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65화 (265/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박멸

물류 센터로 돌아가는 길.

아까 올 때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그나마 낫다.

다들 방금 있었던 전투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며 위험했던 순간과 자기가 느꼈던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

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사람을 죽였냐에 대한 이야기다. 웃고 떠들거나 할만한 분위기까진 아니지.

뒤에 탄 동현이가 민준이와 느낀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했다.

"형. 뭐 물어볼 게 있는데요."

그나마 돌아갈 때는 승규 형이 앞장서고 있기에 운전에 대한 부담이 적다.

나는 여유 있는 척을 하며 동현이에게 말했다.

"해봐."

"형이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스킬 조합은 뭐에요?"

동현이의 질문에 차에 탄 이들의 관심이 확 쏠리는 게 느껴진다.

다들 궁금하긴 하겠지.

화기가 사라지고 스킬이 우선인 시대. 스킬로 우위에 서면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시대.

다들 스킬에 관한 관심은 그 누구보다 클 거다.

"없어."

"네?"

"나라고 모든 스킬을 다 본 게 아니야. 그러니 네가 말하는 완벽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쓸 수 없지."

"아…. 그럼 제가 질문을 잘못했네요. 지금까지 형이 봐온 스킬 조합 중 가장 생존율이 높은 조합은요?"

"왜? 그걸 말해주면 그 스킬대로 올리게?"

"아뇨. 그 조합을 깰 수 있는 스킬들을 찾아봐야죠."

그런 동현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런 사고방식은 좋아."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해봤다. 가장 생존율이 높은 조합이라….

"비행, 반사, 보호막."

"네?"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의외의 스킬들이 나오자 약간 의아해하는 동현이.

그건 동현이뿐만이 아니다. 차에 탄 사람들 전부 비슷한 생각인 듯 룸미러에 비친 얼굴들은 동현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반사랑…. 보호막요?"

"순수하게 생존만 놓고 보면 그렇지. 그 세개를 가지고 있으면 쉽게 잡을 방도가 없으니까. 반사 대신 투명화를 넣어도 되지만…. 뭐 비슷하긴 하지."

"반사는…. 타겟형 스킬들 방어고, 보호막은 논타겟형 스킬들 방어고…. 비행은요?"

"스킬중에 광역 스킬 무효화라고 있어."

"아…. 네. 종이에서 봤어요."

"범위 스킬이고 지면이나 어디든 찍어야 그 주변을 주변으로 스킬이 적용되지. 그게 써지면 모든 스킬이 다 풀려. 하지만 비행으로 공중에 떠 있으면 그 스킬에 안 맞을 수 있어. 허공에다가는 못 쓰니까."

"아아…. 그럼 단지 그거 하나 때문에요?"

"그런 것도 있고, 민준이 같은 녀석이 달려드는 것도 피할 수 있지."

"아…. 그렇네요. 이 녀석 상당히 무섭긴 하더라고요. 금속화를 쓰고 가속화로 달려드는 게 그렇게 무서운지 똑똑히 봤으니까요."

"그래. 가속화는 무서운 스킬이야. 눈 깜짝할 사이에 움직이니까. 솔직히 민준이가 반사나 투명화만 있어도 민준이를 죽일 방법은 거의 없을 거야. 상당히 까다롭지."

내 말에 민준이가 약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한다.

"세상이 망하고 항상 동현이의 투명화를 보고 부러워했는데…. 맨날 금속화는 쓰레기 같다고 자책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떡상하는 날이 오네요."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처음 너희를 봤던 그때만 해도 난 금속화 같은 건 쓰레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보호막 같은 것도 얼마 전까진 쓰레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봐봐.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잖아?"

"그러네요."

"금속화와 가속화는 궁합이 너무 좋지. 처음엔 괴력이랑 가속화가 조합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사람 죽이는데 차를 번쩍번쩍 들만한 힘이 필요한 건 아니거든. 오히려 금속화로 물리 공격을 다 막아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어쨌든 많이 죽이는 게 목표가 아니고 안 죽는 게 목표니까."

"그러면 형은 제가 투명화랑 반사중에 뭘 먼저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글쎄. 네가 뭘 할지에 따라 다르지만…. 활용도는 투명화가 더 높지."

"아아…."

"오로지 스킬만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니야. 상대가 열 명이라고 생각해보자. 근데 니가 투명화, 금속화, 가속화를 쓴 다음 한 놈을 덤프트럭이 치듯이 쳐버렸어. 상대의 기분이 어떨까?"

