승규.

조금 멀리 있던 유정도 내가 하율이에게 뭔가를 주니 궁금한 듯 이쪽으로 왔고, 곰 젤리의 포장지를 뜯는 하율이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게 뭐야? 젤리? 어떻게 이런 게 남아있어?"

그러면서 하율이를 제지하려는 승규.

"먹어도 되는 거예요. 설마 제가 애한테 문제 있는걸 주겠어요?"

"어? 어…. 그렇긴 한데. 아니 이게 대체…. 상점에서 산 거야? 아니…. 상점에는 이런 거 없잖아?"

"그쵸. 상점에 과자가 몇 개 있긴 하지만 이런 건 없죠."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이거나 받아요."

수납을 열어서 몇 가지를 더 꺼내 승규와 유정에게 안겨줬다.

근 일주일 동안 수납에 넣어놨던 간식들. 지금은 먹을 수 없게 된 음식들.

손에 잡히는 대로 안겨주니 이 부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자들과 민준이.

그런 그들에게도 하나씩 물건을 꺼내서 건네줬고, 다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가죠? 이거 이렇게 들고 가는 것보단 안에서 주는 게 낫겠네."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일행들과 함께 벙커로 들어갔고, 식당으로 간 나는 식탁에 계속해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대량의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과자, 케이크, 빵, 각종 주전부리와 간식들.

어느새 전부 몰려온 청평 사람들은 계속해서 물건을 꺼내는 나를 보며 아무 말도 못 한다.

"도라에X…."

유정 형수가 작게 중얼거렸고, 덕분에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어. 그리고…."

샴푸와 바디 샴푸, 휴지, 이런 것도 잔뜩 챙겨놨기에 한참 꺼내서 수두룩하게 쌓아놓으니 꽤 수납 안쪽이 비게 되었다.

음. 이정도면 됐고….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승규와 청평 사람들에게 회귀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그들의 표정에서 말할 수 없는 환희가 보인다.

뭐,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

생존하기도 버거웠던 세상.

지난 세월은 먹을 것에 투정을 부릴 정도로 녹록한 세상은 아니었을 거다.

씹어서 삼킬 수 있는 거면 뭐든 먹어야 하는 삶.

하지만 이젠 안정된 식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슬슬 예전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을 거다.

그런 그들 앞에 나타난 문명의 이기.

애초에 저 맛을 몰랐으면 상관없었겠지만…. 다 아는 맛이잖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열심히 살아봐요. 가끔씩 보급해드릴 테니까."

나를 보는 시선에서 존경과 경외심까지 느껴진다.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네.

조금 더 머무르면 나를 위한 동상까지 만들어줄 기세라서 적당히 인사를 하고 청평을 빠져나왔다.

물건을 받고 행복해하는 건 보기 좋은데 너무 나를 추켜세우면 그건 또 부담스러워.

그런 거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라고.

그렇게 청평을 나와서 이번엔 캐슬로 향한다.

으. 확실히 청평은 멀어. 비행이 있어도 멀어. 근데 어쩌겠어.

내가 순간이동 트리를 안타고 이쪽 트리를 탔으니 어쩔 수 없지. 당분간은 번거로워도 이렇게 다니는 수밖에.

캐슬에 도착하니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나름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펜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기 역시 음식 생산은 문제없이 돌아가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성주의 방에서 느껴지는 기척. 아마도 민희겠지? 건물 위에 착지해서 페이즈 아웃을 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책상에 앉아있는 민희. 음. 괜찮아 보이네. 다행이야.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니 민희가 나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이젠 정상적으로 등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거예요?"

책상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 살포시 안기는 그녀.

그저 가벼운 포옹인데도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키스. 잠깐동안 서로의 혀를 찐하게 탐하고는 입술이 떨어졌다.

매력적인 웃음. 그 안에 담겨있는 믿음.

"별일은 없고?"

내 말에 민희가 가볍게 중얼거렸고,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손에는 만져지는 그녀의 몸.

"투명 배운 거야?"

"네."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민희.

"잘했네. 그럼 이제 스킬 네 개네."

"이제 네 개죠."

"네 개면 많은 거야."

"당신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요."

나는 살짝 웃었고, 그런 그녀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혹시 뭐 좋아하는 거 있어?"

"네?"

"너무 질문이 광범위했나?"

수납을 열고 안에 든 것들을 하나씩 꺼냈다.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 물건들.

생필품, 간식, 과일, 음식 등등.

"맙소사…. 수납을 써요? 그리고 이건 다 뭐예요?"

아. 민희는 수납 쓰는 걸 본 적이 없구나? 그럼 마스터인 걸 알면 더 놀라겠네.

하지만 그럴 겨를이 없어 보인다. 내가 꺼낸 물건들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여자.

이 반응은 다들 똑같다. 아니 똑같을 수밖에 없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거 같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다들 아는 것들이잖아. 익숙한 것들이라고. 반가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의 감동.

나도 느껴봤기에 잘 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지.

"대체…."

그런 민희에게도 회귀에 대해서 알려줬다.

민희 역시 수납 스킬이 있기에 내 설명을 조금 더 신중하게 듣는 모습.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요?"

역시 여자들의 포인트는 그건가. 바로 포착해버리네.

"게다가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지."

"하아…. 말도 안 돼."

"세상이 이렇게 된 건 말이 되고?"

"그러니까 하는 소리에요.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 그렇게 좋은 걸 만들어 준 게 이해가 안 가서요."

"그래.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게다가…. 복제. 이건 더더욱 말이 안 돼요. 하하…. 이렇게 된다면 청주에 있는 팩토리는 망하게 생겼네."

"그렇지. 안 그래도 그걸 물어보려 했는데."

"뭘요?"

"청주에 있다는 그 팩토리 위치."

"위치는 왜요…. 설마?"

"뭐, 일단은 직접 봐야겠지만, 회귀 스킬을 얻었으니 나에게 팩토리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 근데…. 그렇게 쉽게 안 될 수도 있어요."

"음? 왜?"

"청주…. 가보면 알 거예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거기는 조금 버거울 거에요."

내 능력을 다 알고 있는 민희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고?

백마촌 처럼 팩토리에 오는 놈들부터 전부 조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버겁다니?

갑자기 몹시 궁금해졌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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