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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
서울은 미증유의 적에게 공격받고 있다.
그 적은 독개구리 같은 하이바를 쓰고 침낭을 번데기처럼 두른 채 공중을 마음껏 날아다닌다.
사람들이 그 적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을 마주하는 자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부장들이 적어놓은 종이. 세 군데의 장소.
하나는 금천, 하나는 강남, 마지막은 중랑.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 조금 편중되어있는 느낌.
대충 머릿속에 지도를 펴보면서 합리적인 추론을 해본다.
중랑 위쪽은 아마 정종찬이 맡은 자리겠지. 그래서 나한테 죄 털렸고.
더 위쪽은 캠프의 영역과 겹칠 것이다. 이놈들끼리도 서로 상도덕이 있으니 간섭은 안 했겠지?
분당. 이쪽이 없는 게 의아하다. 근데 그것도 이해가 간다. 분당 쪽에는 여러가지 커넥션이 있는 거 같으니까.
그래 좋아 그것도 이해가 간다.
금천 서쪽으로 더 안 가는 건 아마 거리도 멀고 인천과 부평에도 캐슬 같은 곳이 있다고 했으니 그럴 거다.
좋아. 그것도 이해했어.
근데…. 그럼 서북쪽은?
서울의 전형적인 베드타운이잖아. 서대문, 은평, 홍제동…. 이쪽.
게다가 그 너머엔 일산이 있다. 인구 백만의 도시. 결코, 적은 동네가 아니다.
컴퍼니 녀석들은 북서쪽으로는 전혀 손을 뻗지 않고 있었다.
단지 멀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어차피 이놈들은 남양주에 있는 캐슬이랑 거래를 하는 놈들이니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아니면 저쪽에도 뭔가가 있거나?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서울은 인구 천만의 도시. 주변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곳.
아무리 서로 쳐 죽였다고 해도 제법 많은 숫자가 남았을 거다. 굳이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겠지.
봐봐. 이렇게 살아있는 놈들이 있잖아.
나는 탐지에 걸린 놈들을 향해 스윽 다가간다.
투명화와 비행. 말도 안 되는 조합이다.
탐지에 걸린 놈들은 한 아파트 3층에 있는 놈들.
예전 같았으면 아파트 안에 틀어박혀 있는 놈들은 어쩌지 못하고 입맛만 다셨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고민도 걱정도 없이 스무스한 사냥이 가능하다.
3층 아파트의 벽면의 가스관을 잡고 그대로 페이즈 아웃을 썼다.
벽을 통과한 뒤 안쪽에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했다.
그리고 다시 투명화와 반사. 내가 들어온 곳은 녀석들이 모여 있는 곳의 작은 방.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서 앉아서 화투를 치고 있는 놈들에게 무효화를 걸고 수면을 걸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화투패. 그리고 터지는 빛. 세 번.
[11,42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1,48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7,36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깔끔.
녀석들에겐 마른하늘에 번개가 친 것과 다름없겠지.
어쩌겠어. 그러니까 왜 내 경로에 있었냐고.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다시 비행을 써서 그대로 날아올랐다.
누군가의 목숨을 마치 떨어진 물건 줍는 것처럼 주운 나는 다시 내 목적지인 금천으로 향했다.
금천까지 일직선으로 날아오며 그렇게 10명 정도의 생명을 거뒀다.
페이즈 아웃은 정말 개사기 스킬이야. 잠금 해제 같은 게 필요 없으니까.
게다가 문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게 가장 사기다.
상대가 전혀 방비할 수 없는 위치를 파고드니까. 이건 답이 없어. 그냥 걸리면 죽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죽이고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쓸 수는 없으니 약간의 페널티가 있다고 하지만….
그거야 나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컴퍼니 녀석들이 모여 있는 곳은 구청. 그리고 인원은 여섯.
스킬은 뭐 별로 주의할 것이 없다. 탐지가 두 명 있긴 하지만 이젠 걱정할 거리도 안 된다.
어차피 탐지 범위도 내가 넓고 스킬 쓸 수 있는 범위도 내가 넓다.
해봐야 스킬 두어 개 있는 녀석들. 위협적이지도 않다. 내가 방심만 안 하면 되지.
오래 시간을 끌고 싶진 않다. 이런 피라미들 잡는데 고전한다면…. 스킬을 여덟 개나 배운 의미가 없지.
다행히 구청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찻길 간판만 봐도 구청 가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근데 이 주변은 컴퍼니 놈들이 한번 싹 쓸었나 보네. 기척이 없어.
그렇게 구청으로 다가가자 기척이 하나씩 느껴진다.
내 범위는 130미터. 내가 아슬아슬하게 녀석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으면 저놈들이 나를 알아차릴 방법은 없다.
근데…. 왜 다섯밖에 없어?
빙글빙글 돌면서 요리보고 조리 봐도 다섯밖에 없다. 하나는 어디 간 거야? 씨벌.
일단 여자가 두 명 있다고 했으니 들어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게다가 이런 상황이면 오히려 하나 빠진 게 낫다.
