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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스타르체바
그렇게 없었을까? 안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내가…. 그때 안나를 건드리지 않은 것은 정말 별거 아닌 이유 때문이었다.
비틀린 시작, 그릇된 만남, 부적절한 인연.
매혹을 배우고 뒤늦게 배운 도둑질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구 써댔던 시기.
마구잡이로 매혹을 걸고 여자들을 손아귀에 넣었던 그때.
그리고 거기에 회의감을 가지고 무분별한 매혹을 그만두던 그 시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안나에게 매혹을 걸지 않았다. 건드리지도 않았고 말이 통하지 않기에 거칠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를 좋게 봐준 건가? 그런 내가 구원이라고 느낄 정도였다는 건가?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평범한 남자가 아니에요. 여러 남자 밑에 깔려서 혐오스러운 얼굴들을 보고 있을 때마다 생각했었죠. 단 한 명. 단 한 명이라도 나를 몸뚱어리가 아닌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따르기로. 열다섯에 시작한 그 다짐은 스물셋이 되었을 때까지 지켜지지 못했어요. 커지는 남자에 대한 혐오감, 아니 굳이 남자뿐만이 아니었어요. 배그마촌. 당신이 전부 없애버린 그곳. 거기의 여자들은 항상 나에게 와서 나를 회유했어요. 조금 더 편하게 살자고. 그만 포기하라고. 너무 그렇게 세상을 힘들게 살지 말라고."
"배그마촌이 아니고 백마촌."
"정말…. 발음 가지고 그러지 마요. 한국어 발음은 힘들단 말이에요."
"그러게. 내가 별거 아닌 거로 꼰대질을 했네."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안나.
저런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강한 멘탈이 필요한 걸까?
그런 걸 생각하면 다들 대단한 거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고 죽인 놈들에게 끌려갈 뻔했던 승희.
믿었던 사람들에게 긴 시간 동안 당했던 미나.
역시 감금당해서 안 좋은 짓을 당하다가 세상을 배회하던 세아.
그리고 어린 나이에 팔려서 갖은 고생까지 하고 만리타향까지 넘어오게 된 안나.
내가 겪었던 고생이나 아픔은 왠지 별거 아닌듯한 느낌이 들 정도.
"어쨌든,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유복한 부모 밑에서 살던 소녀 안나 스타르체바는 열다섯에 죽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스물셋에 다시 태어난 안나만 남았죠. 저는 당신이 뭐라고 해도 당신을 따를 거에요. 그건 내가 나 자신의 마음을 죽인 열다섯부터 지금까지 했던 다짐이니까요. 그러니…. 잘 부탁해요. 앞으로도."
차분하게 말하고 있지만, 안나에게선 기이한 불꽃 같은 것이 느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맹신? 그래. 그런 단어가 어울린다. 나에게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런 것.
부담스럽다는 생각보단 기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안나라면…. 나를 집착한다고 해도 즐거울 것 같으니까. 물론 집착까지는 안 했으면 더 좋고.
이제야 자양동에서 데려온 짱개 년을 망설임 없이 죽일 때 안나에게서 느꼈던 게 이해가 간다.
맹목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신뢰. 이 여자는 망설임이 없는 거다.
내가 말한 것에 대해서 조금의 의심도 없고 의문도 없다.
고민이 없고 주저함이 없기에 깔끔한 동작이 나올 수 있는 거겠지. 잡다한 생각이 쪽 빠졌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나가 앉아있는 내 위에 올라탄다.
늘씬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 앉아서 나를 내려보고 있으니 참…. 행복한 구도가 나온다.
게다가 우리 벙커는 노브라가 패시브다. 다들 벙커 안에 있을 땐 브라 같은 것은 안 입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자세는 남자라면 아랫도리에 힘이 바짝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더군다나…. 그런 여자가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키스를 해준다면…. 그건 뭐 꼼짝도 할 수 없는 거지.
"좋은 시간은 밤에 보내요. 지금은 밥 먹어야죠."
미나가 수저와 반찬을 들고나오며 나와 안나에게 말한다.
깜짝 놀라 입술을 떼는 안나. 나는 미나의 말을 안나에게 전해줬고, 안나는 살짝 무안한 듯 벌떡 일어나 미나에게 다가가 수저와 반찬을 받아든다.
그렇게 상을 닦고 반찬과 수저를 놓고 음식을 내오는 네 여자.
점심상이 다 차려졌고, 다들 맛있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면서 다들 그동안 안나에게 궁금한 게 많았는지 세세 콜콜한 것들을 물어봤고, 나는 그걸 일일이 전달해주느라 밥을 제대로 먹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야 서로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대화를 소홀히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부지런히 음식을 씹어 넘기면서도 여자들의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열심히 말을 전달해준다.
