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07화 (30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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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스킬

눈을 뜨니 나는 안나의 품에 안겨있었다.

새하얀 가슴 사이에 파묻혀있는 내 얼굴. 이 무슨 행복한 상황인지.

섹스하다가 지쳐서 잠들고 가슴에 파묻힌 채로 눈을 뜬다? 여기는 천국이냐? 그런 거지?

안나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 분홍빛 꼭지를 입술로 살짝 물었다.

"으음…."

움찔거리는 안나. 눈을 뜨고 가슴을 물고 있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더니 그대로 내 머리를 끌어안는다.

아…. 좋다. 좋아 죽겠네. 이러고 계속 있고 싶다.

아무런 걱정 없이 이러고 있을 수 있기만 할 수 있다면 세상이 멸망한 게 대수겠어?

어젯밤에 그렇게 해놓고도 내 물건에 슬금슬금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걸 느낀 안나가 자신의 양 허벅지로 내 물건을 감쌌다.

게다가 살살 비비기 시작하는 안나.

허허허…. 내가 안나의 봉인을 풀었구나.

어제 이후로 안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거 같아.

그렇게 조금씩 안나에게 녹아내려 가고 있는데 밖에서 문소리가 나고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로 봐선 승희와 미나. 그런 목소리를 들은 안나가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허벅지를 풀었다.

"일어날까요?"

그렇게 말하더니 몸을 일으키는 그녀.

전등을 후광처럼 삼은 안나의 실루엣이 아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옷을 입었다.

아…. 뭔가 아쉬운 느낌이다. 이 정도로 안타까운 느낌이 들다니.

이미 일어나서 문고리를 잡은 안나. 나를 보고 한번 싱긋 웃더니 문밖으로 나간다.

"씅희! 미나! 일어났써!?"

으음…. 어쩔 수 없지. 그래. 오늘만 날인 건 아니잖아. 늘 하는 말이다. 앞으로 시간은 많다.

두고두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쭈욱.

몸을 일으키고 옷을 꿰입은 뒤 밖으로 나가자 승희와 미나가 인사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맞이하는 승희. 푸근하게 웃어주는 미나.

저렇게 해주기 쉽지 않을 텐데.

질투와 시기라는 마음은 간사해서 언제든지 뱀처럼 스며들 수 있다.

하지만 내 여자들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참고 있는지 정말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낄 정도로 내색은 하지 않는 모습.

고마운 일이지.

나 같은 놈을 좋아해 주고 그런 내색도 하지 않는 다는 건.

"오빠. 밥 먹을 거니까 세아좀 깨워줄래요?"

미나가 일어나 주방으로 가며 말했다.

그런 미나를 뒤에서 한번 안아주니 승희가 내 뒤에 안겼고 승희도 바로 안아줬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안나.

다행이야. 정말로.

똑똑

다 큰 숙녀의 방을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기에 예의상 노크를 하고 세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코까지 뒤집어쓰고 잠들어있는 세아.

어떻게 깨울까? 뭐…. 깨울 방법은 한 2만 가지 정도 있으니 아무거나 해도 되겠지?

이불을 걷었는데도 세아는 배를 내놓고 계속 잔다.

그런 윗옷을 슬쩍 걷어 올려 세아의 맨가슴을 드러내놨다.

아담한 몸매에 아담하지 않은 가슴.

가슴은 정말 좋아. 남자라면 싫어할 수가 없지. 게다가 유독 나는 가슴에 집착이 크다.

어렸을 때 애정결핍이었을 수록 그렇다는데…. 맞는 소리 같다.

입으로 가슴을 한번 빨자 효과는 대단했다.

"뭐…. 뭐야! 아이…. 뭐 하는 거야 정말…."

한방에 깨어나서 칭얼거리는 세아.

내 머리를 밀어내지만 지지 않고 한 번 더 빨았다.

"아으…. 하지 마. 하지…. 마!"

발로 밀었는데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약간 울컥하는 듯한 세아.

"괴…."

괴력을 쓸 줄 알았기에 바로 입을 입술로 막아버렸다. 바둥거리다가 혀를 받아들이는 세아.

짧은 키스가 끝나자 완전히 잠에서 깬 모습. 투덜거리며 옷을 추스르고 몸을 일으킨다.

"으…. 정상적으로 깨울 방법은 없는 거야?"

"이보다 더 정상적인 방법이 어딨어?"

"으으. 흔들어서 깨우거나 말로 해도 되잖아."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방법이 있는 데 뭐하러."

"흥. 아니거든? 나는 안좋거든?"

"정말?"

내가 정색하며 물어보자 살짝 머뭇거리는 세아.

"뭐…. 좋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쌩하고 밖으로 나간다.

