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80화 (2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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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

윤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부장이 들어왔다.

나를 보고 능글거리는 웃음을 짓는 아저씨. 왜 저렇게 웃는 거야? 민망하게.

"식사하러 가시죠?"

"네. 아. 그리고…."

나는 아까 말했던 석궁 이야기를 했다.

레저용 석궁 이야기를 하자 상당히 관심을 보이는 정 부장. 궁금한 게 많은지 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본다.

"그럼…. 투명화를 쓰고 석궁을 쏘면 화살까지 투명화가 되는 겁니까?"

"화살이 아니고 볼트라고 하죠. 네. 투명화 할 때 인식만 제대로 돼 있다면 같이 투명화가 되죠."

"허어…. 그럼 상당히 무시무시하네요. 맞는 쪽에서는 뭐에 맞았는지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잖습니까?"

"볼트를 쏴서 단박에 죽일 수 있다면 말이죠."

"힘든가요?"

"연습을 많이 하면 나아지겠죠? 근데 아무래도 쉽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죠."

"흐음…. 알겠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구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요."

"아. 그리고 부장님. 뭐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시죠."

"펜스의 식량 생산량은 어느 정도 됩니까?"

"생산량이요? 무게로?"

"아. 아니요. 여기 인원에 비례해서요. 그걸 뭐라고 하나요? 상대적?"

"아아. 그거라면…. 110퍼센트 정도 됩니다."

"여기 인구가 500이면 55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식량을 생산한다는 말이죠?"

"네. 맞아요."

"아아…. 그럼 그 초과분 50명분으로 저를 주거나 외부에 거래하거나 그러나 보네요?"

"네? 아뇨. 성철 씨나 외부 거래도 전부 500안에 포함됩니다. 저 초과분 50은 순수한 저장용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쟁여두는 용이죠."

"아, 그래요? 매번 10퍼센트씩이나 저장을 하는 겁니까?"

"네."

"생각보다 많네요. 그만큼씩이나 저장을 할 수가 있나요?"

"에헤이. 많다고 하면 안 되죠. 저희는 지금 상당히 느긋하게 생산하는 건데."

"네?"

"성철 씨는 알고 있어야 하니 말해드리지만, 저희 펜스가 생산을 풀로 하게 되면 인원 대비 220퍼센트 정도까지 뽑을 수 있습니다."

"네? 220퍼센트…. 그럼, 사람으로 따지면…. 500명일 때 1100인분?"

"네. 그 정도 되죠."

"허허. 그게 됩니까?"

"재밌는 게 뭔 줄 아십니까? 여기 온 사람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아요. 대학교수, 연구원, 박사, 경력이 생산 몇십 년씩 되는 농업이나 축산의 전문가들…. 그런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머리를 모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상당히 체계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생산하는 게 아니에요. 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곳이란 말이죠. 뭐 적절한 성장 스킬이 있으니 이것도 가능한 거였지만."

정 부장 이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한 사람이었던 거 같다.

그 정도로 전문적이었다니…. 이거 놀랍네.

"더 치밀하게 여길 지켜야 할 이유가 생겼군요."

"하하.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외부의 침입이 없다면 저희는 이 세상 살아가는 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가장 걸림돌이던 이사장도 사라졌으니까요."

"그렇군요. 좋은 걸 알았네요."

그렇게 정 부장과 이야기 하며 식당에 도착했고, 식당 여사님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식사를 했다.

여기 여사님들은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나를 반겨주려나. 이사장 그놈은 대체 얼마나 미움을 받으면서 살았던 거야?

식사를 마치고 또 한가득 음식을 준비해준다는 여사님. 아무래도 수납에 다 안 들어갈 것 같다.

어차피 오늘 중급까지 올리고 또 테스트할 생각이었으니 빨리 올려야겠네.

그렇게 밥을 먹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송이가 오려면 약간 시간이 있기에 가만히 앉아서 수납 숙련을 했다.

어차피 중급까진 250번밖에 안 돼서 올리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 어디…. 얼마나 커졌나 한번 볼까?

아까처럼 입구를 최대한 크게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 보니 대략 가로랑 세로가 2미터는 되는 거 같다.

아까는 1미터더니 이번엔 2미터야? 그럼 고급은 3미터고 마스터는 4미터인가?

근데…. 겨우 1, 2, 3, 4로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수납은 부피다. 세제곱으로 계산하게 되면 그 차이는 어마어마해지는 셈.

마스터일때 가로 세로 높이 4미터면…. 64세제곱 미터다. 하급의 64배란 말인데…. 이거 증가 폭이 너무 심한 거 아냐?

게다가 그 정도 크기면…. 차도 들어갈 거 같은데? 이거…. 맞아?

스킬 만든 새끼들…. 이거 너무 대충 만든 거 같은데?

