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일곱 번째 스킬
신체 능력 강화까지 찍고 수중에 남은 코인은 22만 코인.
스킬 지속시간 증가도 찍고 싶지만, 코인이 없어서 안 되겠다.
제길…. 분명 펜스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150만 코인이 있었는데…. 코인이 눈 녹듯이 사라졌네.
그래도 패시브가 생긴 건 좋은 일이니까. 좋은 거야. 좋은 거겠지.
이제 스킬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빨리 숙련을 하고 다음 스킬들을 찍지.
고민하는 것은 비행, 아니면 페이즈 아웃.
아…. 페이즈 아웃이 얼마인지 안 봤네.
['페이즈 아웃' 스킬을 배우는데 20만 코인이 소모됩니다. 배우시겠습니까?]
일단 아니오를 눌렀다.
다행히 이것도 20만이다. 비행도 20만이고. 결국,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데.
둘 다 장단점이 확실하다.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자주 쓸 수 있는 기동력이 좋은 비행이냐, 아니면 탐지를 무시하고 장애물도 통과할 수 있는 페이즈 아웃이냐.
아울렛에서 봤던 부장 놈만 아니었으면 당연히 비행일 텐데. 하아…. 이것 참.
일단 지금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생각해보자.
오늘은 1월 2일. 천호역에 갈 8일까지 남은 시간은 6일.
그 사이에 코인을 얻어서 스킬 하나를 더 찍을 수 있을까?
물약 후유증이 반으로 줄었으니 코인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어딜 가야 하지? 아. 맞다…. 컴퍼니. 그놈들에게 정보를 빼내려면 매혹 스킬 있는 여자가 필요해.
물론 펜스에 다섯 명이나 있긴 한데…. 채원이나 미연이에게 말하면 내 부탁 정도는 들어주겠지?
근데 조금 꺼려진다. 내가 하는 일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아.
게다가 컴퍼니라면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줄 것 같단 말이지.
굳이 그녀들에게 호감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잖아.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한가지 이름이 떠올랐다.
세희. 정세희.
그래…. 그년을 미뤄 둘 필요가 없지. 이제는 슬슬 악연을 끝낼 때도 됐잖아.
물론…. 이제 예전의 일들은 시시해져 버린 과거가 되었긴 하지만.
예전엔 심장에 박힌 대못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작은 가시 정도로밖에 안 느껴진다.
그렇다고 가시를 남겨둘 이유는 없지.
뽑자. 뽑아내러 가자. 캐슬…. 거기로 가는 거야.
그럼…. 캐슬을 상대하는데 어떤 스킬이 더 유용할 것인가?
결국, 원점이네. 시부랄.
아무래도 예전 동산이었을 때랑 비슷하겠지? 그렇다면 비행이 더 유리할까? 아니면 페이즈 아웃이 유리할까?
어차피 둘 다 장애물 통과는 할 수 있다. 결국, 탐지. 탐지가 핵심이긴 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탐지는 그다지 걱정할 게 없다.
페이즈 아웃이 다 좋긴 한데…. 그 상태에서는 스킬도 못 쓰고 사람들을 건들지도 못한다고 했던 게 가장 걸린다.
으음…. 비행으로 하자.
페이즈 아웃은 알아낸 지 얼마 되지도 않잖아.
비행을 배우고 캐슬을 털어버린 다음 코인을 벌고 스킬을 숙련해서 페이즈 아웃을 바로 배우는 거야.
캬…. 빡쎄네.
그래도 빡쎄게 살아야지. 이번 겨울은 길고 긴 겨울이니까.
['비행' 스킬을 배우는데 20만 코인이 소모됩니다. 배우시겠습니까?]
고민하고 있으면 며칠 동안 고민할 주제다. 후회하더라도 빨리 찍고 코인 벌어서 하나 더 찍는 게 낫지.
예를 눌렀다.
그렇게 스킬 창에 비행 스킬이 생겼다.
