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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스킬
소리 하나 없는 전기차가 도로를 달린다.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차와 비교하면 소리는 아예 없는 수준이다.
우웅하는 인공배기음이 맘에 안 들어 투덜거렸더니 왕년에 카센터 사장이었다는 반장 하나가 와서 뭔가를 뚝딱했고 그 소리마저 사라졌다.
오오…. 그야말로 침묵의 사일런스.
지금의 나는 그야말로 황금 고블린이다.
트렁크와 뒷좌석에는 다섯 명이 2주 동안 먹을 쌀과 반찬들, 고기까지 잔뜩 담겨있는 전기차에 130만 코인까지.
스킬이 구려도 짱돌이라도 들고 덤벼볼 만하지 않을까? 잡기만 하면 대박일 텐데?
물론 덤벼든 놈이 먼저 죽을 테지만.
어쨌든 소리 없는 차는 상당히 맘에 든다.
찬바람을 맞으면서 전동 휠을 타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그렇게 달리니 벙커까지는 금방이다.
얼마 만에 돌아오는 거야. 그래도 올해 안에는 들어왔네.
차를 벙커 입구 옆에 세우고 벙커문을 여니 안에서 승희의 얼굴이 빼꼼 나온다.
"오!! 왔다!"
유난히 나를 반기는 승희.
"마침 잘됐다. 이것들 좀 받아."
그렇게 말하고 차 문을 열어 플라스틱 통을 건네니 승희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란다.
"어!? 이거 뭐에요!? 불고기!?!?"
자기가 보는 게 믿기지 않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승희.
"오빠. 왔어요?"
미나도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승희가 든걸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된다.
"이게 뭐예요??"
"일단 하나하나 받아. 아래로 전달해."
미나가 아래로 내려갔고 승희는 들고 있던 불고기 통을 아래로 내렸다.
"자. 많으니까 천천히 해."
"으악? 이건 뭐예요? 김치?"
"하나하나 놀라다간 해 떨어지겠다."
"돼지고기!?"
"빨리 받기나 해."
"으악!? 이건 뭐지? 고기가 또 있어? 이 빛깔은…. 소고기!?"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 대체 뭘 하고 왔길래 이런걸…. 게다가 양도 많아!!"
승희만 그러는 게 아니고 밑에서도 으악으악거리는거 보니 진짜 놀라는 게 맞나보다.
하긴…. 양이 좀 많지. 못 먹어 본 지 꽤 되는 음식들도 있을 거고.
그렇게 음식들을 다 옮기고 트렁크에 들어있는 쌀 포대를 벙커 입구에 내려놓자 승희는 이제 기절할 듯한 표정이 됐다.
낑낑거리며 쌀 포대까지 벙커 안에 다 옮기자 많은 음식 앞에 모여 앉은 여자들이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 혹시 과거로 돌아가서 마트라도 털어온 거예요?"
"스킬중에 과거로 돌아가는 스킬이 있나 봐…."
"와…. 이건 제육 볶음이야. 여기 이건 깍두기…. 이건 뭐지? 생닭? 맙소사."
"반찬! 반찬!"
과거로 돌아가는 스킬이라…. 그런 게 있으면 좋겠네.
황당한 표정으로 불가능한 스킬 이야기를 하는 승희와 세아.
식사를 도맡아 하는 미나는 반찬 통들을 보면서 황홀한 표정들을 짓고 있고 안나는 그저 해맑은 표정으로 좋아한다.
"이게 대체 뭐에요? 어디서 난 거예요?"
나를 보고 물어보는 미나.
"이건 일단 다섯 명이 2주 동안 먹을 양이고, 앞으로 꾸준하게 이정도는 들어올 거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말이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대답하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반찬 통들을 보는 미나.
"어디서 이런 게 났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일단 다 정리부터 하고. 반찬은 냉장고에 넣고 고기는 얼려놔야지."
"알았어요."
다 같이 냉장고에 음식을 넣고 쌀도 주방으로 옮겨놨다.
10인용 벙커라 냉장고가 상당히 큰데도 자리가 모자라 몇 가지는 위에 있는 집 냉장고에 넣어야 할 정도.
그렇게 정리를 다 하고 씻고 나오자 다들 거실에 모여앉아 있길래 거기에 앉았다.
간단하게 동산이 펜스로 변하게 된 과정과 식당 여사님에 대해서 말해주자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음식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요?"
"맞아. 거기가 망하기 전까지는 매번 받을 수 있을 거야."
"정말…. 고생 많았어요."
미나의 저런 따듯한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미나가 그렇게 말하자 승희와 세아도 질 수 없다는 듯 나한테 고생했다고 경쟁하듯 말한다.
이거 완전…. 엄마랑 철부지 딸 두 명….