민희나 컴퍼니 부장 놈들이 수납부터 찍은 이유를 이제야 이해했다. 이거라면 정말 생활이 엄청나게 편해지겠어.

그렇게 수납 스킬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데, 송이가 들어왔다.

어라. 벌써 한시야? 스킬 숙련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가는지도 몰랐네.

"왔어? 앉아."

내가 말했고, 송이는 자연스럽게 소파로 와서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뭐 하는 거야."

"앉으라면서요."

그러면서 몸을 나에게 기대며 밀착하는 송이.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나에게 바짝 붙으며 눌렸고 숨결이 내 귓가에 닿아 간지러운 느낌이 난다.

"여기가 아닌데."

"전, 여기가 편한데요."

"내려갈 생각은 없어?"

"왜요? 제가 싫어요?"

에휴. 말을 말아야지. 대체 이 여자는 왜 이리 개방적인 거야? 지난번에 화원 안에서도 그렇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편인가 봐.

손을 그녀의 옷 안으로 집어넣어 가슴을 움켜잡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다.

뭐…. 가슴은 참을 수 없지. 게다가 먼저 도발한 건 송이 이 여자라고.

하지만 두고 봐라. 감질만 나게 하고 안 해줄 거니까.

"그럼, 원래의 목적인 면담을 해볼까? 불만이나 개선사항 있어?"

"흐응…. 불만이요? 그런 건 없는데. 아. 하나 있네요. 대장이 너무 오랜만에 온 거?"

가슴이 만져져서 좋은지 송이는 상당히 나른한 목소리로 말한다.

불만이고 뭐고 그냥 머릿속에는 나랑 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매혹을 쓴 것도 아닌데…. 대체 이 여자는 왜 이러는 거야. 일상생활 가능한가?

뭐, 그렇다고 날파리년 처럼 기분 나쁘거나 음험하고 집착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냥 야한 여자? 깔끔한 느낌? 집착 같은 느낌은 없으니까.

"장난은 그만하고. 진지하게 대답해봐."

"어머. 장난이라뇨. 진지하다고요? 제가 괜히 이러는 거 같아요?"

"어휴. 나는 잘 모르겠다. 암튼, 그거 말고는 다른 건 없어?"

손안에 꽉 차는 가슴과 무릎 위에 느껴지는 무게감. 그리고 여자의 향기.

이러고 있는 것도 제법 괜찮다. 눈치 없는 아랫도리 녀석에 슬금슬금 힘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냥 놔뒀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 가슴에 등을 기대고 가슴에 느껴지는 손길을 음미하던 송이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흐음…. 대장?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해봐."

"대장은 소유욕이 강한 편인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전에…. 우리는 대장의 여잔가요?"

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 그래. 이건 송이니까 가능한 질문이겠지.

"어려운 질문이네. 그래. 그건 중요한 일이지. 내가 그걸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았구나."

가만히 내 말을 듣는 송이.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캠프에서 데려온 너희 다섯. 너희는 실력도 있고 맘에도 들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함께 오게 됐어. 그리고 그 맘에 든다는 것에는 남녀관계도 포함되지. 근데…. 내가 너희를 맘에 들어 한다고 너희를 강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 알다시피 내가 이곳에 자주 올 수는 없어. 그런데 그런 나만 바라보고 독수공방하고 있으라고도 할 수 없지.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면…. 너희들은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거로 내가 너희를 탓하는 일은 없을 거야."

"흐응…. 전부 책임지지 못하겠으니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맞아. 내가 너희들의 대장이니 안전과 생활에 대해서는 책임지겠지만…. 연애나 남녀 사이의 액티비티한 것들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무책임하네요."

"무책임…. 그렇게 말하면 뭐 할 말 없지. 내가 너희를 전부 책임지겠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기만이고 이기심 아닐까."

"하긴…. 그렇긴 해요. 이해 못할 건 아니죠. 무책임하다는 말은 취소에요. 사실 대장이 그것까지 신경 쓰는 것도 이상하긴 해요. 우리가 뭐 꼬맹이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인데. 게다가…. 여섯은 좀 많긴 하죠."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근데…. 여섯? 왜 여섯이지? 다섯 아닌가?"

"이크. 어휴. 이놈의 입. 제 면담은 끝이에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러더니 내 무릎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옷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송이.

나는 그렇게 나가려는 송이에 급하게 말했다.

"가서 다음에 지원이 오라고 해!"

"네에."

그 대답을 끝으로 시야에서 사라진 여자.

뭐지? 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아무래도 여섯이라고 말한 게 본인이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여섯? 윤서, 송이, 정현, 지원, 지아. 이렇게 다섯이랑…. 또 누구지? 아. 채원이인가?

이사장에게 매혹당해 험한 꼴을 보고 살아온 여자.