크…. 귀여운 녀석. 저러는 건 생각하고 말하는 건가? 아니겠지? 원래 저런 성격이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겠지? 이래서 천연 츤데레는 귀한 거야. 천연기념물 급이라고.

그렇게 밖으로 나와 미나가 내오는 음식들을 차려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간단한 점심. 다들 일어난 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라 많이 먹지는 않는 모습.

입이 짧은 미나는 이미 아까 수저를 놨고, 승희는 깔끔하게 자신의 밥을 다 먹고 물을 마신다.

밥 먹는 게 조금 느린 세아는 부지런히 입을 오물거리고 있고 안나는 아직 배가 덜 찼는지 반찬에 계속 젓가락을 가져간다.

저렇게 먹는데 배가 나오지 않는다니. 그것도 축복이야.

"음. 하루 미뤄지긴 했는데. 밥 다 먹고 조금 쉰 다음 어제 하려던 이야기 계속할 거야. 개들에 대한 거."

내 말에 밥을 오물거리던 세아의 어깨가 축 처진다.

승희와 미나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들 반응을 보아하니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는 거 같네.

이제야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게 된 안나가 나를 보며 물어본다.

"어제 하려던 이야기? 개?"

"아아. 엊그제 데려온 개들 있잖아. 그 녀석들 키우는데 드는 유지비랑…."

안나에게도 간단하게 말해줬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안나.

"안나도 한번 생각해봐.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하고."

"네."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할 일이 있으니까.

어제 통역 패시브를 보고 눈이 돌아가서 다른 스킬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게다가 아직 스킬도 하나 고를 수 있잖아.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지.

침대에 누워 스킬 창과 정리해 놓은 스킬 표를 보면서 하나하나 짚어본다.

일단, 스킬 생긴 게 꽤 많았다. 그리고 뭔가 사기스러운 것들도 잔뜩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통역, 그리고 번역.

통역은 배웠으니 됐고, 번역 스킬도 보아하니 패시브 같다.

통역이 말하는 거라면 번역은 외국어를 바로 읽을 수 있는 거겠지? 이것도 씹사기 스킬이잖아? 게다가 패시브일 거라고.

근데…. 이것들이 패시브가 되는 게 맞나 모르겠다.

물론 패시브로 되어서 나야 고맙긴 한데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원문이 필요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으음…. 잘 모르겠다. 일단 외국어 배울 생각이 없는 나에겐 뭐든 고마운 스킬이니 닥치고 가만히 있어야지.

번역도 바로 배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가진 코인이 180만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분명 500만 가까이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갔지? 씀씀이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야. 빌어먹을.

게다가 패시브 배우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타격이 크다. 이번에 배운 패시브만 해도 벌써 130만이잖아.

인플레 씨발…. 너무 한 거 아냐? 금리 조정 한번 해?

다음 스킬은 토네이도.

와우. 씨발. 이름만 들어도 웅장한 느낌이다. 게다가 이건 스킬 트리가 바람 칼날 하나면 된다.

안나가 바람 칼날 한다 그랬지? 언젠간 안나가 배울 수 있겠네. 토네이도라니 하.

근데 우리나라에선 태풍으로 바뀌어야 하는 거 아냐? 토네이도라니…. 쓸 수는 있는 거야?

게다가 더 골 때리는 스킬들이 많다.

날씨 변환.

하…. 티어 10 정도 되면 이제 초인이라 이건가? 날씨 변환이라니.

눈 오게 하고 비 오게 하고 맑게 하고 구름 끼게 하고…. 뭐 그런 거겠지? 근데 이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려나?

너무 지구급 아냐? 날씨라는 게 그렇게 변해라! 하고 변하는 게 아닐 텐데.

그리고 더 엄청난 것들이 나왔다.

광역 수면, 광역 마비, 광역 기절, 광역 슬로우, 광역 침묵.

광역 수면은 수면 스킬이 있어서 그런지 바로 배울 수 있었다. 광역 마비를 눌러보니 마비를 배워야 배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뜬다.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거 생각해보면 상당히 엄청난 일이다.

반사가 의미 없어지잖아. CC기가 광역으로 들어가다니…. 게다가 이건 느낌상 보호막으로 막힐 것 같지가 않다.

무형의 기운이잖아. 실체가 날아가는 광역기가 아니라고.

이 스킬들이 있으면 굳이 광역 스킬 무효화를 걸지 않아도 마음껏 수면을 걸 수 있다는 소리고.

안 그래도 무효화가 자꾸 범위가 커져서 고민이었는데…. 지금도 범위 증가 패시브를 4까지 찍어서 범위가 더 늘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광역 CC기들은 최고의 스킬이라고 볼 수 있다.