"와…. 씨. 개쩌네요."

"한 명은 그냥 뭐에 치였는지도 모르고 급사. 나머지 아홉 명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공포에 떨겠지. 그런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는 투명화 만한 게 없지."

"그렇군요…."

"너. 코인 20만 있어?"

"아니요. 아직요. 이번에 많이 얻긴 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안 되네요. 12만 정도 있어요."

"아직 가속화도 마스터 안 했으니…. 뭐 기회가 곧 오겠지."

"네. 그렇게 욕심내거나 하진 않아요."

"형, 그럼 저는요?"

민준이의 상담 아닌 상담을 끝내자 동현이가 바로 물어본다.

"뭐, 너는 선택의 폭이 넓지. 근데,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거의 다 왔으니."

"어…. 벌써 다 왔네."

차는 물류 센터 근처에 다 와 가고 있었다. 진영이가 설치해둔 CCTV 근처를 지나가는 중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물류 센터 앞에 도착했고, 나는 바로 탐지를 돌렸다.

건물 안쪽에서 느껴지는 두 개의 기척. 아마도 유정과 하율이.

나는 클락션을 길게 눌렀고 덕분에 앞차에서 내리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쪽을 바라본다.

"내려."

모두가 내렸고, 내가 울린 클락션 소리를 들은 유정이 하율이를 안고 뛰어나왔다.

그런 유정을 승규가 안아준다. 그 짧은 시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약간 초췌해진 모습의 유정.

그렇게 유정은 안고 있던 하율이를 승규에게 넘겨주고 물류 센터의 모두를 한 명 한 명 안아주기 시작했다.

단 한 명도 아무 일 없이 살아 돌아온 걸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여자.

모두를 한 번씩 안아주며 무사한 것을 확인한 유정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아. 저는 괜찮은데."

내가 뭐라고 하든 말든 유정은 나를 꼭 안아줬다.

뭐랄까…. 그렇게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오래전에 까먹은 어머니의 품 같은 느낌.

"들어가요. 많이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준비해 놨으니까."

유정의 인도로 다들 식당으로 향했다.

모두 그제야 얼굴에 미소가 돌아오는 모습.

아무리 사람을 백 단위로 죽였다고 해도 어쨌든 이들은 승리자다.

정당한 승리를 단지 살인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으니까.

승규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적당히 배를 채운 모두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가 한 행동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학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를 죽이려 한 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했을 뿐입니다. 전쟁터에 나갔던 군인에게 살인자라고 부르지는 않지요.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지킨 영웅들입니다. 내게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을 스스로 지켜낸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승주와 지원이. 잠시 나와볼래?"

승주와 지원이. 바람 칼날과 파이어 볼로 많은 짱개들을 죽인 두 명.

승규가 안 했으면 나라도 한마디씩 해줄 생각이었다. 역시…. 승규는 생각이 깊어.

"너희들 덕분에 우리가 안전해졌어. 절대로 너희가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가슴 아파할 필요 없어. 모든 책임은 우리를 공격한 녀석들에게 있고, 그들은 자신들이 한 짓에 대해서 대가를 받은 것뿐이니까."

그래. 아직 어리고 여린 애들이다.

저렇게 확실히 못 박아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는 하하 웃으면서도 침대 이불 속에서 자신이 죽인 이들 때문에 흐느껴 울지도 모르지.

나같이 메마를 대로 메마른 녀석이나 살인에 대해 무덤덤하겠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다.

혼자 힘으로 제대로 사람 하나 죽여보지 못한 아이들.

저렇게 해주지 않으면 눈앞에서 자기들이 죽인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릴 거다.

승주와 지원이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한마디씩 잊지 않고 공을 치하하듯 이야기해주는 승규.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이런 일로 마음 아파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러분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만약 힘들고 계속 생각이 나면 저에게 꼭 말해줘요. 서로를 한 번씩 더 지켜봐 주고요. 다들 피곤할 텐데 이제 올라가서 푹 쉬어요.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깊게 자요.”

승규의 말은 모두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준다.

역시…. 리더다운 모습이야. 모두의 책임을 짊어지는 모습은 리더의 참모습이라고 볼 수 있지.

그렇게 자리가 끝나고 다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승규와 나. 이제…. 나도 가야지.

"고생 많았어요."

"그래. 다 네 덕이지."

"작전권은 다시 반환해드립니다."