과연 안나가 말을 배우게 되면 딸 세 명이 될까? 분명 안나도 승희와 세아랑 비슷한 성격일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음식 이야기를 끝냈고, 나는 상점에서 회복 물약 포션을 사서 탁자 위에 올렸다.
포션을 보자 흠칫하는 승희와 세아.
"서…. 설마. 오자마자 스킬 숙련…?"
세아가 두려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지금 많이 피곤해서 들어가 자려고 하거든. 일단 받아둬.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
"아…."
포션 80개. 16만 코인.
포션의 개수가 많은 것을 본 미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 저랑 안나도 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눈을 질끈 감는 미나. 얘들은 왜 이리 포션 먹는걸 힘들어하는 거야?
얘들만 이러나? 다른 인간들도 이렇게 포션 먹는 걸 힘들어 한다면 좋겠네. 그만큼 숙련 올리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니까.
포션을 다 꺼내놓자 슬슬 피곤이 몰려오는 게 느껴진다.
밤새 포션을 먹었으니 몸의 피로가 아니다. 순수한 정신적인 피로.
밤을 새우기도 했고, 쉬었다고는 하지만 잠으로 해결한 게 아니니 나의 뇌는 지금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는 중일 거다.
슬슬 맛이 가기 전에 빨리 잠들게 해줘야지. 그래야 살지.
"그럼…. 나는 자겠어. 다들 꼭 포션 먹어야 해. 자고 일어났는데 포션 남아있는 녀석은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
"어…. 그냥 포션 남기고 엉덩이 맞으면 된다는 건가?"
세아가 중얼거렸고 나는 그런 세아를 장난스럽게 흘겨봤다.
"아니…. 솔직히 포션 먹고 울렁거리는 것보단 차라리 엉덩이 맞는 게…."
"세아는 M이었구나? 어쩐지…. 으음. 앞으로 세아는 귀갑 묶기라도 해줘야 하나…."
"캬악!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이렇게 농담하면서 있고 싶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몸은 상쾌하게 가벼운데 정신은 드럽게 무거운 느낌이라니…. 이 괴리율 뭐야.
"암튼…. 알아서 해. 나는 들어간다. 아…. 나 자고 있어도 깨우지 말고 너희들끼리 소고기 같은 거 구워 먹어."
"알았어요. 빨리 쉬어요. 눈이 정상이 아니네."
미나가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눕자 드디어 좀 편한 느낌이 든다.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곳. 온기가 있는 곳.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내 집. 나의 안식처.
아아. 이대로 수면 스킬 안 쓰고 잠들 수만 있다면 최고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이 슬쩍 열렸다.
"승희? 왜?"
승희는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오더니 슬그머니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으로 눕는다.
그러더니 살짝 돌아누우며 말했다.
"애착 인형."
그런 승희의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애착 인형이라니…. 무슨 리얼돌도 아니고."
그러면서 나는 승희를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승희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고, 말캉한 감촉이 손에 느껴진다.
따듯한 감촉. 익숙한 살 냄새. 향긋한 샴푸향.
젠장…. 이렇게 미칠 듯이 사랑스러운 여자라니.
그렇게 나는 최고로 좋은 기분을 느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 후 사흘간 포션을 먹으면서 스킬 숙련을 했다.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곳인 데다가 페이스를 조절해서 그런지 부담이 확 줄었고, 사흘째 되는 날 투명화를 마스터 할 수 있었다.
"오오오…."
드디어 나타난 스킬 선택 칸.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를 꺼내고 스킬 칸을 눌렀다.
어디…. 이번엔 얼마나 씹사기 스킬들이 나왔을까?
꼼꼼하게 확인해보니 분류하기 힘든 스킬 두 개와 보조 스킬 세 개, 제작 스킬 하나가 나왔다.
분류하기 힘든 스킬 두 개. 이게 가장 눈에 띈다.
스킬 반경 증가1이랑 스킬 지속시간 증가1.
와…. 씨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네? 스킬 이름 그대로잖아?
근데 이거 적용이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건 정말 패시브 말고는 적용이 힘들 거 같은데?
무엇보다 스킬 이름 뒤에 붙은 1이라는 숫자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1이 있다면 2도 있다는 거잖아? 그럼 결국 이건 패시브가 맞다는 소린데.
게다가 스킬 반경 증가라니…. 이건 정말 씹사기 스킬 아냐? 대체 얼마나 늘려주는 거지? 막 1퍼센트 이런 건 아니겠지?
10퍼센트만 된다고 해도 탐지 같은 경우는 10미터나 늘어나는 셈이다.
게다가 수면 같은 것도 30미터에서 3미터나 더 늘어난다.
거리…. 정말 중요한 거다. 남들은 못쓰는 거리에서 나는 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다.
