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63화 (26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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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멸

불은 사람을 홀린다.

고요하게 타오르는 촛불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인데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야…. 말할 것도 없다.

강제로 넋을 빼가는 거지.

게다가 인간은 불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그런 인간이 이렇게 거대한 불을 만나면…. 공포에 질리는 게 당연하다.

그 불 사이에 가둬져 있다면 더더욱.

거기에 열기와 연기. 인간이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

그러한 것들에 둘러싸인 인간들은 너무나 쉽게 죽어간다.

아까보다 탐지에 걸리는 인간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그리고 불을 피해 공원 쪽으로 나오는 짱개들의 숫자도 점점 많아진다.

공원의 모습은 거의 지옥도나 마찬가지다.

불붙은 나뭇가지가 짱개의 몸을 꿰뚫는 모습.

회초리처럼 내려치는 나뭇가지, 갑자기 쑥 자라나며 어깻죽지를 찌르는 가지.

식물팀의 효과는 제법 괜찮다.

물류센터 주변을 숲으로 꽉 채우고 저들이 투명이나 비행 정도만 쓸 줄 알게 되면 어지간한 녀석들은 접근하기 힘든 곳이 되겠지?

제법 지친 모습의 승주와 지원이. 하지만 현정이가 건네주는 포션을 먹고 입을 거칠게 닦은 뒤 다시 스킬을 쓰기 시작한다.

금속화를 쓰고 있는 민준이가 가속화된 상태에서 짱개 놈 하나의 몸에 전력으로 부딪치자 정말 몇미터는 뒤로 날아가 버린다.

하긴…. 저러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에 치이는 거랑 뭐가 달라. 정말 끔찍하네.

갑자기 무언가에 가슴팍이 푹 찔려 쓰러지는 짱개 하나. 저건…. 동현이네. 날아다니는 투명화니까.

아직까진 이 공원을 뚫고 지나가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이건 뚫기 힘들어. 생각보다 보호막이 좋아.

자신뿐만 아니라 남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것. 그게 이런 팀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다고 배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불길이 없는 공원으로 도망왔다가 아니다 싶어서 다시 반대로 도망가는 녀석들.

어차피 그렇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안쪽은 점점 빈 곳이 없어지고 있으니까.

결국, 이 안에 갇힌 녀석들은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거든.

진영이와 중현이, 지연이가 하는 게 별로 없다.

뭐, 없는 게 좋은거지. 저들은 아직 힘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자리를 무사히 살아서 돌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것도 다 경험이고 공부니까.

아까 내가 그어놓은 금. 그 밖에 쌓인 코인들.

도망치던 짱개들이 코인을 먹고 죽고 또 먹고 죽으면서 합쳐진 코인 주머니들.

"승규 형!"

아직 넓진 않지만 그래도 50미터 범위의 탐지는 이 주변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할 거다.

"왜! 무슨 일 있어!?"

"이쪽으로 오는 놈들이 조금 뜸해졌으니, 형이 탐지로 살피면서 한 명씩 코인 먹게 해요! 10만 넘으면 다음 사람, 그런 식으로 골고루!"

"아! 그래 알았어!"

"진형 함부로 흩트리지 말고요! 신중하게 하세요. 코인에 눈이 멀어서 실수하면 안 돼요!"

"알았어! 걱정 마!"

"전 한 바퀴 돌아보고 올 거예요!"

"그래! 다녀와!"

그렇게 잠시 승규에게 현장을 위임하고 빠르게 공중으로 솟았다.

불길이 아무리 거세다고 하더라도 이걸 뚫고 가려는 미친놈들은 분명 있을 거다.

불이 무서운지 모르는 놈들, 물 한 동이 뒤집어쓰면 불길 정도는 뚫고 지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멍청한 놈들.

분명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런 멍청한 놈 중에는 억세게 운이 좋은 놈들도 있을 것이고.

탐지를 돌리며 외곽을 한번 커다랗게 돈다.

불은 이젠 더는 원 같은 모습이 아니다. 그저 주변을 모두 살라 먹는 재난일 뿐.

휘발유를 그렇게 쳐 부었으니…. 이 불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르겠다.

게다가 마침 건조할 대로 건조한 데다가 바람까지 강한 겨울.

비라도 크게 오지 않는 한…. 어지간히 오래 타지 않을까?

이 서울에는 태울 것이 너무나도 많잖아?

펑!

마침 한편에서 주유소 하나가 폭발했다.

