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29화 (22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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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희

과연 정세희 그년을 어떤 얼굴로 만나야 할까?

항상 만나기를 고대했지만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겠다고 정한 건 없었다.

하긴, 무슨 상황에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까. 그럼 지금이라도 결정해야지.

일단 투명화를 쓰고 안쪽을 살펴봤다.

세희 년을 만나는 건 만나는 거고…. 다른 녀석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다.

일단 바깥을 조금 소란스럽게 해야겠어.

이 안에 들어있는 여자들이 여섯이라고 했지? 근데…. 매혹은 넷일 텐데 남은 두 명은 뭐지?

노리개인가? 음…. 모르겠네. 일단 보면 알겠지.

안쪽에 들어가니 복도가 있고 양옆으로 방인듯한 문이 쫘르륵 있었다.

고시원? 그런 분위기다. 문짝의 위와 아래쪽에 억지로 뚫어 놓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빼면.

딱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위에 구멍은 매혹을 걸기 위한 구멍, 아래쪽에 나 있는 구멍은 식사를 위한 구멍.

매혹 스킬을 걸기에 딱 좋은 방. 역시…. 생각하는 건 다 비슷비슷하네.

일단 하나씩 안쪽을 봤다. 왼쪽에 세 명, 오른쪽에 세 명.

정세희는 오른쪽 끝 방에 있었다.

오랜만에 본 얼굴. 그런데…. 예전과 느낌이 다르다.

예전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이쁜 여자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그저 평균 이상 정도밖에 안 돼 보인다.

나이 때문인가? 스무 살과 스물다섯의 차이?

아니, 단지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내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서 그렇겠지.

그리고 그사이 내가 더 이쁜 여자들을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고.

다시 보게 되면 울컥하는 감정이라도 생길 것 같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이렇게 냉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니.

내가 성장한 건가? 아니면 그런 사소한 것들은 이제 상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걸까?

일단 세희는 나중에 처리하자. 맨 마지막에.

방문에 있는 카드 잠금장치. 이 카드로 되려나? 되겠지?

일단 왼쪽 첫 번째 방부터 구멍으로 방 안에 있는 여자에게 매혹을 걸었다.

그리고 잠금장치에 카드를 가져다 댔다.

위이잉 철컥

다행히 바로 열린다. 귀찮아질 수도 있었는데. 시간을 아꼈네.

문을 열자 안쪽에 있는 여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본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환하게 웃는 여자.

"너. 스킬 매혹이야?"

"네."

"숙련도는? 마스터?"

"아니요."

"아니라고? 그럼?"

"중급이요…."

중급…. 그럼 둘이잖아. 설마 매혹이 마스터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못 했네. 대체 지금껏 뭘 하고 살았던 거야?

"그래…. 일단 알았어. 밖으로 나와서 복도에 서 있어."

"네. 알겠어요."

그렇게 세희를 제외한 여자들 다섯을 모두 꺼냈다.

매혹 스킬을 가진 여자 셋의 숙련도는 중급 하나, 고급 둘.

합치면 여덟 명. 맘에 안 드네. 그래도 그게 어디야.

남은 여자 둘은 그냥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였다. 보호막과 힐. 둘 다 쓸모없는 스킬들.

아마 성채 놈이 이쁜 여자라 데리고 있는 것 같다.

죽여? 아니지. 한번 기회는 줘야지.

나는 그냥 가버리라고 했다.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는 두 여자.

문 앞으로 나와 아까 나를 데리고 이쪽으로 왔던 여자를 깨웠다.

부스스 일어나는 여자.

"일어났으면, 가서 자연스럽게 남자 기사들 데리고 와. 네 명 이하로."

"알겠습니다."

여자가 떠났고, 여자들을 옆의 방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자는 여자 기사 두 명을 바라봤다.

이제 이것들은 필요 없잖아?

마체테를 휘둘렀고, 두 여자는 바로 빛이 되어버렸다.

[90,42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11,65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나름 준수한 코인 양. 다시 수중에 코인들이 생기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탐지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무리가 느껴진다.

아마 아까 그 여자랑 남자 기사들이겠지? 벌써 데리고 오는 거야? 빠르네?

투명화로 몸을 숨기고 기다린다.

여자와 남자 넷이 보였고 반경 안으로 들어오자 남자 넷을 재웠다.

무슨 말로 여기까지 데려오게 했는지는 몰라도…. 오란다고 저렇게 멍청하게 경계도 하나 하지 않고 오다니…. 죽어도 싸지.

"거기. 이리 나와봐."

방 안에 있던 매혹녀들이 나왔고 나는 두 명을 지목해서 말했다.

"여기 남자 넷에 매혹 걸어. 그리고 일어나면 방 안에 들어가서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

"네."

