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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희
"다 잡았나?"
"네. 남은 기사는 전부 죽였습니다."
역시 이래서 매혹이 무섭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익숙한 얼굴, 전혀 경계하고 있지 않았던 이.
그런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 칼침이라도 놓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까.
이건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아니, 알고 있어도 막기 힘들지.
"그래? 그럼 잠시 있어 봐."
안으로 들어가니 세희는 자신의 안쪽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한껏 야한 표정으로 자위하고 있다.
"그만하고…. 따라 나와."
알몸으로 나를 따라 나오는 세희.
여기사는 그런 세희를 보더니 눈썹을 한번 꿈틀하고는 모른척한다.
"자유민 숙소가 여기 건물 밖에 있지?"
"네."
"롱패딩 같은 것 하나 있으면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여기사가 입구 옆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옷장에서 롱패딩 하나를 꺼내왔다.
그걸 세희한테 던져주고 입으라고 한 뒤 여기사에게 말했다.
"자유민 숙소로 가자. 넌 스킬 뭐지?"
나도 참 웃기네. 아직 스킬도 모르고 있었어.
"바람 칼날이랑 투명화입니다."
"아. 그래? 바람 칼날이라고…. 그럼 너는 나와 이 여자에게 다가오는 모든 녀석을 죽여. 너 지금 코인은 대략 얼마나 있지?"
"62만 조금 넘습니다."
남은 기사들을 처리해서 그런가? 코인이 제법 많네. 역시 여기는 금광이었어. 노다지 밭이야.
"그래? 스킬을 쓰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떨어지면 회복 포션을 먹어라.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매혹에 걸려서 그런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라는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여자.
하…. 왜 얼굴을 붉히는 건데. 아주 지랄을 하네. 진짜.
"일단 따라와. 세희 너는 내가 말하는 남자들을 바로 매혹해."
"네."
"가자."
탐지를 키고 일단 지금 있는 건물의 위쪽을 확인했다.
위쪽은 거주 시설이 아닌지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처리는 확실히 해야지.
성채의 방이 있던 최상층으로 올라가 천천히 내려오며 남아있는 인간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공격 스킬이 있는 녀석들은 다 죽었기에 딱히 위험할 게 없는 곳.
남자가 보이면 세희에게 매혹을 시키고, 여자가 보이면 내가 매혹을 걸었다.
그렇게 남자 넷과 여자 둘을 추가한 나는 1층까지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내려왔다.
"자유민 숙소로 가자. 너. 앞장서."
여기사는 한 건물 쪽으로 걸어갔고, 우리는 그런 그녀를 따라갔다.
컨테이너가 층층이 쌓여있는 곳. 하나하나 잡아 죽이려면 상당히 귀찮겠어.
"너희는 가서 여기 있는 녀석들을 다 죽여."
세희의 매혹에 걸린 남자 넷과 내 매혹에 걸린 여자 둘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손에는 낫과 식칼 등을 들고 몰려가는 모습이 제법 흉흉하다.
물론…. 마주친 입장에선 흉흉한 수준이 아니겠지.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컨테이너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비명이 잦아지자 컨테이너들에서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이웃이었던 이들의 날붙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소란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쯧. 좀 조용히 처리하지. 번거롭게."
조금 귀찮더라도 상세하게 시킬걸. 뭐, 상관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매혹의 무서움은 그 사람 역시 살아온 세월이 있다는 거다.
매혹에 걸린 사람이 누군가를 공격했고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해 반격당한다면, 그리고 만약 그 주변에 매혹당한 이랑 친한 이가 있다면?
과연 누구 편을 들까? 매혹 당한 녀석? 반격하는 녀석? 아마 자기가 아는 사람을 편들겠지?
그게 무서운 거다. 사람은 그렇게 냉철한 동물이 아니니까.
"우리도 가자."
나는 혼란스러운 사람들 쪽으로 걸어가 세희에게 말했다.
"새로운 사람으로 네 명 다시 매혹 걸어."
근처에 있던 남자 넷에게 매혹을 건 세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다 죽이라고 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
세희가 외치자 매혹 걸린 네 명이 바로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자."
지켜볼 필요도 없다.
그냥 혼란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새로 매혹을 걸면 아까 매혹 걸렸던 사람들은 매혹이 풀리겠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이미 사람을 잔뜩 죽이는 걸 봤으니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계속 돌아다니면서 매혹을 반복해서 걸었다.
점점 커지는 혼란. 편하긴 한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단점이네.
이럴 거였으면 기사들을 죽이지 말고 기사들로 할걸.