아마 이 생활은 제법 오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적어도 다들 통역을 배울 때까진 계속 이래야 한다는 거잖아?
아니지. 안나만 통역을 배우면 끝나는 거네? 생각해보니 그렇다. 굳이 전부 다 배울 필요가 없는 거구나?
물론 나중에는 다 배우게 되겠지만…. 일단은 안나 한 명만 배워도 모두와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다행히 안나는 포션을 먹는 것에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일단…. 안나를 먼저 스킬을 올리게 해야 하나?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네 여자가 다 같이 골고루 오르면 당연히 좋겠지만, 굳이 억지로 키 맞춤을 할 필요는 없겠어.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두는 게 낫지.
밥을 다 먹고도 안나에 대한 질문들은 계속됐고, 대부분이 나와 이야기했던 내용이었다.
사실 과거 이야기를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다 하는 건 무리다.
물론 다들 그것들을 알고 있기에 그리 조급하게 굴지는 않는 모습이긴 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그럼 안나는…. 복수 하고 싶어?"
세아의 질문.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안나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질문을 받고 눈빛이 살짝 변하는 안나. 역시…. 여자의 한은 우습게 보면 안 돼.
그 순둥순둥하고 해맑던 웃음만 짓던 안나가 저런 표정을 짓다니.
"내가 준 종이. 아직 가지고 있죠?"
"전에 유정 형수랑 같이 번역했던 그거?"
"네. 그거요."
"응. 당연하지."
"나는…. 내 위에 올라탔던 모든 이들을 증오해요. 썽철 당신을 제외하고."
안나의 말을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녀는 평범한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승리한 기분, 그녀의 유일한 사람.
"도와주겠어요?"
나는 안나의 말을 전부 통역해서 모두에게 전해줬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당연하지. 그런 건 내 전문이거든."
또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해맑게 웃는 안나. 누가 과연 저 웃음을 거부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그녀의 웃음을 본다면 간이고 쓸개고 모두 빼주려 하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오직 나만의 여자니까.
그녀는 내가 독점한 나만의 여자다. 물론 승희나 미나, 세아 역시 마찬가지다.
오로지 나만의 것. 그녀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한국뿐만이 아니에요. 내 복수는 조금 더 크고…. 깊어요. 난 내 고국에서도 볼일이 많아요. 이고르 트미트렌코. 내가 복수해야 할 가장 마지막에 있는 사람이에요."
"이거…. 스케일이 커지네."
"힘들까요?“
안나는 나를 보고 걱정된다는 듯 물어본다.
"그럴 리가. 안나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러시아 땅이 아무리 넓어도 툰드라 바닥까지 샅샅이 뒤져서 찾아줄게. 얼마든지.“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그럴 거라면 기꺼이 웃으면서 해야지.
또 안나의 얼굴 한가득 피어오르는 미소.
안나가 웃으면 세상이 환해진다. 그래 그 미소를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으으…. 러시아라니. 춥겠네."
세아가 중얼거렸고 안나는 그 말을 통역 없이도 알아들었는지 개구쟁이 같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승희의 이야기, 미나의 이야기, 세아의 이야기. 그녀들의 이야기도 안나에게 전달해 줬다.
그다지 유쾌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사연과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는 시간.
아픔을 나누고 공감하며 밤늦도록 이야기한다.
그렇게 밤이 깊었을 때는 이미 안나의 눈이 새빨개져 살짝 부을 정도가 되었다.
자신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승희와 미나, 세아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그녀들 역시 평범한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 안나는 말없이 일어나 그녀들을 안아준다.
비로소 하나가 된 기분.
물론 그 전에도 안나가 배척당하거나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이 제법 높고 험했던 건 사실이다.
아주 완전히 융화되지 못했던 기분은 있었으니까. 안나 특유의 미소로 넘겼을 뿐이지.
그렇게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
해야 할 다른 이야기들도 많은데 꺼내기가 조금 그렇다.
개들에 대한 것, 스킬 숙련, 내 스킬을 찍는 것.
하지만…. 아주 급한 것들은 아니니 그냥 오늘은 모른 척하자.
하루 안 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 내일 이야기해도 되겠지.
새벽까지 이어진 대화는 결국 다 끝내지 못하고 일단락됐다.
그냥 두면 밤새도록 이야기할 것 같은 분위기이기에 내가 억지로 끊었다.
이야기할 시간은 앞으로도 많다. 굳이 이렇게 몰아서 할 필요는 없지.
모두 각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지만, 안나는 남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얼굴에 옅게 남아있는 미소. 나는 안나가 뭘 원하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다.