"계속 가지고 있으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걸요. 이번에 우연히 들리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아찔하네요."

"하아. 그러게. 정말 하늘이 도왔지. 아니. 네가 도왔지."

"전에 썼던 무전기…. 더 좋은 건 없어요?"

"거리가 안 닿지?"

"네. 하. 정말. 즉각적인 연락이 안되는 게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스킬 중에 통신이라고 있던데."

"네. 있긴 하죠. 근데 어떤 스킬이고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그러게. 함부로 스킬을 배우긴 조금 힘들지."

"스킬에 의존하지 말고 통신할 방법이 없을까요?"

"중간에 기지국처럼 안테나를 증설하면 가능할지도…. 일단 확인은 해볼게."

"그래요. 그리고 제가 조금 더 자주 들를게요. 그러는 수밖에 없겠네."

"그래. 그게 가장 좋아. 자주 얼굴을 보여줘."

"알았어요. 그래도…. 이번에 다들 코인도 어느 정도 얻었을 거고 경험도 했으니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되긴 하겠네요."

"그러게. 그게 참 고민이다. 강해지는 것은 좋은데…. 강해지려면 대가를 지급해야 하니까. 이번에는 네 덕분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기적이 계속 일어날지는 모르겠다."

"기적이 아니고 실력으로 만들어야죠. 더 걱정인 건…."

"응?"

"약."

"아아…. 그래."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그런 소문이 돈 이상 여기는 노출됐다고 봐야죠."

"그래. 그게 문제지. 이 짱개 놈들이 어디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소문이 떠도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불안요소긴 해."

"이사….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어차피 이사한다고 해도 성장이랑 식물조종이 많아졌으니…. 이렇게 꾸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몰라요."

"맞아. 그렇긴 해. 일단 우리도 준비를 좀 해야겠어."

"그래요. 그럼…. 대충 할 건 다 한 거 같으니까 갈게요."

"그래라. 너도 고생이 많았어. 조심히 가."

"아. 그리고…. 짱개들 있던 곳은 제가 훑을 거예요."

"아아. 그래. 거기 있는 코인들 다 주우려면 한참 걸리겠더라. 어차피 우리는 거기 가지도 못해. 위험하니까."

"그렇긴 하죠. 분명 거기랑 알고 지내던 놈들이 한 번씩은 얼굴을 비출 테니."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던 거냐."

"그놈들이 그렇게 폐쇄적으로 살았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래. 알겠다. 자꾸 말이 길어지네. 어서 들어가서 쉬어."

"네. 갈게요. 다음에 봐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식당 바깥으로 나와 비행을 쓰고 벙커로 날아간다.

어느새 저만치 뿌옇게 동이 터 오르고 있는 하늘.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시간. 하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찾아오는 시간.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오늘은 그렇게 기분 나쁘지만은 않다.

갑자기 찾아온 물류 센터의 위기와 완벽한 대응.

이정도면 정말 승규 형 말 따라 기적이라 불러도 될 정도겠지.

큰일이야. 너무 정을 주는 거 같은데.

그 많은 사람을 내가 모두 지킬 수는 없다. 이렇게 자꾸 정을 줬다가…. 나 같은 놈한테 다 죽어버리면 상당히 참기 힘들 거다.

하아…. 고민이네 정말.

그럴만한 놈들을 미리 다 죽여버릴 수도 없고.

아니….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중동이랑 똑같다.

그저 범위를 조금 더 넓히면 되는 거잖아.

뚜벅이로 걸어 다닐 때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중동하나만 싹 정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가진 스킬도 이동 속도도 다르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냐…. 어차피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는 할게. 사람 죽이는 것밖에 없으니까.

멀리 벙커가 있는 내 집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며 탐지를 돌렸다. 한곳에 뭉쳐있는 네 명의 기척.

이것들…. 또 내 침대에서 다 같이 자는 건가? 웃기는 녀석들.

그렇게 벙커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네 여자는 전부 내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옷을 벗고 몸을 씻었다. 몸에서 나는 탄내가 너무 지독해서 아까부터 힘들었어.

그렇게 몸을 다 씻은 뒤 서로 엉켜있는 네 명의 내 여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 녀석들…. 이래도 안 깨네. 뭐…. 굳이 깰 필요는 없지.

그렇게 자리를 잡고 누워 수면을 쓰기 전에 아까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중동의 왕. 그리고 그 확장.

이 생각은 좀 더 해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바로 나에게 수면을 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