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84화 (28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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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

미나를 끌어안고 밤의 한적한 동네를 비행한다.

들개의 천사가 되어버린 미나. 우리가 동네에 도착하니 어느새 몰려나온 들개들이 우리를 반긴다.

아니, 정확하게는 미나를.

역시 개는 영리하다. 개들이 질병 해제가 어떤 원리인지는 이해 못 하겠지만, 어쨌든 미나는 자신들에게 잘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바로 다가와서 친근한 척을 하는 녀석들.

그리고 그 숫자는 조금 더 늘었다. 지난번에 비해 한 두 배는 될 정도로.

이 근방의 개들을 전부 모은 것 같은 모습인데…. 얘들은 영역 싸움 같은 거 안 하나?

아마 저 커다란 놈. 도베르만과 뭔가가 섞여 있는 듯한 저놈 때문인 것 같다.

이 구역의 보스라고 해야 하나? 딱 봐도 센 놈처럼 보이네. 멋있기도 하고.

어쨌든 이 추운 날씨에도 바닥에 배를 깔고 얌전히 엎드려 있는 녀석들.

미나는 그런 녀석들을 하나씩 번갈아 가면서 질병 해제를 걸어주고 있다.

들개의 천사. 네이밍이 구리네. 뭐가 좋을까. 견공의 성녀? 어휴. 더 구린 거 같아.

야생의 성녀. 이건 좀 낫네. 그래도 부끄러우니 입 밖으로 내진 말아야지.

"기왕이면 고양이가 더 좋았을 텐데요."

포션을 한 병 마시고 푸념하듯 말하는 미나.

"왜? 개보단 고양이 파야?"

"아무래도 그렇죠. 개는 약간 무서워서."

"뭐, 그렇긴 하지. 근데 또 만약 이 상태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개들은 너를 보호해줄 것 같은데? 고양이 놈들은 다 도망가겠지."

"고양이는 딱히 저를 보호해줄 필요 없어요. 그냥 존재 자체가 귀여운걸요."

"사실 나도 개보단 고양이가 좋아. 근데 이놈들 이러고 있는 거 보면 개도 괜찮은 거 같아. 듬직하잖아?"

"그렇긴 해요."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개들을 치료해주는 미나.

지난번에 생각했던 것이 다시 떠오른다.

아마 스킬 중에 테이밍이 있었지? 티어3에 있었던 거 같은데.

테이밍을 해서 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특히 호랑이 같은 것들.

다행히도 우리에겐 승희의 힐이 있다.

호랑이가 즉사만 하지 않으면 승희의 힐과 포션으로 상처 같은 건 바로 회복시킬 수 있잖아?

그럼 정말…. 당하는 처지에서는 미치고 팔딱 뛰는 거다. 21세기에 호환을 당할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근데, 그럼 테이밍 한 호랑이는 어떻게 데리고 다니지? 비행 같은 걸 쓰면…. 뛰어서 쫓아오나?

어휴. 끔찍하네. 생각보다 별론가. 거점 지키기 용으로 써야 하나?

코끼리라던가…. 고릴라라던가…. 뭐 더 없나?

모르겠네. 테이밍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격용으론 쉽지 않구나.

아. 게이트를 찍으면 되나? 게이트로 보내버리면?

음…. 뭐가 됐든 귀찮은 거 같다. 마땅한 방법이 없네.

"후우. 더는 못하겠어요."

"고생했어. 그럼 가자."

내가 미나를 끌어안고 하늘로 떠오르자 들개들은 계속 우두커니 앉아서 하늘로 떠오르는 우리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아까 보스 들개가 컹 하고 짖자 다들 일어나 우르르하고 뿔뿔이 흩어진다.

"신기하네. 사람이 없어진 곳이 들개의 세상이 됐어."

"저 아이들은…. 대체 뭘 먹고 살까요?"

"글쎄. 안되면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거라도 잡아먹지 않을까?"

"윽. 그런가요."

"그럼. 들개들은 생각보다 똑똑하잖아. 게다가 저 정도 무리면 근처의 동물들은 씨를 말리겠는데."

"불쌍해라. 잘 못 먹고 다니는 거 아닌가."

"그런 건 아닌거 같더라. 녀석들 상태를 보니 막 굶주리거나 하지는 않아 보였어. 그리고 배고프면 저렇게 통솔이 안될걸?"

"그런가요?"

"솔직히 나도 잘 몰라."

"뭐에요. 진짜 그런 줄 알았네."

그렇게 공중에서 대화하며 벙커로 돌아온 나와 미나.

내가 들어오자 세아가 나를 보면서 반쯤 풀린 눈으로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아하하…. 마스터 했다! 투명화!"

"오. 축하."

"고생했어. 세아야. 아…. 저는 좀 들어가서 쉬어도 되겠죠."

