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54화 (25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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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병

모두가 새로 스킬을 찍었고, 새로운 스킬들을 써보며 마치 아이처럼 좋아한다.

비행을 찍고 하늘을 날며 신나 하는 동현이, 가만히 서서 탐지를 쓰면서 신기해하는 승규.

드디어 쓸만한 스킬이 생겨서 모습을 감춘 채 감탄만 하는 진영이.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민준이에게 다가갔다.

"가속화. 써봐."

"네? 네."

"혹시 모르니 금속화 쓰고 해라."

"네."

금속화를 쓰자 이질적인 광택이 느껴지는 민준이. 예전에는 이정도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마스터라 그런가?

그렇게 금속화를 쓴 뒤 바로 가속화를 썼다.

"오오오!"

빠른 속도로 방을 돌아다니는 녀석.

근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내가 봤던 스킬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속도가 느리네? 아마…. 숙련도 문제겠지?

"와! 몸이 가벼워! 오우!"

"확실히 재빠르긴 하네. 근데 느려. 아직 하급이라 이정도겠지?"

"느려요?"

"어. 내가 본건 이정도 속도가 아니었어."

가속화가 끝났는지 금방 평범한 속도가 된 민준이.

"되게 짧네?"

"네. 한 5초 되는거 같은데요?."

"다시 써봐라. 시간 재보자."

민준이가 다시 가속화를 썼고 다시한번 빙빙 돌았다.

금방 가속화가 끝났고, 스톱워치에는 5초가 찍혀있었다.

"5초라. 짧네. 하급이 5초인 스킬이 뭐가 있더라. 없는 거 같은데."

"근데 저한텐 엄청 길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감각이 이상하네요. 살짝 어지럽네."

"어떤데?"

"아까 말한 것처럼 멀미 같네요. 막 심하고 그런 건 아닌데."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빠른 속도에 적응할 수는 없으니까. 페널티라고 하면 그게 페널티네."

"근데 뭐 그렇게 심한 건 아니네요. 조금만 하면 익숙해 질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속도나 한번 재보자. 잠깐 밖에 나가자."

"네."

민준이가 나를 따라나섰고, 다른 이들도 따라온다.

자기들 스킬도 신기하긴 하지만 다른 스킬들도 어떤지 궁금하긴 할 테니까.

게다가 내가 테스트 하는 게 신기했나 보다. 왜 다들 이렇게 테스트를 안 하지?

적어도 자기가 쓰는 스킬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어디 보자…. 줄자 있어요?"

"줄자? 있지?"

숭규가 대답했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 줄자 필요 없겠네요. 형 이리 와 봐요."

물류센터 안쪽에 남아있는 아스팔트 도로에서 승규를 가운데쯤에 세워 놨다.

"자. 진영이 저쪽으로 걸어가 봐."

진영이가 걸어갔고, 나는 승규에게 말했다.

"형. 탐지 써서 쟤 범위 벗어나면 바로 멈추라고 해요."

"멈춰!"

진영이가 멈춰섰고, 이번엔 동현이를 반대편으로 걷게 했다.

"뭐 하는 거야?"

"똑같이 해요."

"멈춰!"

동현이가 멈춰섰고, 나는 승규에게 말했다.

"탐지 하급의 범위는 25미터에요. 25, 50, 75, 100미터 이렇게 늘어나요. 그러니 지금 저 둘 사이의 간격은 50미터. 민준이 따라와. 진영이랑 동현이는 거기 계속 서있어!"

"네."

"네!"

"알았어요!"

"어? 나도 가도 되지?"

"네."

민준과 승규. 나는 진영이 쪽으로 왔고 나는 스마트폰 스톱워치를 켜놓은 채 말했다.

"민준이. 가속화 키고 동현이 찍고 돌아와 봐 그럼 대충 100미터에 몇 초 걸리나 나오겠지."

"아. 알겠어요."

"자. 준비. 땅!"

민준이는 제법 빠른 속도로 동현이를 찍고 다시 돌아오다가 갑자기 속도가 확 느려졌다.

아. 씨발. 지속 시간.

5초가 뭐냐 5초가. 조루냐? 어휴.

"아이고. 중간에 꺼져서."

"그럼 다시 뛰자. 이번엔 50미터만 뛰자. 바로 뛰어봐."

"네."

"준비. 땅!"

민준이는 동현이에게 도착하자 바로 손을 번쩍 들었다.

시간은 3초 6. 음…. 빠르네?

"축하해. 너는 방금 50미터 세계 신기록을 엄청나게 앞당겼어."

"하하. 뭐 가속화 스킬 처음으로 쓴 게 저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렇긴 하지. 어쨌든 좋아. 3초 6이라. 계산 좀 하자. 그럼 100미터면 7초 2…. 초속 13.8미터. 분속 833미터. 시속 50킬로 미터."

