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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지만 일상이 된 것들
민희를 보고 있는 조 상무의 표정을 보니 왠지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원초적인 공포와 두려움. 그걸 여과 없이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얼굴.
아마 이 얼굴을 그대로 그림 그려놓으면 그게 현대미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제목은 공포.
쾅!
민희가 휘두른 망치가 다시 한번 조 상무의 발등을 찍었다.
민희는 지금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온몸의 뼈를 두드리는 중이다.
부서질 정도는 아니고 금이 갈 정도? 그 정도로만 두들기는 민희.
기절할 정도는 아니고 딱 끔찍한 고통을 느낄 정도라고 해야 하나?
민희가 하는 행동은 어린 예준이에겐 조금 잔인하게 여겨질 수 있어서 내려보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본인이 거절하고 남았다.
죽음에는 나이가 없다면서 앞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녀석.
그런 녀석이 기특해 보이기도 했지만 안쓰러움이 더 컸다.
친구들과 햄버거 먹으러 다니면서 PC방에 가는 게 어울리는 나인데….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그래도 저런 마음가짐은 맘에 들었다. 죽음에는 나이가 없다니…. 캬. 좋은 말이지.
쾅!
민희의 망치질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아마 조 상무 저 새끼는 이제 살려준다고 해도 평생 앉은뱅이 신세는 못 벗어나지 싶다.
아…. 설마 힐로 이런 거까지 다 고쳐지려나?
생각해보니 그렇네.
신체 복구가 결손난 신체 부위를 되돌리는 거라면, 적어도 힐 스킬로 그 이하 부상이나 상처는 다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이잖아?
다쳐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이 세상은 죽고 죽이는 세상이지 다치는 세상이 아니야.
"성철 씨."
"응?"
"이 녀석 다리에 테이프 풀어서 벌린 다음 다시 묶어줄 수 있어요?"
"다리를 벌려? 설마…."
"네. 그 사이에 볼일이 있어서."
"어…. 가능은 하지…. 그런데…. 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빠지네."
민희와 내 말을 알아들은 용훈과 예준 역시 남자인지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마땅히 그렇게 당해도 싼 조 상무이지만, 남자라면 원초적으로 가진 방어 본능 때문에 그런지 굉장히 웃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그래도 일단 민희가 요청했으니 안 들어 줄 수는 없지.
조 상무를 재우고 마체테로 다리의 테이프를 뜯었다.
그런 다음…. 주변을 둘러보고 적당한 막대기를 아무거나 하나 집어 와서 조 상무의 다리를 벌리고 막대기와 발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 버렸다.
다리가 벌려진 채로 고정된 조 상무.
내가 한 작업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민희.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걸 바라보는 남자들 일동.
망치를 든 민희의 팔이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갔다.
!!!!
방 안에 있던 나를 포함한 남자들 세 명 모두 민희의 마지막 액션까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액션. 축구공에 실수로 맞아도 어윽 소리가 절로 나는 곳이다.
근데 거기를…. 망치로…. 어우.
"끄어어어어억!!!"
방안에 울려 퍼지는 조 상무의 비명.
많은 것을 함축하는 소리.
순수한 고통과 남성성의 상실. 그 참담함이 뒤섞여 메아리치는 듯한 끔찍함.
얼마나 그 비명이 처절했는지 순간 조 상무가 민희와 여자들에게 했던 짓을 잠깐 까먹을 정도였다.
그만큼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순수한 악의로 가득 찬 행동.
다시 한번 민희의 팔이 머리 위로 올라갔고, 다들 고개를 돌렸다.
"커허윽…. 어윽…."
두번째 비명은 첫 번째보다 처절했다.
모르는 상태에서 당하는 것과 한번 당한 다음에 또 당하는 것은 통증과 공포감의 수준이 다르다.
그리고 민희의 행동은 두번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의 열 번을 넘게 내려친 민희.
게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폴딩 나이프를 꺼내서 조 상무의 온몸에 칼집을 내놓았다.
방안 가득 풍기는 피 냄새와 처절함의 편린.
한 다섯 번째 망치질을 할 때쯤 다른 사람들이 보기 힘들다고 내려갔기에 최상층 방에 남아있는 것은 나와 민희뿐이다.
