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39화 (23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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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스킬

스킬들을 확인하는 시간.

일단 탐지부터 썼다.

패시브 효과부터 확인해봐야지.

일단 지속시간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정확한 시간을 알지.

어떤 스킬은 시간이 보이고 어떤 스킬은 안 보이는 게 참 거지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은 뭔가 불안전해.

20초짜리 탐지가 26초 지속이 됐다. 그럼…. 30퍼센트 증가인데.

스킬 지속시간 증가1과 2를 찍고 30퍼센트 증가면….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 거야? 1로 10퍼 2로 20퍼 해서 합 연산인가?

그럼 다음에 스킬 지속시간 증가3을 찍으면 거기에 30퍼 더해서 60퍼 증가인가?

와씨…. 이거말도 안되게 늘어나는데?

잠깐…. 그럼 지금 매혹 같은 건 2시간짜리인데…. 30퍼 증가했으면 156분. 즉 2시간 36분이다.

맙소사. 시간 엄청 늘잖아? 그럼 이론상 스킬 지속시간 증가4까지 찍게 되면 100퍼센트 증가가 돼버린다.

매혹 지속시간이 4시간이 돼버린다는 거다.

패시브가 상당히 좋네. 코인을 더 미친 듯이 모아야 할 필요가 생겼어.

그럼 지금 탐지도 130미터라는 소린데…. 좋네. 맘에 든다.

자. 이제 페이즈 아웃 차례.

먼저 물건을 가지고 페이즈 아웃이 되나 봐야지.

한 손에는 마체테,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페이즈 아웃을 썼다.

여전히 내 손에 들려있는 두 가지 물품. 되나? 하긴 이게 안 될 리가 없다.

이게 안 됐으면 페이즈 아웃을 쓰는 순간 옷이고 뭐고 다 저쪽에 놓고 몸만 오게 되겠지.

그럼…. 시간은?

바로 스마트폰의 스톱워치를 켰다. 정상적으로 흐르는 시간. 음…. 시간 개념은 똑같은 거 같고.

마체테를 손에서 놨다.

땡그랑 하면서 바닥에 떨어지는 마체테. 중력 같은 물리 법칙도 저쪽이랑 똑같이 적용되는 건가?

그렇다면…. 벽을 통과하는 건…. 역시 그건가.

정말 다행인 것은 세상엔 나보다 똑똑하고 상상력 넘치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이 영화나 만화 같은 것들을 만든 게 많이 있다는 거다.

인간의 창의력과 탐구심에 박수를.

안 그랬다면 나 같은 녀석이 이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았겠지.

벽은 통과가 되는데 나는 어떻게 이 건물 위에 서 있을 수 있는가?

간단한 의문이지만 파고들면 복잡한 질문이다.

벽이든 이 건물이든 전부 저쪽 세계의 건축물이고 내가 있는 여기는 거의 15층 높이의 건물 위다.

벽이 통과된다면 바닥 역시 통과가 되어야 한다. 중력이 적용되므로 페이즈 아웃을 쓰는 순간 바닥으로 처박혀야 한다.

지표면까지, 혹은 땅 밑으로 계속.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이 바닥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벽도 마찬가지다. 내가 벽을 통과 못 하는 벽이라고 '인지' 한다면 통과 못 하겠지.

이런 개념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역시 사람은 잡다한 걸 많이 알아야 해.

뿌옇게 변했던 세상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2분 34초를 넘어가고 있다.

내가 약간 늦게 켰으니…. 아마 2분 36초가 맞겠지. 지속시간 2분. 거기에 패시브로 인해 30퍼센트 증가한 시간.

2분이라…. 짧네. 그럼 이것도 2분, 3분, 10분, 20분 이렇게 가려나?

근데 2분이라도 충분하긴 하다. 어차피 또 쓰면 되니까. 투명이랑 크게 차이는 없다.

효과가 중요한 거지 지속시간이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재밌어요?"

민희가 나를 보고 물어본다.

"응? 왜?"

"아니…. 웃고 있어서."

"내가? 웃고 있어?"

"네. 장난감 가지고 노는 아이 같은데요."

"하하. 그래? 뭐. 재밌긴 하지.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 같은 느낌이라."

"스킬이 복잡한가 보죠?"

"어…. 아무래도?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겹친 세계? 위상? 그런 개념이라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 같네."

"영화나 만화를 많이 보면 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누군가가 멋진 세상으로 구현해 놨거든. 이런 스킬 만든 놈들이라고 별 다를 게 있겠어?"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보는 민희. 일단 그녀는 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스킬 테스트를 한다.

