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90화 (2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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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에 익숙해진다는 것

캐슬에서 민희의 일을 해결한 다음 날.

비가 오는 자양동에서 나는 밑에서 움직이는 인간들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어렴풋하게 들리는 빗소리를 듣고 혹시나 했었다.

그래서 비를 맞아가면서 자양동까지 온 나다.

그리고 이곳에 와보니 이런 꼴이 돼 있었다. 불이 꺼진 건물 사이에서 코인을 줍고 있는 인간들.

숫자는 스무명 정도. 가까이에서 들어보니 이놈들도 짱개다. 아마도 조선족.

이놈들도 이쪽 상황을 계속해서 보고 있던 거다. 그리고 비가 와서 불이 꺼지자마자 냅다 코인을 줍고 있는 거고.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어서 보이는 짱개놈들을 바로 족치려 했는데…. 생각을 바꿨다.

알아서 코인을 주워주는 거잖아? 이걸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된 거다. 편안하고 느긋하게 일반 탐지 거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관찰하기.

녀석들은 나름 꼼꼼하게 뒤져가면서 코인을 줍고 있었다. 정말…. 탐욕스러움이 얼굴에 가득할 정도로.

여기서 죽은 짱개들과 어떤 관계인인지는 모르지만…. 슬프거나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코인이라도 빼먹지 않기 위해 눈이 벌게져서 불이 난 곳의 잔해를 뒤집을 뿐.

뭐…. 그래. 굳이 죽은 사람들을 애도할 필요는 없지. 전혀 상관없는 관계일 수도 있으니까.

근데 웃긴 건 이놈들도 나름 체계가 있나 보다.

코인을 찾아낸 놈들은 그걸 바로 쓱싹 먹는 게 아니고 어떤 놈을 불러서 확인을 받는다.

그럼 그놈이 코인을 자기가 먹든지 다른 놈을 불러서 먹게 하든지 아니면 발견한 놈에게 먹게 하든지 셋 중의 하나를 결정한다.

구성원들이 평균적으로 먹게 하려면 저렇게 하는 게 맞긴 하는데…. 그다지 평행한 구조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그런것 까진 알 거 없지. 나야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니까.

녀석들은 불이 난 곳의 삼분의 이 정도를 뒤졌고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하는 녀석들.

불 난 곳의 삼 분의 이라고는 하지만 처음 짱개놈들이 죽은 곳은 다 뒤지긴 했다.

나머지 지역은 그냥 불만 난 곳이라 뒤져봐야 코인이 나올 리가 없을 거다.

그럼…. 저놈들을 지금 잡아도 된다는 이야기.

다행인 건 스무명 중에 여자가 여섯 정도 껴있다는 거다. 뭐든 여자만 있으면 충분하지. 일하기 편해지니까.

일단 여자들에게 하나씩 다가가 매혹을 걸었다.

중요한 건 한국어를 알아듣냐 못 듣냐다.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면 여자고 뭐고 의미가 없잖아.

운 좋게도 순서대로 말 건 여자 네 명이 모두 내 말을 알아들었다. 딱 봐도 전형적인 조선족들.

좋아 그럼 여자들도 준비됐고…. 하나씩 처리만 하면 되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뿔뿔이 흩어져 있는 녀석들을 하나씩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여자 중에 기절과 감전 스킬이 있긴 있었는데…. 도저히 매끄럽게 지시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집어치웠다.

그걸 시키고 있느니 그냥 내가 잡는 게 더 빠르지.

또다시 한 놈을 재우고 여자들에게 물어본다.

"코인 가진거 말해."

"21만 있슴다."

"27만 임다."

"25만 가지고 있슴다."

"19만 임다."

"뒤에 빼고 숫자만 말하라니까. 다음에 말안들으면 그냥 죽일거야. 19만. 너 이놈 위에 올라타."

여자가 잠든 남자 위에 올라탔고 마체테로 목을 찍었다.

코인이 여자에게 빨려들어갔고 여자가 바로 말한다.

"25만 됐슴다."

"알았어. 전부 따라와."

그렇게 남은 짱개들을 전부 처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가진 코인 양에 따라서 누가 먹게 할지 생각하는 게 더 오래 걸릴 정도.

그렇게 모두 다 처리하고 난 뒤 녀석들이 타고 온 승합차에 여자들을 모두 태웠다.

이놈들이 차에 키를 놓고 다녀서 다행이야. 이 년들 데리고 걸어가야 했으면 짜증 났을 거야.

차로 30분.

벙커 근처까지 온 나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짱개년들을 모두 내리게 하고 벙커 근처로 걸어간다.