이거 분위기 정말 죽여주네. 진짜 죽는 놈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다행히 운이 억세게 좋은 놈들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운이 좋았어도 한 번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불길이 상당히 빨리 번지고 있어서 목숨 걸고 불길의 벽을 뚫고 지나갔는데 불 벽이 또 나타나는 상황이니까.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는 인간의 기척. 캠프가 생각날 정도네.

하아. 이건 대체 언제 코인을 줍고 있냐. 이 방법은 편하다면 편한데…. 뒤처리가 정말 피곤해.

코인이 금속 탐지기에라도 걸리면 모를까. 어휴.

숫자는 상당히 많이 줄었다. 탐지를 돌리니 확실히 알 수 있다.

아까와 비교해도 확연히 줄어든 게 느껴질 정도.

그렇게 크게 주변을 돌고 있는데…. 뭔가 기척이 느껴졌다.

다섯? 여섯이네. 여섯 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여있다.

그리고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두 개의 기척. 근데…. 그 기척은 공중을 날고 있다.

서둘러 가보니 여자 하나를 안고 날아가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 비행. 그래…. 저놈들도 비행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네.

역시…. 완벽한 건 없다니까. 계획에는 언제나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어.

비행 놈들은 이미 다 떠났겠지? 귀찮아졌네. 그걸 다 체크하고 잡아 죽였어야 했는데.

근데…. 저놈은 저렇게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건가?

비행으로 불길을 넘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거야? 안 도망가고?

바로 수면을 걸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저놈이 반사라도 있으면 오히려 내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공중이라 광역 스킬 무효화를 못 쓴다. 바닥에 쓰면…. 저 녀석 나는 곳까지 닿으려나?

혹시나 해서 바닥에 써봤지만 비행이 풀리진 않았다.

이게 문제라니까. 왜 허공에다가는 못 쓰는 거야? 젠장.

어쩔 수 없이 녀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마 저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저쪽으로 가는 거겠지?

남자의 고도가 점점 낮아진다,

녀석이 가는 길 바닥에다가 광역 스킬 무효화를 썼고, 녀석의 비행이 풀렸다.

"으아아!!!$#@#%@"

"꺄아아아!"

"@#%@%@!!!!!!"

남자는 다시 비행을 쓴 것 같지만, 그러면서 놓친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끔찍한 소리를 내고 빛이 된다.

그걸 보고 절규하는 남자.

나는 이번엔 무효화를 쓰고 바로 수면을 걸었다.

비행이 풀린 채 바닥으로 떨어지는 남자.

남자 역시 끔찍한 소리를 냈지만…. 빛이 되지 않았다.

내려오면서 높이가 조금 줄어서 그런가…. 한방에 즉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션을 꺼내서 먹을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저 운 나쁘게 한 방에 죽지 않은 것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

하지만 그는…. 짱개긴 하지만 나름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특기를 살려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던 녀석.

그대로 내려가 녀석의 앞에 섰다.

너는…. 짱개라고 안 부르마. 중국인이라고 불러줄게. 아니면 따거?

마체테를 들어 한 번에 목을 내리쳤다.

빛이 되어버리는 중국인.

[121,59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나름 능력 있던 놈인가? 아니면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코인을 먹어서 그런가?

10만이 넘게 있네. 쯧.

저 중국인이 제 딴엔 의로운 짓을 했다지만, 그렇다고 남은 사람들을 살려줄 수는 없다.

죽음과 세금은 공평한 거니까. 물론 세금은 별로 안 공평해지긴 했지.

아마도 비행 따거가 구해준 것으로 보이는 여섯 명.

그쪽으로 날아갔다. 의인을 따라가게 해야지.

그리고 그 여섯 명을 본 순간 난 아까 중국인 녀석을 다시 짱개 새끼라고 불러야 했다.

여섯 전부 그나마 젋은 여자들이었다. 그나마 생긴게 볼만한.

하 씨발…. 의인은 무슨. 그냥 이 와중에도 사리사욕을 챙기는 벌레 새끼지.

아. 괜히 일찍 죽였네. 씨발…. 내가 병신이지. 어휴.

아무것도 모르고 초조함과 공포감으로 떨고 있는 여자들.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것과 살려주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대로 날아들면서 광역 스킬 무효화를 뿌리고 네 명을 매혹하고 두 명을 재웠다.

그대로 사뿐히 착지하고 투명화를 풀자 나를 보고 웃는 네 명의 짱개년들.

하…. 최근 매혹 건 것 중에서 가장 기분 더럽네.

"자. 여기에서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저…. 저 함다."

남은 세 여자는 그저 생글생글 웃고만 있다. 음. 재활용도 안 되는 폐기물이었네.

여자 셋을 바로 죽였다. 그러는 도중에도 죽는 여자들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짱개년.