자. 시간은 됐고. 이제 중요한 것을 테스트할 시간이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옷장에서 옷걸이를 한 개 빼 들었다.

그런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민희.

나는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썼고 손에 든 옷걸이를 들고 벽에 다가갔다.

그리고 옷걸이 끝을 벽 안에 넣어놓은 상태로 페이즈 아웃을 해제했다.

과연 어떻게 될까?

벽이 부서질까? 옷걸이가 부서질까? 아니면…. 튕겨 나갈까?

팍!

옷걸이가 튕겨 나갔지만 내가 반대쪽 끝을 쥐고 있었기에 날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로 벽과 옷걸이를 살펴봤다. 둘 다 아무런 생채기도 나지 않은 모습.

그렇단 말이지? 이 새끼들…. 서로 간섭은 안 되게 해놨다 이거지?

이러면 다행히 신체 절단이나 그런 건 문제 없겠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몸으로 해봐야 하나.

다시 페이즈 아웃을 썼다.

뭐로 하지. 손가락을 넣기엔 조금 무섭고…. 손톱을 좀 길러 놔 볼걸.

아. 머리카락으로 되려나? 머리카락으로 해볼까?

이번엔 탁자에 고개를 숙여서 머리카락이 겹치게 한 다음 페이즈 아웃을 풀었다.

탁자도 멀쩡하고…. 머리카락도 만져보니 멀쩡한 거 같은데.

"뭐해요?"

"나 머리카락 잘렸니?"

"네? 아뇨…? 아까랑 다른 건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럼 됐고…."

"정말…. 원래 그렇게 다 확인을 해보는 거예요?"

"스킬이 거지 같이 설명 한 줄 없으니 일일이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잖아. 적어도 내가 쓰는 스킬이 뭐가 어떤 스킬인지는 알고 써야지."

"진짜…. 신기한 사람이네."

다시 페이즈 아웃을 썼다.

민희한텐 미안하지만, 지금은 일단 까먹기 전에 생각 난 것들부터 빨리 확인을 해야 해.

이번엔 스킬. 될까? 안 될까?

"비행."

음…. 안되네. 이쪽 세상에선 아예 스킬이 안 나가는구나.

그럼…. 스킬은 '나' 에게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는 거네. 그냥 저쪽 세계에서만 쓸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거고.

이건 조금 귀찮네. 결국은 페이즈 아웃을 쓰고 비행은 못 쓴다는 소리잖아.

다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이번엔 투명화를 썼다.

그리고 다시 페이즈 아웃. 또 해제.

"에이. 풀리네."

"네?"

"아냐. 혼잣말."

스킬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페이즈 아웃을 쓰면 스킬이 풀리네. 그럼…. 비행 같은 걸 쓰고 있을 때는…. 조금 위험하겠는데?

근데 어떻게 보면 좋은 점도 있다. 결국, 스킬 효과를 전부 풀어버릴 수도 있다는 소리니까.

감전 같은 것을 당했을 때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쓰면 감전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건데.

감전을 안 당해야지. 풀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되지. 감전은 싫어.

다시 페이즈 아웃을 썼다.

이번엔…. 조금 머리 터지는 짓을 해볼까?

벽 앞으로 다가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통과할 수 없다. 진짜 벽이다.

손을 대보니 벽이 만져졌다. 물론 실제 저쪽 세계의 벽은 아니겠지만.

이쪽 세계에 그저 저쪽 세계와 같은 벽을 실체화시켰을 뿐. 같은 벽은 아니다.

그럼 이번엔…. 내 바닥을 보고 생각했다.

발밑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자 몸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급하게 아래층 바닥이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데구르르 굴렀다.

아 오 씨…. 발목 아파. 접지를 뻔했네.

그대로 호텔 방문을 통과해 문을 봤다.

1405호. 역시 14층이네. 좋아 여기까진 생각한 대로야.

근데…. 올라가는건?

씨벌…. 그건 무리네.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잖아.

아니지. 잠깐. 중력도 없다고 하면…. 그건 되나?

여기에 중력은 없다. 중력은 없다.

안되나? 안되나 보네. 내가 개념이 부족하거나 상상력이 딸리거나…. 아니면 중력 같은 절대 법칙은 제외할 수 없거나.

으음…. 그럼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건 안 되나?

귀찮네. 저쪽에선 비행이 있긴 한데…. 여기선 중력을 이길 방법이 없어.

