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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어떤 기분일까? 복잡했던 감정이 갈망 하나로 통일되는 느낌은?
절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물론 다른 스킬들도 걸리는 순간 죽음과 악수하는 거랑 마찬가지지만, 매혹은 조금 더 악랄하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권을 모조리 타인에게 넘기는 행위. 단순한 죽음보다 질이 나쁘다.
"세희. 정종찬에게 내가 하는 말을 전부 따르라고 말해."
"성현이가 하는 말에 따라."
짝!
"성현이가 아냐. 병신같은 여자야. 쓰레기 같은 년. 성철이다. 권성철."
귀싸대기를 맞아도 억울함보단 자기가 이름을 제대로 기억 못 한 것에 대해 죽을 만큼 미안해하는 여자.
이딴 연놈들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변하다니. 정말 거지 같은 일이야.
"성철이가 하는 말에 따라."
나는 정종찬을 바라봤다. 아무 감정 없어 보이는 표정이지만 그 속에는 비굴함이 섞여 있다.
절대적인 서로의 위치에 따른 위축감.
내가 갑, 정세희가 을, 정종찬이 병. 병이라. 딱 좋네. 병신새끼.
정종찬 입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거칠게 뜯어내고 물었다.
"다른 화학과 놈들은 어디 갔냐? 다 죽였냐?"
"네."
"크.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언제 죽였냐? 정세희를 성채 놈에게 팔아넘길 때?"
"아뇨. 매혹에서 처음 빠져나왔을 때요."
"그래…. 대단하네 정말. 그건 그렇고…."
막상 이렇게 됐지만 정종찬 이 새끼한테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건 딱히 없다.
그냥 복수가 하고 싶었을 뿐이지 이놈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밖에 세워둔 네 명은 여기 있는 놈들 다 죽이려고 데리고 온 거야?"
"네."
"더 있어?"
"네?"
"니 따까리들 더 있냐고."
"아니요. 없습니다."
"한심하네. 그건 그렇고…. 너 네 번째 스킬 배웠냐?"
"네."
"역시. 뭐 배웠는데?"
"주변 인간 탐지요."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잠깐. 너 그럼 다섯 번째 스킬도 배웠냐?"
아까 이 새끼는 분명히 100미터 반경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서 탐지를 썼었다.
그 말은 탐지가 마스터라는 이야기. 그렇다면 다섯 번째 스킬도 얻었을 게 분명한데?
"아직 못 배웠습니다."
"왜?"
"코인이 부족해서요."
"아…. 그렇군. 그래…. 그럼 이놈들 다 죽이려는 이유가 코인 얻으려고 그랬던 거구나?"
"네."
참 바람직한 사고관을 가진 녀석이야. 필요한 걸 위해서라면 배신 같은 것은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녀석.
아마 이 새끼는 필요했으면 캐슬도 털었을 거야.
잠깐 고민이 됐다. 이 새끼를 써서 아무 잡아서 킬 하나 배우게 한 다음 효과를 확인해 볼까?
근데…. 막상 하려면 상당히 귀찮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러기엔 이 새끼한테 코인을 쓰는 게 너무 아깝다.
무엇보다…. 계속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가 않다.
그냥 빨리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뿐.
다시 테이프로 정종찬의 입을 틀어막고 세희에게 말했다.
"정세희."
"네."
"이놈, 이놈, 이놈, 이놈. 네 명한테 매혹 걸어."
부장 셋과 대표 하나를 집어주며 말하자 세희가 매혹을 걸었다.
그러자 매혹이 풀린 정종찬.
풀리자마자 틀어막힌 입으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나는 마체테로 녀석의 허벅지를 거칠게 찍었다.
"읍!!!!"
"자. 이제 너는 죽을 거야. 나는 너처럼 허술하게 안 해. 니가 죽는 걸 끝까지 바라볼 거니까. 죽기 직전까지 나를 원망해. 니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다."
"읍읍읍!!!"
"그래. 죽어가는 마당에 입까지 다물라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그치?"
반대쪽 허벅지도 있는 힘을 다해 찍었고, 마체테 끝에 뼈가 찍히는 불쾌한 감각이 느껴진다.
"읍!!!!"
"휴. 이러면 과다출혈로 죽을 거야. 빨리 죽고 싶으면 더 소리쳐. 그럼 니 배때기도 찔러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시선을 거뒀다.
쓰레기 같은 새끼. 좀 더 끔찍하게 죽여야 할 텐데.
상상력이 부족한 내가 원망스럽네.
그렇게 끙끙거리며 죽어가는 정종찬을 놔두고 매혹에 걸린 네명을 조인트를 까서 깨웠다.
그리고 전무와 남자직원을 바라봤다. 이놈들은 이제 더 필요 없잖아?
딱히 정보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굳이 살려둘 의미도 없으니까.
마체테가 휘둘러졌고, 두 남자의 목숨이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다.
[32,8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5,42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코인 봐라. 어휴. 죽은 젊은 놈은 무슨 노예야? 코인이 이게 뭐니?
