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56화 (25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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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병

황당하다는 표정의 두 여자.

그럴만하지. 한참을 내팽개쳐놓고 인제 와서 무심했다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원망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라는 거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안도감?

"너희들을 싫어하거나 피한 건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조금 여유가 없었어."

"세아랑 안나는…. 잘 있어요?"

연서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

그리고 그제야 이해했다. 이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세아와 안나. 내가 데려간 걸 아는 여자들.

버려졌다고 생각했겠지. 분명 만난 건 자신들이 먼저였는데.

게다가…. 나는 분명히 만난 날 섹스까지도 이야기했었다. 물론 매혹에 걸어놓은 상황이었지만.

그랬는데 그 이후에 아무런 반응도 없고, 찾아와서도 그다지 찾지도 않았으니….

그런 데다 세아와 안나도 데려가고.

"세아랑 안나…. 잘 있지.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자주 못 본다고요?"

"알다시피 밖에 돌아다니는 일이 많은지라."

잠깐의 침묵.

지금 이 상황이 상당히 숨 막힌다.

솔직히 말하면 손에서 떠나보냈던 여자들이다.

이 둘뿐만이 아니라 물류센터에 있는 여자들 전부다.

내가 마음껏 취하려고 만들었지만, 어쩌다 보니 손을 댈 수 없게 되어버린 여자들.

원했던 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금 가볍게…. 여자가 생각나면 와서 가볍게 즐기고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승규가 너무 유능했어.

이게 다 승규 때문이야. 승규가 너무 이곳을 가족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놨다고.

예상치 못하게 끈끈한 분위기로 만들어 놓은 물류센터의 분위기 때문에 그걸 내 마음대로 난장판으로 만들기가 어렵게 되어버렸어.

그리고 나는 그런 것들을 솔직하게 자매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엉망진창인 놈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놈이지. 그래서 너희를 그렇게 가볍게 대할 수 없게 되었어. 그건 너희에게도 몹시 실례니까. 승규 형에게도 미안하고."

"그건…. 그래요. 예전에 여기에 비하면…. 승규 씨는 말도 안 되게 따듯하고 유능한 사람이니까."

다행인 건 그녀들 역시 내 말에 어느 정도 수긍했다는 거다.

승규가 유능하다는 것은 눈앞에서 직접 본 여자들이다. 내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아무튼…. 그래. 핑계라고 밖에 안되지만, 그게 내 심정이야. 그래서 말인데."

"네?"

"이런 걸 물어보는 거….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나에게 안기고 싶어?"

이정도 말을 빙빙 돌렸으면 인제 그만 질질 끌어도 될것 같다.

확실하게 하는 게 편하다. 그래야 나도 그녀들에게도 편하겠지.

"하아…. 당신은 정말…."

"그래. 나는 이런 걸 물어볼 정도로 눈치 없고 무드 없는 남자야. 너희들을 세심하게 챙기지도 못하는 둔한 남자라고. 그러니 확실하게 하고 싶어. 그래야 나도 더는 너희를 힘들게 하지 않지."

아무 말이 없는 연서와 미연. 그래. 이런 걸 말하는 게 웃기긴 하지.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고 해도 여자들의 자존심까지 없어진 건 아니니까.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맨 처음, 너희들의 스킬을 봤을 때 지금처럼 벽을 만드는 것 실험했던 거. 생각나?"

"하아. 네."

"네."

"사실 그때 계속했었어야 하는 건데, 지금까지 말을 못 했어.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그거였어. 식물 조종과 성장이면 작은 집 같은 건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집…. 이요?"

연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 다시 말했다.

"솔직히…. 내가 너희들의 방을 가보진 못했지만, 안에는 조금 부담스럽잖아? 다른 이들 이목도 있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어차피 물류센터는 넓으니까. 편하게 너희들을 보러 올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아무 말이 없는 두 여자. 참…. 답답하네. 분명 마음이 있을 텐데. 너무 헤프게 보이고 싶진 않은 건가.

그렇다고 그녀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실컷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내버려 둬놓은 건 나니까.

"그러면…."

"잠깐."

"네?"

"잠깐만."

나는 물류센터 바깥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방금 느껴진 기척. 분명 물류센터 바깥에서 느껴졌다.

아까 지연이 이후로 다시 틈틈이 탐지를 돌리고 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기척.

스킬을 새로 배우고 나서 신난 남자들이 밖으로 나간 건 아니다. 나가는 기척을 못 느꼈으니까.

"지금 당장 승규 형에게 가. 그리고 여기에서 나간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해."

"네? 네. 알았어요. 미연아. 가자."

"응."