혹시 이런 건 되나? 보이지 않는 계단을 만드는 거야.

어차피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것도 내가 있다고 인식해서 바닥이 만들어진 거잖아?

복도를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을 했다.

저 천장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엔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다.

시각에 의존하는 인간에게 상상력만으로 시각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은 행동이긴 하지만…. 일단 해본다.

그리고 나는 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내 몸이 딱 생각했던 계단 한 칸만큼 위로 떠올랐다.

크크크. 역시 되네. 됐어. 이거면 되지. 고마워요 하늘치! 고마워요. 티나한!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느낌으로 한 층을 올라갔다.

천장을 통과해서 15층 복도로 올라온 나는 다시 복도 바닥이 있다고 생각하고 호텔 방문을 통과했다.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내자 이제는 익숙한 듯 민희가 내 쪽을 바라본다.

"잘 돼 가요?"

"응. 적당히 확인할 수 있는 건 다했어."

"벌써요?"

"뭐 딱 활용할 만큼만 확인한 거니까. 어차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제한적으로 쓸 거니까."

"그렇군요. 그럼 이제 뭐 할 거예요?"

"뭘 하긴. 페이즈 아웃 스킬 숙련해야지."

"네?"

아직 알몸인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런 나를 보고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 민희.

"왜 그렇게 봐? 250번 안 되게 쓰면 다음 단계로 넘길 수 있는데 적어도 그 정도는 해야지."

"어휴. 무서운 사람이야."

그러더니 거울 앞으로 가서 헤어드라이어를 집어 드는 민희.

한번 바람을 켜보더니 맘에 안 드는 듯 내려놓고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헤어드라이어를 꺼낸다.

저런 걸 보면…. 수납은 빨리 찍고 싶단 말이지.

드라이기 소리가 윙윙거리고 나는 스킬을 숙련하기 시작했다.

쓸 때마다 뿌옇게 변했다가 해제하면 다시 원상 복귀되는 주변 풍경.

이거…. 많이 하다 보면 정신 나가겠는데?

눈이라도 감고 해야 하나?

일단은 그냥 하자. 어차피 포션 6개 정도만 먹으면 되니까.

머리를 다 말린 민희가 누워있는 내 옆에 같이 눕더니 신기하다는 듯 지켜본다.

상당히 신경 쓰였지만, 어차피 서로 간섭해서 몸이 잘려나가거나 하진 않을 테니…. 일단 놔뒀다.

뭐…. 이상한 짓은 하지 않겠지. 게다가 금방 끝나니까.

숙련도 100퍼센트가 되고 중급 페이즈 아웃이 되니 시간이 거의 4분으로 늘었다.

역시 2분 다음은 3분이 맞네. 180초에 패시브로 54초 증가. 근데 바뀐 건 뭐가 바뀐 것인지 잘 모르겠다. 뿌옇게 되는 주변이 조금 또렷해진 정도?

"아이고. 힘들다."

포션을 제법 마셨기에 몸이 살짝 피곤해지는 게 느껴진다.

게다가 민희랑 잔뜩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 여자…. 내가 스킬 숙련이 다 끝난 걸 알자 눈을 반짝인다. 에이 설마…. 아닐 거야.

"끝난 거죠?"

"응. 역시 쉽지 않네."

"흐음…. 힘든 거 맞아요?"

내게 슬쩍 몸을 밀착시키는 민희. 오…. 맙소사. 진짜로?

"아. 이러고 자야겠다."

그대로 선수를 치며 민희를 끌어안았다.

"진짜 자게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여자. 으…. 역시 붙어사는 건 쉽지 않을 거 같아. 무리야 무리.

"내일 사람 죽이려면 좀 자둬야지."

진짜 잘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더 하는 건 좀 자제해야지.

"흐응. 그래요. 그럼 나도 이러고 자야지."

내 팔을 잘 펴더니 그대로 팔베개를 하는 민희.

그래. 이 정도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그렇게 말하더니 민희는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잠들었다.

진짜? 정말? 어떻게 이렇게 금방 잠들지?

속으로 존나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자려고 마음먹으면 바로 잠들 수 있다니.

진짜...이 불면증은 어떻게 안되는 걸까?

질병 해제로도 안 되는 건 정말 슬프네.

그렇게 민희를 보며 나도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러고 있어도 잠이 들진 않을 테니까. 푹 쉬기라도 해야지.

그렇게 민희를 안고 있는 채로 밤새 가만히 누워있었고, 그렇게 컴퍼니 놈들을 처리하는 날의 아침 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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