"알겠습니다."

여자 둘이 매혹을 다 걸자 나는 다시 여기사에게 또 네 명을 데려오라고 시키고 잠시 기다렸다.

지루하네. 방법은 좋은데 준비 시간이 너무 길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사가 또 남자 네 명을 데려온다.

아직 일어나지 않아 바닥에 쓰러져있는 남자들을 본 기사들이 깜짝 놀라 전투태세를 갖췄지만, 바로 쓰러져 잠든다.

"얘들도 마저 매혹해."

매혹녀들이 나와서 전부 매혹을 걸었다.

내 수중에 들어온 남자 기사 여덟과 여자 기사 하나. 총 아홉 명.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전력이 되겠지?

"야. 여기 기사는 총 몇 명이냐?"

"서른넷입니다."

그중 셋은 죽었고, 아홉이 내 수중에 있으니 남은 건 스물둘. 뭐…. 어느 정도는 되겠네.

"남자들 다 깨우고 일어난 놈들에게 전부 내 말 들으라고 말해."

매혹녀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잠든 기사들을 깨웠다.

마스터 수면이라 그런지 남자들은 드럽게 안 일어났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다 일어났다.

그냥 내가 조인트를 깔걸 그랬나? 매혹의 매혹은 이게 귀찮네.

"지금 여기 와있는 컴퍼니 놈들이 있던가?"

"아니요. 지금은 없습니다."

"너희는 다 저 안으로 들어가. 너. 목숨을 바쳐서라도 여기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매혹녀들과 여기사를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어차피 카드는 내가 가지고 있으니 이쪽은 일단 됐고.

"너희는 나를 따라와."

일단 성채 놈이랑 잔당 기사들부터 족쳐야지. 그래야 일이 마무리되지.

"성채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가자. 가는 길에 보이는 놈들은 모두 죽인다."

기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휴. 자꾸 기사라고 하니 헛웃음이 나오네. 기사는 씨불….

그냥 처음에 스킬 잘 고른 양아치 새끼들이지.

건물의 최상층으로 달려가는 기사들.

그렇게 5층까지 올라간 녀석들이 두 명의 기사를 발견했다.

"너희들 왜 그리 뭉쳐서…."

"너희 뭐 하는…."

말을 끝나기가 무섭게 한 명은 그대로 쓰러지고 다른 하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쓰러졌다.

기절과 감전.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

기사 한 놈이 주먹을 번쩍 들더니 쓰러진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찍는다.

쿵!

와씨…. 저 새끼는 뭐지? 괴력인가? 맨주먹으로 대가리를 깨네.

쿵!

다른 하나까지 바로 빛이 되어버렸다.

무식한 새끼. 근데 괴력이 좋긴 좋아 보이네…. 근데 손은 괜찮나?

그렇게 둘을 처리한 녀석들이 다시 달려 커다란 방문 앞에서 섰다.

"여기야? 성채 있는 곳이?"

"네."

"안으로 들어가. 성채 녀석이 보이면 누구든 죽여버려. 그리고 안에 누가 있든 그냥 다 죽여."

아까 괴력남이 그대로 문을 박살 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아무도 없는 건 아니지. 안보일 뿐이지.

성채 놈의 처음 스킬은 투명화라고 했으니까. 멍청하게 맨몸으로 있지는 않을 거다.

불쌍한 놈. 얼마나 무서울까? 탐지 스킬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탐지를 돌리니 방 안 구석에 사람 하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대로 거리를 잘 조절해서 광역 스킬 무효화를 썼다.

바로 모습이 드러난 성채.

갑자기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자 깜짝 놀라 다시 투명화를 쓰려 했지만, 그 자세 그대로 쓰러져버렸고 아까 괴력남이 후다닥 뛰어가 그대로 녀석을 찍어버렸다.

이런 곳의 대가리치고는 허무한 죽음.

반항이라도 해볼 것이지…. 병신같이 구석에 숨어있다가 죽냐.

"너. 괴력. 너만 남고 나머지는 다 내려가서 최대한 많이 다른 기사들을 죽여. 그리고 아까 여자들이 있던 그 앞으로 15분 뒤에 모인다. 가!"

기사들이 전부 뛰어나갔고, 괴력남만 내 앞에 멀뚱멀뚱 서있게 됐다.

녀석을 한번 바라본 나는 바로 재웠다.

이놈은 코인을 너무 많이 먹었어. 이상한 놈한테 가면 귀찮아진다.

그대로 마체테로 찍어 죽였다. 빛이 터지고 코인이 내게 들어온다.

[862,997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뭐? 86만? 씨발…. 미쳤네?