자매도 뭔가 심상치 않은 내 모습에 조금 전까지 조금 답답했던 분위기 같은 건 바로 접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그 빨간 조끼 놈들 사이에서도 자신들을 지키고 있던 여자들이다.

답답하고 멍청한 여자들이 아니라는 이야기.

나는 그대로 비닐하우스에서 나와 투명화와 반사, 비행을 걸고 바깥으로 날았다.

내가 본 기척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하늘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잡히는 몇 개의 기척들.

그리고 먼발치에서 보이는 움직이는 빛.

움직이는 빛이라니…. 그런 건 자동차밖에 없잖아.

빠르게 그쪽으로 날아갔다.

내가 짱개놈들을 몰살시킨 학교 체육관. 그리고 거기에 잡히는 기척들, 맨눈으로 보이는 차들.

승합차가 체육관 앞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린다.

그리고…. 상당히 시끄러운 거로 봐선 저 새끼들도 백프로 짱개들이다.

이런 씨발…. 뭐지? 왜 짱개들이 이만큼이나 더 온 거지?

그제야 뭔가가 생각났다.

승규가 내게 처음 말했을 때는 짱개가 30마리라고 했었다.

그리고 내가 몰살했을 때는 적어도 50은 넘었다.

안에서만 있었으니 인원 파악을 제대로 못 한 거라고 대충 넘겼는데…. 그게 아니었어.

실제로 증원된 거다. 그리고 지금도 또.

물류센터 앞쪽에서 안쪽의 동태를 살피던 세 녀석.

그리고 지금 체육관 안쪽에 있는 놈들과 승합차 세 대에서 내린 놈들…. 다 합치면 거의 30마리 정도.

이해가 안 간다. 물류센터가 짱개 80마리나 몰려들 정도로 메리트가 있는 거야?

물론…. 물류 센터가 품고 있는 MRE의 양이 절대 적지는 않다. 그래. 그건 맞아.

근데 이정도는 아닌데. 분명 아닐 거 같은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또 있나? 산처럼 쌓인 MRE말고 뭔가 다른 메리트가 있었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막대한 양의 MRE가 모든 걸 설명해줬으니까.

왜 이 근방에 있는 놈들이 미친 듯이 여기를 먹으려고 했는지는 그걸로 다 납득했으니까.

근데 아냐. 이건 뭔가가 있어.

단순 MRE로 이만큼 모였을 리가 없어. 근데…. 뭘까?

일단은…. 아무리 혼자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질 않는다.

이 새끼들을 모두 쳐 죽이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가능하면 정보를 캐야 한다. 세희 년을 데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문제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새끼가 있느냐인데.

정보를 알고 한국말도 할 줄 아는 녀석. 그런 새끼가 필요하다.

기왕이면 그런 여자가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건 무리겠지.

빠르게 물류센터로 돌아오는데 아직도 이쪽을 염탐하고 있는 세 녀석이 기척에 잡힌다.

씨발 새끼들. 그래. 저 새끼들부터 족쳐야겠지?

빠르게 한 놈을 향해 날아갔다.

투명화 상태에 빠르게 비행으로 날고 있는데 정확하게 내 쪽을 바라보는 녀석.

탐지? 씨발 신난다 개새끼야! 볼 수 있으면 봐봐라!

마체테를 뽑아 그대로 달려들었다.

지금의 나는 핸들이 고장 난 에잇톤 트럭.

니놈이 스킬 쓰는 게 빠른지 내가 시속 50킬로의 마체테를 휘두르는 게 빠른지 보자고!

녀석이 빨랐다. 그리고 알아서 쓰러지는 녀석.

나는 머쓱하게 녀석의 옆에 착지했다.

상태를 보아하니 아마도 기절, 깜짝 놀라서 범위 안에 들어온 나를 공격했지만, 반사에 튕긴 자신의 기절로 쓰러진 녀석.

에휴. 병신 새끼. 일단…. 쳐 죽이는 것은 조금 나중에. 빠르게 테이프 질을 하고 그대로 번쩍 들었다.

아오 씨…. 무겁네. 씨발. 그래도 일단 들고 간다. 들기만 하면 된다. 나에겐 비행이 있으니까.

그대로 날아 물류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에서 테이프로 둘둘 말린 짱개가 날아오자 깜짝 놀라는 승규와 다른 이들.

"성철이지!?"

"네."

투명화를 풀고 녀석을 승규 앞에 던져놨다.

"끄으으으"

떨어진 충격에 기절이 풀렸는지 짱개 녀석이 몹시 아파한다.

그리고 그런 짱개와 나를 보고 황당해하는 모두들.