세희에게 말해 내 명령을 들으라고 전달시키고, 부장들의 테이프를 뜯어주며 말했다.
"너희들의 아지트, 혹은 팀원들과 만나기로 한곳에 대해서 적어. 그리고 팀원들 이름과 알고 있는 스킬까지 모두."
정종찬 개새끼가 부장 하나를 죽이긴 했지만, 그놈이 캐슬에 갔던 부장이라 다행이다.
컴퍼니 팀원들이 전혀 모르는 곳에 엉뚱하게 남아있었으면 찾아 죽일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역시…. 매혹이 좋긴 좋아. 더럽게 끔찍해서 그렇지. 아울렛에서도 매혹이 있었으면 그 쌩지랄을 안 해도 됐을 텐데.
부장들이 자신들이 데리고 있던 팀원들의 정보를 열심히 적고 있는 사이 대표 놈에게 물었다.
"너. 수납 마스터야?"
"네."
"거기 넣을 수 있는 양은 얼마나 되냐?"
"저도 끝까지 넣어본 적은 없습니다."
"어휴. 씨발. 뭐 아는 게 없냐. 니들은 그런 거 테스트 안 해?"
아무 말이 없는 대표. 하여간 이런 놈이 대표라니. 어휴.
"너 수납 안에 음식 들어있지?"
"네."
"그래…. 그럼 잠깐 기다리고. 거기 부장들? 다 썼어?"
"네."
"다 썼습니다."
"네."
종이를 거둬 살펴봤다.
으음…. 서울 곳곳을 돌아다녀야겠네. 그것도 오늘 내일 사이에.
학살의 밤이 되겠어.
"대표. 너는 코인 대략 얼마 있냐?"
"저는 17만 정도 있습니다."
"부장 너희들은?"
"저는 22만 있습니다."
"전 13만요."
"전 21만 있습니다."
"니들은 코인을 니들이 다 독식하냐? 많이 가지고 있네. 여기서 블링크 있는 놈이 누구였지?"
"접니다."
인사기록카드를 살펴봤다. 박찬식. 그래…. 수납도 가지고 있고.
"블링크는 단거리 순간이동이지?"
"네."
"거리는?"
"시야에 있는 곳 100미터 입니다."
"너 마스터야?"
"아뇨. 고급입니다."
"고급인데 100미터야? 그럼 처음엔?"
"처음엔 20미터였습니다."
"20미터? 그럼 20, 30, 100 이렇게 됐나?"
"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마스터 하면 200미터네."
단거리가 아니잖아? 아니. 단거리 맞나? 근데 상당히 괜찮긴 하네. 시야에 닿으면 그 정도까진 순식간에 갈 수 있다는 건가.
"연속 사용도 되나?"
"네. 본인이 할 수만 있으면요."
"그래…. 그렇구나. 그거 쓴다고 스킬이 해제되거나 하진 않지?"
"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투명화 같은 걸 쓰고 블링크 쓴다고 투명화가 풀리냐고."
"아.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엄청 좋긴 하네. 쓰는 사람에 따라 히트앤런이 가능하단 소리니까.
적으로 마주치면 상당히 까다로운 스킬이다. 솔직히…. 어? 하는 사이에 제압 당해 있을 수 있다는 소리잖아.
탐지고 뭐고 아무 의미가 없다. 점점 탐지가 만능이 아니게 되어가는 느낌이네.
“페널티는?”
“공간 감각 능력이 부족하면 스킬 발동 자체를 하기가 힘듭니다.”
“뭔소리야?”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야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아하. 결국은 상상력과 지각력 문제네.”
“네.”
“그건 스킬의 페널티라기 보단...사람의 문제잖아? 다른건 없어?”
“중간에 장애물이 있으면 안됩니다.”
“그건 당연하겠고.”
“그 외에는 마땅하게 없습니다.”
"알겠어. 좋은 스킬이네. 그럼 됐고…. 변신 있는 게 누구였지?"
"네. 접니다."
고재영. 북극곰으로 변신해 어슬렁거리면서 등장한 남자.
"아저씨도 네 번째 스킬 있어?"
"네. 있습니다."
"뭐야? 기절, 반사, 변신 말고 또?"
"수납입니다."
"아…. 너도 수납이야? 하긴…. 팀장이면 수납의 필요성을 느끼겠지. 쩝. 새로운 건 없네. 그럼…. 너도 식량 잔뜩 들고 있나?"
"네."
"알겠어. 그럼 변신에 대해서 물어보자. 내가 제일 궁금한 게 있는데. 여자로 변신 되냐?"
변신 능력에서 가장 궁금하던 부분이었다.
여자로 변신이 된다면 매혹을 양쪽에 다 걸 수 있으니까.
이렇게 세희 년을 질질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여자로는 안됩니다."
"에이 씨발. 진짜?"
"네. 뭐로 변신해도 성별은 고정됩니다."