매혹에 당해서 이사장을 비롯해 원장이나 이런 놈들에게 이런저런 좋지 못 한 일을 많이 당했던 채원이.

그녀는…. 조금 불쌍하긴 하다. 나도 세희를 괴롭히고 있어서 잘 알지.

매혹으로 당하는 건 그냥 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니까….

물론 당하는 처지에선 이래 당하나 저래 당하나 험한 꼴인 건 맞지만,

어쨌든 채원이는 불쌍한 여자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매혹 스킬 있는 세 명의 여자들. 아. 이름도 제대로 못 들었네.

그녀들 역시 가지고 있는 스킬 때문에 고생 좀 할 거다. 매혹은 그런 스킬이다.

동성이면 그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이성은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반사를 가지고 있으면 모를까 반사가 없는 이성이라면 그녀들에게 접근하는 건 상당히 꺼림칙한 일이 된다.

호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게 스킬에 의한 호감인지 자연적으로 발생한 호감인지 끊임없이 의심할 테니까.

채원이라. 매력적인 여자지. 지난번 화장실에서 했던 섹스는 상당히 짜릿하긴 했어.

하긴…. 마음에 없다면 그런 짓을 하진 않았겠지. 아니다. 내가 매혹을 걸었던 여파가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복잡하게 생각해봐야 나오는 답은 없다.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긴 해야겠네.

"부르셨어요?"

"왔습니다! 대장."

지원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아도.

"분명 지원이만 불렀는데."

"하는 김에 같이 하려고 왔죠!"

"난 분명 지원이만 불렀어."

"어…. 그게…."

"지아. 니가 쾌활하게 구는 건 좋은데 상대의 의도를 니 마음대로 재단하는 건 좋지 않아. 상대는 니 의도를 마냥 좋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니까. 막말로 내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래?"

"아니….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죄송해요."

지아는 조금 엄하게 굴 필요가 있다. 물론 쾌활하고 해맑은 모습은 보기 좋지만 언제나 그러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니까.

"됐어.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기왕 왔으니까 앉아. 둘 다."

"네."

"네."

지아가 혼나자 옆에서 전전긍긍하는 지원이가 자리에 앉았고, 살짝 주눅 든 지아도 그 옆에 앉는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졌나? 나는 살짝 웃으면서 지원이에게 말했다.

"오전에 외부 돌고 왔다며? 어때 괜찮아? 할만해?"

"아. 네. 주변은 평화로우니까요. 매번 다른 루트로 주변을 도는데 어떤 흔적이나 낌새도 없어요."

내가 웃으며 말해서 그런지 분위기는 조금 풀렸다.

내 질문에 냉큼 대답하는 지원이.

"어디까지 탐색하고 있지?"

"의정부 전역이랑 별내 있는 쪽까지요."

"별내라…. 그쪽은 사람 없나? 꽤 있을 텐데? 거기도 신도시 아니었나?"

"근데 거기는 캠프 초창기에 샅샅이 훑었던 곳이라서요."

"아아. 그렇구나. 그럼 거긴 지금 사람이 없나?"

"네. 이 주변 일대는 정말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죠. 적어도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그건 뭐 좋은 일이긴 하네."

그렇게 일에 관해서 서로 대화하는데…. 둘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내 말에 성실하게 대답은 하고 있지만, 지원이는 뭔가 살짝 들뜬 모습?

지아 역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인데…. 대충 이유는 알 거 같다. 아마 지난번에 했던 말 때문이겠지.

뭔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잖아.

"너희는 외출이 쉽지?"

"외출요? 네. 쉽죠. 사실 누구나 외출은 가능하지만요. 저희는 조금 더 쉬울 뿐이고."

"둘 다 쉬는 날이 언제지?"

"저희요? 어…. 저랑 지아 둘 다 쉬는 날은 내일이랑 나흘 뒤?"

"그래? 그럼 내일은 힘들고…. 나흘 뒤에 몰래 올 테니 나랑 밖에 좀 나가자."

"몰래요…?"

"응. 몰래. 왜 그런지는 알겠어?"

지원이의 얼굴이 붉어지고, 지아마저 쑥스러운지 시선을 돌린다.

잘 알아들었나 보네. 그럼 됐지 뭐.

"그럼…. 지아는 뭐 할 말 있어? 불편한 거라던가, 개선사항이라던가."

"아뇨…. 어…. 음…. 없어요."

내가 몰래라고 한 말에 신경 쓰여서 다른 생각 나는 게 없나 보다.

뭐, 어차피 할 말 있으면 그때 또 보고 이야기하면 되겠지.

"그럼 면담 끝. 나가봐. 나흘 뒤에 보자고."

지원이와 지아가 살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하. 힘들다 힘들어. 내가 여자 관리 같은 걸 하다니…. 역시 망한 세상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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