"이…. 이건 뭐야?"

"짱개가 더 있어요. 버닝 이벤트 시간입니다.

"어!?"

"안에 혹시 테이프 같은 거 더 있어요? 내가 가진 게 간당간당해서."

"테이프? 테이프야 많지. 여기 물류센터였다고."

"아. 그러네. 잔뜩 좀 준비해줘요. 그리고 이새끼 깨워서 한국말 할 수 있는지 좀 알아봐줘요. 여기에 중국어 할 수 있는 사람 있는지 물어봐 주고요."

"어? 어. 알았어."

"그럼 다시 다녀옵니다."

투명화를 쓰고 다시 몸을 날린다.

씨발 새끼들. 그래 잘 왔다. 안 그래도 다들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는데 알아서 기어들어 오네.

고맙다. 짱개 새끼들아. 너희는 죽는 게 모두를 위한 공익의 지름길이야.

또다시 이쪽을 염탐하고 있는 놈에게 날아간다.

이놈 역시 탐지가 있는지 나를 발견하고 놀라는 녀석.

하지만 공중에서 고각으로 비스듬하게 쇄도해버리면 나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

저놈이 광역 스킬 무효화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중에 못 쓰니까. 땅에 찍어도 반구형으로 공중에 적용되니 그 범위가 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걸려있는 스킬도 모두 풀려버린다.

반사 같은 걸 쓰고 있는 놈이면 오히려 자신을 죽이는 셈이 되겠지.

그리고 나는 상관없잖아? 내 범위가 더 길기도 하고.

당황해서 아등바등하는 녀석에게 광역 스킬 무효화와 수면을 바로 뿌리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녀석. 오케이. 하나 더 추가요.

테이프로 둘둘 감고 다시 녀석을 끌고 물류센터로 들어갔다.

아까 던져놓은 짱개 위에 적당히 던지고 다시 바로 튀어나가는 나에게 승규가 급하게 외친다.

"성철아! 우리가 할 건 없어!?"

"지금은요!"

일단 염탐하고 있던 남은 하나까지는 정리를 해야 한다. 탐지 쓰는 놈을 이렇게 마구 굴리다니.

게다가 최소 듀얼 스킬 이상인 놈들인데.

자만심인가? 아니면 이정도 녀석들은 고작 염탐용밖에 안 되는 놈들이라는 건가?

모르겠다. 일단 쳐 죽여보면 알겠지.

마지막 녀석은 낌새를 느꼈는지 빠르게 도망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뛰어도 비행보다 빠를 수는 없다.

아. 이제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겠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하하하하하.

내가 쫓아오는 것을 알았는지 힐끔 뒤를 보는 녀석.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공포에 질린 얼굴.

그런 녀석을 그대로 멀리서 스쳐 지나가면서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달려가다가 그대로 잠들고 요란하게 자빠지는 녀석.

그러면서 잠이 깼는지 비틀거리며 일어나지만, 다시 잠이 든다.

쯧. 멍청한 놈들. 탐지가 있으면 뭐하니. 본인의 방어가 안 되는 데.

다시 테이프 질. 그리고 배달.

물류센터로 돌아와 짱개가 쓰러져있는 곳에 다시 던지고 투명화를 푼 뒤 바닥에 내려왔다.

"있어요?"

"어?"

"짱개어."

"아. 없어. 안타깝게도."

"아…. 씨. 어디서 구해오지? 짱개어 아는 놈들 없나."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승규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아…. 맞다. 아까 포션 줬지.

"형. 지금까지 포션 먹고 있었죠?"

"어. 어우. 죽겠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 좀 걸릴 거에요. 끄응. 그럼 오늘은 실전 전투는 힘들겠네."

"아냐…. 하면 해."

"됐어요. 무리하지 마요. 일단…. 저놈들 한국어 할 줄 아는지나 알아봐 줘요. 그리고 스킬 마스터 한 사람들 확인 좀 다 해주시고."

"응. 그래. 너는?"

"저요? 짱개가 이것 밖에 없는 게 아니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하…. 정말. 놀랍다. 놀라워. 그래. 제발 몸조심해라. 무리하지 말고."

"그래요. 나도 내 몸 소중한 건 아니까."

그래. 이런 데서 짱개 새끼들에게 죽을 수는 없지.

나에겐 토끼 같은 여자 넷과 여우 같은 여자 하나와…. 그리고 또…. 암튼 여자들이 많이 많단 말이다.

이런 데서 허무하게 죽으면 지옥에 가서도 거기 있는 놈들 다 죽이고 돌아올 거다.

억울해서 어떻게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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