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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병
"자. 아까 했던 거, 똑같이 반복하면 돼. 할 수 있겠어? 몸 상태 괜찮아?"
"네. 찬바람 쐬니까 좀 낫네요. 그럼 해볼까요?"
"응. 저기 승규 형 있는 곳까지 뛰면 되고…. 지속시간은 10초라 그랬지?"
"네. 10초요."
"음. 그럼 돌아서 여기로 올까? 아니다. 그냥 조건은 똑같이 하자. 저기 도착하면 손 드는 거 잊지 말고."
"네. 알겠어요."
"그럼…. 준비…. 땅!"
민준이가 뛰었고, 그 속도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빠르기였다.
"1.8초?"
50미터가 1.8초면 100미터는 3.6초다.
씨발…. 속도가 두 배로 올랐네?
이거 말이 안 되는데? 두 배씩 오른다고?
그럼 속도가 시속 100킬로라는 소리잖아?
"허허허…. 이거 엄청 빨라졌네요?"
"그러게. 나 깜짝 놀랐어. 민준이가 순식간에 내 앞으로 오다니."
민준이와 승규가 내게 다가와 말했고,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스톱워치를 보여줬다.
"얘 속도…. 시속 100킬로에요."
"네!?"
"엉!?"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차 속도로 뛰었다는 이야기죠."
"와…. 미쳤다."
"이건…. 정말 대단한데?"
"더 웃긴 건 뭔 줄 아세요? 얘 이제 겨우 중급이라는 거죠."
"아! 그러네!?"
"맙소사…. 그럼 하급일 때 50킬로, 중급일 때 100킬로면…. 고급은 어떻게 되지? 150킬로? 200킬로?"
"글쎄요. 그건 찍어봐야 알겠죠? 50, 100, 150, 200이냐 아니면 50, 100, 200, 400이냐."
"4…. 400킬로요?"
"400킬로는 너무 간 거 같은데…. 200이 그나마 현실성이…. 아니 이것도 마찬가지로 어이없긴 하네."
"그쵸? 근데 제 생각은 200 같긴 해요. 내가 본 가속화 스킬들의 숙련도들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속 400정도 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잠시만…. 지금 민준이가 시속 100킬로라고?"
"수치상으로는요."
"그럼 지금 민준이가 4시간만 가속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부산까지 뛰어갈 수 있다는 소리네."
"이론상으로는 그렇죠."
"그리고 마스터 해서 200이라고 친다면 부산까지 2시간이고?"
"그렇게 되겠죠?"
"가속화 할걸."
"다음에 해요. 그리고 뭐 자리를 지키니 어쩌니 하지 않았어요?"
"맞아…. 맞는데…. 사기잖아."
"근데 무슨 스킬이든 다 저래요. 물론 개쓰레기 스킬들은 분명 있긴 하지만."
"저기…. 그런데요."
나와 승규의 심각한 대화에 끼어든 민준이. 나와 승규,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진영이도 그를 바라본다.
"그 속도가 되면…. 사람이 그걸 버틸 수 있나요?"
고민해 볼 문제다. 근데 크게 문제는 안될 거 같다.
"너 지금 뛸 때 어떻디?"
"그게…. 직진으로 뛰어서 그런가? 그나마 괜찮았어요. 근데…. 조금 어질어질 하긴 하네요."
"그래…. 멀미. 멀미가 생길 만하긴 하네. 직진이면 모르겠지만 막 곡선이나 왔다 갔다 하게 된다면 힘들겠지?"
"그것도 그렇고…. 이거 내장이랑 이런 건 괜찮을까요?"
"니 신발이랑 발바닥이 멀쩡한 거 보면 스킬로 보호받는 것 같은데? 달리는 것만으로 몸이 버틸 수 없게 만든 새끼들이라면 뭔가 문제 있는 놈들이겠지. 그리고 괴력 스킬 같은 거 쓰는 놈들도 맨주먹으로 막 이것저것 부쉈으니까. 그게 안 됐으면 이미 자기 주먹이 박살 났겠지?"
"아. 그렇겠네요."
"자. 그럼…. 어쨌든 효과는 확인됐고."
가속화의 효과. 상당히 좋다.
시간은 5초에서 10초로 늘었다. 결국, 5, 10, 15, 20 이렇게 갈 거 같다?
속도도 그럼 50, 100, 150, 200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보다 더 빨라지면 더 좋은 거고.
