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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
상쾌하게 맞이하는 아침, 아니 점심.
일어나보니 한시다. 언제나 이렇지. 잠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어.
텅 빈방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익숙하지만, 문밖은 다르다.
내가 나가자 나를 반기는 내 여자들.
행복하다. 나같은 놈이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나?
다 같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세아와 밖으로 나왔다.
민희를 보러 가기 전에 세아와 괴력에 대한 활용법을 확인 해야 하니까.
또 지금 민희를 보러 가면 언제 올지 모르잖아.
"으. 추워. 근데 왜 바깥으로 나온 거예요? 괴력 숙련은 집안에서도 할 수 있잖아."
"테스트는 해봐야지. 일단…. 지금 안 썼지?"
"어. 평소에 쓰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 나중에 익숙해지면 그땐 늘 쓰고 다녀. 일단은…."
주변을 둘러보며 바닥에 있는 돌 하나를 주웠다.
"이거 한번 던져볼래?"
"어디에다가?"
"저쪽 나무 있는 곳에."
세아는 내가 건네준 돌을 들고 엉성한 포즈로 돌을 던졌다.
정말…. 초라한 궤적으로 날아가는 돌멩이. 자신도 던지고 나서 민망한지 나를 보며 말한다.
"우…. 웃지 마! 내가 이런 걸 던져봤어야지!"
"너 그 최루탄인가 그건 잘 던졌잖아. 기가 막히던데."
"그건…. 나름 연습했으니까."
"근데 그거랑 이거랑 다른 게 뭐야. 최루탄 그거 던지듯 던져봐."
"손에 안 익어서 그래! 기다려봐!"
적당한 돌을 하나 더 집어서 던지는 세아.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낫긴 한데…. 그렇다고 뭐 딱히 훌륭한 투척은 아니다.
가까운 거리나 그나마 던지는 모양새가 나지 말리는 힘든 모습.
"자. 그럼 괴력 쓰고."
"괴력."
"돌 하나 쥐고 던져봐. 아무 데나. 내 쪽이나 집 쪽으론 던지지 말고."
돌을 하나 쥐어서 산 쪽을 향해 던지는 세아.
엉성한 포즈였지만, 세아의 손에서 떠나 날아간 돌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나무로 날아가 박혔다.
"박…. 혔어?"
"그러게. 돌팔매로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니겠네."
"와…. 저걸 내가 한 거라고?"
"대충 예상은 했는데…. 효과 좋네. 게다가 너 지금 하급이잖아? 그치?"
"아니…. 중급 됐는데."
"어? 중급 됐어? 어제 중급 올리고 잤어?"
"아니. 자기 전에는 차마 못 찍었고, 일어나서 마저 찍었어."
"그래? 어쨌든 고생했네. 중급이라…. 어제보다 더 강해진 것 같긴 해?"
"응. 그건 확인했어. 어제보다 힘이 더 강해졌어."
"그래…. 어쨌든 지금 중급인데 이 정도면…. 마스터하면 무시무시하겠네. 잠깐 이리와봐."
바닥에 떨어진 조금 두꺼운 나뭇가지 하나를 세아에게 건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받아드는 세아.
"그 정도는 부러뜨릴 수 있나?"
"해볼게요."
콰직
양쪽을 잡고 힘을 주자 손쉽게 반갈죽되는 나뭇가지.
저게 저렇게 쉽게 된다고? 나도 저건 힘들 것 같은데.
"확실히 힘이 왕창 오르는 건 맞네."
"응. 나도 엄청 어색해."
"근데 그렇게 하면 손이 아프거나 하진 않지?"
"손? 안 아파. 봐봐 생채기 하나 없잖아?"
"하긴. 힘은 세졌는데 신체가 보호 안 되면…. 뼈고 근육이고 다 작살나겠지? 음…. 잠시만."
바깥 창고 옆에 있는 나무 탁자. 거기에 나뭇가지 하나를 올려놨다.
"손바닥으로 이거 내리쳐볼래? 손은 괜찮으려나?"
"어. 괜찮아 괜찮아. 이런 건 이미 해봤어. 손은 멀쩡해."
"그래? 한번 해봐."
쾅!
세아가 손을 내려쳤고 나뭇가지가 말 그대로 산산이 조각났다.
와. 개사긴데…. 이해가 안 가네.
"왤까?"
"다짜고짜 무슨 소리여요."
"이렇게 좋은 스킬이 왜 10만 코인밖에 안 될까? 페널티가 전혀 없잖아. 아무리 봐도 좋은 점밖에 없는데 왜 10만 코인 밖에 안 하지? 게다가 1티어에 있는 것도 이해가 안 가. 이건 개사기 스킬이잖아."