후우…. 나도 드디어 비행 청소년. 지랄하네…. 대체 언제적 말장난을 하고 있니. 게다가 청소년도 아닌데.
스킬을 찍었으니 일단 써봐야지.
"비행."
얼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뭐지? 어떻게 하는 거지?
방이라서 그런가? 하늘이 있어야 해?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자동으로 떠오르는 거 아니었어? 아…. 투명화랑 비슷한가? 인지해야 하는 건가?
나는 내 몸이 떠오르는 것을 상상했다.
그리고…. 내 몸이 떠올랐다.
"오오오."
이건…. 정말 새로운 느낌이다.
날 수 없는 인간이 떠 있는 느낌은 꼬리를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다.
인간은 꼬리가 없잖아. 당연히 꼬리 움직이는 방법 따위는 모르지.
천천히 방안을 움직여본다.
미동 없이 앞뒤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물리 엔진이 고장 난 모습 같다.
어색하네. 조금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한참 움직이는데 벌써 시간이 다 돼버린다. 지금은 고작 5분. 이거…. 빨리 숙련을 올려야겠네. 5분이 뭐냐? 5분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빨리 코인을 벌러 가야 해.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고 방문을 나서니 거실에 앉아있던 넷이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가요?"
"또 나가?"
"앗싸! 그럼 오늘은 포션 안 먹어?"
"썽철. 바쁘다. 사람. 아니. 바쁜 사람?"
"그렇게 됐어. 좀 느긋하게 같이 있을라 그랬는데…. 나가야겠네."
승희와 미나에게 나긋하게 이야기해주고 세아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줬다.
그런 세아를 보며 까르르 웃는 안나. 왜 웃지? 저게 웃긴가.
"오래 걸려요?"
언제나 이런 걸 물어보는 건 미나다. 승희야 하도 내가 밖에 나다니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 몰라도 미나는 안 그런 거 같다.
나갈 때마다 걱정하는 모습. 그 모습이 싫진 않지.
"모르겠어. 돌아오는 시간을 정해놓고 나가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무사히 돌아올게."
"몸조심해요. 미나 언니 걱정이 많단 말이에요."
"너는 안 하고?"
"나야 뭐…. 멀쩡하게 돌아올 걸 믿으니까."
나와 승희, 미나의 그런 모습에 심술이 났는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세아.
안나 역시 알아듣진 못해도 분위기를 아는지 슬그머니 가까이 다가온다.
나 참…. 이런 여자들을 두고 밖에 나갈 생각을 하다니.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물장구치는 걸 멈추면 가라앉게 될 테니까.
어떻게든 물 위에 떠 있으려면 끊임없이 발을 움직여야지.
나는 넷을 모두 한꺼번에 와락 안았다.
생각한 것보다 멋진 그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뜻은 전해지겠지.
"다녀올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자들을 뒤로하고 벙커 밖으로 나섰다.
따듯했던 실내의 공기와는 다르게 역시 겨울의 찬바람은 매섭다.
그 따듯한 안에서 처박혀 있지 왜 튀어나왔냐고 질책하는 듯한 차가운 바람.
나도 알아. 젠장. 그러니까 조금 닥쳐봐.
비행이 생겼으니 전동 휠은 필요 없다. 이제는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잖아.
바람이 얼마나 차가우려나? 나는 날파리년이 입고 있었던 그런 슈트가 없는데.
옷을 더 따듯하게 입고 나올 걸 그랬나? 모르겠다. 일단 날아보자.
투명화를 먼저 쓰고 비행 스킬을 쓴 뒤 몸이 떠오르게 했다.
어느 정도 날 수 있는지부터 해봐야지. 자…. 올라가자!
호기롭게 상승하긴 했지만 실제로 뜬 건 그리 높진 않았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더는 몸이 떠오르지 않는다. 약간 실망스러운 느낌.
뭐 어쩔 수 없지. 이제 막 배운 스킬이니까.
그럼…. 얼마나 빨리 날 수 있을까?
전속력으로 앞쪽을 향해 날아가 보았다.