"와. 계산 빠르다."

"계산은 스마트폰이 하니까."

"시속 50킬로라. 기분 나쁘게 딱 떨어지네. 오차가 있을 텐데."

"시속 50킬로? 와 엄청 빠르네."

"너. 다시 한번 해보자. 내가 땅! 하면 바로 전력으로 저기 동현이까지 가는 거야. 알았지?"

"네."

"일단 스킬 쓰고."

"가속화!"

"비행! 준비…. 땅!"

가속화를 쓴 민준이와 비행을 쓴 내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동현이에게 향한다.

정말 거의 비슷한 속도. 나와 민준이만 세상이 멈춘 기분이다. 그렇게 우리는 비슷하게 동현이를 지나치고 멈췄다.

"와. 비행이 엄청 빠르네요?"

"너 되게 평온하다? 전력으로 뛴 거 아냐? 힘들거나 하진 않아?"

"네. 그러게요. 숨차거나 하진 않네요. 힘들거나 하지도 않고. 몸이 아프거나 근육이 이상하거나 그런 것도 없어 보이고요."

"으음. 그럼 그건 좋네. 기초 체력이랑 상관없이 쓸 수 있다는 거잖아? 좋은 정보네. 동현이도 됐어. 저쪽으로 가자."

"네."

우리 셋은 다시 승규와 진영이가 있는 쪽으로 왔다.

흐음…. 가속화. 생각보다 맘에 든다.

하급인데도 이정도 효과라니. 무엇보다 별도의 체력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게 좋네.

나처럼 일행이 여자면 체력은 민감한 사항이니까.

기초 체력 베이스라고 하면…. 결국은 스킬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썩힐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는 세아의 허벅지가 굵어지고 근육이 생기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형. 비행 마스터죠?"

"어."

"와. 진짜 빠르네요."

"가속화 하급이랑 비슷하니 진짜 빠른 수준은 아니지. 근데 가속화가 지속 시간이 짧으니…. 결국은 비행만 한 건 없긴 하네."

"이거 하급은 제한이 뭐에요?"

"고도제한, 속도 제한. 점점 높게, 빠르게 날 수 있고 마스터면 고도제한 없어. 속도는 지금 본 것처럼 50킬로 정도 되네."

"아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행은 특히 겨울엔 방한 대책 잘해라. 그런 거로 죽는 사람 많이 있다더라. 그리고 새떼 조심하고."

"네? 방한요? 새떼?"

나는 간단하게 설명해줬고, 다들 내 이야기를 흥미롭다는 듯이 듣는다.

"신기하네요. 상상도 못 할 페널티네."

"뭐, 조심하면 되는 거니까. 아. 민준이."

"네."

"250번. 포션 13개. 음…. 너 시간 있냐?"

"곧 밥 먹는 것만 빼면요?"

"아. 그러네. 그럼 밥 먹고 나랑 뭐 하나만 하자."

"네? 뭔데요?"

"니 스킬 중급으로 올려보게."

"네?"

"해보면 알아. 근데 지금 경비는 누가 서고 있어요?"

"지금은 승주."

"승주? 아. 미래랑 온 애들."

"걔도 이제 어른인걸."

"아. 스무 살 됐나? 그러네. 성인 됐다고 바로 경비로 투입 된 거예요?"

"뭐, 본인이 원했으니까."

"그래요. 그럼. 걔 몇 시까지 해요?"

"이제 교대해야지."

"아. 그렇군요. 그럼 민준이만 하자."

"우리도 하려고 그랬어?"

승규가 넌지시 물어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250번 정도는 금방 쓸 수 있으니까요. 근데 포션 후유증이 심할 거라서. 아. 그냥 포션 주고 가면 되겠네."

내가 혼자 말하고 혼자 결론 내리자 어깨를 으쓱이는 승규.

"식사시간!"

우리가 있는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현정이가 들어와서 외친다.

"그렇데. 가자."

승규가 내게 말하고 먼저 앞장선다.

다들 그런 승규를 따라 나가고 나는 마지막으로 방을 나섰다.

"어…."

그런데 나를 보고 현정이가 말을 어물거린다.

"응?"

"아. 아니에요."

그리고 후다닥 남자들을 따라가는 현정이.

뭐지. 약간 느낌이 거시기 한데.

쟤한테는 매혹을 건 적이 없다. 뭐랄까.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순결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니지. 매혹에 대한 순결이라고 해야 하나?

지연이랑 서현이, 그리고 현정이. 얘들은 매혹을 건 적이 없다. 그래. 유정 형수에게도.

매혹은 한 번이라도 걸면 그다음부터는 강제로 생긴 호감도 때문에 나를 보는 게 달라진다.