"아. 나는 이해 할 거 같아."
"어? 뭐가?"
"이 스킬의 페널티."
"페널티가 있어?"
"응. 내가 이미 컵을 세 개 정도 부숴 먹은 거랑 관련이 있어."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거…. 힘 조절이 굉장히 힘들어."
"그래? 어제 너는 잘 썼잖아?"
"그건 아마 하급이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내가 원래 힘이 약해서 그런 것도 있는 거 같고. 원체 약한 힘이라 몇 배로 세져도 별로 크게 세지지 않은? 그런 거?"
"아아…. 그런 건가."
"그래서 아까 중급 된 다음에 하급 때 생각하고 컵 쥐었다가 그대로 박살 났잖아요. 이거 생각보다 컨트롤이 쉽지 않아요."
"약하게 쥐거나 이런 게 안되는 거야?"
"되긴 하죠. 상당히 조심조심하면? 근데 그러느니 솔직히 괴력을 끄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아. 대충 이해했어. 결국…. 괴력 쓰면 사람도 그 컵 꼴 낼 수 있다는 거네."
"응. 사람 팔다리 정도는 가볍게 분질러 먹을 수 있을걸?"
"그렇구나. 음…. 어쨌든 좋은건 맞네. 그러면...세아 너는 날마다 던지는 연습을 해. 돌이든 단검이든, 아 단검은 안 되겠다. 사람 몸에 박혀서 죽어버리면 같이 사라지니까. 동전이라던가 뭐 하여간 사람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거로 던지는 연습을 해."
"으.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멀리서 공격할 수 있으면 멀리서 해야지. 굳이 근접해서 붙을 필요는 없어. 그러니 연습해. 물론 다음에 신속화를 배우면 쓸모없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익혀두면 절대 손해는 안 볼 거야."
"으음…. 알겠어요. 그래…. 뭐 직접 손으로 죽이게 되는 것보단 낫겠지."
"그래. 그리고…. 세아 너는 왜 자꾸 그렇게 반말을 했다가 존댓말을 했다가 하는 거야? 그냥 편한 거 하나로 통일하면 안 돼?"
"아으…. 그게. 나도 잘 안돼. 아니 안돼요."
"차라리 그냥 편하게 해라. 반말한다고 기분 나쁜 거 아니니까."
"그래? 그럼 나야 좋지."
"이 말 하기만을 기다린 거 같다?"
"어…. 어떻게 알았지?"
그렇게 세아와 조금 더 괴력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확인했다.
마음 같아서는 세아를 데리고 헬스장 가서 벤치프레스라도 시켜보고 힘이 얼마나 증가하나 알고 싶은데…. 그건 나중에 천천히 하고.
이제 슬슬 민희를 보러 가야지. 오늘 언제 오라는 말이 없어서 뭉그적거리고 있긴 한데. 결국, 가긴 가야 하니까.
"이제 들어가자. 난 또 나갔다 와야 하니까."
"또 나가?"
"그래야 세계 평화를 지키지."
"뭐라는 거야. 웬 세계평화."
"아무도 싸우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있으니까."
"이상하다? 점심 먹은 게 잘못됐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나갈 거면. 빨리 들어가기나 해. 바로 나가나?"
"아냐. 잠시 들어갔다 나가지 뭐."
내 이야기를 듣고 바로 벙커 입구로 향하는 세아.
나는 그런 세아를 따라 들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다 죽여버리면 서로 못 싸우니까."
"응? 뭐라고 그랬어?"
"아냐. 너 이쁘다고."
"뭐라는 거야. 진짜 점심 먹은 게 이상했나 보네. 우린 다 멀쩡한데?"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가 적당히 준비하고 모두에게 인사를 한 뒤 나왔다.
수납에 모든 짐을 다 때려 넣고 가벼운 모습으로 나간다고 하니 다들 심각한 일이 아닌거라고 생각하고 크게 걱정을 안 한다.
음. 이건 좋네. 나갈 때마다 내 걱정 하는 게 약간 부담스럽긴 했는데. 걱정을 덜 해서 좋아.
일단 민희를 보러 가기 전에 확인할 것들은 확인하고 가려고 먼저 물류창고로 향했다.
탐지 범위가 넓어졌는데 잡히는 기척이 없어서 확실한 체감을 못 하겠다.
그렇지만 시간이 늘어난 것은 확실히 좋긴 좋다. 두번 써도 세 번 쓴 느낌이 나니까…. 효율이 확 좋아진 느낌.
