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02화 (30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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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이 들개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원래는 어떤 주인들 밑에서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야생 들개라고 볼 수 있는 녀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잡하다거나 제멋대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멧돼지의 사체에 주둥이를 처박고 고기를 뜯어 먹고 있지만, 그것 역시 상당히 질서정연한 모습.

그리고 가장 인상 깊은 건 들개 보스 녀석.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멧돼지 근처엔 가지도 않고 주변을 계속해서 경계하고 있다.

왜 저러지? 배가 덜 고픈가? 아니면 뭔가를 기다리나?

그렇게 녀석을 지켜보고 있다 보니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까 내가 수면을 걸 때 도망갔던 다른 멧돼지들.

그걸 쫓아갔던 들개들이 멧돼지를 질질 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으니까.

컹! 컹!

그렇게 도망갔던 세 마리 멧돼지의 사체까지 전부 끌고 오자 다른 녀석들도 전부 달라붙어 먹기 시작한다.

컹!

또 한 번 크게 짖자 건물 저편에서 들개 몇 마리와 작은 강아지들이 이쪽으로 우르르 달려 나왔다.

제법 많은 숫자.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뛰어오는 강아지들.

"어머! 귀여워라!"

미나가 달려오는 강아지들을 보며 귀엽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건 미나뿐만이 아니었다. 세아, 안나도 강아지들을 보며 헤벌쭉한 미소를 짓는다.

근데 승희는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어느새 승희는 상처 난 들개 근처로 가서 힐을 쓰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두 마리의 들개가 승희의 힐을 받고 나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

확실히 개는 똑똑한 동물이야.

자기를 치료해준 게 누군지 똑똑히 아는지 승희에게 다가온다.

귀엽게 생긴 개들이 아니다. 오히려 험상궂은 편에 속하는 개들.

그런 개들이 다가오니 승희는 약간 움찔거리긴 했지만, 가만히 있었고 녀석들은 승희 앞에 넙죽 엎드리더니 꼬리를 열심히 흔든다.

개들은 저게 좋네. 꼬리가 감정 표현을 확실하게 해줘서.

그런 들개들을 보면서 약간 주저하다가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는 승희.

오랜만에 닿은 사람의 손길이 반가운 듯 녀석들은 인상과 덩치에 맞지 않게 엄청 좋아한다.

꼬리가 무슨 풍차처럼 돌아가고 있잖아. 저러다가 날아가겠어.

"가. 이제. 가서 먹어."

승희의 말을 알아들은 두 마리 개들은 바로 멧돼지 사체로 달려든다.

그런 개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승희는 다른 상처 난 개들에게 몇 번 더 치료를 걸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의외로 무서워하거나 하진 않네?"

내가 가까이 가서 승희에게 말하자 나를 보더니 본인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러게요. 솔직히 조금 무섭긴 했는데…. 꼬리를 보니까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치? 개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좋아하는 게 보이더라."

"에고. 저 손 좀 씻고 올게요?"

탐지를 돌려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승희는 가까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미나와 세아, 안나를 보니 자신들 주변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보며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다.

그저 즐거워 보이는 미나, 좋긴 한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지 살짝 굳어있는 세아, 만면에 미소를 활짝 피워내며 눈으로는 강아지들을 열심히 쫓는 안나.

그렇게 좋나? 하긴…. 뭐 좀 귀엽긴 하네.

그렇다고 해도 설마 데리고 가서 키우면 안 되냐 이런 소리는 안 하겠지?

"오빠! 혹시…."

"안돼."

"네? 뭐가요? 아직 다 말도 안 했는데."

미나가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단호한 표정을 유지했다.

"벙커 안에서 키우는 건 안 돼. 벙커 밖에서 키우는 건 상관없어. 근데 그렇게 부모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떻게 데려가려고? 아무리 귀여워도 그건 납치잖아."

"눈치는 진짜 빠르네요."

그러더니 세아와 뭔가를 속닥거리는 미나.

안나는 알아듣긴 하는 거야? 왜 둘 옆에서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같이 듣고 있는데?

손을 씻고 나온 승희도 미나의 부름에 가까이 가더니 속닥거리는 무리에 합류했다.

자꾸 내 쪽을 힐끔거리며 뭔가를 이야기하는 네 여자.

뭐 뻔하지. 어떻게든 벙커로 강아지들을 데려갈 방법을 생각하는 거겠지.

그런 그녀들은 놔두고 들개무리들을 한 번 더 살펴본다.

이제야 멧돼지에 입을 가져다 대는 들개 보스.

