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72화 (27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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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기에 주변 일대를 한번 싹 훑어봤다.

근데…. 뭐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일단 사람 사는 곳 자체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텅텅 비어있다.

유일하게 이쪽으로 들어오는 길 하나도 상당히 산길인 데다가 그 길에서 연수원까지 거리도 거의 300미터는 되는 거 같다.

이래서는 비행에 탐지가 있는 놈이라도 여기 사람이 있는지 알기 힘들겠어. 딱 좋아.

아주 만족스러운 곳이다.

이런 데서 자리 잡고 있으면 동네방네 전단을 뿌리며 우리가 여기 있다고 광고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모를 거다.

물류센터에서 거리가 좀 돼서 처음 올 때 고생을 하긴 하겠지만…. 뭐 상관없겠지. 내가 고생하는 거 아니니까.

그럼…. 이 좋은 소식을 승규에게 알려볼까?

물류센터 방향으로 날아가며 이것저것 잡생각을 해본다.

과연 어떤 놈이 노리는 걸까?

약이라면…. 노리는 놈들이 많을 거다. 질병 해제가 되는 이상 마약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 중의 끝판왕이잖아.

분명 어딘가에서는 그동안 못하고 있던 마약을 잔뜩 하는 놈들이 있을 거다.

게다가 전기 무제한에 물 무제한? 대마 같은 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건데.

그 뭐시기냐 양귀비? 그걸로 만드는 마약이 뭐였지? 헤로인? 암튼 뭐 그런 걸 텐데? 암튼 그것도 마음껏 기를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데다가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것들도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결국, 내가 모르는 곳에선 이미 미친놈들이 신나게 선상마약섹스파티를 하고 있다는 거다.

그놈들은 세상이 이렇게 된 걸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을까?

하루하루가 쾌락이고 환락이잖아. 자는 시간도 아까울 거 같다.

사실 그런 놈들이 많아질수록 나야 좋다.

약에 취해서, 여자에 미쳐서 쾌락을 탐닉하고 있는 놈들이 많아질수록 경쟁자는 줄어드는 거잖아.

이 세상. 결국은 존재하는 한 서로의 목숨을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이런 세상에서 약 같은 거에 취해있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런 건…. 한다고 해도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다 죽인 다음 해야지. 멍청한 놈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약 같은 걸 노리는 놈들은 삼류 쓰레기라는 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들.

빨리 죽어서 그냥 코인으로 만드는 게 남은 사람들을 돕는 거야. 기왕이면 나한테 죽는 게 가장 좋고.

물류센터. 노리는 놈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백마촌의 짭짤함이 떠오르잖아? 정말 좋았지. 알아서 먹잇감이 기어오는 그 편리한 시스템.

이사가 완료된다면, 차라리 약이 거기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 흩어져있을 내로라하는 쓰레기들을 가만히 앉아서 잡아먹을 수 있다는 소리니까.

근데…. 어디에 소문내지?

소문 낼 곳이 없네. 인터넷 같은 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음…. 아. 혹시…. 그 팩토리라는 곳. 거기에 가서 은근히 흘려볼까?

공산품을 파는 곳이라면 그 필요성에 의해서라도 다들 건드리지는 않을 거다. 죽이는 것보다 살려 놓는 게 더 이득이니까.

게다가 그런 게 있다면 한 번만 이용하고 말리가 없다. 공산품은 소모품이니까. 지속해서 이용하겠지?

나쁘지 않은 생각인 거 같다. 한번은 시도해봐도 괜찮겠어.

거긴 언제 가보지…. 뭐, 언젠간 가긴 하겠지. 일단 간다고 해도 봄이 오면 가야지. 추워서 오래 날기가 싫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면서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승규는 어딨지? 탐지를 돌려보니 다들 회의실에 우르르 몰려있다.

얼래. 왜 모여있는 거야?

회의실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에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승규가 나를 바라본다.

"아. 마침 왔네. 안 그래도 이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아아…. 행동력 참 좋네요."

"네 말을 들으니 머뭇거릴 때가 아닌거 같더라고. 어때? 갔던 일은?"

나를 바라보는 많은 눈동자들.

부드러운 표정과 믿음직스럽다는 표정, 옅은 웃음과 동경의 시선, 그리고 묘하게 끈적거리는 시선까지.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은 익숙하진 않지만, 기분은 괜찮네.

나는 이사에 대한 필요성과 내가 보고 온 곳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약에 대한 위험성, 당장이라도 나 같은 놈이 여기 올 수 있다는 경고…. 그런 것들을 설명할 때는 다들 표정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연수원에 대해서 말하니 다들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하긴…. 여기는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좋은 시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여긴 물류 창고였으니까.

"그럼, 거긴 언제 갈 수 있어요?"

진영이가 손을 들고 물어봤고, 다들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지금 바로."

