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42화 (24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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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등 뒤에서 다가오는 거라면 창문 쪽이기에 블라인드를 살짝 내려 바깥을 살펴봤다.

기척은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육안으로는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투명화네. 투명화가 있는 놈은…. 어디 보자.

인사기록카드를 보니 박찬식, 아니면 이현석.

둘 다 기절, 투명화, 수납을 가지고 있네. 박찬식이는 거기에 블링크까지.

어떤 놈일까? 뭐가 됐든 위험한 놈들은 아냐. 이현석이가 네 번째 스킬을 배우고 광역 스킬 무효화를 배운 게 아닌 이상은.

녀석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과연 자신들의 본거지로 들어오는데 그곳이 이미 적의 손에 털려있다는 생각을 하는 녀석이 몇이나 있을까?

있긴 있겠지. 나 정도로 강박적인 새끼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너희는 평소대로 반응해라."

"네."

"네."

사실 반응할 것도 없을 거다. 들어오는 순간 끝날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은 그렇게 지시해놓고 투명화를 쓴 뒤 대표실 바깥으로 나갔다.

2층에 올라온 기척. 가까워지는 거리.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안녕들 하십니까!"

그리고 무효화와 수면.

안타까운 일이다. 하긴…. 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투명화를 해제하고 다가가 테이프 질을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테이프 고치로 만들어 버린 나는 실장에게 물었다.

"회의는 어디서 하지?"

"대회의실요."

"어디야?"

"이쪽입니다."

테이프로 둘둘 말린 남자를 질질 끌고 대회의실에 처박아 놨다.

이제 남은 건 넷. 시간은…. 아직 멀었네. 어휴.

탐지를 적당히 써가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좀 일찍 일찍 오지. 길이 막힐 수도 있잖냐. 이 남자처럼 일찍 오면 얼마나 좋아.

대회의실,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노려보는 남자. 박찬식.

블링크를 가지고 있는 남자. 입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블링크로 도망가겠지?

꼼꼼하게 입 주변을 막아놔서 일단 말은 못할 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냥 계속 재워놓자. 혹시라도 모르니까.

회의실을 나오다가 자료실에 있는 남자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사인지 나발인지도.

어휴. 남자라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네. 근무시간이 다 됐는데 저러고 방에 있으면 조금 이상하겠지?

자료실이라 적혀있는 남자의 방으로 들어가니 나를 보고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는 녀석.

불쌍한 놈. 그러니까 아무 데나 어울려서 놀면 안 되는 거야.

일단 죽일 수는 없으니 그대로 질질 끌고 갔다.

대충 회의실에 데려가 의자에 앉혀 놨다.

다음엔 전무. 전무 역시 다리를 잡고 회의실까지 질질 끌고 갔다.

적당히 상석에 앉혀놓으니 자꾸 떨어지려고 하길래 의자에 테이프로 칭칭 감아놨다.

부장 놈이랑 저 남자도 이렇게 해놔야겠다. 의자에서 떨어지면 아프잖아.

그렇게 9시 20분 정도가 되자 기척 하나가 더 느껴졌다.

박찬식이와 같은 방향에서 오는 기척. 대표실로 들어가 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근데…. 저건 뭐야?

북극곰 한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씨발…. 누군지 알 것 같네. 저 새끼가 변신 있는 새끼구나.

추우니까 북극곰으로 다니는 거야? 캬. 골때리네 저 아저씨도.

저러고 오는 걸 누가 보면 어쩌려고…. 와. 진짜 대단하다.

저 아저씨는 죽일 때 각별히 안 아프게 죽여야겠다. 그럴 자격이 있어.

사무실에 들어올 땐 변신을 풀 줄 알았는데…. 북극곰 모습 그대로 머리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걸까? 대단한 놈이야.

하지만 그가 받을 것은 무효화와 수면뿐이다.

무효화를 걸자 평범한 아저씨로 변했고, 그대로 잠들었다.

그냥 평범한 샐러리맨처럼 생겼는데…. 안타깝네.

"이 인간 평소에도 이러냐?"

"네. 지난달에는 물소였어요."

실장의 냉랭한 반응.

그렇구나. 상습범이었네.

역시 잘 테이프 질 해서 박찬식이 옆자리에 앉혀놓고 의자에 묶어놨다.

아직 고작 9시 반. 이제 슬슬 다들 올 때 안됐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탐지에 뭔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

가속화! 이건 분명히 정종찬 그 개새끼!

다가오던 녀석은 제법 먼 거리에서 멈춰 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는 녀석.

뭐지? 왜 멈췄지? 그 교활한 새끼. 지랄 말고 그냥 들어와라. 응?