그렇게 피비린내가 가득한 곳에서 민희는 자신의 나이프를 정리하고 내게 안겼다.
"후우. 이런다고 내 마음의 상처가 사라질까요."
"그럴 리가. 미안해. 늦게 와서. 늦장 부리지 말고 조금 더 일찍 올걸."
"아니에요. 당신이 온 게 어디에요. 경솔했던 내가 잘못이지."
"근데…. 이놈들은 뭐야? 다 죽이고 나서 물어보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이놈들도 컴퍼니야?"
"아니요. 이놈들은 조 상무의 개인 병력이에요. 따지고 보면…. 사병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 이 새끼도 컴퍼니 윗대가리들을 다 재끼려고 했다던가?"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이 새끼도라뇨?"
"정종찬 그 새끼도 똑같은 짓을 계획했거든."
"하아. 다들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네요."
"원래 등따습고 배부르면 슬슬 딴생각이 나기 마련이지. 근데…. 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뭐…. 할 말이 있나요. 그냥 제힘이 약했을 뿐이죠. 이 녀석이 조금 더 음흉했을 뿐이고."
"다짜고짜 공격한 거야?"
"처음엔 포섭 비슷한 걸 하긴 했어요. 자기 여자가 되라는 둥 개소리를 좀 해서 씹긴 했지만."
"그냥 삼류 악당이었네."
"그쵸. 그리고 전 삼류 악당에게 무참하게 당했고요."
"그렇게 말하지 마. 이리와."
민희는 얌전히 내게 안겼다.
아무리 강한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당했던 일은 그리 가벼운 일들이 아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의연하게 굴 사람은 없다.
민희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 여자는 울거나 비참한 기분에 참담해 하지는 않았다.
"빨리 강해져야겠어요."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이를 악무는 모습.
이런 모습이 그녀의 대단한 점이겠지. 내가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후우. 이러고 있으니까 그나마 기분이 낫네요. 근데 저건 빨리 치워야겠어요. 피 냄새가 너무 역하네요."
내게서 살짝 떨어진 민희가 조 상무에게 다가갔다.
다시 폴딩 나이프를 빼든 그녀는 심장 쪽에 살며시 칼끝을 가져다 댔다.
마치 두부 같은 것을 찌르듯 마술처럼 몸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칼날.
그리고 컥 소리를 내며 조 상무는 빛이 되었다.
"쓰레기 같은 놈. 그래도 코인은 많이 주네요."
조 상무가 죽자 방 안의 공기는 다시 괜찮아졌고 나이프를 다시 수납 안으로 넣은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다.
"마음은…. 당신에게 안기고 싶은데, 아직 몸이 상태가 별로네요. 하나도 안 즐거울 거 같아."
"무리하지 마. 그런 건 언제든지 와서 할 수 있으니까."
"하아. 그래요. 안 죽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죠. 이번 일로 마음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대로 분당에 가기엔 나는 너무 약해."
"말했잖아. 약하다고."
"그러게요. 꼭 당하고 난 다음에야 알아듣네요. 그래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으려고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코인 방금 얼마나 나왔어? 얼마큼 있지?"
"방금 조 상무 그놈이 좀 많이 줘서…. 이제 100만 조금 넘게 있어요."
"당분간 코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식량을 사 먹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죠."
"그럼…. 그걸로 포션까지 사는 건 아까우니까 포션은 내가 사 줄게. 부지런히 먹으라고."
그러면서 나는 포션을 잔뜩 사서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놨다.
숫자가 100개를 넘어갈 때부터 눈이 커지는 민희는 내가 300개를 사서 올려놓자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늘 항상 투 머치 하네요."
"300개 해봐야 60만밖에 안 돼. 게다가 이만큼 해봐야 스킬 하나라고."
"하아. 그렇죠. 그렇긴 한데…. 하여간 우리랑 사는 단위가 너무 달라."
"수납은 많이 찍었어?"
"고급 72퍼센트요."
"금방 올리겠네. 그래도 많이 했네?"
"당신 생각하면서 먹기 싫어도 포션 좀 먹었어요."
그러면서 내게 바짝 달라붙는 민희.
아…. 오늘 안 할 거라며. 왜 또 유혹하는데.
"잘했어. 아무튼…. 당분간 바쁘겠네. 본인 숙련도 올리랴. 캐슬 정리도 하랴…."