다음 패시브를 찍으면 두 배로 좋아지는 건데…. 패시브는 완전 사기야 사기.
물류센터 근처로 가자 두 명의 기척이 잡혔다.
드디어 뭔가 잡혔나? 해서 다가갔더니 승규와 동현이었다. 약간 맥빠지는 기분.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그냥 공중에 떠서 그들이 뭘 하는지만 지켜봤다.
아기 새가 비행 연습하는 걸 지켜보는 어미 새 같은 느낌으로.
두 사람은 건물 안쪽을 들락날락하면서 이것저것을 트럭에다 싣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좀도둑 둘이서 빈집털이하고 있는 느낌일 거 같은데.
아마 급하게 가느라 못 챙겨갔던 것을 챙겨가는 거겠지?
그런 그들을 두고 물류센터 주변을 크게 몇 바퀴씩 돌며 탐색을 돌려본다.
아무도 없는 기척. 없으면 좋지. 뭐.
그렇게 그들을 뒤로하고 본진 벙커로 향한다.
정세희 그년을 보고 싶진 않지만…. 궁금했다. 신경도 쓰이고.
벙커로 가서 페이즈 아웃을 쓰고 벙커 아래로 내려간다.
투명화, 비행, 반사를 쓰고 문에 난 창문을 통해 조용히 방 안을 훔쳐보니 역시 침대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세희.
스피커에서는 계속해서 세희의 목소리로 잘못했습니다. 소리만 나오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벙커 분위기는 상당히 우울했다.
이거 정말…. 사람 미치기엔 딱 좋은 분위기네. 저대로 놔둬도 되나?
모르겠다. 뭐 사람이 그렇게 쉽게 미치진 않으니까…. 내가 뭐 고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미치면…. 어쩔 수 없지.
죽은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확인했으니 가야지.
그렇게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이 쾅! 하더니 정세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 있지! 온 거지!? 나랑 이야기 좀 해! 응!?"
희한하네. 기척은 거의 안 냈는데. 어떻게 알았지?
코인도 없고 스킬도 없는 저년이 나를 알아챌 방법은 없을 텐데?
나는 세희가 말하는 것을 씹고 그대로 페이즈 아웃을 썼다.
이야기는 무슨 개뿔. 내가 뭐 이야기하자고 하면 굽신거리면서 들어줘야 해?
그대로 밖으로 나와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비행을 쓴 뒤 하늘로 솟구친다.
마침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 비라고? 그럼 자양동의 불길도 이제 좀 꺼지나?
비가 오는 것은 좋지만…. 몸이 젖는 것은 조금 짜증 나는 일이다.
아예 구름 위로 날아서 가볼까? 그럼 비는 안 맞을 텐데.
아니지. 그게 말이 되나? 비구름 높이는 몇 킬로미터 하늘 위라고 알고 있는데…. 나는 비행기가 아니잖아?
자양동 근처로 가니 이쪽은 비가 안 오고 있었다.
내가 비구름보다 빨리 온 건가? 여기도 오긴 와야 하는데.
그렇게 한 바퀴를 쓱 둘러보고 W호텔 로비로 갔다.
쌓여있던 식량들이 다 사라진 것으로 봐선 민희가 다 챙겨갔나 보다. 고기들도 다 챙겨갔나?
냉동고로 가서 확인해보니 싹 사라졌다.
식량을 다 가져갔다는 건 몇 번을 왔다 갔다 했거나 수납 숙련을 올렸다는 이야긴데.
궁금하네…. 어떻게 하고 있을지.
바로 남양주를 향해 날아갔다.
캐슬. 병신같은 성채 놈이 만든 병신같았던 곳.
이제는 예전의 오분의 일도 안 되는 인원만 살아남아 다시 새로 시작하려는 곳이다.
그런 캐슬에 도착하니 탐지에 바글바글하게 기척이 잡힌다.
그럼 어디…. 여왕님이 어디 있나 한번 살펴볼까?
그렇게 캐슬을 살펴보는데…. 뭔가 약간 이상하다.
분위기가 내가 생각한 분위기가 아니다?
분명 민희의 말대로라면 그 소 부장인지 나발인지의 부하 놈들은 상태가 괜찮다고 들었는데?
지금 있는 놈들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상당히 껄렁한 모습인데?
게다가 무엇보다 민희가 안 보인다.
탐색으로 샅샅이 확인 한 다음 페이즈 아웃으로 전부 돌아봐도 어디에도 민희가 안 보인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