내가 탐지에 잡혀도 자신들 동료인지 확신할 수 없으니 크게 의심 안 할 테니까.
그래도 일단은 페이즈 아웃으로 간다.
기왕 배운 거 잘 써먹어야지. 숙련도 올려야 하고.
녀석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페이즈 아웃을 썼다.
전부 2층에 몰려있는 녀석들. 2층까지 일단 들어가면 되는 거잖아?
빠르게 뛰어서 근처까지 간 나는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바로 올라가 벽을 통과했다.
어후. 구청이라 그런지 건물 내부 참 삭막하네. 눈앞에 보이는 파티션, 파티션, 파티션.
대충 이 근처였는데? 복도를 지나 녀석들의 기척이 느껴졌던 곳으로 가니 각자 자리를 잡고 편하게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놈. 귀에 뭘 꼽고 누워있는 놈. 책을 보는 놈. 뜨개질하는 여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여자.
파티션 옆에 웅크리고 페이즈 아웃을 해제한 뒤 바로 조용히 투명화와 반사를 켰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바로 눈에 보이는 녀석들에게 무효화를 걸고 매혹과 수면 두번을 썼다.
조금 더 움직여 다시 남은 두 녀석에게 무효화와 매혹, 수면. 음. 정리 끝.
투명화를 풀고 탐지를 써본다. 역시 이 다섯 말고는 느껴지는 게 없다.
"야. 너희 여자들 둘 이리 와봐."
뜨개질을 하던 여자와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여자 둘이 내 부름에 바로 다가온다.
"너네 한 명 더 어디 갔냐?"
"심심하다고 프라모델 가지러 갔어요."
여자 하나가 대답했고, 다른 여자는 한쪽을 가리켰다.
이들이 모여 있던 반대편 파티션 안쪽에 잔뜩 세워져 있는 프라모델들.
아하…. 취미활동 중이었네.
"언제 나갔어?"
"한 시간 정도 전에요."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
"근처 마트에요."
"그래? 그 녀석 탐지 있는 녀석이야?"
"아뇨."
"그럼 편히 기다려도 되겠네."
약간 무료한 시간이 흐른다. 남자 놈들에게 수면을 리필하면서 그저 멍하니 노트북에 나오는 영화를 바라본다.
여자애들이 조금 이쁘기라도 하면 가지고 놀 텐데. 그럴 의욕이 안 생긴다.
뭐, 얘들이 못생겼다는 소리가 아니고 내가 이런 여자들에겐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는 소리.
큰일이야. 눈이 상당히 높아졌어.
한 30분 정도 기다리자 탐지에 기척이 걸렸다. 이쪽으로 바로 오는 것으로 봐선 나갔던 한 놈이 확실하겠지.
"하던 거 해라."
여자들은 아까와 같이 돌아갔고, 나는 투명화를 썼다.
얼마 뒤 봉지 소리를 부스럭거리며 들어오는 남자 놈 하나.
무효화와 수면이 걸렸고 녀석이 바로 쓰러졌다.
봉지에서 빼꼼 삐져나오는 프라모델 상자.
그대로 가서 남자의 목을 찍었다. 빛이 번쩍였고 녀석은 코인이 되었다.
[52,998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음. 적당히 있네. 저런 천진난만한 모습으로도 잘도 죽이고 다녔구나.
그렇게 다른 남자 셋도 죽이고 여자 둘도 재운 뒤 바로 죽였다.
모두 합해서 코인 34만. 내 코인 보유가 390만을 넘어갔다.
이정도면 당분간 코인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게다가 벙커에 있는 애들도 잔뜩 포션을 먹일 수 있을 거고?
더 재밌는 건 아직 처리해야 할 녀석들이 남았다는 거다.
민희에게 70만을 줘도 이렇게 널널하다니. 역시 수도권을 주름잡는 놈들다워.
수도 인구 천만. 코인으로 따지면 50억. 소비된 것도 있을 테니 50억이 온전히 있지는 않겠지만, 고작 그중의 천분의 일도 안 되는 양.
과연 나 같은 녀석이 얼마나 있을까? 없진 않을 텐데.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지만, 이 서울 근처의 수도권 인구는 다른 나라에 비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사람이 코인이 되었으니 사실상 나는 엄청나게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한 셈이다.
그런 유리한 점을 헛되이 낭비할 수는 없지.
모이고 모인 코인들을 다 끌어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놈의 스킬들을 배우지.
나중에는 코인이 없어서 스킬을 못 배우는 날이 분명히 올 테니까.
여기도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이젠 다음 장소로 가야겠다.
다음은 강남. 인원은 일곱.
가보자. 거기는 또 어떤 모험이 날 기다릴까?
녀석들의 본거지는 강남의 한 5성 호텔.
크…. 역시 이런 것도 줄을 잘 서야 해.
누구는 구청의 딱딱한 파티션 사이에서 불편하게 있고 누구는 강남의 5성 호텔에서 뒹굴거리고 있고.