으음…. 전동 휠 정도 속력인가? 조금 느린가?
어쨌든 초보운전치고는 나쁘지 않은 속도다.
웃긴 건 고도 제한 때문인지 앞으로 똑바로 가지 못하고 바닥의 높이에 따라 내 높이도 달라진다는 거다.
아직은 비행이라기보단 호버사이클 같은 느낌이네. 그래도 이게 어디야.
3층 높이의 건물들 위로 못 날아가는 것은 조금 아쉽다. 음…. 스킬을 중급까지 올리고 갈까?
250번이면 이제 중급 포션 6개면 되잖아. 만팔천 코인이네. 딱 있긴 한데.
아니다. 그냥 가자. 코인이 너무 없으면 초조해져.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지금의 나는 스텔스 전투기. 아니지. 스텔스 드론 정도?
뭐가 됐든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좋다.
문제는 추위. 도저히 못 참겠다. 이대로 가다간 얼어 뒤질 것 같네.
방한 대책…. 뭐가 좋을까? 지금 이 추위를 극복할 좋은 방법이 뭐가 있지?
고도를 낮춰 길 위를 떠가는 느낌으로 가다 보니 눈에 캠핑용품점이 들어온다.
그래. 저기야. 저기라면 뭐라도 있겠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내가 가장 먼저 집은 것은 침낭이었다.
두툼한 침낭. 이거면 되겠지? 어차피 공중에서 떠다니는 거잖아? 침낭에 들어가서 비행 스킬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늘을 나는 벌레고치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알게 뭐야. 따듯하면 됐지.
눈에 보이는 방한용품은 일단 다 주워 담았다.
요즘엔 별것이 다 있네. 휴대용 배터리로 몸을 따듯하게 하는 재킷 같은 것도 있고.
근데 충전 되어있는 배터리가 없다. 그림의 떡이잖아.
대충 준비를 다 했다. 그럼…. 해볼까?
침낭에 들어간 다음 비행 스킬을 썼다.
오오…. 역시. 인간의 상상력은 위대해.
모습은 좀 볼썽사납지만, 뭐 어때. 누가 볼 것도 아니고.
나에겐 투명화가 있잖아.
한결 따듯해진 상태로 다시 길을 떠난다.
근데 이젠 얼굴이 춥다. 페이스 가드와 비니로는 해결이 안 되네.
하이바. 하이바가 필요해. 날파리년도 하이바를 쓰고 다녔잖아?
한참 가다 보니 발견한 오토바이 가게.
문이 잠겼지만, 상관없다. 나에겐 짱돌이 있으니까.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문에 달린 유리 부분이 박살 났고,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대에 놓인 하이바들. 으음. 알록달록하네. 뭐로 하지?
약간 독개구리 색깔 같은 하이바를 골랐다. 그래. 이게 세 보이네. 이거면 누구든 마주쳐도 비쥬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하이바를 쓰고 침낭을 목까지 끌어올리니 정말 어마어마한 몰골이 됐다.
이대로 투명화를 안 쓰고 공중에 떠다닌다면 외계 생명체라고 해도 믿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
근데…. 배낭이 문제다.
침낭을 목까지 올리니까 배낭을 멜 수가 없네.
끙…. 침낭에 구멍이라도 뚫을까? 그건 또 싫고.
씨발…. 수납스킬 마렵네. 왜 민희가 수납을 찍었는지 절실하게 이해간다.
일단 어쩔 수 없이 침낭을 내리고 배낭을 멨다.
뭐…. 위에 파카가 있으니 버텨보자…. 손끝이랑 발끝만 안 추우면 버틸 만하겠지.
그렇게 괴생물체가 남양주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극한의 효율성만 생각한 충격적인 비쥬얼.
씨발…. 다음 겨울엔 절대 밖에 나오지 않을 테다. 빌어먹을. 이런 짓 하는 것도 이번만이야.
그렇게 길을 조금 헤매면서 한참을 날아가니 드디어 눈앞에 캐슬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