시속 200킬로라니. 1초에 55미터를 갈 수 있는 속도잖아.
탐지 범위 따위는 2초면 벗어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래. 그러니 그때 정종찬이 그 새끼가 그렇게 빨랐던 거지.
물론 이미 죽었지만.
스킬 밸런스가 너무 안 좋은 거 아냐? 스킬 만든 새끼들…. 정말 일 드럽게 못하네.
페널티는…. 신체적인 손실은 없는 거 같지만 어쨌든 멀미는 있는 것 같다.
그럼…. 제 속도를 못 내는 건가? 아니면 속도는 내는데 거기에 못 따라가나?
"아. 민준아. 미안한데 한 번만 더 뛰어볼래?"
"물론이죠. 바로 할까요?"
"응. 준비되면 말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럼…. 준비…. 땅!"
민준이가 뛰었고 아까 표시해 놨던 자리까지 뛰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똑같은 시간. 그럼 속도가 고정인가?
어느새 내 곁으로 돌아온 민준이. 나는 그에게 물었다.
"민준아. 그거 뛸 때 속도를 네가 줄일 수 있니?"
"아…. 그게요. 속도에 맞춰서 제 몸이 움직이는 느낌이에요. 제가 조절하는 게 아니고."
"그래? 그럼 속도는 고정이라 이건가?"
"네. 만약 더 빨라진다면 오히려 짧은 거리는 섬세하게 못 맞출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아. 원하는 속도로 뛰면서 맥스 100킬로가 아니고 뛰면 무조건 100킬로인 건가?"
"네."
확실히 페널티는 맞네. 감속이 안 된다는 거잖아. 그럼…. 가속이 아니지 않나? 신속화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가속은 점점 빨라지는 게 가속이지. 아…. 이거 스킬 만든 새끼 문과네. 하여간 쓰레기 같은 새끼.
그럼 멈추는 걸 조금 늦추면 그대로 충돌사 할 수도 있다는 뜻이네. 아니면 추락사나…. 넘어진다거나….
어쨌든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으면 자기 몸을 자기가 망치는 꼴이 되긴 하겠어.
내가 주먹만 뻗고 있어도 가속화 쓴 녀석이 달려와서 들이박으면 정지 펀치에 뒤질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민준아."
"네?"
"사물 인식 같은 건 잘 되디?"
"네. 다행히 그런 거 같아요."
그래도 양심적인 안전장치는 있나 보네. 그건 그나마 다행인가?
괜히 세아에게 배우라고 한 뒤 제어를 못 해서 그녀를 잃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스킬이라면 아무리 좋아도 못 배우게 해야 해.
그러니 페널티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스킬이 좋을수록 페널티가 있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
"일단 실험은 다 끝났어요."
"그래. 고생했어."
"그럼…. 전 이만 갈게요."
"크. 그 소리 왜 안 하나 했다."
"볼일 끝났으니 가야죠."
"그래…. 가는 건 뭐 내가 잡을 수 없는데…. 나랑 이야기 좀 할까?"
"네? 이야기? 뭐…. 그래요."
승규는 진영이와 민준이를 들여보낸 뒤 나와 함께 걸었다.
어…. 여기는?
아까 지연이와 이야기를 했던 비닐하우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는 승규. 뭐지? 아까 지연이랑 있는 걸 본 건가?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온 승규는 잠깐 서 있더니 나에게 물어본다.
"혹시, 지연이랑 무슨 일 있었니?"
"네? 어…. 혹시 봤어요?"
"아. 있었구나?"
"엥? 보고 이야기 한 거 아니에요?"
"응? 뭘 봐?"
"아니…. 아까 지연이랑 여기서 이야기했거든요."
"아…. 그래? 아.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여기가 그냥 수확 끝난 비닐하우스라서 한산하니까 이리로 데리고 온 거야."
"아. 그래서 지연이도 이쪽으로 데리고 온 건가."
"아마 그럴 거다. 물류센터 안에서 지금 가장 인적이 없는 곳이니까."
"으음…."
잠시 말이 없는 승규. 나는 그런 그에게 물었다.
"본 것도 아닌데 저랑 지연이가 무슨 일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 그거…. 아까 밥 먹을 때, 지연이의 표정이 환해진 거 같아서. 솔직히 최근에 조금…. 불안 불안했거든."
"아아…."
역시…. 리더 정도 하려면 그렇게 구성원들 표정까지 세세하게 보는 건가?