"어. 미나 들어가. 고생했어."

"나 이제 뭐 찍어!? 뭐 찍어? 수납 찍어도 되나?"

"농담 아니고 너 수납 찍으면 하루에 포션 30개씩 먹일 거야."

"으으…. 30개? 30개…. 어떻게 되지 않을까? 30개라…."

"그럼 40개."

"캭! 왜 개수를 늘려!?"

"30개는 충분히 먹을 수 있으면서 힘든 척하는 거 같아서."

"으으…. 어떻게 알았지!?"

"찍었는데."

"캭! 안 해! 관둬! 에이!"

"어차피 너희는 나랑 같이 다니게 되잖아. 수납은 내 거 같이 쓰면 돼. 나중에 너희가 일 인분을 할 수 있으면 그때 찍으라고."

"으으. 정말 나빴다. 그래서. 뭐 찍으라고!"

"너 괴력이랑 가속화 한다며."

"맞아. 그랬지."

"그럼 가속화부터 해."

"어? 왜? 괴력부터가 아니고?"

"생존부터야."

"으음…. 근데 지금 당장은 괴력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가속화부터."

"이이…. 내가 네 인형이냐!?"

"어어? 그렇게 나오시겠다?"

내가 인상을 팍 쓰며 무게를 잡자 세아의 기세가 확 꺾였다.

스킬 숙련을 하면서 그런 세아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승희와 안나.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표정이네.

"근데 윤세아 씨?"

"어어?"

"너 코인도 없잖아."

"아. 맞아. 그거 말하려고 했어. 마스터는 했는데 코인이 없어."

"너 얼마 있지?"

"17만."

"다행히 3만이면 되네."

"괴력은 10만인데."

"으음…."

아. 그걸 생각 안 하고 있었네.

어쩐다. 지금 나가서 잡아 죽이고 올 만한 녀석은 없나?

음…. 거길 가야하나? 자양동?

이 시간에 거기에 가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코인을 줍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한데.

아직 불도 다 안 꺼졌고.

아씨…. 미리미리 준비해 놓을걸. 승희나 미나, 안나도 마찬가지 아냐.

"승희. 너는 얼마 있었지? 너도 비슷하지 않았나?"

"14만요."

"아. 너도 6만은 더 있어야 하네. 안나는…. 어휴. 쟤는 없겠지. 500 있겠구나."

"어우. 힘들어. 저도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세아 스킬 뭐 배우는지 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못버티겠네."

승희가 포션 뚜껑을 열려다가 힘이 없는지 그대로 내려놓으며 말한다.

"그래. 고생했어. 쉬어. 너는 몇 퍼센트야?"

"전 고급 92퍼센트요."

"세아랑 비슷한거 아니었나? 차이가 조금 있네."

"세아가 저보다 포션을 잘 먹어요. 매번 몇 개는 더 먹던데."

"그럼 지금껏 다 엄살이었구나?"

"스킬 빨리 올리려고 노력한 거다! 엄살은 무슨!"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 좀 마. 승희는 어서 가서 쉬어. 너무 비틀거린다."

"알았어요. 잘 자요."

머리를 붙잡고 방으로 들어가는 승희.

그런 승희를 보더니 안나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나? 너는 어디가?"

"나. 내 방."

"너도 힘들어?"

"어. 음. 힘들어?"

"으…. 아냐. 들어가."

"나. 한국어. 콩부. 해."

"공부?"

"오! 예스. 공부. 공부해."

"아. 그래. 알았어. 안나도 고생했어. 들어가."

"오케이. 잘자. 썽철. 세아."

사뿐사뿐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안나.

으음.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는데. 쟤도 포션 먹기 싫나?

한국어가 빨리 좀 늘어야 할 텐데. 그래도 저만큼이면 많이 늘었지. 안나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러니 저렇게 날마다 밤에 들어가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난 어떻게 할 거야."

"글쎄다. 고민이네. 가속화를 배우면 바로 나가서 실전을 겪어 볼 수 있는데. 당장 못 배우게 되니 아쉬운데."

"근데 괴력을 먼저 배워도 상관 없는 거 아냐?"

"하. 고민이야. 내가 생각한 순서는 가속화부터였다고."

"뭐, 그럼 가속화부터 하던가. 근데 모자란 코인은 어떻게 벌지?"

"그거야 뭐…. 내가 한두 명 잡아 오면 되긴 하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자 약간 인상을 쓰는 세아.

"그런 표정 짓지 마. 이젠 일상이 되어야 할 일이야."

"그래도. 사람 죽인다는 게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잖아."

"그렇긴 해. 사실 아무렇지 않은 내가 이상한 거지."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어차피 가속화나 괴력이나 혼자서 뭔가를 하기는 힘들다. 그럴 거면 그냥 괴력부터 배워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

게다가 괴력도 미리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 뭐, 크게 문제는 없을 거다.