원래 가지고 있던 거랑 방금 기사 두 놈 죽인 거, 그리고 성채를 잡고 나온 게 그만큼인 거야?

와씨…. 대박이네. 안 보내길 잘했다.

이놈들은 컴퍼니에서 받았던 인간들이 많아서 그런지 코인이 풍족하네.

남은 기사 놈들을 다 죽이면 얼마나 나올지 기대될 정도야.

역시…. 여길 오길 잘했어.

즐거운 기분으로 다시 여자들이 있던 곳으로 향한다.

세희를 수중에 넣었고 성채 녀석도 죽였다.

기사들은 잘 죽어 나가고 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휘유. 휘파람이 절로 나오네.

느긋하게 아래로 내려가 여자들이 있는 문 앞으로 갔다.

카드로 문을 열고 여자들을 나오게 한 뒤 바닥에 앉아 아까 보낸 기사들을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돌아왔고, 나는 그들이 죽인 숫자를 하나씩 확인했다.

이들이 죽인 게 열아홉. 여기 여덟 명. 아까 죽은 게 세 명. 괴력남 하나.

"아직 세 명 남았네?"

세 명이라…. 이건 저 여자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겠지?

"너. 가서 남은 세 명 죽이고 돌아와. 한 시간 이내에 못 죽이면 그냥 돌아오고."

"알겠습니다."

여기사가 밖으로 나갔고, 나는 남자 기사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 세 명. 저 방으로 잠시 들어가 봐."

남자 기사 셋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남은 넷을 재웠다.

그리고 바로 하나씩 찍어 죽였다. 굳이 재운 다음 죽일 필요는 없지만, 매혹이 만능은 아니니까.

눈앞에서 동료였던 녀석들이 죽으면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르니 될 수 있으면 숨기는 게 좋지.

[372,41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451,234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92,49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12,08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대박이다. 대박이야. 역시 이래서 노비를 해도 대감 집 노비를 해야 해.

떡고물 수준이 장난이 아니잖아?

게다가 아직 더 남았다고. 여기 셋이랑 아직 죽이지 못한 셋.

방으로 들어가 남은 세 명도 재웠다.

순식간에 터지는 빛의 삼연타.

[146,004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33,086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417,78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이야…. 보유 코인이 250만이 넘었다.

갑작스럽게 부자가 되어버렸어.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코인 2만이 전 재산이었는데.

자…. 이제 이 매혹녀들 차롄데.

아직 매혹 마스터가 아니어도 이들은 위험한 여자들이다.

펜스에 있는 여자들은 그나마 안전장치라도 걸어놨지만…. 이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성채 놈에게 이용당한 처지지만 그렇다고 풀어주기는 힘들다.

펜스로 보내? 아니…. 내가 여기서 한 짓을 알리고 싶지는 않아.

이 여자들은 아는 게 너무 많아졌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자 셋도 모두 재웠다.

그리고 고통 없이 한 방에 찍었다.

[12,425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42,33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34,08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뭐야. 얘들은 왜 이리 많아? 얘들도 상당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나 보네?

자…. 이제 다 처리됐고.

이제 진짜 세희 차례다.

주변을 모두 정리했으니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세희가 있는 방 앞으로 가니 밖에서 나는 소리 때문인지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여자.

어디…. 한번 반응을 볼까?

투명화를 풀고 카드를 찍어 문을 열었다.

"어!? 정세희?"

내가 깜짝 아는 척을 하자 나를 보고 놀라는 세희.

"너…. 혹시 정세희 맞냐?"

"어…. 어!?"

"나 모르겠어? 우리 같은 과…."

"아! 혹시 화학과…?"

속으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년은 나를 제대로 기억조차 못 하고 있다.

아니 기억은 하겠지. 자기를 쫓아다니던 호구 17정도로.

근데 이것 봐. 이름조차 기억 못 하잖아.

어디…. 한번 더 해봐?

"그래. 나야. 성현이."

"아…. 그래! 권성현! 맞지!?"

맞기는 씨발. 역시 이름도 기억 못 하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세희 년의 머리 위에 시간이 떴다.

2시간. 바로 1시간 59분으로 줄어드는 시간.

그리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세희.

하하…. 씨발…. 이년 지금 나한테 매혹을 건 거야? 그래서 반사 된 거야?

자기를 구해줄 수도 있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매혹을 걸었다고?

진짜 미친년이구나? 제정신인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세희와 그걸 싸늘하게 지켜보는 나.

아주 조금…. 조금 마음속에서 혹시나? 하고 품고 있었던 기대가 산산이 조각났다.

정말…. 혹시나. 혹시라도 나를 알아보고 참회의 눈물이라도 흘렸으면……. 어찌 됐을지 몰랐을 텐데.

고마워. 그런 모습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덕분에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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