이놈들도 순환 근무 같은 거 하나? 지역을 바꾸려나? 모르겠다. 이미 망해버린 녀석들 사정 따위 내 알 바 아니지.
금천에서 강남까지는 아무리 전동 휠을 타고 간다고 해도 한 시간은 훨씬 넘게 걸릴 텐데.
비행으로 날아가니 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물론 그사이에 7명 정도 쳐죽인 시간까지 합쳐서.
역시 아직도 살아남은 놈들이 꽤 있어. 아니지 오히려 이정도면 적은 편인가?
컴퍼니 같은 놈들이 막 훑고 다니는데 아직 살아남아 있는 놈들이 있는 게 대단한 거지?
그런 걸 생각하면 역시 지방으로 갈수록 오히려 사람이 많을 것이다.
수도권은 이미 메리트를 잃었어. 차라리 지방에서 자급자족을 도모하는 게 훨씬 낫지.
그런 걸 생각하면 펜스나 캐슬 같은 곳은 상당히 세련된 곳이었어.
물론 펜스도 동산이었을 때는 이사장 놈이 문제였고 캐슬도 막장이긴 했지만.
문제는 인간이야. 인간.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인간이 지랄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다가 그렇게 문제 있는 인간이 없기를 바라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어딜 가도 꼭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은 있기 마련이잖아?
그걸 강력한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지 않은 이상 인간이 여럿 모이면 결국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나는 그 해결책을 모두 죽이는 것으로 해결해왔지만, 물류센터와 펜스를 보고 희망을 얻은 거고.
근데 펜스는 나름 대비를 해놨는데, 물류센터. 거기가 걱정이네.
안 가본 지 꽤 됐잖아? 한번 가봐야 할 텐데. 언제 가보나.
강남은 내가 알던 그런 곳이 아니게 됐다.
아까 갈 때도 보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심하다.
대체 불이 얼마나 나면 이렇게 되는 걸까? 그을리지 않은 건물이 하나도 없네.
게다가 그런 불난 곳을 뒤덮었던 식물의 흔적. 지금은 겨울이라 다들 말라죽긴 했지만 아직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던 동네는 가장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이런 곳에서 컴퍼니 이놈들은 사람들을 모을 수는 있긴 한 거야?
녀석들이 모여 있는 호텔은 코엑스몰 맞은편에 있는 곳.
내가 알 정도로 이름있는 호텔.
그렇게 호텔로 바로 날아가서 탐지로 살펴보니 기척이 꽤 많이 느껴진다.
얼래? 분명 일곱이랬는데? 왜 열 명이나 있지?
사람 모아 놓은 놈들이 여기 함께 있는 건가? 뭐,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네.
이놈들은 아직 캐슬이 무너진 지 모를 테니까. 하던 일을 계속하는 거겠지?
상당히 높은 곳에 머물고 있는 녀석들. 보아하니 세 층에 우르르 몰려있다.
그럼 나야 좋지. 각개격파할 수 있으니까.
일단 제일 위에 있는 녀석들. 총 네 명. 근데 여긴 몇 층이야? 20층은 넘어 보이는데.
뭐, 사람 죽이는데 그런 걸 알 필요가 있나? 이제는 페이즈 아웃이라는 개씹사기 스킬이 있는걸?
어디보자. 어떻게 들어갈까?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될까? 되겠지? 해본다.
비행으로 적당히 건물 벽면을 향해 날아갔다.
이대로 들이박는다면 다윈 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벽에 부딪히기 전에 페이즈 아웃을 쓰고 벽을 통과했다.
뿌옇게 변한 세상 속에서 바닥을 한번 구르고 벌떡 일어난 나는 똑바로 서서 만세 포즈를 했다.
"크…. 이정도면 예술 점수 10점 아닐까?"
아쉬운 건 이걸 본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
아깝네. 아까워. 어디 가서 자랑도 할 수 없다니.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나는 아까 녀석들의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갔다.
어차피 이 상태에서도 녀석들은 보이니까. 뭘 하고 있나 봐야지.
그리고 뿌옇게 변한 시야 사이에서 남자 한 놈이 여자를 강간하고 있었다.
물론 둘이 하고 있는 게 정상적인 섹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 여자의 입에 물린 재갈과 묶여있는 손이 그런 쪽의 하드 플레이라면 말이 된다.
하지만 옆에 남자 두 놈이 더 벌거벗고 있다면 글쎄…. 모르겠다. AV촬영이 아닌 이상 강간이 맞겠지?
혀를 쯧하고 찼지만 역시 들어줄 사람은 없다.
이곳은 이면의 세계. 나 혼자 고독하게 존재하는 곳.
적당히 녀석들의 시야가 안 닿는 곳으로 가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했다.
그제야 들리는 여자의 비명에 가까운 뭉게진 욕설.
그리고 킥킥거리는 남자들의 웃음.
뭐, 강간이 맞겠네. 저렇게 정신이 팔려있으니 쉽게 처리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