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51화 (25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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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그래서. 네 추천은 역시 투명화다?"

"티어1하고 티어2에서 가장 좋은 조합은 아무래도 그렇죠. '뭘 할 수 있는가'랑 '뭘 피할 수 있는가'를 따지면 투명화만큼 사기 스러운게 없으니."

"확실히 그렇긴 해…."

내 말에 승규는 턱을 괴며 깊게 고민한다.

"탐지라는 하드 카운터가 있지만…. 탐지 자체가 그리 흔한 스킬은 아니니까요. 어차피 찍을 스킬은 별로 없어요. 소거법으로 생각해야죠. 형은 감전 있으니 공격 스킬 모두 스킵, 치유는 배울 필요 없으니 역시 스킵, 생산? 스킵. 역시 CC기도 모두 스킵. 남은 건 보조 스킬 밖에 없죠. 비행, 투명화, 탐지, 축소, 가속화. 근데 이것들은 다 비슷한 거 같아요. 각자 장단이 있으니."

"축소랑 가속화…. 축소는 말 그대로 작아지는 건가?"

"네. 대략 십 분의 일로 작아져요."

"18센치라…. 손바닥만 해지겠는걸?"

"근데 축소는 지금 배우기는 좀 그렇죠? 기동력이 확 줄어드니까? 아, 어차피 수비 위주라면 나쁘진 않겠네. 오히려 탐지에도 안 걸릴 수 있고 이런 나무 벽 틈새에 숨어 있으면 찾기도 힘들 거고."

"흐음…. 가속화는?"

"가속화는 조금 공격적이죠? 어차피 여기는 외부 출입을 단절하는 게 기본이니까. 근데 솔직히 가속화도 좋긴 해요. 특히 너 민준이."

"네?"

"너 금속화. 그거 쓰면 주먹이 단단해지거나 그렇게 되지?"

"네."

"전신이 다 되고?"

"네."

"그럼 너한테는 궁합이 좋지. 금속화랑 가속화 쓰고 팔 뻗은 다음 레리어트만 하고 다녀도 사람들 모가지가 뚝뚝 부러질 텐데."

"아…."

"아니면 주먹을 금속으로 바꾸고 마하 펀치도 될 거고. 어쨌든 너는 처음 스킬이 그러니 만약 시너지를 노린다면 그쪽이 낫지."

"가속화라…. 확 땡기네요."

"그렇지. 게다가 가속화는 탐지 카운터도 되니까. 기척을 느끼면 뭐해. 이미 벗어나 있는데. 그건 여타 다른 스킬들에도 마찬가지야. 타겟 지정형이면 이미 범위 바깥으로 나가있을 거고 광역 스킬이라고 다를 거 없지."

"공수 양면으로 좋군요."

"어. 근데 이건 나도 제대로 본 게 몇 안돼서 페널티를 모르겠어. 분명 페널티가 있을 텐데 말이지."

"시간이 짧다거나?"

"시간이야 뭐…. 지속 시간이 짧아도 그건 연사로 해결되니까. 내가 말하는 건…. 보자. 그런 거지. 멀미?"

"멀미요?"

"비행 스킬을 써보면서 느낀 거야, 들은 것도 있고. 비행 스킬은 사고사가 많다고 하더라."

"아아…. 어쨌든 인간의 몸으로 쓰는 거라?"

"그렇지. 우리 목숨은 하나니까. 실수 한방에 골로가는 거지. 가속화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는 거잖아? 결국, 까딱 잘못하면 벽 같은데 꼬라박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아아…. 그래서 그런 거예요?"

"그래. 너는 금속화니까. 적어도 충돌사 같은 건 안 하겠지. 부딪친 게 박살 나면 모를까."

"이야…. 그렇겠네요."

"저는요?"

이번엔 동현이가 나에게 물어본다.

"너는 여기서 가장 속편하지. 투명화라는 스킬을 이미 얻었으니까. 게다가 너 이번에 코인 30만 넘게 나왔지?"

"네."

"그럼 너는 뭐든 고를 수 있지. 보통 더블 스킬까지는 공격 스킬 하나 + 보조 스킬 하나가 가장 안정적인데, 공격 스킬을 포기하고 보조 스킬 두 개로 쓸 수도 있잖아? 어차피 사람이야 투명화로 가서 뒤통수 빠따 한대만 후려쳐도 죽일 수 있으니까."

"아아…."

"탐지도 되고 가속화도 되고 비행도 좋지. 공격 스킬도 좋은 건 많아. 폭발도 있고 감전도 있고, 기절 같은 걸 골라도 되지. 투명화는 선택지가 아주 넓어. 솔직히 내가 너라면 반사 당하지 않는 공격 스킬인 폭발이나 비행 같은 걸 고르겠어. 수비라는 입장이 그렇잖아? 이 안에만 안 들어오게 한다면 결국 적들은 밖에 있어. 그럼 폭발 같은 스킬의 최단점이 커버 되는 거니까."