"음? 바로 갈 거예요? 왜 정리하는 듯한 말투에요?"
"내가 오래 있으면 네 권위에 영향이 가. 지금은 내가 없는 게 낫지."
"그런 것도 신경 쓰는 거예요? 섬세한 남자네."
"예준인가 쟤, 잘 보살펴주고."
"당신이 남자를 신경 쓰는 것도 신기하네요. 항상 남자는 밟아 죽일 것처럼 말하면서."
"맞아. 그 마음은 아직도 그대론데?"
"그럼 쟤는 왜 이리 신경 써요?"
"쟤는 아직 남자가 아니잖아."
"어머? 저래 봬도 할 건 다 할 텐데?"
"물론 저 나이 남자애면…. 어마어마하겠지. 막 벌떡벌떡할걸?"
"당신이 그런 소리 해봐야 그저 놀리는 거로밖에 안 들리는데. 더 대단하면서."
그러면서 나를 끌어안는 손의 위치가 미묘하다.
이 여자는…. 대체 어쩌라는 거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암튼, 좋은 모습을 봐서 그런가…. 아직 그 남자 특유의 혐성질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가? 그나마 쟨 괜찮더라고. 그리고 쟤 뭐냐 용훈이? 그놈도 고지식 해 보이는 게 맘에 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자기 소신 지키는 게 쉽진 않죠. 그런 점은 저도 좋게 생각해요."
"암튼, 그 소 부장이라는 놈의 팀은 그럼 저것 밖에 안 남은 거지?"
"네."
"그럼 결국 너 포함해서 다섯이네."
"그렇죠."
"이 넓은 곳을 다섯이 지키려면…. 쉽지 않겠네."
"어떻게든 해봐야죠. 너무 걱정하지 마요."
"걱정을 안 하게 생겼니? 너랑 뒹굴 거 생각하고 룰루랄라 왔는데 이 모양이 돼 있었는걸."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나를 꼭 끌어안는 민희.
나 역시 그녀를 꼭 안으면서 말했다.
"말했잖아. 내 허락받고 죽으라고. 난 허락 안 할 거니까…. 죽지 마."
"알겠어요. 명심할게요."
"그래…. 그럼 갈게. 성질을 너무 냈더니 지친다."
"그래요. 고생했어요."
"종종 들릴 테니까…. 잘 하고 있어."
"알았어요."
더 있으면 당부나 노파심의 잔소리가 계속해서 나올 것 같아 그냥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 남는 민희의 모습이 조금 걱정이 되지만 내가 옆에 항상 있을 수는 없으니 어쩔 수는 없지.
그렇게 하늘에 떠올라 캐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컨테이너가 성벽처럼 둘러싸인, 보기엔 그럴 듯 하지만 지키는 이들이 거의 없어 무주공산처럼 보이는 곳.
사실 이젠 노릴 만한 놈들이 없긴 하다.
남양주가 그렇게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고 이곳의 내부사정을 아는 놈들도 이제는 다 없어졌다.
특별하게 노리는 놈은 없겠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같은 놈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으니까.
하아.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걱정거리를 스스로 수집하고 살게 됐는지.
그냥 예전처럼 다 죽이고 살았으면 편안했을 텐데.
아니면 캐슬 같은 경우도 캐슬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민희의 복수만 딱 해주고 내가 품고 살면 될 텐데.
모르겠다.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물류창고…. 아니 이제는 연수원이 된 그곳도 그렇고, 펜스도 그렇고.
하아. 그냥 셋 다 한 곳에 몰아넣을까?
음…. 그러면 어떻게 되지? 난장판이 되려나?
그래도 약간 기대되는 부분은 있다.
정 부장이랑 승규랑 민희가 한자리에 모여서 뭔가를 운영한다니…. 생각해보면 나름 나쁘진 않을 거 같은데.
모르겠다. 뭐 가능성을 아예 닫아놓을 필요는 없지.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은 돌아가자. 정말 화를 너무 많이 내서 힘이 빠진다.
아니…. 민희가 조 상무 놈 거시기를 내리찍은 걸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다리에 힘이 없는 기분이야.
가서 조금 쉬어야겠어. 스킬도 숙련하고…. 암튼 내 할 일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