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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네 여자가 한 침대에서 뒤엉켜있는 게 익숙해지는 것도 나름 괜찮은 기분이다.
손을 뻗으면 닿는 부드러운 몸들. 게다가 마음껏 만질 수 있다는 것.
이게 천국이고 이게 사는 낙이지.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한 번씩 안고 싶지만…. 오늘은 지원이랑 지아를 보러 가야 한다.
이렇게 눈이 돌아갈 만한 여자들과 한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이질적이다.
왠지 벌 받을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짓거리라니.
분명 승희나 미나, 세아와 안나에게 찔리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차피 비밀이니 상관없다.
내가 뿌린 씨앗이니 내가 거둬야지.
들키지만 않으면 되잖아. 근데 이러다 들키면 진짜 위험할 텐데.
쩝…. 적당히 자제하긴 해야겠네.
내가 몸을 일으키자 승희도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왜 더 안자고요."
"그러게. 나도 느긋하게 더 누워있으면 싶은데…. 할 일이 있어서."
"맨날 바쁘네요. 혼자만 너무 바쁜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지.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면."
"치…. 그럼 바로 나가요?"
"그러려고. 어서 끝나고 돌아와야지."
승희는 다른 여자들이 깨지 않게 조심히 내게 다가와 품에 안긴다.
따듯한 몸과 살 냄새. 언제 느껴도 좋은 기분.
품 안에 들어온 승희의 부드러운 감촉과 코를 덮는 머리카락, 그리고 안정감.
역시 이건 그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하는 소중한 감정이다.
정신적인 만족감. 아무나 줄 수 있는 게 아니지.
물론 그런 여자를 내버려 두고 다른 여자나 만나러 가는 쓰레기 같은 내가 할 생각은 아니지만.
승희가 살며시 품에서 빠져나가 몸을 일으킨다.
이런 점이 그녀가 좋은 점이기도 하다. 질척거리지 않는 것.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
아직 곤히 자는 미나와 세아, 그리고 안나.
그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나도 일어났고, 적당히 준비한 뒤 신발을 신는다.
"수납 때문에 짐이 없어져서 좋겠네요."
"맞아. 배낭이랑 덜그럭거리는 것들이 전부 없어져서 그냥 잠깐 산책 다녀오는 느낌이지."
"그래요. 산책 다녀오듯 다녀와요. 오래 걸려요?"
"글쎄. 오늘 안에는 들어오려고 노력할 거야. 그리고 오늘만 나갔다 오면 당분간은 밖에 안 나가도 되니까."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와요."
승희와 가볍게 키스하고 벙커 밖으로 나섰다.
살짝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이정도로 따끔거릴 양심이 아니다.
이정도로는 이미 둔감해져 버린 내 양심을 아프게 할 수 없지.
하이바와 침낭을 둘러쓰고 북쪽으로 향한다.
이 빌어먹을 추위. 언제쯤 익숙해질지.
아니지. 익숙해지면 안 돼. 익숙해지지 말고 빨리 도망가야 해. 나는 남국의 바다로 갈 거야.
비키니와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해변으로 가서 살 거라고.
그러기 위해선 선결되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펜스와 청평의 안전을 확보하고 적어도 게이트 스킬 정도는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성장하고 있을 놈들을 전부 쳐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 놈들이 있다면 한가롭고 평화롭게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
승자의 여유는 정말 승리하고 나서 누려야지…. 지금 좀 살만하다고 괜히 발 뻗고 누울 수는 없지.
그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펜스에 도착했다.
투명화를 쓰고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나름대로 평화를 찾아낸 사람들.
그리고 그 삶을 지켜줘야 하는 게 내 임무.
조금 지켜보다가 주변을 크게 몇 바퀴 돌아본다.
탐지를 돌리며 조금씩 크게 크게 돌아보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다.
노리고 오는 놈들이 아닌 이상 이곳으로 들이닥칠 놈들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 같은 놈들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잖아.
조용한 주변.
적당히 탐색을 마무리하고 중앙 건물 위쪽에서 페이즈 아웃을 썼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상상을 하니 그대로 천천히 떨어져 건물의 옥상에 발이 닿는다.
옥상에 서 있지만 이건 진짜 옥상이 아니다.
내 눈과 마음이 만들어 낸 바닥. 그런 바닥은 없다고 하면 없는 거다.
한층 한층 아래로 계속 내려가 외부조의 숙소가 있는 층까지 도달했다.
이번엔 벽. 거칠 것 없이 벽을 가로질러 지원이와 지아의 방으로 향한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적인 스킬.