[21,428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1,7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4,55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뭐야? 코인 왜 이리 많아? 뭐, 나야 좋지만.

자는 두 여자도 마저 물어봐야겠지?

"너. 저쪽으로 가."

제대로 이해 못 했는지 한번 버벅대다가 내가 말한 쪽으로 가는 여자.

에휴. 그렇지 뭐.

웬만해선 여자들 수면을 깨우는 건 가슴을 주무르지만…. 지금은 별로 손대고 싶지가 않다.

그럴 상황도 아니고.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쓰니 잠에서 깨 몸을 일으키는 여자들.

바로 둘 다 매혹을 걸었다.

"일어나서 뒤돌아 엉덩이로 이름 써."

짱개년 하나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고 다른 하나는 후다닥 일어나더니 내가 시킨 걸 그대로 한다.

오. 이정도 알아먹었으면 그나마 말이 통하겠네?

역시 폐기물은 죽였다. 착한 빛이 하나 더 늘었어.

[5,827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그럼 됐고….

"너네. 둘 다 이리 와봐."

"네."

"네."

"너희 이 동네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 같은 게 있나?"

"네. 있슴다."

"그렇슴다."

"너부터 말해봐. 아는 거 전부."

그렇게 아는 것을 전부 말하기 시작하는 여자. 아마 조선족인 거 같다. 근데 듣다 보니 너무 힘들다.

말도 많고…. 제대로 아는 거 같지도 않고…. 억양은 또 특이하고….

암튼 그런 두 짱개년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니 결국 건진 건 얼마 안 됐다.

원래 이 동네는 조선족들이 주로 살던 동네인데…. 세상이 망하면서 서울에 있던 짱개들이 크게 두 군데로 모였다고 한다.

하나는 역사와 전통의 대림동. 하나는 여기 자양동.

어쩐지, 조선족이라면 매혹을 걸어도 어느 정도는 알아 쳐먹어야 하는데 아예 무슨 소린지도 못 알아먹는 년들이 많다 했어.

아무튼, 이곳은 기존의 조선족들이 세를 잃고 젊은 짱개들에게 권력이 넘어갔다.

근데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잖아. 조선족이든 짱개든 둘 다 죽여야 하는 건 똑같다고.

열심히 그런 것들을 설명하는 두 조선족 년들.

나는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고 스킬이나 그놈들의 정보를 물어봤지만, 결국 아는 건 쥐똥도 없었다.

에휴 씨발. 쓰레기를 재활용해봐야 쓰레기지.

뭔가 더 이용해보고 싶었지만…. 그냥 관뒀다.

두 여자는 코인이 됐고, 비로소 착한 이들의 행렬에 동참했다.

[4,49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1,57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결국, 얻은 정보는 없고 시간만 낭비했다.

어휴 씨발. 진짜…. 도움이 안 되는 족속이라니까.

그렇게 크게 한번 돈 다음 다시 물류센터 인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말끔해진 주변. 우리들 말고는 근처에 탐지가 걸리는 녀석들은 없다.

불길 안에도 이제 거의 스물에서 서른 명? 그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일단 거의 다 죽었네요. 많아야 30명 정도?"

"그러게. 역시 불은 무섭구나."

"당연하죠. 몸은 괜찮아요? 탐지 유지하느라 포션 엄청 먹었을 텐데."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지."

"포션 모자란 사람 있어요? 현정아! 포션 아직 남았니!?"

내가 물어보자 현정이가 포션을 쓱 훑어보더니 말한다.

"아직 조금 여유 있어요!"

뭐, 그럼 됐고.

불길 속에 남아있는 서른 명. 가만히 놔둬도 죽겠지만…. 혹시 모른다.

오늘 이곳을 떠나려면 내 탐지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걸리는 게 없어야 하니까.

근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정도로 맥없이 다 죽어버리나?

아무리 이런 대화재를 벗어날 스킬이 비행이나 페이즈 아웃 같은 거 말고는 거의 없다곤 하지만…. 이건 너무 시시한데.

물론 캠프같은 곳도 화재로 다 쓱싹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거긴 실내였다.

여기는 더 할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너무 의심스러워.

"여기 계속 지키고 계세요. 저는 남은 것들 마저 처리하고 올게요."

"괜찮겠어? 네가 자신 있으니까 하는 소리겠지만…. 그래도 위험한 거 아냐?"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에겐 개씹사기 페이즈 아웃이 있으니까.

근데. 궁금하긴 하네. 이러고 페이즈 아웃 쓰면 죽은 놈들은 나를 원흉으로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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