하지만 갑자기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해 버렸다.

어? 어디가!? 씨발!? 야이 개새끼야!

탐지 범위 밖으로 나가버린 정종찬.

이 씨발…. 뭐지? 들켰나? 그럴 리가 없는데? 바깥에서 안쪽의 상황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탐지가 있다고 해도 안쪽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뭐지? 뭘까? 이런 씨발…. 이상한데?

"야. 실장."

"네?"

"평소에 업무 시작하면 뭐 해놓는 게 있나? 평소엔 하는데 오늘은 안 한 거 있어?"

"아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이런 썅…. 그럼 뭐지? 본인만 아는 뭔가가 있나?

좆같은 새끼. 대체 이유가 뭘까? 왜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갔을까?

기분이 더럽다. 여기를 치는 가장 큰 이유가 정종찬 저 개새끼를 잡기 위한 건데.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이런 씨발.

그렇게 망연자실 해 있는데 기척을 하나가 또 잡힌다.

정종찬인가? 싶었는데 아닌거 같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기척. 하아…. 개빡치네. 정종찬 그 새끼 때문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네.

저 멀리에 느껴지는 기척. 탁 트인 곳이라 보여야 하는데 육안에는 안보인다.

그럼 이 새끼는 이현석 이놈인가 보네. 하아.

건물로 들어서는 녀석. 2층으로 올라오고 사무실 앞까지 왔다.

"오랜만입니다!"

그 말과 함께 무효화와 수면을 맞고 쓰러지는 남자.

테이프 질을 하고 회의실에 앉혀 놨다.

씨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젠장. 빌어먹을. 염병할.

9시 45분. 마지막 녀석이 건물로 다가온다.

아마도 저 새끼가 소형규. 탐지가 있는 녀석.

어차피 탐지로 봐도 회의실에 가지런히 앉혀 놨으니 크게 이상함을 느끼진 않을 거다.

남자는 저 멀리에서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창문 블라인드 틈으로 그런 남자를 바라봤다.

그렇게 다가오던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뒤쪽으로 확 돌렸다.

뭐지? 왜?

그런 그의 옆에 갑자기 정종찬이 나타났다.

오? 씨발. 다시 나타났다고!? 감사합니다! 퍼킹! 씨발!

정종찬은 소형규에게 뭐라고 말하고 옆쪽 골목으로 함께 들어간다.

뭐야? 어디 가는 거야?

다행히 탐지거리에 녀석들이 있기에 시야가 가려져도 위치는 확인할 수 있다.

있는데…. 뭐야? 왜 기척이 하나 사라져?

그러더니 빠른 속도로 다시 탐지 범위 바깥으로 나가는 기척.

이 씨발…. 방금 뭘 본 거야? 정종찬 이새끼 지금 소형규를 죽인 거야?

탐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다. 페이즈 아웃, 아니면 죽음.

아까 알게 된 축소나 변신으로 기척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기척.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야? 저 미친놈이 왜 부장을 죽였지?

이해를 못 하겠네. 정종찬 새끼…. 주특기를 발휘하는 거야? 배신?

그렇게 열심히 짱구를 굴리고 있는데, 탐지에 뭔가가 걸렸다.

기척. 그것도 여러 개. 어디 보자…. 넷? 다섯?

그 기척은 백화점 앞쪽에서 딱 멈춰섰다. 기척은 다섯인데 보이는 건 정종찬 하나뿐. 그러더니 정종찬만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씨발. 알겠다. 저기 백화점 앞. 저기가 딱 100미터 거리잖아.

아까 정종찬 놈이 서있던 곳도 저기였고.

내가 어제 백화점에서 거리를 안 재봤으면 눈치를 못 챘었겠지. 존나 다행이네.

기척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녀석들. 그렇다는 것은 저기 있는 네 명은 모두 투명화를 쓴 놈들이라는 거다.

그리고 소형규. 그놈을 죽인 것도 이해가 간다. 소형규는 탐지가 있으니까.

그럼 정종찬 저 새끼가 지금 오고 있는 것은 좋은 의도로 오고 있는 게 아닐 거다.

분명 이 안에 있는 탐지 스킬 가진 놈을 죽이려고 오는 거겠지? 그렇게 탐지를 제거해버린다음 빠지면 저기 서 있는 투명화 놈들이 들이닥치고?

교활한 새끼. 싸가지 없는 새끼. 아주 인생이 배신이지?

"실장. 대표랑 전무 놈 탐지 스킬 없지?"

"네..."

아마 그럼 저놈의 목표는 김상현. 내가 아울렛에서 죽인 부장 녀석.