그녀를 향해 손을 뻗자 살포시 내 손끝을 잡아드는 안나.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시작된 안나와의 격렬한 키스.
사실 아까 점심부터 이러고 싶었다. 이 정도면 많이 참았지.
내 목을 끌어안은 안나. 그녀의 가는 허리를 꼭 안은 나의 팔.
그저 말이 통하게 된 것뿐인데 그녀가 두 배는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안 그래도 이쁜 여자가 더 이뻐지다니.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가 없어.
"이제는 눈치로 알아채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너무 좋네요."
키스를 끝낸 안나가 나를 보며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며 말한다.
그래. 그전까지 안나와 하는 섹스는 뭐랄까. 눈치 게임 같은 거였다.
물론 섹스할 때 그렇게 많은 대화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함은 당연히 있었지.
복잡한 주문 같은 건 아예 엄두도 못 냈으니까. 약간 밋밋했다고 해야 하나? 담백함? 그런 느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일단 안나가 무척 대범해졌다.
나에게 해보고 싶은 게 많았나 보다.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
"여기 앉아봐요. 어서."
침대에 걸터앉은 내 앞에 무릎 꿇은 안나는 내 바지를 벗기고 그대로 내 물건을 깊숙하게 입에 넣는다.
뭔가…. 서양 야동에서나 볼법한 전개야. 자세도 그렇고.
안나는 아예 나를 위해 봉사하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입으로 정성껏 내 물건을 빨아 기어코 사정하게 만드는 그녀.
방금 사정하긴 했지만, 아직 빳빳함을 유지하고 있는 내 물건을 보고 웃으며 정액을 삼킨다.
평소에는 마냥 해맑아 보이던 안나의 미소가 지금은 무척 음란하게 보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눈만 조금 가늘게 떴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지다니. 신기한 일이야.
나의 물건을 뒤덮는 안나의 가슴.
손으로 자신의 큰 가슴을 움직여 나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아아…. 이게 파이즈리구나. 이렇게 당하는 거였어.
이게 정말 가능하다는 것에 놀랐고, 기분이 좋다는 것에 또 놀랐다.
예전에 한번 어설프게 시도해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었는데.
역시 이런 거였구나. 누군가 해줘야 하는 거였어. 그것도 정성껏.
"아…. 이거 말도 안 되는데…."
"이런걸 배웠던 게 항상 끔찍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왜 이런 걸 할 줄 알아야 하냐고 자괴감도 많이 들었고요. 근데 이제야 알겠네요. 당신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면….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이걸 긍정적이라고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그럴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아랫도리에 느껴지는 안나의 폭신한 가슴. 그리고 그 끝을 입에 문 안나.
복합적인 감각이 잔뜩 느껴지며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자극이 머릿속에 잔뜩 퍼져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안나에게 몸을 맡기며 쾌감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두번째 사정. 또다시 그걸 입으로 다 받아내는 안나.
분명 사정은 했는데 정액이 나왔다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안나가 입으로 깨끗하게 빨고 있으니까.
두번째라 그런지 살짝 힘이 빠진 물건. 안나의 차가운 손이 닿자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게 된다.
그리고 안나의 얼굴이 내 고환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느껴지는 따듯한 입의 온도.
"으."
눈을 위로 치켜뜨며 나를 힐끔 바라보는 안나. 내 반응을 보고 싶은지 궁금한 표정의 얼굴.
천천히 혀를 굴리며 자극을 주니 나도 모르게 허리가 쫙 펴지게 된다. 맙소사. 대체 이런 걸 어떻게….
한참을 그렇게 자극하던 안나는 얼굴을 들고 나를 바라보며 물어본다.
"좋았어요?"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고 싱긋 웃는 안나.
"이런 제가 싫진 않죠?"
"싫다니…. 그럴 리가."
"혹시 싫어할 수도 있어서…. 그동안은 차마 하지 못했어요. 말로 전할 자신도 없었고."
그렇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안나의 모습.
탐스러운 가슴이 내 몸을 쓸어내듯이 훑는다. 새하얀 가슴과 분홍빛 꼭지.
그냥 보고 있어도 좋은데 촉감까지 느껴진다니. 저절로 물건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내 물건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안나. 차가운 손으로 다시 한번 물건을 살짝 쥐면서 내 귓가에 와서 속삭인다.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거에요. 어울려줘요."
그렇게 말한 안나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난….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아니…. 대답은 필요 없다는 건가….
그렇게 아침이 올 때까지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안나 품에 안긴 아이였고, 쾌락의 늪에 빠진 여행자였다.
지금까지 안나가 얼마나 봐주고 있었는지도 알았고, 러시아 여자의 체력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오죽했으면…. 수면을 쓰지 않았는데도 잠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