그렇기에 현정이 역시 걸지 않았던 건데….

저 반응은 나같이 둔한 새끼도 알 수 있는 반응이잖아.

하아….

물론 현정이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결국은 내가 구해줬으니까. 복수도 시켜줬고.

하지만 그렇기에 일부러 거리를 둔 것도 사실이다.

진영이 동생이기도 한데다가 괜히 나에게 엮이면 그리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근데…. 저런 반응이라니. 좋지 않네.

정말 잘생긴 남자 놈이라도 잡아 와야 하나?

믿을 만한 놈이 있어야지. 남자 놈은 함부로 잡아 오고 싶지 않다고.

기껏 지연이라는 껄끄러운 가시를 뽑아냈는데, 현정이라는 복병이 생겼다.

현정이가 몇 살이지? 스물둘인가? 셋인가? 뭐가 됐든 세상이 이 꼬라지 난 5년을 빼면 결국은 저 아이도 청소년이나 다름없다.

연애와 호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아이. 아니지. 내가 이걸 맘대로 판단할 수는 없지.

저 정도 이쁜 애면 중고딩때 이미 연애는 훨씬 많이 해봤겠지. 나처럼 쑥맥은 아니었을 거야.

어이구.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정말.

그렇게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는데 복병은 현정이뿐이 아니었다.

연서와 미연 자매, 그리고 미래.

나를 보는 시선이 현정이의 풋풋한 시선이 아니다.

약간 노골적인 시선.

그래…. 저 셋은 내가 할 말이 없다. 매혹 숙련한다고 여기 와서 어지간히 매혹을 걸어댔으니….

미치겠네. 분명 맛있는 밥인데 목이 밥에 넘어가질 않는다.

어? 아. 밥이 목에 넘어가질 않는다.

미쳤네. 미쳤어. 아주 제정신이 아니구나.

일을 너무 벌여놨어. 골치아프네.

집에도 여자가 넷이나 있는데…. 민희도 있고. 게다가 곧 펜스도 가야 한다. 거기에도 몇명이야. 윤서, 송이, 지원, 지아, 정현이에 채원이까지.

하아…. 거기에 지연이랑 현정이, 연서, 미연, 미래까지.

에이 씨발. 그냥 하자. 하면 되지. 다 책임지자. 씨부랄. 섹스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씨벌.

그래도 뒤늦게 구해준 저 기름녀하고 보호막녀는 나에게 별 감정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없는 거 맞겠지?

근데 연서랑 미연이 자매는 내가 처음에 그렇게 말을 했으니 그렇다 쳐도…. 미래는 괜찮은 건가?

미래랑 같이 온 남자애들. 걔들이 있잖아. 미래가 아무리 누나와 엄마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마음이 없진 않을 텐데.

아오. 모르겠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그렇게 저녁을 먹고 도망치듯이 다시 아까 스킬 이야기를 하던 곳으로 돌아왔다.

일단 여자 문제는 조금 천천히 해결하자.

당장 저들을 해결하지 않는다고 여기가 폭발하는 것은 아니니까.

동현이가 경비 하는 시간이라 빠졌고, 승규와 민준이. 진영이가 내 앞에 앉았다.

"자, 일단은."

상점에서 회복 포션 소를 사서 주르륵 쌓아놓는다.

한개 한개 사서 내려놓을 때마다 이들의 눈이 점점 커지는 게 웃기다.

그렇게 일단 100개를 사서 내려놓자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 세 사람,

"각자 25개씩이고요. 동현이한테도 건네주세요."

"어…. 근데, 이걸…. 하."

말이 안나오는지 약간 당황해하는 승규.

"자. 방법은 간단해요. 다행히 여기 다들 스킬 숙련하는데 어려움 없는 스킬들이니까 바로바로 될 거에요. 스킬을 스무 번 쓰고 포션을 먹으면 됩니다. 언제까지? 더 먹으면 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근데 오늘은 일단 테스트도 해야 하니 먼저 하급 250번만 쓸 거예요. 그럼. 시작."

"어?"

"네?"

"바로요?"

"네. 몸이 뒤질 것 같을 때까지 스킬 짜내서 쓰고 회복 포션 먹어요."

내 말에 방안에는 '가속', '탐지', '투명, 해제'라는 단어만 계속해서 들리게 되었다.

어차피 포션 13개 정도는 금방 먹기에 30분도 안 돼서 모두 중급 스킬이 되었다.

"크…. 이거 좀 알딸딸한데?"

"그러게요. 어우. 울렁거려."

"아직…. 괜찮긴 한데 쉽지 않네요."

다들 소주 몇 잔씩은 마신 듯한 모습.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면서 피식 웃고 민준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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