리더라면 모두 저 정도는 하는 건가? 아니겠지. 승규가 조금 더 자상해서 그런 거겠지?
"뭐…. 모르겠어요. 제 생각으론 어느 정도 고민 해결이 된 거 같긴 하지만."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고민하고 있던 것이 하나 줄었어."
아무래도 지연이의 상태는 정말 심각했나 보다. 저 능력자가 고민이라고 까지 이야기 한 거 보면.
하긴…. 스스로 죽으려고 했다니 제법 심각했긴 했던 거 같은데.
"그것 때문에 이리로 온 거예요?"
"어. 그것도 있고…. 또…."
"또?"
잠시 말하는 것을 망설이는 승규.
뭔데 저렇게 뜸을 들여?"
"이건 내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전에 나랑 대화했던 거 기억나니? 몇몇 여자들이 금욕적으로 살고 있다는?"
"네. 기억해요."
"연서와 미연이. 하아. 정말 이런 것까지 다른 사람한테 말하긴 좀 그런데…."
"알아요."
"뭐?"
"뭔 소리를 할지 안다고요. 식물 자매가 저를 어떻게 보는지는 알고 있어요. 뭐, 제가 뿌린 씨앗이니까."
"응?"
"안 그래도 그녀들에겐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형이 그걸 느낄 정도면…. 심각하긴 하나 보네요. 알겠어요. 제가 해결할게요."
"으음…. 뭔지 안다고 하니 설명을 안 해도 돼서 좋긴 하지만…. 그리고 또 있어."
"네?"
"미래."
"하아. 걔도 알 거 같네요."
"엥? 넌 대체 모르는 게 뭐야?"
"그것도 제가 뿌린 씨앗이니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어. 그건 조금 말하긴 힘든데…. 암튼 미래도 제가 해결할게요."
전부 내가 뿌린 씨앗 맞다.
특히 자매와 미래는 매혹 숙련 때문에 더욱 심해졌겠지. 다 내 잘못이 맞다. 그동안 시야에서 벗어나서 좀 가만히 두면 좀 나아지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아까 식당에서 봤을 땐 전혀 나아진 게 없었지.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 결자해지라고 하지.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책임은 져야지.
"그래…. 뭐 알고 있다면 다행이고. 알아서 잘 해결해주길 바라."
"그래요. 그럼…. 말 나온 김에 지금 하나 해결하죠. 들어가실 거죠? 자매 좀 이쪽으로 불러줄래요? 핑계는 적당히 알아서 해주고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
"전 자매랑 이야기하고 바로 갈 거예요."
"아. 그럴래? 그럼 지금 미리 인사해야 하나?"
"네. 다음에 봐요."
"그래.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라. 잘 해결하고."
"네."
승규는 들어갔고, 나는 텅 비어있는 비닐하우스에 혼자 남게 됐다.
아까 지연이가 바닥에 발로 비벼놓은 자국이 보인다.
아까 여기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여기라니.
여기는 무슨 고민 상담 해결의 비닐하우스인가?
하아. 쉽지 않다. 여자들의 마음은 쉽지가 않아.
그냥 재우고 강간한 뒤 잡아 죽이는 것만 할 줄 알았던 나에겐 너무나 벅찬 것들이다.
지금 이렇게 엉키고 설킨 것들은…. 결국 어설픈 내가 여기저기 좌충우돌한 흔적이다.
결국, 내가 처리하거나 해결해야 했는데 내버려 둬놨던 것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확실하게 해결은 해야지.
"어?"
"엇!"
그렇게 속으로 반성과 후회를 하고 있는데 마침 자매가 들어왔다.
나를 보고 놀라는 두 여자. 내가 여기 있다고 말은 안 했나 봐? 저렇게 놀라는 거 보면.
"왔어?"
"여기서…. 뭐하고…."
나에게 물어보는 연서, 그리고 언니의 약간 뒤에 서 있는 미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정말…. 막막하네.
"일단…. 미안해."
다짜고짜 사과부터 박았다.
내 사과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두 여자. 황당하겠지. 뭐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하는지도 모를 테고.
"그…. 어휴. 그동안 내가 많이 무심했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두 여자의 표정이 굳는다.
음…. 저건 무슨 의미일까? 정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진짜 막막하네.
일단, 이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매혹에 의한 증폭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어떤 감정인지를 모르겠어.
무슨 말이라도 하던가 반응이라도 보이면 참 좋을 텐데.
쩝. 에휴.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