"네?"

"뭐, 예약하고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바로 가. 망설일 게 뭐 있어?"

"아니…. 그건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요?"

"못갈 이유에 대해서 말해봐."

"그게, 짐도 많고 준비도 해야 하고…."

"꼭 필요한 거, 다시는 못 구하는 거, 그런 것들 말고는 다 그냥 놓고 가. 가서 필요한 거 다시 싹 구해."

"하긴…. 그래도 되긴 하지만."

"승규 형. 제가 맘대로 지시해도 되죠?"

"얼마든지."

"자. 모두 지금 당장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한 시간 내로 본인들 짐 챙겨서 돌아와요. 승규 형. 여기 차 동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죠?"

"차? 이번에 얻은 승합차 두 대랑, 트럭 한 대랑…. 그 외에도 동원하려면 얼마든지 하지."

"여기서 운전할 수 있는 사람?"

유정 형수와 식물 자매 중 언니인 연서가 손을 들었고, 마지막에 합류한 소희도 손을 들었다.

그러면 어디 보자….

"승규 형은 트럭 운전하고 저랑 맨 앞에 선행차로 가요. 유정 형수. 승합차 운전할 수 있어요?"

"어? 하긴…. 하는데요."

"좋아요. 어차피 그렇게 빨리 갈 거 아니니까. 앞차만 따라 운전할 수 있으면 돼요. 연서도 그 정도는 가능해?"

"그냥 따라가는 거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소희는?"

"저도요."

"차 중에 사람 가장 많이 탈 수 있는 차가 뭐 있어요? 승합차 빼고?"

"우리도 승합차 가지고 있는 거 있어."

"그래요? 그럼 됐네. 다들 아까 말했듯이 한 시간 내기로 본인 짐들 다 챙겨서 와요. 선행차는 저랑 승규 형. 승합차 1호는 유정 형수, 2호는 미연, 3호는 소희가 하고 각자 짐을 싣고 적당히 분배해서 타요. 짐의 양이 있으니 승합차 세대는 가야 할거에요. 다들 빨리 짐 챙겨서 내려온 다음에 승합차에 짐 다 실으면 바로 식량들 트럭에 옮길 겁니다. 전부 다 가져갈 필요는 없어요. 당장 가서 먹을 것만 챙길 거에요."

빠르게 내가 지시하자 다들 정신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해요. 다들 해산. 한 시간 뒤에 봐요."

다들 우르르 자기 방으로 떠났고, 승규만 남아서 내 옆에 섰다.

"나도 너처럼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독촉하는 게 됐으면 좋겠다."

"뭐가 어려워요. 그냥 하면 되지."

"그러게.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굴기도 해야 하는데."

"뭐든지 오냐오냐 받아주면 결국 본인만 힘들어져요."

"그러게 말이다. 근데 어차피 몇 번 더 왔다 갔다 할거지?"

"글쎄요. 형은 꼭 필요한 것들 있으면 챙기세요. 아니면 저한테 알려주던가. 그럼 제가 나중에 가져다드릴 테니."

"어? 어떻게?"

"말했잖아요. 수납."

"아…. 근데 넌 벌써 그 스킬이 있는 거야?"

"아뇨. 내일모레쯤 생길 거에요."

"허허…. 정말…. 너는 우리랑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빙긋 웃자 승규도 짐을 챙기러 회의실을 나갔다.

페이즈 아웃을 빡쎄게 수련하면 이틀이 지나기 전에는 마스터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어지간히 캐사기스러운 스킬이 나오지 않는 이상 수납을 찍을 거다.

솔직히 어느 정도 사기 같아 보이는 스킬이 나와도 효과를 전부 모르니 함부로 찍기 힘들다.

아마 수납하고 파티를 찍은 다음에야 그때부터 하나하나 배워보면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해 보겠지.

한 시간 동안 뭘 할까 하다가 페이즈 아웃 숙련을 하기로 하고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어차피 내가 운전 안 하니까. 승규에게 시키고 나는 탐지 쓴다는 핑계로 옆에서 탱자탱자 놀아야지.

그렇게 페이즈 아웃 숙련을 하면서 이곳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트에서 물류센터로, 그리고 이젠 연수원으로.

앞으로는 연수원이라 불러야 하나? 물류센터도 부르기 좀 그랬는데…. 여기도 이름을 하나 지어줘야 하나?

자기들끼리 지으라고 해야겠다. 부르기 편한 거로, 두 글자로.

어쩌다 보니 이들의 운명을 내가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

그런데도 불만하나 없는 사람들. 내가 마음대로 구는 게 이의가 없어서 따르는 걸까? 아니면 마지못해서 하는 걸까?

불만이 없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목숨을 살려준 게 어디야…. 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긴 하지만, 사람은 욕심이 많은 생물이잖아?