"쓰레기네. 됐어. 아. 생각해보니 변신하면 스킬 못 쓴다며? 그럼 여자로 변신이 가능 했어도 의미가 없네. 남자들한테 다리 벌릴 것도 아니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부장.
"그럼 그걸 대체 왜 배우는 거야? 뭐 동물이랑 커뮤니케이션이라도 할 수 있어?"
"네."
"어? 네라고? 동물이랑 대화가 돼?"
"네."
"미친…. 그건 조금 신기하네. 그래서? 뭐 시키거나 할 수 있어?"
"아뇨. 동물은 생각보다 영리하지 못합니다. 간단한 탐문 정도만 가능합니다."
"아…. 그런가. 하긴 테이밍 스킬이 따로 있었으니…. 뭔가를 시키려면 그걸 배워야 하나."
어쨌든 변신 스킬은 아무 의미가 없다. 더 알고 싶은 것도 없고.
"이현석이. 너도 네 번째 스킬 있어?"
"네."
오우. 역시 잘 나가는 놈들 답네.
"뭔데?"
"파티입니다."
"파티? 오. 정말? 안 그래도 그거 정말 궁금했다. 그거 효과가 뭐야?"
"파티 스킬을 하고 있으면 타인에게 파티 권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파티가 되면 좋은 건 뭐야?"
"같은 파티가 되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말? 거리와 상관없이?"
"네."
"파티원들이 전부 알게 되나?"
"네."
"잠깐만…. 스킬을 쓴 너만 아는 게 아니고 파티원들이 전부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네."
"그럼 너 파티 스킬 쓰고 왔었어?"
"네."
"지금은? 내가 다 지워버려서 사라졌을 텐데."
"네. 파티가 해제됐습니다."
"으음…. 아저씨네 팀원부터 조져야겠네. 귀찮게. 또 다른 능력은?"
"서로의 공격 스킬에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아. 진짜? 그건 좋네. 그럼 파티원이 있는 상태에서 얼음 회오리 같은 걸 써도 피해를 안 받는다는 말이지?"
"얼음 회오리는 안 써봐서 모르겠습니다. 다만 트랩 같은 건 밟아도 발동하지 않습니다."
"그건 좋네. 테스트를 해보긴 해야겠어. 그럼 서로 피해를 아예 못 주나? 단일 타겟 스킬도 안 걸려?"
"네."
이건 조금 괜찮네. 강제로 화친을 맺는 거잖아?
"파티 탈퇴는? 상대방이 마음대로 파티 탈퇴할 수 있나?"
"네."
아…. 그러면 의미 없네. 탈퇴하고 바로 공격이 된다는 소리니까.
대신 나한테는 나름 쓸모가 있는 스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잠깐만….
"그거 인원이 어떻게 되지?"
"처음에 한 명, 그리고 숙련도 오를 때마다 한 명씩 늘어납니다."
"너 지금 숙련도는?"
"중급입니다."
"그럼 두 명 추가야?"
"네."
나이스하네. 마스터하면 네 명까지 된다는 소리니 승희, 미나, 세아, 안나를 전부 파티로 놓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소리잖아.
파티라…. 나름 괜찮네. 나중에 여유있을 때 찍어보면 좋겠어.
"그거 파티원끼리 서로 대화가 되고 그런 건 없어?"
"네. 없습니다."
"아. 그래. 음…. 그건 아쉽네."
혹시 모르지. 고급이나 마스터가 되면 그런 기능이 추가될지도.
일단은 좋은 걸 알았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수확이 크네.
직접 찍지 않아도 능력을 알 방법이 이렇게 밖에 없으니까.
컴퍼니 놈들은 역시 도움이 많이 되는구나.
"읍…. 읍…."
거의 죽어가는 정종찬이 작게 중얼거린다.
새끼. 아직 안 죽었어?
"왜? 아파? 아…. 피가 많이 나왔지? 슬슬 출혈 과다로 죽을 때 된 거 같은데."
잔뜩 술에 취한 모습처럼 둔하게 눈알을 굴리는 정종찬.
나를 보는 눈빛이 공허해진다. 점점 의식이 멀어져가는 듯한 모습.
세상이 망하고 그토록 바라던 순간 중의 하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정세희와 함께 나를 괴롭히던 놈의 잔영.
그런 그 녀석은 내 앞에서 제정신이 아닌 모습으로 삶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다.
"쯧. 등신 같은 새끼. 승리자의 아량으로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줄게."
마체테를 들고 크게 휘둘러 정종찬의 목을 찍었다.
빛이 되어버리는 녀석. 마지막 순간…. 날아오는 마체테를 보면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던 거 같은데.
고통에서 해방되어 기뻤던 걸까? 병신같은 놈.
[428,40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얼래? 뭐야? 코인 없다더니? 아…. 체력 증가. 이새끼 패시브를 찍고 싶었구나.
그래 다섯 번째 스킬에는 패시브가 있지. 새끼. 좋은 건 알아가지고.
정종찬이도 죽었고 이제 어느 정도 알아낼 것은 다 알아낸 거 같은데.
그럼 이제 슬슬 정리를 해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