소형규를 죽였으니 그놈만 죽이면 여기는 투명화에 취약한 상황이 되는 거다.

멍청한 새끼. 안됐네. 나만 아니었어도 네놈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컸을 텐데.

2층으로 올라오는 정종찬. 그리고 드디어 문 앞.

아무리 가속화가 있어도 문을 열 때는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문이 열려야 들어오든지 말든지 할 테니까.

문이 살짝 열렸고, 나는 바로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문이 벌어지며 얼굴이 보인 정종찬 녀석의 몸이 무너지듯 쓰러진다.

크으…. 씨발. 씨발! 드디어! 저 개새끼를 잡았다!

바로 문으로 달려가 벌컥 열었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정종찬. 기분 나쁜 기생오라비 새끼.

바로 테이프를 뜯어 입부터 막았다.

그리고 테이프 질. 감고 감고 감아서 거의 고치처럼 만들었다.

크크크크.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너무나 유쾌한 상황이야. 행복해서 참을 수가 없네.

"캬하하하하하!!!"

정말 악당처럼 웃었다. 나는 악당이 맞으니까.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느낌이야.

대회의실로 질질 끌고 가서 의자에 앉혀놓고 꽁꽁 묶었다.

됐어. 이제 됐고. 더 올 녀석은 없잖아?

아차. 밖에 백화점 앞에 숨어 있는 네 명. 그 새끼들도 잡아 죽여야지.

혹시 모르니 페이즈 아웃을 써야겠다. 그 녀석들 중에도 탐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

"실장. 경리. 이리 와봐."

"네."

"네."

"앉아."

여자 둘 역시 회의실 의자에 앉았고, 나는 그녀들도 재웠다.

테이프로 입과 손, 몸과 다리를 잘 감고 의자에 감아놓는 걸 마무리 하자 회의실에는 테이프 인간들이 잔뜩 있게 됐다.

"됐고…. 이제 가볼까?"

페이즈 아웃을 썼다.

뿌옇게 변하는 세상. 나는 그대로 2층 벽을 통과해버렸다.

허공에 뜬 채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나의 모습.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 뭔가가 있다는 것만 상상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허공도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계단을 만들면 내려가는 것도 가능하지.

지면으로 내려와 계속해서 걸어가 백화점 앞으로 향했다.

아마…. 이근처였지?

일단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서 페이즈 아웃을 풀고 투명과 반사를 켜야 한다. 스킬 연계에 틈이 있는 건 조금 맘에 안 드네.

그렇게 백화점으로 향하는데…. 저쪽 골목 위에 이상한 게 보였다.

저게…. 뭐지?

검은 연기가 뭉쳐 있는 모습이다. 풍선 같기도 하고 커다란 공 같기도 한 모습.

그리고 그것은 뚫어지게 컴퍼니 본사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름이 오싹 돋는 모습.

대체 저게 뭐지? 눈이 없는데…. 어떻게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계속 보고 있자니 기분이 상당히 불쾌해진다.

지금까지 페이즈 아웃을 쓰면서 저런 걸 본 적이 없는데.

일단…. 무시하자. 지금은 저걸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페이즈 아웃을 풀고 바로 투명화와 반사를 걸은 다음 탐지를 썼다.

바로 근처에 잡히는 네 명의 기척. 그리 멀지 않다.

스킬 범위 증가로 수면의 거리가 상당히 늘었으니 저런 놈들 정도는 뭐…. 그냥 별거 아니지.

자기들이 공격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은 더더욱.

광역 스킬 무효화로 모습이 드러나고 걸려있는 스킬이 모두 사라지는 녀석들.

깜짝 놀라지만 차례로 쓰러진다.

쯧. 정종찬 같은 새끼를 믿은 니들이 잘못이야. 그래도 걱정 마라. 그놈도 곧 따라갈 거니까.

마체테가 휘둘러졌고, 네 명은 모두 죽어버렸다.

[24,885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32,4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2,5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36,448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뭐, 그럭저럭이네. 깔끔한 해결. 이제 모든 상황이 종결됐다.

다시 저쪽으로 가서 녀석들 테이프 질 해놓은거나 더 보강하고 세희 년만 데려오면 되겠네.

중간에 정종철 그 개새끼가 이상한 짓거리를 하긴 했지만…. 뭐 이정도면 무난하지.

근데…. 아까 그건 뭐였지?

페이즈 아웃 안에서 본 것. 계속 신경 쓰인다.

잠깐만 확인해보고 갈까?

나는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썼고 깜짝 놀라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금 내가 네 명을 죽인 곳에서도 그 커다란 검은 구체가 네 개 떠 있었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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