멍청해 멍청해.
잔혹함과 의심이 소용돌이치는 자유민 숙소를 계속해서 돌아다닌다.
성채가 매혹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들도 매혹을 모르진 않을 거다.
하지만 누가 매혹이 걸렸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이 벌어지는 곳.
자신이 살기 위해선 의심 가는 이들을 알아서 죽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을 거다. 계속해서 땔감을 넣어줘야지 안 그러면 불길이 사그라들 테니까.
결국은 직접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오겠지.
"여기 밖으로 나가는 길은 어디지?"
"밖이요? 캐슬 바깥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저쪽…. 저기 불빛 두 개 보이십니까?"
"저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여기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저기 사이에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다."
"거긴 어떻게 열지?"
"성문 셔터는 지금 열 수 없습니다. 스위치 함 열쇠를 가진 이가 없어서요."
"응?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는데?"
"성문 담당자랑 성주님이…."
"성채 녀석은 죽었고, 성문 담당자는 누군데?"
"제가 죽였습니다."
"아…. 그래. 그럼 그 키는?"
"보통은 지니고 있었을 테니…. 죽었을 때 같이 사라졌을 것 같습니다."
"그래? 뭐 잘됐네. 그럼 당장은 아무도 못 나간다는 거잖아?"
"네."
"그럼 너도 끼어서 죽여. 투명화 쓰고. 포션 아끼지 말고. 자유민만 죽이고 농노들은 웬만해선 죽이지 마.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아까 있던 방 앞으로 돌아와."
"네."
그렇게 말한 뒤 매혹을 리필하면서 여기사를 보냈다.
저 여자가 끼면 확실히 빠르게 정리할 수 있겠지.
"넌 따라와."
하지만 저 여자 혼자서는 남아있는 인간들을 모두 죽이긴 힘들다.
사람이 많을 때는 몰라도 뿔뿔이 흩어지거나 해버리면 탐지가 없는 저 여자는 하나하나 찾아 죽이기 힘들 테니까.
그런 건 결국 내가 찾아 죽여야 하는데 결국 정세희 이년이 문제다.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 아직 이 여자랑 할 게 많은데.
아까 갇혀있던 곳으로 돌아와 방안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안에서 내가 올 때까지 아까 하다 말았던 자위나 계속해."
마음 같아서는 바이브레이터라도 꼽아놓고 가고 싶지만…. 안 가져왔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문을 닫고 다시 자유민 숙소로 향했다.
탐지를 켜보니 빠른 숫자로 인간들의 기척이 사라지고 있다.
흐음…. 역시 공격 스킬이 좋긴 좋아.
자유민 녀석들을 마음껏 죽이는 이유는 이 안에는 어린이가 없어서다.
어린이들은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실수로라도 별로 죽이고 싶지 않다.
내가 대규모 광역 마법을 배우기 꺼리는 이유가 그거다.
어차피 사람 죽이는 놈이 이유나 구실을 찾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가지고 살고 싶으니까.
아까 구해준 그 꼬맹이. 그놈은 잘 숨어있을까? 기껏 기회를 줬는데 어이없이 죽으면 허무한데.
탐지를 돌리며 숨어있는 놈들을 하나씩 쳐 죽였다.
페이즈 아웃을 배우지 않는 이상 탐지 스킬을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여기는 컨테이너로 둘러싸인 곳. 나가는 곳이 막혔으니 나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구석에 숨어서 눈치만 보고 있는 녀석들, 투명화를 쓰고 있는 내가 다가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놈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 죽이다 보니 탐지에 제법 사람들의 기척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잡혔다.
뭐지? 아…. 이쪽은 농노들 숙소인가 보구나.
탐지에 잡히는 바글바글한 기척들.
가까이 가보니 거기는 식당이었다. 음…. 확실히 차이가 나네. 여기는 건물 자체도 후져.
식당 입구 안쪽에는 남자 놈들 스무명 정도가 농기구와 식칼, 몽둥이 같은 걸 들고 잔뜩 긴장해서 대기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다들 어린 티가 난다. 그러니 착취당하고 살았겠지.
하여간…. 왜 다들 못된 것만 배워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거야.
펜스처럼 다 같이 어울려 살았으면 이런 꼴은 안 당하잖아.
그렇게 식당 밖에서 안쪽을 보는데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인다.
아까 내가 구해준 사내놈.
나는 투명화를 풀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는 녀석들.
들고 있는 무기들을 꽉 움켜잡지만, 영 어설픈 모습을 감출 수가 없다.