아직 메마른 겨울.

앙상한 과수원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여자들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거리를 벌리게 세운 다음 한 명씩 코인의 양을 물어봤다.

42만, 38만, 50만, 53만.

42만 들고 있는 여자 발밑에다가 승희라고 적었다. 38만 밑에는 세아, 50만 밑에는 미나, 53만 밑에는 안나.

그렇게 흙바닥에 발로 쓱쓱 이름을 다 적은 뒤 넷 다 재웠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사실 직접 죽이라고 하는 게 맞다.

출혈이 크도록 찍어버린 다음 죽을 때까지 지켜보고 코인들을 회수하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온실 속의 화초로 있게 할 수는 없잖아. 앞으로는 더 잔인한 일들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역시 마음에 걸리긴 한다. 내 손을 더럽히는 건 쉽지. 하지만 이건 다른 일이니까.

아름다운 도자기 같은 그녀들의 안쪽에 내가 구정물을 들이붓는 게 아닐까.

언젠간 이날을 크게 후회하지 않을까.

그렇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다. 나는 내 여자들에게 모질고 잔인한 짓을 하게 해야 해.

다시 한번 여자들을 수면으로 재우고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어? 왔어요? 일찍왔네요?"

나를 반기는 미나.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옷 입고 나와. 다른 애들도 다 부르고."

미나는 눈치가 빠른 여자다. 내가 진지한 걸 보고 빠르게 다른 여자들을 불러 모아온다.

전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 여자들. 바깥의 상황을 보고 입을 가린다.

딱 봐도 뭔지 알겠지. 쓰러져있는 여자들, 그리고 그 바닥에 쓰여 있는 이름.

"하아…."

세아의 한숨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무슨 상황인지 알지만…. 당연히 내키진 않겠지.

"이 여자들은 많은 사람을 죽인 흉악한 여자들이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였고, 괴롭히고…. 어쨌든 굉장히 나쁜 사람들이지. 일행도 있었는데…."

"오빠."

내 말을 끊고 승희가 나를 부른다.

"뭔지 알아. 그러니까 그렇게 변명하듯이 말하지 않아도 돼. 오빠가 하라는 거면 설령 이 사람들이 착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선한 사람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죽인다'는 말을 생략했지만, 다들 그 정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곁들여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믿음이 가득하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줘요."

승희의 말에 나는 마체테를 내밀었다.

그래 지난번 종묘상에서 헬창들을 죽였을 때도 큰 문제 없이 했었지.

내가 이들을 너무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나 보다. 근데….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어.

마체테를 두 손으로 잡은 승희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그녀는 두 손을 잔뜩 치켜들다가 내리쳤고 바닥에 있던 여자는 한 번에 빛이 되었다.

"하아."

빨려 들어오는 코인까지 마무리한 승희는 다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나에게 건네는 마체테.

그걸 받아든 미나 역시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승희가 한 것과 똑같은 자세로 내리쳤지만 한 번에 죽지는 않았다.

불쾌하게 튀어버린 피. 하지만 놀랄 거라고 생각한 미나는 망설이지 않고 한 번 더 휘둘렀다.

여자는 빛이 되었고, 코인은 미나에게 빨려 들어갔다.

복잡해 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담담한 표정의 미나.

나와 눈이 마주쳤고, 옅게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강하네. 아니면 그만큼 나를 믿는다는 건가.

세아에게 마체테를 건네주는 미나. 하지만 세아는 손을 들어 거절했다.

"괴력. 이걸로 해봐도 되나?"

이건 또 의외네. 그걸 본인이 먼저 제안하다니.

"물론이지. 너만 괜찮다면."

"괜찮아야지. 안 괜찮다고 안 쓸 거 아니니까. 후우."

그러더니 맨손으로 털레털레 여자의 앞으로 간 세아.

작게 '괴력'이라고 중얼거린 세아는 마치 송판을 격파하는 자세로 엎드려있는 여자의 몸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섰다.

작은 주먹을 목 뒤에 한 번 겨누더니 눈을 감는 세아. 그리고 눈을 뜬 다음 팔을 뒤로 한껏 당겼다가 그대로 내질렀다.

그다지 깔끔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위력은 그렇지 않았다.

고사리 같은 주먹에 맞은 여자는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그대로 빛이 되었다.

괴력…. 무시무시하구나. 정권 지르기 한방에 목뼈가 그대로 부러진다고….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털레털레 들어오는 세아.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한번 헝클였지만, 세아가 바로 내 팔을 잡더니 내 몸 뒤로 꺾어버렸다.

"아. 아. 아. 항복. 항복."