다른 이들도 페이즈 아웃을 배우면 나처럼 쓸 수 있을까? 궁금하네. 이건 알려준다고 해도 쉽게 쓰기 힘들 텐데.
지아의 방. 지아는 없다. 어디에 있지? 또 밖에 나다니나?
지원이의 방으로 가니 지원이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다.
자고 있나? 음…. 보면 알겠지?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원이는 꼼짝 않고 얌전히 누워있다.
외부조 탐색을 돌고 와서 쉬고 있는 건가?
지원이의 침대로 다가가 그녀의 옆에 살며시 앉았다.
내가 앉는 것을 느끼고 가만히 눈을 뜨는 지원이. 나를 보고도 그렇게 놀라는 눈치가 아니다.
"왔네요."
"안 놀라네?"
"왠지 이렇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내가 이 애들에게 페이즈 아웃을 보여줬었나? 정확하게 모르겠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나는 누워있는 지원이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의 손에 얼굴을 부비는 지원이. 왠지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야하다고 느껴졌다.
신기한 감정이네. 정말.
"지아는?"
"방에 없어요?"
"없던데."
"으음…."
"지아랑 함께 밖으로 나와. 화원에서 기다릴게."
"화원요. 알겠어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말고."
"알겠어요."
내가 뺨에서 손을 떼자 몸을 일으키는 지원이.
이불이 흘러내리며 브라만 입고 있는 지원이의 가슴이 드러난다.
가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고정된다. 그렇다고 굳이 시선을 피하거나 하진 않았다. 뭐 어때. 당당하게 봐도 문제없잖아?
그런 나를 보고 빙긋 웃는 지원. 이불을 마저 걷고 몸을 일으키더니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하나씩 집어 든다.
아름다운 여자가 반라의 모습에서 하나씩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새로운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여자가 옷을 벗는 모습은 제법 많이 봤어도 입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네.
그런 모습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뭔가 특별한 기분이다.
사실 나랑 이 여자는 별로 그렇게 오래 알고 지낸 것도 아닌데.
이런 사소한 것으로도 상당히 친밀한 관계가 된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럼, 지아랑 화원으로 나갈게요."
"그래."
지원이가 방문을 열고 나서, 혼자 남겨진 나는 방에 덩그러니 앉아 방 주인이 나간 방을 한번 둘러봤다.
개인용품이 별로 없는 약간은 삭막한 방.
그래도 여자의 방이라는 느낌은 든다. 간질간질하고 하늘하늘한 기분.
피식하고 한번 웃은 뒤 페이즈 아웃을 썼다.
벽을 건너고 이런저런 사소한 것들을 모두 건너뛰고 화원까지 일직선으로 걸어나갔다.
화원에 도착해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했다.
훈훈한 화원의 실내 공기가 나를 반긴다.
약간 설레는 기분. 데이트 시간을 앞둔 남자가 이런 기분일까?
잠시 기다리고 있다 보니 탐지에 두 명의 기척이 느껴진다.
맞이방 쪽에서 나와 화원 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오는 기척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거로 봐선 투명화를 쓴 모습.
아마도 지원이와 지아겠지?
화원의 문이 열리고 두 명이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여기 있어요? 투명화 쓰고 있나?"
"아마 그럴 거야. 투명화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쾌활한 지아의 목소리와 담담한 지원이의 목소리.
"대장!?"
지아가 나를 불렀고, 나는 투명화를 풀었다.
"오! 대장이다!"
역시 투명화를 푸는 지아. 그리고 뒤따라서 역시 투명화를 푸는 지원.
약간은 어색하지만 상기되어있는 두 여자의 얼굴.
둘 다 알고 있는 거다. 이제부터 무슨 일을 할지.
"둘 다 이쁘게 입고 나왔네."
내 말에 지아가 자신의 모습을 한번 살피더니 씨익 웃는다.
추운 날이지만 발목이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청바지, 윗옷도 몸매가 드러나는 몸에 붙는 니트. 거기에 털 코트.
패션에 별 관심이 없는 나라도 세련됐다는 걸 한 번에 알아차릴 만한 복장이다.
그리고 지원이는 약간 펑퍼짐한 맨투맨에 긴 치마. 그리고 점퍼. 생각보다 옷이 잘 어울린다.
둘 다 자신들이 어울리는 옷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 게다가 외모도 이쁘니 옷이 더 잘 받쳐주는 것 같다.
"헤에. 반하겠어요?"