"아침이 올 때까지 여기서 나오지 마라. 나오면 죽으니까."
"어!?"
식당 안에서 사내놈이 문을 열고 나온다.
뒤에서 만류하는 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그는 생각보다 의젓하다.
"아까…. 저를 구해준 분인가요?"
눈치도 빠르네. 역시 이런 세상에선 눈치 빠른 놈이 오래 사는 법이지.
아니지…. 그런 놈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덤벼들진 않았을 텐데. 정정해야겠다. 눈치만 빠른 게 아니고 약삭빨라야 한다고.
"들어가. 아침에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오지 마."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투명화를 썼다.
내가 아무리 양심이 없다곤 하지만 죽이지 않았다고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좀 민망하잖아.
그렇게 다시 탐지를 키고 돌아다녔고 숨어있거나 아직도 우르르 모여있는 놈들을 차례로 잡아 죽였다.
그러다가 한 무리가 모여있는 곳에서 바람 칼날이 날아가는 모습을 봤다.
단 한 번에 여러 명의 신체가 후두두 하고 날아가는 모습.
저런 걸 보면 공격 스킬이 필요성이 느껴진다.
단일 타겟은 반사를 지워야 하니 귀찮고, 논타켓팅 공격 스킬이 있으면 좋을 텐데.
저런 바람 칼날이나 암석 탄환 같은 거.
높은 티어에 있는 공격 마법들은 너무 거창하다.
눈보라, 메테오, 우레 폭풍, 망자의 지대.
하나 정도는 배워두면 좋긴 할 거 같긴 한데. 일단…. 멋있잖아?
근데 저런 스킬은 숙련은 어떻게 하지?
존나게 써야 하나? 메테오 6천 방이라니…. 지형이 바뀌는 거 아냐?
생각해보니 말이 안 되네. 그런 스킬들은 정말 스킬 숙련은 어떻게 하는 거야?
궁금하다. 함부로 찍어 볼 수도 없고.
으음…. 누구 찍어본 사람 없나? 정보가 없으니 정말 답답해 디지겠네.
그렇게 잡생각을 하면서 잔당들을 마저 처리하다 보니 여기사에게 말했던 시간이 됐다.
다시 세희가 있는 방 앞으로 가니 여기사가 얌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많이 죽였어?"
질문치고는 살벌하네. 옛날에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 들었다면 게임 이야기거나 미친놈이라고 생각했겠지.
"네."
여기사를 재웠다.
이제 얘도 필요가 없어.
남은 작업은 내가 직접 하는 게 속 편하다.
괜히 지나가다가 바람 칼날에 스치기라도 해서 목이라도 댕강 날아가면 안 되잖아.
마체테를 들어 찍었다.
터져 나오는 빛, 이걸로 캐슬은 끝났다고 봐야지.
[692,02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아까 62만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고작 7만 늘었나?
으음…. 하긴 자유민 놈들이 가지고 있어 봐야 얼마나 가지고 있었겠어. 이 정도도 많은 거지.
이로써 코인 보유량은 340만.
하하…. 씨발. 나보다 코인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지…. 분명 있을 거야. 중국이나 인도는 애초에 숫자가 다르잖아. 나보다 더 미친놈들이 널리고 깔렸겠지.
어쨌든 당분간은 코인 걱정은 안 해도 될것 같다.
그리고…. 승희나 미나, 세아와 안나에겐 상당히 불행한 소식이 되겠지.
앞으로 포션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니까.
안쪽으로 들어가 세희가 있는 곳을 힐끔 보니 아직도 자위하고 있다.
어휴…. 씨발. 헐겠다 헐겠어. 아니면 탈수 오는 거 아냐?
방 안쪽에 광역 스킬 무효화를 썼다.
"이! 씨발 새끼!!!"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소리를 빼액 지르는 세희.
하. 고년 성깔머리하고는.
내가 무슨 짓을 해서도 저년은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만다.
"좋았어?"
"닥쳐! 개새끼야!"
여자들은 어휘력이 상당히 부족한 거 같아. 욕에 참신함이 없어.
세희에게 다시 매혹을 걸었다.
"계속 자위해."
아직 살만한 것 같으니 더 하게 해도 되겠지.
그렇게 캐슬 안쪽을 돌아다니며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죽였다.
후우…. 매번 생각하지만, 사람을 죽여도 시체와 피가 남지 않는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만약 남았으면…. 이 안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됐겠지.
다소 늦은 겨울의 아침 해가 떠오르고 깔끔하게 정리된 캐슬의 안쪽을 비춘다.
자…. 이제 식당 쪽으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