"괴력 쓰고 있을 때는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알았어. 항복. 항복."

세아가 팔을 놔줬고 나는 욱신거리는 어깨를 천천히 돌리다가 안나를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역시 해맑게 웃는 안나.

웃는다고? 이런 상황에?

미나에게 마체테를 받더니 망설임 없이 남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가는 안나.

준비 동작이고 뭐고 없이 그대로 능숙하게 마체테를 휘둘러 여자의 목을 베어버린다.

얼래…. 쟤 왜 저렇게 자연스럽냐. 망설임도 없고.

바로 빛이 되는 여자. 코인까지 획득한 안나가 내게 다가오더니 마체테를 돌려준다.

여전히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안나. 뭐지…. 얘 뭐 하는 애야….

"어…. 괜찮아? 안나?"

"괜차놔? 아! 오케이. 오케이. 괜찮아."

너무 해맑은 데…. 대체 이 아가씨의 과거는 어떻길래…. 칼질이 능숙한 데다가 웃고 있는 거야.

빨리 한국어가 늘었으면 좋겠다. 안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후우. 다들 고생했어. 일단 이만큼이면 당분간은 코인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그러니 이제 뭘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

분위기가 처지지 않게 하려고 조금 발랄한 척을 해보긴 했지만, 살짝 깔린 우울함을 모두 없애버릴 정도는 아니다.

하긴, 사람을 죽여놓고 담담하면…. 그것도 이상하지. 나 같은 놈이나 담담한 거지 이들은 아직 사람의 마음이 남아있으니까.

그래도 관심을 포션 쪽으로 돌려놓으니 그나마 분위기가 칙칙해지진 않았다.

"그럼 들어가자. 춥다."

다들 벙커 입구로 향했고 나는 바닥에 적혀있는 네 여자의 이름을 발로 쓱쓱 지운 다음 바로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벙커로 들어와 저녁을 먹고 거실에 둘러앉은 시간.

눈앞에 쌓여있는 포션들, 나에게 질병 해제를 거는 미나.

탐지를 쓰는 안나, 괴력을 반복하고 있는 세아. 그리고 투명화를 마스터 한 승희.

"그래서 나는 뭘 올려요?"

"너 폭발 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그랬죠. 그럼 바로 폭발 배우면 돼요?"

"그렇긴 한데…."

"와. 나도 드디어 공격 스킬이란 게 생기는구나."

생각해보니 승희가 폭발을 배우면 나는 승희를 막을 수가 없다.

아마 예전이었으면 절대 못 하게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승희에게 목숨을 잃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니까. 이미 그럴 단계는 넘어섰잖아.

"근데 문제는…. 이거 숙련을 하기가 조금 힘들다는 거야."

"아. 그러네요. 집안에서는 절대 숙련을 못 하네."

"응. 무조건 밖에 나가서 해야 하는데…. 그것도 소리가 요란해서 쉽지가 않을 거야."

"으…. 그럼 어쩌지."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어떤 거요?"

"하나는 비행부터 배우는 것."

"으음…. 그리고요?"

"폭발 말고 다른 공격 스킬을 배우는 것."

"다른 거요?"

"응. 이제 보니까 스킬에는 스킬 트리라는 게 있어."

내 말에 관심을 보이는 네 여자. 말을 못 알아듣는 안나도 이해를 하는지 못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나는 스킬 트리에 대해서 알려줬고 모든 설명을 들은 이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음…. 오빠. 그럼 난 감전을 배우는 게 아니고 번개를 배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미나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감전보다는 번개를 배워서 뒤쪽의 광역 스킬까지 다 배웠으면 해."

"그쵸? 차라리 그게 나을 거 같아요. 어차피 저도 투명화랑 비행도 배울 거죠?"

"응. 우리 중에 한 명은 광역 스킬이 있긴 해야 할 거 같아. 그리고 그러려면 아무래도 번개 스킬이 낫겠지."

"왜?"

의아한 듯이 물어보는 세아.

"메테오는 건물까지 박살 내잖아. 눈보라는…. 계절이나 환경을 너무 많이 탈 거 같아. 결국, 가장 좋은 건 번개란 말이지."

"흐음…. 일리 있네."

"그럼 나는 뭐 배워요? 폭발 말고…. 파이어 볼?"

"아니. 진동파는 어때? 아니면 암석 탄환."

"엥? 둘 다 전혀 생각 못 한 스킬인데."

"일단 이유가 있어. 들어봐."

나는 자세를 편안하게 하고 내가 생각한 것들을 다시 한번 머리속에 정리했다.

그리고 천천히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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