갑자기 맞이하게 된 이런 세상에서 제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녀석.

구성원들을 통솔하는 것도 그렇고 볼수록 여러가지로 맘에 든다.

가장 맘에 드는 건 경계심이 많다는 것.

자신들을 도와주고 멧돼지 사체도 넘겨준 데다 치료까지 해준 우리인데, 녀석은 아직도 우리를 계속해서 살피고 있다.

경계라고 하기보단…. 눈치를 보는 느낌? 어쨌든 한시도 방심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게 맘에 든다.

현명한 자세야. 이끄는 식구가 많다면 저렇게 하는 게 당연하지.

아무래도 우리가 여기 계속 있으면 녀석들이 맘 편하게 식사를 못 할 것 같다.

빨리 떠나줘야지. 아무리 해롭지 않은 사람이라도 주변에서 계속 알짱거리면 신경 쓰일 테니까.

"우리도 이제 가자."

"에? 왜요!? 조금 더 있으면 안 돼요?"

"강아지들 귀여운데!"

"심술쟁이."

"썽철!"

각자 한마디씩 하는 여자들. 으. 교전비가 너무 안 좋아. 이쪽에서 한마디 하면 저쪽에선 네 마디가 튀어나오니….

"우리가 계속 여기 있으면 저 들개 보스놈이 눈치 보느라 제대로 못 먹는다고. 그러니 빨리 떠나주는 게 쟤들을 위한 거야."

내 말을 듣고 다들 들개 보스를 한 번씩 쳐다본다.

갑자기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자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는 녀석.

"그러면…. 어쩔 수 없죠."

"히잉. 강아지 더 보고 싶은데."

"핑계쟁이."

"썽철!"

세아랑 안나는 무슨 매크로야? 반응 되게 웃기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오는 여자들.

들개 보스는 그런 우리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녀석을 계속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근데 원래 개들이 멧돼지 같은 것도 잡아먹고 그래요?"

승희가 궁금하다는 듯 내게 와서 물어본다.

"글쎄. 나도 잘 몰라서…. 근데 먹을 게 없으면 뭐든 먹어야겠지? 게다가 쟤들은 잡식성이잖아? 못 먹는 건 없지 않을까?"

"으음. 지금 개 사료 같은 것들은 이미 다 못쓰겠죠?"

"그렇지. 유통기한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들어진 지 최소 5년이 지났는데. 당연히 못 먹지 않을까?"

"그…. 뭐냐. 개들 음식에도 통조림 있잖아요? 그건 좀 유통기한이 길지 않을까요?"

"통조림이면…. 그렇겠지? 근데 5년씩이나 되진 않을 거 같은데."

"흐음…. 그럼 뭘 줘야 하나."

"진짜 키우려고?"

내 말에 승희가 살짝 놀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미나와 세아도 덩달아 놀라는 모습.

뭐야? 왜 놀라는데? 내가 무슨 악당 같잖아?

"어…. 그게…."

"말했잖아. 벙커 안에서는 안 돼. 밖에서 키우는 건 상관없지만."

"왜 안돼요? 밖은 춥잖아요! 따듯한 곳에서 깨끗하게 키우는 게…."

"아까 강아지들 숫자 못 봤어? 설마 그 녀석들 전부 다 벙커로 들여와 키우려고?"

"아니…. 그건 아닌데…."

"게다가 아까도 말했듯이 걔들은 어미 개도 있잖아. 괜히 떨어뜨리려 하지 마. 차라리 집 마당에서 다 같이 키우면 몰라도."

"근데 그건 괜찮아요?"

"뭐가?"

"집 근처에서 키우는 거?"

"글쎄. 먹이가 감당될지는 모르지만, 개들이 근처에 있으면 괜찮겠지. 개들은 똑똑해. 그리고 후각도 발달해있고 기척도 잘 느끼지. 이상한 놈들이 접근하기 전에 알아채 줄 테니 경비용으론 좋지 않을까?"

"역시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는군요."

"뭐 기왕이면 서로 도움 되는 관계가 낫잖아?"

잠시 생각하는 미나.

"우리는요?"

"응?"

"저희는 오빠에게 도움이 되나요?"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끌어오는 미나.

승희와 세아도 놀랐는지 그런 미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미나를 잠시 바라보곤 피식 웃었다.

"너희는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돼. 그런 영양가 없는 질문은 안 해도 된다고."

이런 대답을 원했겠지? 미나도 충분히 알잖아. 이제 그런 질문 할 때는 지났다는걸.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팔짱을 끼는 미나.