"폭발의 최단점이 뭐죠? 아. 아군이 휩쓸리는 거?"

"어. 그게 가장 골치 아프지. 위력은 확실한데 가까이 붙으면 쓸 수 없는 거."

"아하…. 그럼 비행은요?"

"말했잖아. 사람 죽이는 게 꼭 스킬로만 하는 건 아니니까. 시대를 조금 역행해보자고. 여기 중에 기름 생성 스킬 있는 여자가 있잖아? 이름이 뭐였지? 민주였나?"

"네. 맞아요. 민주 누나."

"민주가 기름을 생성해서 팔팔 끓이면? 그리고 너는 그걸 떠서 적들의 머리 위에 부어버리면?"

"하…."

"아니 그렇게 귀찮게 안 해도 되겠네. 그냥 휘발유 통만 들고 가서 냅다 들이붓기만 해도 되겠어. 그리고 불길하나 땡기면? 펑!"

"와씨…. 무섭네."

"그래. 그런 거야. 스킬은 쓰기 나름이지. 상상력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개씹사기 스킬이 될 수 있는 거라고. 비행과 투명은 조합이 좋아. 나도 이번에 그걸로 짱개들 많이 죽였어."

"어떻게요?"

"뭘 어떻게야. 비행에 투명화 쓰고 하강하면서 마체테로 찍었지. 용기사가 별거냐? 만약 내가 긴 쇠파이프에 끝만 날카롭게 가공한 걸 들고 있었으면 더 빨리 죽였을걸? 당하는 처지에서 생각해봐라.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무기로 꿰뚫릴 생각 하면 오금이 저리지 않겠니?"

"와…. 미쳤다. 비행할까?"

"공격 스킬이 만능은 아냐. 간편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은 확실하지만, 결국 체력을 쓰니까."

"오오…. 신기하네. 형은….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뭐…. 그런 놈들 죽이고 다녔으니까."

내 말에 조용해지는 녀석. 웃긴다. 생생한 경험담이라고 하니 조금 느껴지는 게 있나?

"저는…. 뭘 해야 할까요?"

나를 보고 물어보는 진영이. 하...그래. 저놈이 문제네. 소주 생성 같은 스킬이라 시너지를 만들기 힘든 녀석.

"하아…. 너는 좀 빡쎄긴 하다. 솔직히 새로 시작하는 거랑 마찬가지니까."

"그렇긴…. 하죠."

"그거 소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뭐냐?"

"네?"

"질문이 이상한가? 뭐든 소주면 다 되는 거야?"

"아…. 네. 일단 전국 팔도 소주는 다 만들어 봤어요. 다 나오던데요."

"캬…. 씨. 솔직히 그 스킬은 질병 해제랑 같이 있으면 술꾼들에게 떠받들어져서 살 수 있는 스킬인데."

"하하…. 그렇긴 하죠. 근데 질병 해제는 왜요? 설마?"

"뭐가 설마야. 맞아. 알콜 중독이나 간 나빠지는 것도 다 질병 해제로 고쳐지니까. 마약 중독도 질병 해제로 고쳐지는데 뭐."

"와…. 진짜?"

내 말에 큰 관심을 보이는 승규. 아. 맞다. 그렇지?

"맞아. 형수님 스킬 질병 해제죠?"

"어. 맞아."

"날마다 스킬 쓰고 있어요?"

"응. 쓰고는 있지. 주로 닭이랑…. 돼지에게."

"아. 그거…. 사람에게 쓰라고 해요. 우리 몸 안에 질병들 다 없어져요."

"응? 우린 딱히 병 걸린 사람이 없는데?"

"있어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질병이. 아…. 그리고 이건 여기 남자들만 있어서 하는 소린데…."

내가 질병 해제를 받고 발기력과 유지력이 강해진 것 같다는 의사피셜 이야기를 해주자 다들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진짜로…?"

"정말요?"

"허어…."

"헉."

역시 다들 남자들이라 반응들이 뜨겁다.

하긴 힘세고 우람한 똘똘이가 될 수 있다는데 관심이 없는 남자가 있을 수가 없지.

암튼 그렇게 한참 그쪽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진영이의 스킬로 돌아왔다.

"도수 높은 소주를 만들어서 뿌리면 불이 붙나? 그런 게 아니라면 소주 생성을 활용하긴 쉽지 않네."

"끄응…. 아무래도 그렇죠?"

"차라리 소주 말고 소주병 자체를 무기로 쓰는 게 더 편하겠다야. 그걸로 후려치면 일단 병이 깨지든 대가리가 깨지든 뭐든 깨지겠지."