여유가 있는지 지아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저렇게 발랄한 여자는 쉽게 보기 힘든데. 특히 이런 세상에서는 더더욱.
아마 구김 없이 자란 성격 때문일 거다.
세상이 망했어도 빌어먹을 환경은 그녀의 성격을 갉아먹을 만큼 모질지 않았던 거다.
아무래도 내 주변에는 다들 아픔을 겪은 여자들이 많기에 어느 정도는 차분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저 정도로 대책 없이 발랄한 여자들은 없다고 봐야지.
하지만 지아는 그런 게 없다. 언니의 헌신 덕분에 지킬 수 있었던 발랄함.
그래서 그런지 그런 지아를 보면 지원이가 더 기특하게 여겨진다.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지.
"반하겠네. 그럼…. 가볼까?"
"어디로요?"
"흐음…. 당장이라도 너희가 입고 있는 옷을 벗길 수 있는 곳으로?"
빙빙 돌리는 것 없이 직구로 꽂아버린 나의 말에 발랄했던 지아가 순식간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변한다.
지원이 역시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다가가 사이에 서서 양팔로 허리를 감았다.
내 팔이 닿자 한껏 더 부끄러워하는 두 여자.
"둘 다 투명화 써."
내 말에 두 여자의 모습이 사라졌고 나 역시 투명화를 썼다.
그렇게 문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둘 다 팔 힘에 자신 있나?"
"네?"
"팔 힘요?"
"응. 내 목에 팔을 감아볼래?"
"어…. 이렇게요?"
"목에요?"
두 여자가 나에게 안기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녀들의 허리를 단단히 감았다.
"혹시, 높은 곳 무서운 사람?"
"뭐하려고요??"
"설마?"
"꽉 잡아야 할 거야. 절대 소리 지르지 말고."
그대로 비행을 사용하고 적당한 높이로 날아올랐다.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기에 지원이와 지아가 이를 악물고 으으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는 두 여자.
사실 상당히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떨어뜨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리 먼 곳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처음 그녀들과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부티크 호텔에 도착한 나는 바닥에 발이 닿자 투명화를 풀고 말했다.
"이제 너희도 투명화 풀어."
"으아! 이게 뭐예요! 무서웠잖아요!"
"하아…. 팔에 감각이 없어요…."
"왜? 재밌지 않아? 비행 스킬을 배우지 않는 이상 느껴볼 수 없는 감각이라고."
"재미없어요! 어휴. 제대로 말이라도 해주던가."
"놀랐어요…."
"근데 돌아갈 때도 이렇게 가야 하는데."
"안 해요! 돌아갈 땐 걸어갈 거야!"
"맞아요. 걸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무섭나."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지아와 아직도 한숨을 내쉬는 지원이.
그런 그녀들을 잠시 두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며 수납을 열어 팔을 집어넣었다.
어디 보자…. 전에 챙겨둔 게 있을 텐데.
"아. 찾았다."
"뭐가요?"
나를 따라 들어오는 두 여자.
그리고 지아가 궁금한 듯 물었고, 나는 수납에서 카드키 한 장을 빼냈다.
"마스터키."
"에엑? 여기 마스터키요?"
"응."
"으아. 그런 건 언제 챙겨두셨데. 근데…. 그건 왜 챙긴 거예요?"
"글쎄. 나쁜 짓 하려고 챙긴 건 아냐."
"막…. 밤에 몰래 들어오려고?"
"그럴 걸 그랬나."
"근데 그건 범죄에요."
"너희가 거절했으면 범죄겠지."
"으음."
"거절했을까?"
말이 없어진 지아.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 그리고 그건 지원이도 마찬가지였다.
"뭐하러 그런걸 신경 써. 지금이 중요한 거지."
그러면서 나는 둘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좋은 방은 최상층에 있다는 걸 1층에서 봤기에 엘리베이터를 타서 최상층을 눌렀고 도착한 뒤 내려서 방문에 키를 가져다 댔다.
"와아."
방문이 열리자 지아가 감탄한다.
부티크 호텔이라 그런지 나름 고급스러운 방.
W호텔이나 코엑스에 있던 호텔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화려한 방이다.
"지난번에 여기 있을 때 이 방들은 안 썼어?"
"네. 그때는 와서 잠만 자기 바빠서…."
지원이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침대를 살펴봤다.
크고 좋아 보이는 침대. 뭐, 이거면 충분하지.
침대를 확인하고 지원이와 지아를 돌아보자 그제야 서야 그녀들은 이곳에 셋이 함께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실감이 나나 보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고, 두 여자는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그럼….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