스킬을 먼저 쓸 수 있다는 거잖아. 다른 건 신경 안 쓰고 바로 이걸 찍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인데?
게다가 지속시간 증가. 이것도 좋다.
얼마나 늘려줄지는 모르지만, 매혹이나 탐지 같은 경우는 지속시간이 길어질수록 좋으니까.
아…. 증가율 좀 적어주지. 진짜 미친놈들이야. 그거 한 줄 써넣는 게 그리 힘든가?
그리고 보조 스킬. 무작위 소환, 복권, 증폭.
무작위 소환이라니…. 앞에 나왔던 스킬 중에 이미 소환이 있는데? 무작위면…. 뭘 무작위로 소환하는 거냐고?
미치겠네…. 솔직히 말해서 이것도 찍어보고 싶다. 대체 뭐가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복권.
미친놈들. 지랄하네 아주.
내가 아는 복권의 뜻과 스킬 만든 새끼들이 아는 뜻이 같다면, 이건 의미하는 게 하나밖에 없다.
코인으로 뭔가를 사서 더 많은 코인을 얻거나 꽝이 나오거나.
그거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이 새끼들…. 이젠 사행성 조장까지 하는 거야?
증폭.
이건 아마…. 공격 스킬의 데미지를 올려주는 거겠지?
그럼…. 이것도 패시브인가? 근데 숫자가 안 쓰여있는데?
모르겠다. 암튼 대충 그런 스킬이겠지? 근데 나는 공격 스킬이 없는걸?
제작 스킬은 아주 심상치 않은 스킬이 나왔다.
계약서 제작.
계약서라니…. 뭔가를 계약하는 거겠지?
근데 이것도 설명이 부족하다. 계약서는 뭘 계약한다는 거야? 집이라도 계약하나? 공인중개사야?
희망 회로를 돌려보자면…. 계약서를 제작하고 거기에 뭔가를 써서 서로 동의하면 그게 이뤄진다는 것?
근데 계약이 파기되면? 거기에 대한 게 아무것도 안 적혀있으니 막막하기만 하다..
쓸모있을것 같긴 한데 어던 건지 확인이 안 되니 원.
일단 추가된 스킬은 이렇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스킬 반경 증가1을 골랐다.
비행을 찍고 싶긴 하지만, 일단 반경 증가가 더 탐난다.
무엇보다 저 뒤에 있는 1이라는 숫자가 신경 쓰인다.
근데…. 궁금해지네. 만약 이게 패시브면 숙련을 못 하는데? 다음 스킬을 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정 시간 같은 걸 기다려야 하나?
아니, 패시브가 아니어도 황당하지. 반경 증가 같은 걸 어떻게 숙련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찍어보자.
적어도 후회하진 않겠지.
['스킬 반경 증가1' 스킬을 배우는데 10만 코인이 소모됩니다. 배우시겠습니까?]
나는 예를 눌렀고 내 스킬 창에는 스킬 반경 증가 1이라는 스킬이 생겼다.
좋아…. 좋은데…. 씨발? 이게 뭐지?
왜 고를 수 있는 칸이 그대로 있어?
설마…. 설마?
눌러보니 스킬 목록이 다시 주르륵 나왔다.
맙소사. 저건 그럼 패시브고…. 패시브는 그냥 코인 주고 배우면 끝인 거야?
나는 진정하고 스킬 목록을 천천히 살펴봤다.
스킬 반경 증가 1은 목록에 없었고 스킬 반경 증가 2같은 것도 없었다.
정리해보자. 그러니까…. 지금 스킬 반경 증가 1은 적용이 되고 있는 거야.
그리고 2가 안 보이는 건…. 뭔가를 또 마스터 하면 다음에 2가 나오는 방식일 거야. 그렇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잖아?
잠깐만…. 그럼 앞에 있었던 스킬들 중에 애매한 게 있었지.
데미지 감소와 체력 증가, 그리고 신체 능력 증가.
셋 다 감소나 증가라는 말이 있으니 패시브일 확률이 높다.
숫자가 없는 거로 봐선 단발성이라는 거고.
그럼…. 이것들을 찍어도 또 스킬을 고를 수 있는 거겠지?
해본다. 어차피 코인은 많아.
['체력 증가' 스킬을 배우는데 50만 코인이 소모됩니다. 배우시겠습니까?]
50만? 50만??? 단발성이라 50만인 거야? 엄청 비싸네…. 이거 괜찮으려나?
일단 찍는다. 찍고 생각해보자. 체력 증가면 적어도 손해는 아니겠지.
예를 눌렀고 스킬 창을 보니 '체력 증가' 라고 스킬이 생겼다.
그리고 또 보이는 스킬 선택 칸.
오오…. 시부랄. 이렇게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