"쉽지 않다는 소리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어쩔 수 없어. 소주병을 활용할 방법이 그리 쉽진 않네. 비행으로 날면서 소주병 던지는 게 가장 파괴력은 높겠네. 그러면 땅에 안 내려오고 계속 던질 수도 있으니까. 근데…. 궁금한 게 있어."

"네."

"한 병 만들 때마다 스킬 한 번이야? 아니 질문이 이상하네. 한 번에 한 병만 나와?"

"아뇨. 똑같아요. 등급당 한 개씩 늘어요."

"아. 그래? 어쩐지. 그럼 좋네. 진짜 비행으로 공중에서 던지는 게 가장 효과는 좋네."

"당하는 사람은 겁나 기분 나쁘겠네요."

"기분만 나쁘면 다행이지. 뒤질 확률이 높은데."

"흐음…. 비행이라…."

"근데 이건 내 망상이고. 너는 조금 신중하게 고를 필요는 있어. 무난하게 투명화 같은 것도 괜찮지."

"그럴까요."

"근데…. 꼭 한 가지 해주고 싶은 말은."

"네?"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고 조급해 하지 마라.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는 원코인 플레이어야. 엔딩을 보는 게 목표가 아니고 죽지 않는게 목표라고. 그 목적을 혼동하지 마. 스킬은 생존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냐."

"아…. 네. 알겠어요. 명심할게요."

"특히, 너처럼 동생이 있는 녀석은 더하지. 남들보다 눈물 흘릴 사람이 하나 더 많으니까."

"네. 동생을 생각하면 쉽게 죽을 수는 없죠."

"그래. 그렇다고 시스콘은 되지 말고."

"뭐….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진영이에게 시선을 거뒀다.

대충…. 이만하면 스킬 상담은 끝난 거 같은데.

나는 승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사는…. 생각해 봤어요?"

"글쎄. 그건 조금 시간이 있으니까. 적어도 봄까지는 시간이 있잖아?"

"그렇긴 하죠. 이사를 가던지 이 일대를 숲으로 뒤덮던지, 둘 중에 하나겠죠."

"맞아. 그렇지."

"만약 간다면 생선까지 노릴 수 있는 바다로 가면 좋은데."

"바다라…. 우리같이 초보자들이 그렇게 물고기 잡는 게 쉬울까?"

"그냥 해본 말이에요. 저도 그게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근데 아무래도 먹을게 풍부해지긴 하겠죠. 양식도 할 수 있을 거고, 해초류 같은 것도 기를 수 있을지도?"

"그래…. 뭐. 먹고 살라면 뭘 못하겠어."

"아무튼, 그건 형이 결정할 일이니까요."

"이러려고 나를 리더로 세운 거지?"

"당연하죠."

"하아. 쉽지 않네. 정말."

"그래도…. 지하철 그 구석보단 낫잖아요?"

"그래. 그건 그렇지. 그때 비하면 지금이 훨씬 낫지. 나도 유정이도 하율이에게도."

"그래요. 그러니 잘 해봐요. 형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지금도 좋은 리더고."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말해도 떠넘기는 것처럼 들리니 문제야."

"그게 사실이니까요."

나는 펜스의 정부장이나 여기 승규처럼 저런 건 못한다.

그 정도로 능력자가 아니야. 나는 내 그릇을 안다. 책임감으로 누군가를 이끄는 그런 자리. 그런 건 못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우는 것. 죽이는 것. 청소하는 것.

잘하는 걸 하고 살아야지. 그래야 맞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승규가 나에게 말한다.

"가게? 용건 끝났다고 바로 그렇게 가려는 거야?"

"네."

"안돼. 오늘은 안돼. 너 그냥 가면 유정이가 가만 안 둔댔어. 저녁 먹고 가라."

"아…. 맞다. 형수님에게 전달할 편지도 있는데."

"편지? 무슨?"

"안나가 전해준 편지요."

"아아. 그래. 아무튼, 넌 오늘 저녁 먹고 가야 해. 그냥 가면 진짜 큰일 날거다."

"하아…. 정말…."

"그리고 그 중국 놈들 때문에 다들 많이 예민해져 있어. 여기를 이끄는 사람으로서도 네가 조금 더 있다 갔으면 좋겠어."

"그건 또 왜요."

"네 존재만으로도 다 안심하니까."

"내가 무슨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무슨 소리야. 히어로 맞아. 적어도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다. 게다가 넌 하늘도 날잖아. 히어로 맞네."

나는 승규를 바라보고 피식 웃었다.

저렇게 능글맞은 사람이었나? 하긴 모두를 이끌려면 저렇게 되는 게 맞겠지.

딱딱하고 무뚝뚝한 것보단 훨씬 낫잖아.

"에휴. 그래요. 알았어요. 저녁은 먹고 갈게요."

이제 고작 네 시 정도 됐는데 저녁이라니…. 그럼 그때까지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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