"괴력부터 하자."

"오. 그래? 그럼 지금 바로 배우나?"

"어. 배워."

"아라쓰. 잠시만."

뭔가를 허공에서 깔짝거리더니 세아가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연다.

"괴력."

그렇게 말하고는 주변을 살피는 세아.

뭘 들어보려고 하는 건가? 마땅한 게 없는지 거실에 있는 테이블을 번쩍 드는 세아.

"오!"

"얼…. 되게 가볍게 드네?"

"와. 기분 이상해. 이게 이렇게 쉽게 들리다니. 와. 진짜…."

그러더니 테이블을 살짝 내려놓고 나를 바라본다.

"음?"

"흐흐흐."

내게로 다가와 나를 꽉 끌어안는 세아.

"오…. 진짜 세네. 꼼짝을 못할 정도야."

성인 남성의 힘에 신체 능력 증가 패시브가 있는 나다. 근데 세아가 끌어안고 있으니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이거 대체 얼마나 세진 거야? 말이 안 되는 능력인데?

"못 풀겠지?"

"그러네. 되게 이상하다. 너처럼 팔도 가느다란 애가 잡고 있는데 옴짝달싹 안되는 기분은…. 조금 인지부조화가 오는 느낌이야."

"크흐흐. 나도 그래. 자.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다."

"엥?"

그러더니 나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지는 세아.

정말 이렇게 작은 여자한테 이런 포즈로 들려 있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네.

"룰룰루."

나를 짊어지고 내 방으로 들어가는 세아.

그러더니 나를 침대에 휙 던져버린다.

생소한 경험을 연달아서 하게 돼서 살짝 당황스러운 기분.

그런 세아가 내 몸 위에 올라타더니 내 두 팔을 잡고 머리 위로 치켜 올린다.

"후후후. 맨날 나를 가지고 아이 취급하면서 놀렸지?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내가 코인이 17만 밖에 없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지. 후후후. 오늘 우리 성철 씨는 아이 같은 세아에게 한껏 당할 거에요."

그러더니 한 손으로 내 두 팔을 잡은 상태에서 자유로워진 손으로 내 볼을 쓰윽 하고 쓰다듬는다.

"그동안의 치욕! 아픔! 다 오늘 갚아 줄 테다! 크크크."

"너 무슨 갑자기 큰 힘을 갖게 된 악당 같다."

"후후. 침착한 척해도 소용없어. 속으로는 어마 뜨거라 하고 있지? 어디 그 담담한 얼굴이 언제 부끄러운 모습으로 되나 한번 볼까?"

그러면서 내 티셔츠를 위로 쓰윽 올린다.

아예 머리 위까지 벗겨내고는 내 맨몸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세아.

뭔가 본건 있는 거 같은데 상당히 어설프다. 아이고. 보는 내가 민망하네.

그런 세아의 손이 이번엔 내 바지로 향한다.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기는 세아. 다만 그녀의 양팔 길이보다 내 몸이 더 길어서 옷을 벗기는 것도 상당히 어설프다.

어쨌든, 세아에게 구속당한 채로 알몸이 되어버린 나의 모습.

근데…. 수치스럽다거나 부끄럽기보단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은데?

거봐. 내 물건도 벌떡 서 있잖아.

"와. 역시 변태구나? 당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잔뜩 세우고 있다니?"

그러면서 슬그머니 내 물건을 손으로 잡는 세아.

"아야야…. 너무 꽉 잡으면 아파. 너 지금 괴력 쓰고 있다고."

"아차차. 미안. 아팠어?"

"근데 너 지금 악당 놀이 하는 거 아냐?"

"캭! 악당 놀이라니! 너어. 아직 상황의 심각함을 모르는구나? 우리 성철 씨가 지금부터 어떤 짓을 당하게 될 줄 알고는 있는 거야?"

"음…. 근데 세아야."

"뭐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봐야 소용없다니까?"

"일단 네가 두 가지가 틀렸다는 것을 먼저 말할게."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먼저 첫째.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상당히 흥분돼. 이러는 게 수치스럽거나 부끄럽진 않다고. 새로운 플레이 같아서 짜릿짜릿 하단 말이지?"

"으…. 변태냐? 그리고?"

"그리고 두번째는…. 무효화."

세아의 괴력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세아의 두 손을 모아 머리 위로 올려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입을 막았다.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 그리고 세아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방심하면 안 되지요. 세아 씨."

나를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아. 빙긋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분한지 한껏 화를 내려 하는 것 같지만, 그녀는 지금 입이 막혀있다.

다리를 버둥거려보지만, 그 역시 내가 올라타자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

아…. 이거 자세가 좀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린애를 덮치고 있는 모습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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