보통 목숨을 구해주면 보따리도 구해달라고 하는 존재니까.

그래도 이들은 보따리 내놓으란 소리는 안 한다. 하긴…. 그랬으면 이미 내 손으로 쳐 죽였겠지. 뭐하러 그 꼴을 보겠어?

어쨌든 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

뭐, 연수원으로 들어가 버리면 당분간 자기들끼리도 바빠서 그대로 둬도 되긴 하겠지만.

비행이 없었다면 아마 시도도 못 했을 일.

왕복 거리가 그렇게 먼데 전동 휠 같은 거로 왔다 갔다 하라고 했으면 절대 못 했을 일이다.

음…. 순간이동 그걸 찍어볼까? 아무리 비행이 이다고 해도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 버리는 것만큼 아까운 게 없는데.

모르겠다. 일단 수납을 찍고 생각하자. 지금은 수납이 가장 먼저야.

아닌가? 순간이동을 찍고 왔다 갔다 하면 수납이 필요 없나?

그건 그렇긴 한데…. 수납의 다른 기능, 그러니까 안에 들어간 물건이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

식량을 무제한 넣어 놓을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그거 아니었으면 순간이동이 당연히 더 좋겠지.

근데 순간이동은 어떤 방식으로 쓸 수 있는 걸까? 궁금하긴 한데.

여기 이사를 빨리 끝내놓고, 캐슬에서 민희 보고, 펜스가서 식량을 받아온 다음엔 그냥 죽치고 앉아서 스킬이나 숙련해야겠다.

이번 겨울은 너무 길었어. 진짜. 농담 아니고 너무 길다.

봄이 올 때까진 아무 짓도 안 할 테다. 빌어먹을.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뭐. 얻은 게 많으니 투덜거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한 시간을 숙련하고 밖에 나가자 다들 챙긴 짐들을 승합차에 싣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따라주네요?"

"네가 불안감을 잔뜩 심어놓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전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요."

조금 생각해보니 이들이 내 말을 잘 따르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동안 이들은 내 스킬에 대해서 잘 몰랐다.

봤어도 단편적인 부분들만 봤을 거다. 수면이라던가, 아니면 탐지라던가…. 그런 것들.

하지만 이번에 짱개를 털면서 이들은 내가 하는 짓을 온전히 봐버렸다.

그러니 느낀 거다. 나 같은 놈이 쳐들어오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형수님? 잠시 와보실래요? 연서랑 소희도 잠시 와봐."

셋 다 연상의 여자들인데 누구는 형수님이고 누구는 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아주 지 맘대로네.

"승합차. 운전하는 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앞차만 따라오면 되고 갈 때 가고 멈출 때 멈추면 돼요. 어차피 신호도 없고 다른 차들도 없으니 부담 갖지 말고요, 차가 혹시 부딪히거나 어디 긁어도 놀라지 마요. 보험부를 필요 없는 세상이잖아요. 차 같은 건 망가지면 그냥 새 차 구해오면 돼요. 아시겠죠? 그러니 긴장하지 말고 범퍼카 탄다고 생각하고 잘 쫓아와요. 앞에서 그렇게 빨리 가진 않을 테니까. 양발운전만 안 하면 돼요. 설마 양발운전 하는 사람 없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과 개념은 모두 잊어도 되는 세상이다.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운전 같은 건 개차반같이 해도 된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나 운전시켜도 따라오는 것 정도는 하겠지.

세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 걱정은 안 하는 눈치.

그렇게 여자들을 다시 돌려보내고 승규에게 다가갔다.

"아직 음식 안 실었죠?"

"이제 실어야지. 아. 비닐하우스 안에 심어놓은 것들 아깝네."

"아까운 건 맞지만, 그런 거에 미련 두지 마요. 그리고 어차피 몇 번은 더 올 텐데. 닭이랑 돼지랑…. 버리고 갈 거 아니니까."

"하긴 그렇긴 해."

"그럼 일단 식량들이나 옮기죠. 자기 짐 다 집어넣은 사람들은 와서 식량 옮기는 거 도와요!"

그렇게 하나둘씩 모여서 트럭에다 음식을 싣기 시작했다.

쌀과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들, 수확해 놨던 채소들. 감자. 양파. 그런 것들….

한참 다 옮겨서 트럭에 가득 싣고 더는 못 싣게 되자 다들 각자 차로 탑승한다.

"그럼. 출발."

트럭에 탄 내가 소리쳤고, 승규가 부드럽게 악셀을 밟는다.

부드럽게 출발하는 트럭, 그리고 그를 따르는 승합차 세 대.

물류센터를 벗어나면서 의외로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렇게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추억이나 기억이 많은 곳은 아닌데.

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까? 이것 참 신기하네.

내가 이런데…. 다들 어떤 마음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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