티어 10까지 존버한다면 광역 스킬 무효화를 안 찍어도 된다는 거잖아?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쉬운일은 아니긴 하다. 이미 이만큼 찍은 나니까 할 수 있는 소리지.

그리고 광폭화.

으음…. 광폭화면 버서커인데? 이성을 잃고 공격력과 공격속도,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스킬?

근데 이걸 어떻게 쓰지? 아니, 쓸 이유가 있나? 분명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스킬처럼 보이는데…. 이게 필요하긴 한가?

아무리 강해져도 이성을 잃으면 의미가 있나? 아니. 이성을 잃는다는 이야기는 없긴 하지. 그냥 내 추측일 뿐이니까. 그럼 페널티 할만한 게 뭐가 있지? 으음….

모르겠다. 이딴 스킬이 왜 있는지. 그래도 한번 눌러보긴 해야지. 이것도 스킬 트리가 있을 수 있으니까.

['광폭화' 스킬은 '테이밍' 스킬을 배우지 않아 배울 수 없습니다.]

얼라? 뭐라고? 테이밍?

이게 테이밍이랑 연결이 된다고? 그렇다면…. 이건 본인에게 거는 스킬이 아니구나? 자기가 테이밍 한 동물들에게 거는 거였어?

와…. 이거 조금 소름 돋는다. 그러니까 동물 하나 꼬셔서 광폭화를 걸면 그 녀석이 미쳐 날뛰게 된다는 거지?

코끼리나 호랑이 같은걸 테이밍 해서 광폭화를 걸라는 소리잖아?

하…. 미친 놈들. 이건 정말 좋아 보이긴 하네.

애초에 동물은 탐지에 걸리지도 않고, 맹수들은 그 자체로도 병기다.

화약이 사라진 세상이잖아. 아무리 스킬이 있다지만 맹수는 맹수다. 거기에 광폭화라고?

아나콘다 같은 거 하나 테이밍해서 데리고 다니면 되겠네? 그럼 나도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거야.

크루시아투스도 있고 임펠리우스도 있도 아바다 케타브라도 있는 세상이잖아? 컨셉질 하기 딱 좋네.

그리고 마지막. 개인적으로는 이번 티어 10에서 나온 스킬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는 스킬.

코인 탐지.

일단 눌러봤다. 이걸 보고 어떻게 안 눌러?

['코인 탐지' 스킬은 '동물 탐지' 스킬을 배우지 않아 배울 수 없습니다.]

어어? 동물 탐지? 잠깐 그런 스킬이 있었나? 아 있었네. 티어 3에….

이런 시벌. 똥 쓰레기 스킬을 찍어야 하는 거야? 동물 탐지가 뭐가 필요해? 테이밍 때문에?

그게 문제가 아니다. 생각을 해보자.

동물 탐지 - 코인 탐지 의 심플한 트리일 리가 없다. 탐지 스킬중엔 다른 게 하나 더 있잖아.

주변 인간 탐지 - 동물 탐지 - 코인 탐지 이게 맞을 거다.

아마 내가 주변 인간 탐지 스킬이 있어서 저렇게만 뜬 거겠지? 아마 이게 맞을 거 같다. 나도 짬이 있지.

근데 코인 탐지라니. 대체 뭘까.

코인은 사람이 죽어야 무조건 생겨나는 거다. 죽은 이가 가진 코인이 튀어나오는 거잖아.

그런데 다른 코인 획득 처가 있다고? 그건 아닐 거다. 아마도…. 내 생각엔 이건 그거다.

유류품.

죽은 사람의 코인이 모두 회수된 건 아닐 테니까.

다리 밑이든 무너진 잔해 사이의 공간이든 어딘가 비어있는 아파트의 침대 위든.

세상 어딘가에는 무수하게 많은 코인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그걸 찾아주는 거라면 이해가 간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 스킬인데…. 평화를 바란다면 이런 걸 찍고 임자 없는 코인들만 찾아다니는 거로도 여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모든 스킬들을 다 보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아. 역시 이렇다. 배우고 싶은 스킬은 점점 많아지는 데 배울 수 있는 스킬은 하나뿐이다.

역시 여럿이서 힘을 합치는 게 답이야. 나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보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혼자서 독고다이도 좋긴 하지만…. 결국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한계가 명확해지는 순간이 온다는 거다.

뭐…. 혼자서 다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거의 신에 버금가는 게 되겠지. 사실 그걸 종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단은 스킬 찍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블링크를 찍거나 파티를 찍고 싶긴 한데….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어.

먼저 승미세안이 생각하고 있는 걸 들어보자. 아마 아무런 방법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들어봐야지.

그걸 들어보고 선택하자. 그래야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결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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