그리고 그걸 본 승희와 세아가 서로 내 반대편 팔을 차지하려고 후다닥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서로 잡아채면서 둘 다 팔을 잡는 데 실패했고, 그 틈을 타서 안나가 슬쩍 내 팔짱을 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이제는 내가 맨 앞이라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

어디가 좋을까? 기왕 개를 봤으니 고양이도 봐볼까?

지난번에 미나와 함께 갔던 고양이 회합 장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나를 따르는 네 여자. 하지만 아무런 걱정이나 불안은 없는 모습.

그렇게 걸으면서 아까 그 들개 보스 녀석이 생각났다.

약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녀석.

아마 녀석에게 호의를 베푼 건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어떻게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녀석.

나름대로 세력도 키우고 외부의 적에게 맞서며 열심히 살아가는 녀석.

중요한 건 그거다. 녀석이나 나나 태어날 때부터 맹수가 아니었다는 것.

호랑이나 사자 같은 포식자로 태어난 게 아니잖아.

그렇게 편한 시작을 한 게 아니다. 그저 그다지 날카롭지 않은 이빨과 크게 쓸모없는 발톱이 있었을 뿐이다.

그저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치밀하게 경계하며 지냈기에 살아남은 거다.

그런 점. 그런 것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웃기네. 개에게 동질감이나 느끼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개만도 못하다는 거다.

적어도 저 녀석은 자기 새끼들이라도 낳았잖아. 인간은 이제 그런 걸 못한다고.

아예 세상을 이 꼴로 만들 때부터 강력하게 때려 박고 시작한 놈들이다.

더는 아이가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

우리가 아무리 무슨 개지랄을 떨어도 이 세상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에휴. 또 이런 씁쓸한 생각이나 하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 건 없는데.

그렇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지울 때쯤 고양이들의 회합 장소에 도착했다.

"어머! 저기!"

갑작스럽게 등장한 우리들 때문인지 고양이 중 몇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며 경계한다.

"더 다가가면 저 녀석들 바로 도망갈 거야. 욕심부리지 마."

내가 말하자 앞으로 나가려던 세아가 그대로 걸음을 멈춘다.

안 봐도 뻔하지. 2초만 늦었어도 고양이들 다 도망가고 다들 울상이 됐을 거다.

"이쪽으로…. 오진 않겠지?"

세아가 굳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내 쪽으로 돌린 다음 간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글쎄. 니가 츄르라도 들고 있지 않은 이상 무리 아닐까? 캣닢이라던가."

"츄르? 깻잎?"

"깻잎이 아니고 캣닢."

"그건 또 뭐야."

"고양이들의 마약."

"에엑?"

"농담이고. 고양이들이 환장하는 가루 있어."

"어…. 그게 그거 아냐?"

"아냐."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고양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세아.

"오빠 의외로 고양이들에 대해서는 많이 아네요?"

승희가 나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런가? 이 정도는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고양이에게 관심 없으면 잘 모를 수도 있는 것들인데. 오빠도 고양이 좋아하나?"

“글세.”

그러자 미나가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작게 중얼거린다.

"야옹."

내가 미나를 바라보자 미나는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 때문에 고양이들 몇 마리가 흠칫하며 몸을 일으킨다.

"좀 조용히 해봐! 미나 언니!"

세아가 급하게 타박하자 황급히 입을 다무는 미나.

얘들 무슨 시트콤 찍나?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렇게 가만히 서서 고양이들을 바라보는데 한 마리가 담장에서 휙 내려오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고등어 무늬의 작은 녀석.

다들 숨소리도 내지 않고 꼼짝하지 않은 채 고양이를 바라봤고 녀석은 우아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안나의 다리에 쓰윽 하고 머리를 비빈다.

"오…."

감격스러운 표정의 안나. 어찌할지 모르는 모습.

"제발제발제발제발. 나도나도나도나도."

약간 무서울 정도로 중얼거리는 세아.

그 소망이 느껴졌는지 안나의 다리를 지난 고양이는 세아에게 다가가 다리에 몸을 비빈다.

"으오오오오…."

차마 큰 소리는 못 내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세아.

승희와 미나는 한없이 부럽다는 표정으로 그런 세아와 고양이를 바라본다.

"몇 마리 재워줘?"

내가 물었고 승희와 미나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며 이를 악문 채 나를 바라보고 말한다.

"쓸드읎는 즛 흐즈 믈으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알았어."

내가 저들의 감성을 잘 못 따라가나 보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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